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40화 (440/774)

440화. 광기의 필요성 (5)

다음 날 아침.

“헉? 이, 이게 뭐야?”

강서상회의 총관 진광(辰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금색전서(金色傳書)? 이런!”

금색전서는 초지급의 전서를 뜻함이었다. 오로지 회주만이 허가할 수 있는 색(色)으로, 명이 떨어지는 즉시 상회 정보처에 전서가 전달된다.

"이, 이럴 때가 아니지!”

진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상회 본부의 전서응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뒤를 한 줄기 은밀한 그림자가 쫓았다.

“회주님!”

돌아온 위지노백을 보며 진광이 서둘러 물었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몸은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목소리가 유독 딱딱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다급한 마음에 진광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마교주가 뭐라고⋯⋯ 아, 아닙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요! 금색전서는 갑자기 어떤 일로?!”

"피곤하네. 이만 쉬고 싶으니 나가 주게.”

“회주님!”

“나가 달라고 했네.”

“⋯⋯."

진광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예.”

“총관.”

“예?”

"내일 정오까지 내 거처에 아무도 들이지 말게. 혼자 있고 싶네.”

진광의 얼굴에 걱정이 깃들었다.

“회주님, 사정 설명이라도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장로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언질도 없이 절강의 교역로를 막은 것에 대해 반발이 이만저만이⋯⋯”

“내일 말해 주겠네.”

"⋯⋯알겠습니다. 장로들은 제가 어떻게든 다독여 보겠습니다.”

그렇게 진광이 나갔다.

홀로 남은 위지노백이 멍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평소에도 자세가 바른 그였지만 오늘따라 유독 딱딱했다. 마치 관절이 잘 펴지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는데, 그 모습이 묘한 섬뜩함을 자아냈다.

잠시 후.

“푸후, 은신술도 오랜만에 하려니 영 힘들구먼.”

어느새 위지노백의 옆에 서량이 나타났다.

그가 나직이 투덜거렸다.

“상회 본부라고 하더니, 어지간한 대문파보다도 훨씬 경계가 삼엄하군. 하기야 돈 관리하는 데니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상단의 경계가 무림 문파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림 문파는 소속원 대다수가 무공을 익히고 있다. 따라서 따로 경비를 세우지 않아도 구성원 하나하나가 경비원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상단은 주 구성원들이 상인이다. 심지어 무림과도 연계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 도둑과 강도를 당할 위험이 문파보다 훨씬 크다.

당연히 자금 관리와 경비에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상단의 경우, 특히 본부의 경계는 거의 난공불락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비록 현역 때만큼은 아니지만 살왕의 무(武)를 기억하고 있는 서량조차 위지노백을 앞세웠음에도 몇 번이나 난감함을 느껴야 했다. 서량의 경지를 생각하면 실로 대단한 경계였다.

“혹시 모르니 앞으로도 은신술에 신경을 써야 하나?”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보호하는 호천마황단주는 내심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못 하시는 게 뭘까?'

그는 전대 교주인 이천상도 보필했었다.

이천상은 은신술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애초에 쓸 일도 없었거니와 이천상의 일 처리 방식은 이리 은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당대 교주인 서량은 단순 무공은 물론 적극적인 작전 수립과 본인이 세운 작전을 단숨에 뒤집어엎는 파격, 나아가 은신술과 화술에도 능했다.

특히나 은신술의 경우 호천마황단의 신입보다도 나은 수준이었다. 호천마황단처럼 은신에 특화된 마공이 아닌 정통마공을 익혔는데도 그 정도다.

경지가 높다고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마황단주는 서량의 다재다능함에 놀라움을 넘어 섬뜩함을 느꼈다.

‘이래서 신이라 불리시는 것이로구나.'

할 수 없는 것 따위는 없고, 나아가지 못할 곳도 없다.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

“어찌 되었든 무사히 들어왔으니 할 일을 해야겠군.”

서량이 위지노백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위지노백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전처럼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는데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상회의 공금을 제외하고, 네 개인 자산은 어느 정도 되지?"

