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47화 (446/774)

447화. 우리는 적이다 (1)

“제자?”

“그렇다고 합니다.”

호요성이 턱을 매만졌다.

'담사영의 제자라⋯⋯ 엄청난 거물이 걸린 셈이군.”

강서상회를 무너트리고 담사영의 꼬리를 잡기 위한 서량의 중원 진출은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기실 천마신교 입장에선 담사영의 꼬리를 잡는 것은 천천히 진행해도 무방할 일이었다. 아니, 천천히 진행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낫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서량의 폭풍 같은 추진력은 상식적인 전략을 배제하고 있었다. 그는 애초에 누군가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럴 위치도 아니었다.

‘차라리 잘 됐다고 봐야 하나?'

이왕 내친걸음이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급한 게 아닌가 하는 . 우려를 표할 수도 있지만, 호요성에게는 어떠한 문젯거리라도 해결할 수 있는 머리와 자금력이 있었다.

'그래도⋯⋯.’

호요성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군.'

이전상을 만나기 전, 즉 대기(大器)로서 완성되기 전의 그였다면 잘 됐다며 손뼉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천상과 함께 신교를 운영해 오며 지닌바 재능을 활짝 피운 그는 경험과 직감의 힘도 갖추게 되었다.

그런 그의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다소 급해. 더 정확하게 말하면⋯⋯.’

찝찝하다.

담사영은 그 이름과 존재감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서량이 마도 역사상 최고의 재능과 비할 데 없는 육감을 지녔다면, 담사영은 타고난 머리와 수많은 경험으로 쌓아 올린 무시무시한 정치력을 무기로 다루는 자였다.

먼 훗날이라면 모를까, 현재의 서량은 담사영을 가벼이 상대할 수 없다. 그를 상대함에 있어 부족함은 없지만 손쉽게 압도할 수도 없다는 뜻이었다.

호요성이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이천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전략과 전술, 상황과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있는 절대적인 무력.

서량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무인으로서 이미 완성형에 가깝게 성장했지만, 아직 진정한 무적(無敵)이라 불릴 만한 고수는 아니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상대가 담사영 하나가 아니라는 거다.'

이 중원 천하에는 마도대종사 서량과 전(前) 의천맹주 담사영 외에도 풍운을 일으킬 만한 종사급 고수가 한 명 더 존재한다.

'철혈성주.'

수라제 송금백.

비록 지금은 이빨과 발톱을 숨기고 있지만, 거칠기로는 누구 못지않다는 패왕이 그였다.

‘교주님께서는 상식을 불허하는 재능과 육감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매번 역전시켜 오신 분이다. 하지만 그분에게도 단점 아닌 단점이 존재해’

그것은 바로 지독한 목적의식이었다.

서량, 천마신교의 당대 교주이자 위대한 십대천마는 한 번 이루고자 하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루고야 마는 지독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거머쥘 능력이 된다는 뜻과도 같다. 그래서일까? 평범한 사람과는 궤를 달리하는 속도로 살기 때문에 상식 안에서 이뤄지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면모도 보인다.

호요성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맺혔다.

'이럴 때 중원에서 그분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정보 단체가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한 정보 단체가 있다면 중간에서 자신과 조율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현 천마신교의 정보력 역시 중원에서 손에 꼽힐 만큼 뛰어나다. 그러나 지나치게 남쪽으로 치우쳐진 감이 있었다. 뛰어나지만 최고라 할 순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신교의 정보 단체, 즉 비각(祕閣)은 중원 전역의 동태를 살피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교주가 중원으로 나선다면 당연히 교주를 일 순위로 움직이겠지만, 그만큼 기존에 담당하던 업무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이번 강서상회에서 얻은 자금으로 새로운 정보 단체를 개설해 보는 것은 어떨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단체를 만드는 데에는 단순히 돈만 드는 게 아니었다. 쓸 만한 인력을 동원했다고 해도 족히 이삼 년은 지나야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정보 단체만 있다고 교주님의 단점이 해결되는 건 아니야. 애초에 그럴 수가 없지. 그분의 단점은 그분만이 고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최소한 교주님께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내가 짚어 줄 수 있다면⋯⋯.’

그때였다.

“총군사님!”

“무슨 일인가?”

