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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41화 (650/774)

441화. 남부의 지배자 (1)

“총군사님! 절강 무역상인연합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염병! 또 왔어? 바빠 죽겠구먼!”

엄살이 아니었다. 호요성의 볼은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쑥 패어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생기가 넘쳤다.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은 듯했다.

“여기 서신입니다!”

순식간에 서신을 읽은 호요성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우리 상인 양반들께서 발등에 불이 떨어지셨구먼?”

강서상회가 절강의 무역 통로를 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서상회에 대한 악소문이 중원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소문의 파급력은 그야말로 폭발적이 었다. 아무리 황궁이 힘을 잃었다 해도 최소한의 법도는 지켜야 함이 마땅하거늘, 그들은 암암리에 염상업(鹽商業)까지 손을 댔던 것이다.

심각한 위법 행위지만, 기실 그에 따른 양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불법이지만 실제 양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민들이 입을 모아 강서상회를 성토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강서상회는 양민들을 상대로 염왕채(閻王債)를 놓았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 었다. 이름을 숨긴 강서상회 휘하 염왕채는 그 수만 무려 오백이 넘었다.

염왕채 하나가 그 지역에 주는 피해는 실로 무시무시하다. 돈을 빌려줄 때는 간이고 쓸개고 빼 줄 것처럼 굴다가 독촉을 시작할 때는 칼까지 뽑아 드는 게 염왕채였다.

게다가 계약 당시의 이율과 수금 날의 이율 변동이 극심했다. 계약서를 작성해도 계약대로 돈을 받진 않는다는 것이다. 양민들로선 무림 인들보다도 무서운 존재가 바로 염왕채 였다.

즉, 강서상회는 염왕채를 통해 남몰래 수만 양민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조차 그간 강서상회가 벌여 온 수많은 불법적인 사업의 일부에 불과할 따름이니, 이 바닥에서 강서상회의 자금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 수 있었다.

절강의 무역 통로를 일개 상인연합의 힘만으로 단숨에 봉쇄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자금이 곧 힘인 상계에서 강서상회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무역하는 상인들은 강서상회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무역상들도 이대로 손가락 빨고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무역이 하루만 중단되어도 그들이 입게 되는 자금 손실은 엄청났다.

“그들 대표가 강서성으로 들어왔다고?”

“그렇습니다.”

“무역상들도목숨을 걸었군.”

호요성이 흔쾌히 말했다.

“그간 입은 피해 금액이 얼마인지 물어보게. 황금 백만 냥 안쪽이면 피해 금액의 팔 할을 복구해 주겠다고 해.”

"파, 팔 할 말씀이십니까?"

“걱정하지 말게. 돈 나올 구석이 여기저기서 생기고 있으니까. 그리고 뭐, 손해 좀 보면 어때? 강서상회의 통제를 받던 무역상들을 우리가 잡아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미래를 생각하면 없는 돈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야.”

호요성이 의자에 등을 묻었다.

그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감탄이 묻어 나왔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교주님.'

서량이 직접 강서성으로 간 이유는 호남의 일에 책임을 묻기 위함이 아니었다.

바로 담사영 때문이었다. 아닌 말로, 그저 책임을 묻기 위함이라면 신장부만 출격시켜도 강서상회를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막말로 서량으로선 담사영만 잡을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십만마도의 종주이며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복수심에 미친 서량 개인이 아닌 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판단을 내려야 했다.

바로 거기서 서량의 대담한 전략이, 강한 추진력이 빛을 발했다.

'강서성 전체를 인질 삼아 상회주를 소환하고, 그 즉시 상회를 무너트릴 최선의 수를 찾으신 거야.’

강서상회를 불태우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본부를 불태운다고 하여 그들을 완전히 절멸시킬 순 없다. 설령 절멸시킨다 한들 공백이 생긴 강서성을 노리는 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공백이 생기기도 전에 천마신교가 개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간 서량의 노력으로 천마신교를 향한 공포는 제법 희석되어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한 가지만은 잊지 않았다.

