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화. 남부의 지배자 (6)
군림마황기(君臨魔皇氣)상의 무공이 셀 수도 없이 많다지만 그것은 구사할 수 있는 무공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뿐, 진정 셀 수 없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소림을 대표하는 무공에 칠십이절예(七十二絶藝)가 있다면, 군림마황기에는 칠십이신기(七十二神技)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간 이천상과 서량이 선보였던 능천마라수(凌天魔羅手)나 뇌공만마일식(雷公萬魔一式), 마선일지(魔仙一指) 등이 전부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각자의 특성이 뚜렷한 소림칠십이절예와 달리, 군림마황기에는 나머지 예순아홉 가지의 신기(神技)를 압도하는 세 가지의 비기(祕技)가 존재한다.
군림마황기의 삼대비기(三大秘技), 정반합(正反合)으로 대변되는 극한의 무도(武道).
그중 반(反)에 해당하는 반천축정술은 서량이 회복을 꾀할 때와 이천상이 찰극천멸마금진을 부수고 나서 쓴 적이 있다. 합(合)의 비기인 멸가종무 역시 이천상이 직접 선보였으며, 단 일 합으로 멸마금진을 박살 내 그 위용을 떨쳤다.
그렇다면 정(正)의 비기는 무엇인가?
정의 비기는 바르다는 의미의 정이 아니었다. 군림마황기의 정은 올곧은 공격을 의미했다.
단순히 구결을 안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닌 합의 비기와는 달리, 정의 비기는 구결만 알아도 쓰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시전자에게는 합보다도 정의 비기가 훨씬 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합의 비기는 시전자가 범위, 파괴력, 속도까지 전부 조절할 수 있는 반면 정의 비기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공격(攻擊)의 올곧음. 공격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에 가장 가까운 초식.
언제든 쓸 수 있되 성취가 낮으면 제 위력이 나올 때까지 시전자의 생명력마저 뽑아 쓰는 지극히 위험한 기공.
지이이이잉!
허공에 떠 있는 서량의 몸 주변으로 군림마황기가 번져 나갔다.
밝은 하늘에 먹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어둡지만 분명한 청색의 마기인데도, 마치 먹구름을 불러오는 것처럼 세상을 어둡게 물들였다.
단리후의 눈에는 그 속도가 너무나도 느리게 보였다.
하지만 마황기가 번지는 속도는 육안으로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저 저 마기의 번짐이, 흘러넘치는 위압감이 너무도 압도적이라 그리 느꼈을 뿐이었다.
우우우웅!!
서량의 손에 들려 있던 마황보검이 저절로 떠올라 그의 중단 앞에서 맴돌았다.
'이럴 수가.’
단리후가 눈을 부릅떴다.
허공에 사람이 떠 있다. 그리고 검도 떠 있다.
허공답보의 극치란 곧 공중부양(空中浮揚)이다. 하지만 서량의 인간 같지 않은 무공을 봐서 그런지 공중부양에 이기어검(以氣取劍)까지 띠웠다는 게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장악력은?
'믿을 수 없다. 기상이⋯⋯!’
실제 먹구름도 아니고 기온이 변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저 상상을 초월하는 마기가 노려보는 대상은 다르게 느낀다. 하늘이 바뀌고 기온이 하강한다. 공기 중에 습도가 올라가고, 위험한 기운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살기의 표적이 된 단리후, 그는 살아생전 처음으로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완성된 부동심이 뿌리부터 뒤흔들리고 있었다.
“멸법욕화(滅法然火)."
불과 같은 욕망으로도 적멸(寂滅)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뜻하는 마황비기의 시작 영창.
콰르르릉!
하늘에서 천둥이 울렸다.
극으로 달아오른 군림마황기가 만들어 내는 성난 포효였다. 진짜 천둥소리를 방불케 하는 굉음이 하늘을 통째로 무너트릴 것 처럼 울려 퍼졌다.
“혈염시악(血染始惡).”
피로 물들었던 최초의 악을 깨우다. 군림마황기가 만들어졌던 천 년 전, 초대천마가 처음으로 이름 붙인 극한의 기공식.
파지지지직! 파지지직!
군림마황기가 장악한 공간 곳곳에서 방전 현상이 일었다. 검게 물든 허공에 셀 수 없이 많은 원형의 공간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철저한 파괴 의지였다. 제석천의 힘을 빼앗아 온 천마파순의 모든 공격력이 집약된 뇌정력(雷遷力)이었다.
서량의 눈이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었다.