“은색비서(銀色秘書)가 도착했습니다!"

호요성의 눈이 반짝였다.

금색비서는 오로지 교주와 자신만이 발동할 수 있는 비서다. 그래서 전서가 아니라 비서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 가장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전서가 있다. 그것을 은색전서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온 것은 전서가 아니라 비서라고 하였다.

순간 호요성은 떠올렸다. 지금껏 은색비서를, 그것도 중원에서 보내 왔던 조직이 하나 있었다는 걸.

"어서 이리 주게.”

“예!”

비서를 개봉해 읽은 호요성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필요하다 싶은 순간에 나타나 주다니, 참으로 짓궂지 않은가?"

애초에 신교의 조직이 아니기에 배제해 온 단체였다. 그들이 이제는 완전히 이쪽으로 돌아서겠다고 한다.

가면을 쓰고 적의 가랑이 밑으로 들어갔던 조직. 그만큼 천마신교에 위협이 되기도 했지만, 진정한 힘은 숨겨 두고 있었던 중원제일의

정보 단체.

호요성이 재빨리 답신을 적었다.

“이것을 그대로 전하게.”

“명을 받듭니다!”

호요성이 한숨을 쉬며 의자에 등을 묻었다.

“짓궂다⋯⋯. 아니지. 그치들이 짓궂다기보다는 교주님께서 짓궂으신 거지. 거참, 이럴 때 보면 정말 신(神)이 아닌가 싶을 정도라니까.”

천운(天運)을 움직이는 것 또한 사람의 힘이다.

서량은 단점도 많고 실수도 종종 하는 교주였다. 그러나 그 모든 단점과 실수를 메울 수 있는 장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인간으로서의 매력이었다. 그 매력이 본인이 나아가는 길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아군으로 만들고 있었다.

저 중원제일검이라 불리는 남궁세가의 검왕도 서량에게 호감을 품고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신교 역사상 어떤 교주도 정파 최고 명문가의 큰어른과 친분을 나누지는 못했다.

“쳇, 소교 시절에라도 좀 더 어울릴걸. 이제는 섣불리 놀리지도 못하겠으니.”

투덜거리고 있지만 그래도 호요성의 얼굴은 밝았다. 가장 필요한 순간, 가장 필요한 조직이 교주님께 붙어 준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단리후라⋯⋯? 적어도 담사영의 제자라면 호락호락하지는 않겠지.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게 틀림없어.'

과연 무슨 꿍꿍이를 숨겨 두고 있을까?

과연 이번에는 교주님께서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으실까?

“여봐라.”

“예, 총군사님!”

호요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로원주께 기별을 넣거라.”

*

*

*

“어허?!”

여극도는 깜짝 놀랐다.

“하면 아까 그 청년이?"

“그렇습니다.”

“천룡칠주의 일주라⋯⋯ 굉장하군. 그 어린 나이에.”

어리다는 표현보다는 점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시간 낭비하기 싫어 본교의 비기로 상대해 잡았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힘 좀 쓸 뻔했습니다.”

“그렇겠지. 일주의 태양신공(太陽神功)은 법술과 무공 두 가지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일절(一絶)의 신공일세. 법술을 제외하고 무공으로만 사용해도 천하제일을 노릴 수 있다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말했잖나? 내가 월주와 싸웠었다고. 다른 건 몰라도 일월의 주인들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조사했지.”

“그래서, 어떻습니까?”

“뭐가 말인가?”

“오랜만에 힘 좀 쓰지 않으셨습니까. 대전에서 저와 겨룰 때보다 더 호탕하게 날뛰신 것 같던데요.”

여극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그 정도 잔챙이들 청소하는 걸로 빙백(水魄)의 진신진력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가? 차라리 자네와 한바탕하는 게 훨씬 낫지.”

한옆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여강휘가 투덜거렸다.

"그게 진력이 아니면, 작정하고 무공을 구사하면 얼마나 무시무시해진다는 거예요. 일대가 온통 쑥대밭이 되었다고요."

"이놈아, 냉기를 다시 거뒀잖느냐. 피해 본 사람도 없다고.”

“정신적인 피해도 피해지요. 아마 당분간 호연루를 찾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걸요.”