천마신교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

천마신교는 자신을 건드린 조직에 대해 가차 없는 보복을 가한다. 하물며 전대 교주 이천상의 엄청난 무력과 당대 교주 서량의 무지막지한 추진력을 본 무림 인들은 언감생심 천마신교를 건드릴 생각조차 못 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교주님께서도 이미 막혀 버린 무역 통로를 열 수는 없다고 판단하신 거겠지. 그래서 무역상과 본교를 연결해 남부 상계의 판을 바꿔 버리신 거다.’

강서상회가 무너지면 자연스레 무역 통로가 개방된다.

하지만 완전히 무너지기까지의 시간이 문제였다.

강서상회가 마비된 상황에서 무역상들은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금전 손실이 지속되어도 강서상회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서량은 바로 그때, 그곳에 천마신교를 출격시킨 것이다.

그 외에 지시는 없었다. 무역상들과 선을 닿게 했으니, 남은 건 천마신교의 총군사인 호요성의 몫이었다.

그리고 호요성은 서량이 노린 것이 무엇인지, 그가 바라는 최상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저 상대를 무너트리는 게 전부가 아니야. 상대의 살점으로 본교의 배를 불림과 동시에 그 뒤에 숨은 적을 수면 위로 끌어내는 신의 한 수다.'

무역상들은 무림인이 아니라 상인이 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문을 남기는 것이기에 거래 대상의 평판 따위는 문제 삼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걸 따질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하여 호요성은 그간 무역상들이 입은 피해의 팔 할을 보상해 주겠다는 초강수를 던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무역상들은 이제 강서상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다. 강서상회보다 열 배는 강하고 백 배는 무서운 천마신교와 손을 잡지 않았나.

“처음에야좀 삐걱거리겠지만 강서상회보다 한 푼이라도 덜 받으면 그만이야. 그것만으로도 무역상들은 본교를 찬양하게 되겠지.”

호요성은 덩실덩실 춤이라고 추고 싶었다.

“이대로 잘 성장하면 장강 이남 쪽 돈이란 돈은 우리가 싹 쓸어 버릴 수 있겠구먼.”

돈은 곧 힘이다. 특정 상황에선 무력보다도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금력(金力)이었다.

그간 천마신교는 신앙과 자존심으로 뭉쳤다.

서량은 거기에 자금까지 얹어 주었다.

'본교 역사상 이렇게 급진적인 교주님 이 계셨던가. 전대 교주님도 이 정도로 하셨을지 의문이군.'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호요성이 순식간에 서신 하나를 작성했다.

“이걸 교주님께 보내게. 지급으로 처리해.”

“알겠습니다.”

혼자가 된 호요성이 손으로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어휴, 이러다가 진짜 쓰러지겠군. 안 그래도 바쁜 총군사에게 이런 짐까지 얹어 주시다니, 정말 너무하시는군.”

물론 농담이었다. 호요성은 신교로 들어온 이래,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 리는 것을 느꼈다.

“자, 이제부터 뒷일은 제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교주님께선 마장들과 함께 시원하게 놀아 보십시오.”

* * *

“호오?"

호요성의 서신을 받아 든 서량의 얼굴에 흥미가 어렸다.

"앵화가? 이거 뜻밖인데?”

위지노백만 봐도 알 수 있듯 강서상회 수뇌부들은 썩을 대로 썩어 버렸다. 하기야 염상업, 염왕채, 암살 단체 등등 온갖 불법적인 사업으로 돈을 불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는 위지노백이 개인적으로 축적한 재산을 몽땅 몰수할 생각이었다. 황금으로 이백만 냥이 훌쩍 넘는 돈이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이 었다.

한데 앵화를 통해 연결한 천인상단의 돈은 물론, 수뇌부들까지 싹 잡아다가 탈탈 털어먹을 수 있게 되었다.

호요성의 계책과 추진력은 서량 못지않았다. 오히려 전체적인 판을 보는 눈은 서량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강서상회를 악소문으로 무너트리고 무역상을 빼앗은 서량과는 달리, 호요성은 철전 하나까지 몽땅 회수해 버릴 생각인 듯했다. 집요하고 독한 일 처리였다.