“황금 이백사십오만 냥입니다.”

서량은 혀를 내둘렀다.

“어지간히 빼돌렸구먼?”

“그렇습니다.”

척척 잘도 대답한다.

서량은 그런 위지노백을 조소했다.

“새끼, 본교를 증오해서 모였다고? 무너트리는 게 목적이야? 웃기고들 있군. 돈맛에 취해서 공금이나 빼돌리는 놈을 회주로 둔 주제에 언감생심 잘도 본교를 상대하겠다.”

흔하디흔한 얘기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모였지만 성공과 부(富)에 젖어 어느새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것.

서량이 아주 혐오하는 부류였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까지는 상관없지만, 그런 자신을 속이는 자들이 싫었다.

위지노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정작 서량을 앞두자 공포에 벌벌 떨었다.

서량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라거나 마기가 주는 원초적인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위지노백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았다. 돈이 주는 힘과 권력에 찌들 대로 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령수(死靈手)에 이리 쉽게 걸린 것이다.

'앞으로 또 언제 쓸 수 있을까?'

사령수는 상대에게 막심한 공포를 주입하여 정신을 무너트리는, 일종의 정신적 고문술에 가깝다.

그러나 군림마황기가 대성에 가까워질수록 사령수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그중 하나가 바로 최면(催眠)으로, 상대를 거의 완벽하게 괴뢰(德儒)로 만들 수 있다.

다만 사령수에 당하기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으며, 당한 자의 뇌력(腦力)이 평시보다 열 배는 더 많이 쓰이기 때문에 수명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즉, 죽여도 무방할 대상이 아니라면 절대 써서는 안 되는 비술이란 것이다.

게다가 최면은 사령수의 최종비기에 해당하는 술(術)로, 따로 사령기(死靈氣)가 회복될 때까지 몇 달 동안은 사용하지 못한다.

‘하긴, 별로 마음에 드는 수법도 아니야.'

상대를 농락하느니 그냥 깔끔하게 목을 베는 게 낫다. 그것이 서량의 도(道)였다. 이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령수는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 다시 일을 시작해 보자.”

서량이 위지노백에게 물었다.

“각 정보처에 보낸 금색전서는 네놈의 단독 권한이 맞지?"

“그렇습니다.”

“정보처에 당도할 때까지 누구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것도 맞지?”

“그렇습니다.”

“일단 정보처로 들어간 금색전서가 중원 전역으로 퍼지는 시간은?”

“짧게는 이틀, 길게는 닷새입니다.”

위지노백이 작성한, 정확히는 서량의 지시를 받아 작성된 금색전서에는 그간 강서상회가 암암리에 저질렀던 불법 사업들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 내용이 중원 전역으로 퍼지면 강서상회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더 이상 호남의 일에도, 무역에도 신경 쓰지 못할 것이다.

“딱 좋군. 그리고 하나 더."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절강의 교역로들을 막아 버린 걸 다시 복구하려면, 네놈의 인장과 암어는 물론 친필 허가까지 있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인장과 암어까지는 그럴 수 있지만 친필은⋯⋯.'

글자를 전문적으로 검수하는 사람들은 획의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

현재 위지노백의 상태는 무척이나 불안정하다. 시키는 일은 분명하게 처리할 수 있지만 글자를 쓰는 등의 섬세한 작업까지 실수 없이 행하기는 무리였다.

'뭐, 애초에 인장과 암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꽤 긴 시간이 걸릴거야. 그럴 바에야⋯⋯.'

생각을 바꿔 보면 어떨까?

절강의 교역로가 막혔다는 건 남부의 상업 통로도 막혔다는 뜻이다. 남부 상회의 최고봉이라는 강서상회가 그중 칠 할을 막아 버린 꼴이니 신교에도 막대한 타격이 온다.

그렇다고 이걸 당장 해결하려 했다간 담사영과 이어지는 끈이 끊어질 수도 있다. 서량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건데. 어느 하나 우선시될 수 없는 문제야.'