흰자위의 경계가 사라져 버린 그의 두 눈은 진정 악마를 보는 것 같았다.
“제석개문(帝釋開門), 광뢰난무(狂雷亂舞).”
번쩍! 콰르르릉!
벼락을 닮은 수십 줄기의 검기(劍氣)가 난사됐다.
콰쾅! 퍼퍼퍼펑!!
검기에 맞은 대지가 모조리 박살 나고, 저 멀리 호수로 날아간 검기는 거센 폭발을 일으켰다.
범위를 제어할 수가 없다. 무차별로 난사되는 벼락 세례에 단리후가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일월쌍륜을 뽑아 쥔 단리후가 태양신기(太陽神氣)를 끌어 올렸다.
'태양광막(太陽光幕)!'
륜으로 펼치는 진기의 방패였다. 방패지만 지독한 열기 덕에 공격으로 쓸 수도 있는 무공이었다.
지금은 죽어 버린 의천맹의 무상 광혼의 공격까지도 무리 없이 차단한 천룡궁의 절대방어술.
그러나.
퍼석!
단리후의 눈에 핏발이 섰다.
'깨졌다!’
원형으로 휘돌아가는 빛의 진기가 깨진 동경의 파편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십 줄기의 검기와 함께 쏘아진 화려한 보검은 진기의 막을 꿰뚫는 것도 모자라 전면에 떠 있는 일월쌍륜까지 공격했다.
그리고,
카아아아앙!
월륜(月輪)이 깨져 버렸다.
신병이기인 월륜이 절대마기로 형성된 뇌검(雷劍)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박살 나 버린 것이다. 심지어 화경에 달한 초고순도의 태양신기까지 머금고 있었는데도 부서졌다.
경악에 경악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놀라움의 순간에도 단리후는 용케 몸을 비틀어 뇌검의 일격을 피해 냈다.
어쩌면 공격이 시작된 순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저 묘사하기도 힘들 만큼 무지막지한 기공 세례를 막아 낼 수는 없을 거라는 걸.
물론 생각과 현실의 괴리가 주는 충격은 꽤 극심했다.
콰콰쾅! 콰릉!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마치 서량이 품고 있는 모든 마기를 빨아먹겠다는 듯 금빛 번개는 끊임없이 세상을 파괴했다.
땅이 뒤집히고, 터져 나간 물이 증발했다. 세상은 갈수록 어두워졌고 이젠 폭음 이외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죽음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공격의 중첩이었다. 미친 번개가 날뛴다는 초식명에 어울리는 무차별 공격이었다.
“허억!”
“하, 하늘이 노했다!”
“신이시여!”
이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도시.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이 굉음을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굉음뿐만이 아니라 대지를 뒤흔들고 호수를 연신 터트리는 벼락에 그들은 극심한 공포에 젖어들었다.
서량이 외쳤다.
"이놈!”
호북 전체를 울릴 듯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목소리.
진짜 신이라도 된 듯 목소리에 굉장한 위엄이 실려 있었다. 엎드려 하늘을 향해 빌던 사람들은 진정 신이 강림한 듯한 착각에 벌벌 떨기 바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스르르륵.
서량의 몸이 땅 위로 내려섰다.
웅장한 마황보의도, 철탑 같은 체격도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안색은 상당히 창백해져 있었다. 서량에게도 광뢰난무를 시전하는 건 제법 큰 부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상을 입지도, 생명력을 소진하지도 않았다. 그가 지닌 힘의 크기가 광뢰난무를 펼치기에 충분할 정도로 연마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하나만 남았군.'
합의 비기 천상천하가종무.
심검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지금은 구현은커녕 영창조차 뱉을 수 없는 마지막 초식을 제외하고 모든 무공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스르르릉!
단리후를 미친 듯이 공격했던 마황보검도 저절로 날아와 칼집으로 들어갔다.
푸스스스.
자욱하던 먼지구름이 잦아들었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그 안에 비틀거리고 있는 단리후의 모습을 본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천룡궁의 무공은 대체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쿠웨에엑!”
단리후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했다.
그의 모습은 실로 처참했다. 전신이 난자당한 것도 모자라 뇌격에 맞았는지 드러난 피부가 전부 검붉게 그을려 있었다.
머리카락도, 눈썹도 모두 타서 사라졌다. 왼팔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고, 우측 허벅지 근육이 한 주먹이나 뭉텅 뜯겨 허연 뼈가 드러나 있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하지만 피를 토하는 단리후는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광뢰난무를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다⋯⋯. 담사영도 천룡의 무공을 익혔나?”