“그걸 왜 내 탓을 해? 그런 곳으로 적들을 유인한 서 교주 잘못이지. 서 교주, 내가 틀렸나?"

서량이 피식 웃었다.

“맞습니다. 안 그래도 호연루주에게 보상금을 좀 얹어 줬습니다.”

“거보라고.”

여강휘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여극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게냐?"

“그냥 답답해서요.”

"나이도 어린놈이 뭐가 답답하다고.”

“나이 어리면 답답한 게 없답니까?”

“애비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아버지도 생각해 보시라고요. 새외제일의 천재니, 빙궁 역사상 손에 꼽히는 재능의 소유자니 온갖 칭찬은 다 듣고 살아왔는데, 막상 세상에 나와 보니 별의별 괴물이 다 있잖습니까.”

여강휘가 서량을 가리켰다.

“서 교주님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이곳, 천마신교 비밀분타 뇌옥에 갇힌 단리후라는 놈도 저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은데요? 들어 보니까.”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한 수가 아니라 몇 수 위지. 아닌 말로 당장 화경에 올라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어.”

“거보라고요.”

여극도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시다? 너보다 재능 있는 인간들이 넘쳐나서?”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싱숭생숭해서요.”

“이놈아, 전에 말하지 않았더냐? 이 애비에겐 너만 한 재능이 없었다고. 오히려 평범한 축에 가까웠다니까. 없는 재능으로 아득바득 살아서 겨우 여기까지 기어 올라온 거야.”

“압니다, 알아요. 재능이 전부가 아닌 거."

힘이 빠질 만도 했다. 머리로는 재능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평생을 천재 소리만 들으며 살아온 인생 아니던가.

나이를 생각하면 여강휘가 지금 경지에 오른 것도 피나는 노력 없인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재능과 노력의 영역을 뛰어넘은 괴물들도 많았다.

서량이 말했다.

“상식을 초월해서 강해진 사람은 많아. 하지만 그 상식이란 걸 초월하기 위해선 극에 이른 재능과 노력이 필요해. 재능이 없다면 더더욱 노력해야 하고.”

"⋯⋯."

“아무리 노력해도 지고의 경지를 밟기란 어려워. 하지만 이건 확실해. 그러한 경지에 오른 자들 중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 그런 면에서 보면 넌 아직 멀었어.”

여강휘가 한숨을 쉬었다.

“이 이상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 건지.”

“너 자신을 죽일 때까지.”

느닷없이 살벌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여강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자살을 하란 말입니까?"

여극도가 여강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놈아, 자살하면 그냥 죽는 거지 어떻게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겠느냐?”

“그럼요?”

“스스로를 학대하고 또 학대하고도 거머쥘 수 없는 경지 앞에 좌절해 봐야 한다는 거다. 아닌 말로, 네가 지금 그 경지에 오를 때까지 한 번이라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느냐?"

“남들 앞에서 노력했다는 말도 안 나올 정도로 쏟아부어야 해. 필요하다면 영혼까지도. 그렇게 해도 오를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게 무도(武道)라는 것이다. 네게는 그 치열함이라는 게 부족해.”

여강휘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볍게 말하는 듯했지만 그 안에 실린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여극도가 콧방귀를 뀌었다.

“뭐, 정석을 쓰지 않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놈들도 많지만.”

“정석을 쓰지 않고요? 그게 누군데요?"

"지금 뇌옥에 갇혀 있는 놈.”

“재능이야 뛰어나겠지. 노력도 너보다 몇 배는 더 했을 테고, 하지만 그래도 저 나이에 일주의 힘을 얻는 것은 어려워. 특수한 방법이 동원되었을 거란 말이다.”

“그게 대체⋯⋯?”

“그걸 알면 내가 천룡궁주지, 빙궁주냐?”

장난스레 쏘아붙인 여극도가 서량에게 물었다.

“그래서, 서 교주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

“기다려야지요.”

“어떻게?”

서량이 여강휘처럼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저기 갇힌 놈이 움직일 때까지요.”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움직여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면,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는 것이다.

“확실히 담 늙은이 제자가 맞긴 하더군요. 닮은 것도 아니고, 무공도 다르지만 생각하는 건 비슷하더라 말입니다.”

“⋯⋯?”

“금방 알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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