'좀 과하다 싶긴 하지만…… 어차피 강서성을 집어삼키려고 했으니 뒤끝 없이 확실하게 가는 것도 좋겠지.’

이제 강서상회는 뿌리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강서상회라는 이름은 남겠지만 실속이라곤 하나도 없는 단체가 되는 것이다.

남은 것은 철저한 몰락뿐이다.

“후우, 이렇게 한건은 끝났고.”

창가를 보는 서량의 눈이 서늘해졌다.

'자,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되지 않았냐?’

지금쯤이면 담사영도 강서상회가 박살 난 걸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담사영은 자신이 모르는 일을 그냥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일의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근시일 내로 움직일 것이다.

창가를 보며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서량을 보며 여극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네나 총군사나, 정말이지 무서운 사람들이로군.”

“예?”

“강서성에 도착한 이후 자네가 보여 준 일련의 행동, 참으로 인상적이었네. 힘으로 굴복시킬 수 있었음에도 철저하게 내부부터 망가트리다니.”

서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남에게 자랑할 만큼 멋들어진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결과지. 물론 강서상회가 그리 악랄한 단체가 아니었다면 내가 먼저 말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일세.”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뭐, 어차피 머릿수로 밀리니 사정사정하는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여극도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서량 역시 마주 웃었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머릿수로 밀린다?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닐 텐데.'

여극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여극도가 본인의 무공을 완벽하게 되찾게 된다면 얼마나 무서운 무공을 보여 줄지 상상도 안 된다.

'어떤 면에서는 남궁 선배보다도 조심해야 할 사람이야.’

“한데 말일세.”

'공적으로든.’

“자네, 정말 우리 린이한테 관심 없나?”

’……사적으로든.’

서량의 얼굴이 구겨졌다.

“거 관심 없다니까요.”

“정말? 아니,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린이 정도면 천하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재녀(才女)가 아닌가? 얼굴 예뻐, 몸매 좋아, 출신 기똥차고 무공도 제법 해. 심지어 머리도 똑똑하다네. 이런 신붓감, 어디서 못 찾아.”

서량은 저도 모르게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자신의 딸에게 몸매가 좋다고 말하는 아비는 처음 보았다.

확실히 북해의 정서는 중원과 다른 모양이 었다. 이러다간 혼사도 안 치르고 일단 한번 살아 보라는 소리까지 나올 판이었다.

“혹시 성격 때문에 그러나? 하면 일단 둘이 같이 살아 보는 건 어떤가?"

어떤 의미로는 정말 예상하기 쉬운 성격이다.

“됐습니다. 앞길 창창한 딸내미 미래를 그리 망치고 싶으십 니까?”

“허! 좋은 사람과 혼인 전에 같이 살아 보는 게 뭐 어떻다고 그러나?”

“세상에.”

“중원 사람들은 참 꽉 막혀 있구먼. 나는 말일세, 혼사를 치르기 전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보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오래 지내 봐야 그 사람이 어떤 위인인지 잘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물건 하나를 사려 해도 이것저것 만져 본 후에 사야 후회를 안 하는 법이거늘……"

“아, 됐다고요.”

“거참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어? 자네 혹시?”

“왜요.”

“설마 아니지?”

“뭐가요.”

“음…….”

“뭐냐고요.”

“자네, 설마 남자…….”

화르르륵!

서량이 쥔 찻잔이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졌다.

여극도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농담일세, 농담.”

“…….”

“……미안하네. 내가 좀 심했지?”

서량은 고개를 홱 돌려 버 렸다.

여극도가 헛기침을 했다. 이 꽉 막힌 중원 놈들 정서를 생각하면 기분이 나쁠 것 같긴 하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안절부절못하던 여극도가 또 한 번의 헛기침과 함께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한 소리는 그냥 잊어버리……"

“왔군.”

“응?’,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이 무섭게 불타올랐다.

“대어(大魚)는 아니고, 잡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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