“쿨럭!”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군.”
그때였다.
푸스스스스.
서량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단리후의 몸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상처에서 나고 있었다. 마치 그곳이 출구라도 되는 양, 몸 안 가득 숨겨져 있던 연기들이 이제야 뿜어져 나오고 있는 듯했다.
푸스스스.
이내 단리후의 몸에 가득했던 상처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서량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반천축정술?!’
아니다. 이것은 반천축정술과 궤를 달리하는 회복술이었다.
하지만 어떤 원리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기(氣)의 순간적인 흡수로 급속도의 회복을 꾀하는 것 같긴 한데, 과정 대부분을 파악할 수 없었다.
“⋯⋯대단하오.”
단리후가 좌측 어깨를 잡았다.
“이런 곳에서 팔을 잃을 줄은 몰랐소.”
“안 뒈진 게 어디냐.”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곳은 다 회복이 됐는데 팔은 회복하지 못했군. 떨어져 나간 사지는 다시 나지 않는 거냐?”
"요괴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겠소.”
“지금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요괴 같다. 본교에도 그런 회복술은 없는데 말야. 심지어 이리도 빨리? 괴물이 따로 없군.”
“칭찬으로 듣겠소.”
“와중에 머리카락은 안 났네? 당분간 민머리로 살아야겠어.”
“⋯⋯.”
“뭐, 그야 상관없겠지.”
파지지지직!
서량의 오른손에 다시 군림마황기가 어렸다.
단리후의 얼굴이 굳어졌다.
'실패했다.'
최소한 적벽(赤壁) 옆, 통산(通山)으로 서량을 끌고 갔어야 했다. 그곳을 무대로 난장판을 벌여야 했다.
그곳에서 사는 양민들의 삶을 제 손으로 무너트리게 만들었어야 했다.
그것을 위해 서량을 여기로 유인했건만, 상상을 초월하는 무공으로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다.
도시는 근처도 가지 못한 상황이었다.
'도주가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혹시 몰라 챙겨 둔 귀옥(鬼玉)으로 순식간에 몸을 회복했지만, 내공도 절반이나 날아갔고 체력 소모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으며 결정적으로 월륜까지 깨져 버렸다.
일륜 하나로도 일주로서의 법술을 구사할 수 있지만, 과연 이 괴수 같은 자를 상대로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그냥 보내 주지는 않을 거요?"
“오늘은 아침도 걸렀더랬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강서에서 호북까지 뛰어왔는데 인건비라도 챙겨야지 않겠나?”
“날 멀쩡히 보내 준다면⋯⋯.”
퍼어어엉!
단리후의 몸이 주르륵 밀려 나갔다.
이전처럼 장력의 충격파를 이용해서 신법을 펼칠 수도 있었지만 관두었다. 어차피 지금 몸으로는 도주해 봤자 금세 잡힐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보내 준다면? 흥정을 하겠다?”
번쩍! 번쩍!
서량의 안광이 다시금 불타올랐다.
단리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시 한번 대기를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마기에 소름이 끼쳤다.
'대체 이 자의 한계는 어디인가?!'
금주를 잡고 제일 산호까지 뛰어와 인간 같지 않은 무공을 보여 준 자.
자신을 쫓은 것도 모자라 반경 이십여 장을 초토화시킨 극치의 무공까지 구사한 자.
그러면서도 다시금 기파를 발산하는데, 힘이 전혀 줄지 않은 듯했다. 그 파악조차 되지 않는 무공의 깊이에 단리후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이 자를 알려고 해선 안 됐어.'
상식을 초월한 행동을 워낙에 많이 하기도 했지만, 이 자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미리 깨닫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괴짜지만 그래도 사람이라고. 분석 못 할 이유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이 자는 애초에⋯⋯.'
언제 어디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성격인지,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는지, 힘의 한계는 어디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사부님. 당신은 대체 어쩌다 이런 자와⋯⋯?'
단리후가 떨리는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여유와 장난기가 엿보이던 표정이 사라졌다. 처음 자신을 보고 웃었을 때의 마귀 같은 광기도 사라졌다.
'이것이 이 사람이 본모습!’
장강 이남, 중원의 남부를 지배하는 절대자.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중원 천하의 절반을 손아귀에 넣은, 이제는 강호삼세 중 독보적인 힘과 아성을 구가하게 된 무적의 마인.
“남은 팔다리도 죄다 잘라 버리기 전에 얌전히 무릎을 꿇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