그때였다.

“어?”

문득 든 생각에 서량이 위지노백에게 물었다.

“너, 담사영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와야 한다고 했었지? 네 쪽에서 연락을 보낼 순 없고?"

“그렇습니다.”

“보통 연락 오는 주기가 어떻게 되지?"

“매번 다릅니다만 평균을 내면 분기별로 한 번씩은 연락이 옵니다. 어떨 때는 사나흘에 걸쳐서 올 때도 있습니다.”

서량의 얼굴에 사악한 웃음이 드리워졌다.

“즉, 나름의 기간을 두긴 둔다는 말이지?"

“별일이 없을 경우, 그렇습니다.”

그럼 별일을 만들면 되겠구먼?

'담 늙은이가 자주 써먹던 방법을 꺼내야겠군.'

위지노백의 어깨를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 네 목숨이 며칠 더 연장될 기회가 생겼다.”

*

*

*

“사부님.”

“무슨 일이냐.”

한참 송금백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담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리후의 얼굴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담사영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단리후가 당황하고 있음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단리후가 저리 당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단리후가 송금백을 힐끔거렸다.

담사영이 손을 들었다.

"괜찮다. 보고하거라.”

“강서상회가 악소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악소문이라니? 어떤?”

“상회가 지난 십수 년 동안 벌여 온 온갖 불법적인 사업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담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소문이야 흔히들 있는 것 아니더냐.”

“그렇습니다만, 이번에는 반정회와 칠파를 성토하는 분위기라 더 문제입니다.”

"뭐라?”

“제때 나서야 했을 문파들이 일을 바로잡지 않아서 그렇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이리도 금세 퍼질 정도면 강서상회에 대한 악소문이 무척 자세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부각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허!”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소문의 출처는?”

“그것이⋯⋯.”

단리후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왜 말이 없는 것이냐? 출처가 어디냐니까?”

“비연단(飛燕團) 입니다.”

“비연단? 설마 그 비연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강서상회 최고의 정보처인 비연단에서 중원 전역으로 소문을 쏘아 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담사영은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참아 냈다.

비연단의 정보력은 범위에 있어선 하오문을 따라오지 못하지만, 그들이 맡은 지역 한정으로는 하오문에 필적한다. 그리고 그 정보력은 그간 강서상회의 성장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즉, 비연단은 강서상회 산하 단체이자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였다. 그런 정보처에서 그런 악소문을 흘린다고?

“비연단이 단독으로 그런 일을 벌였을 리가 없다. 회주의 짓이냐?"

“정확히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다만 금색전서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금색전서?!”

금색전서는 오직 회주만이 쓸 수 있는 절대명령을 뜻한다. 그것이 비연단에 전해질 때까지 누구도 내용을 알 수 없으며, 문파로 치자면 전시(戰時) 상황이 아니고서야 쉽게 쓰지 않는 비상색(非常色)이었다.

“그럴 리가⋯⋯ 회주가 미치지 않고서야⋯⋯.”

“당한 것 아니오?”

송금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정은 모르지만 그런 악소문이 날 정도면 누군가가 뒤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보는데.”

담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소. 하지만 강서상회의 회주라는 자리는 구대문파의 장문인보다도 안전하오. 설령 누군가에게 당했다 한들 금색전서에 관해 적에게 실토할 사람은 아니외다.”

“그렇다면?”

담사영의 눈이 깊어졌다.

“이 늙은이가 느닷없이 배신했다는 겐가?”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누군가에게 당했을 확률보다 배신했을 확률이 오히려 높다.

그러나 담사영은 찝찝함을 느꼈다. 수십 년 동안 강호의 온갖 음모와 귀계로 단련된 그의 육감이, 이 사태가 절대 단순하지 않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 외에 기이한 소문도 함께 퍼지고 있습니다.”

담사영과 송금백이 단리후를 보았다.

“기이한 소문이라니?”

“사부님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내 이름?”

“강서상회의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 그 흑막의 정체가 사부님이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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