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49화 (448/774)

449화. 우리는 적이다 (3)

“그분께서 움직이셨다고?”

“예. 현재 절강 쪽으로 진입하셨다고 합니다.”

"⋯⋯."

“문주님?”

“맹주로군.”

“예?!”

“담 맹주가 있는 곳으로 향하시는 거야. 교주님께서 그가 숨어 있는 곳을 찾으셨네.”

"다. 담 맹주가 절강에 숨어 있단 말입니까?”

“그건 알 수 없네. 다만 교주님은 절대 섣불리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야. 게다가 교주님께서 절강으로 향할 어떠한 이유도 없네. 담 맹주가 아니라면.”

“하면 저희도 방향을 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겠지. 다만⋯⋯."

“걸리는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절강⋯⋯. 어찌 절강에 터를 잡았을까?"

“예?”

"담 맹주가 갖고 있던 가장 큰 힘은 의천맹이었네. 비록 터도 남았고 살아남은 무인들 또한 재정비를 하고 있지만, 결국 당장 쓸 수 있는 가장 큰 패를 잃었다고 해도 좋아.”

“그렇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담 맹주가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켤 생각이 있다면 일단 본인이 가진 세력들을 규합하는 게 중요하네. 그래서 절강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야.”

“강서상회가 바로 옆에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아니지. 담 맹주가 실질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세력 중에서 상단은 일 순위가 아닐세.”

“무력이란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현재 담 맹주의 가장 큰 힘은 소림과 무당을 제외한 칠파, 그리고 천룡궁일세. 그렇다고 천룡궁이 거하고 있는 새외로 갈 수는 없으니 장강 이북에 터를 잡고 있어야 함이 옳다네.”

“그, 그렇군요. 하지만 연락 체계만 확실하게 잡혔다면⋯⋯.”

“문제는 절강 그 자체에 있네.”

“예?”

“절강성은 예로부터 철혈성의 권역이었어.”

"아!”

“등하불명(燈下不明)에도 정도가 있네. 아무리 배포가 좋아도 의천맹을 잃은 담 맹주가 절강에 숨어 있다? 이건 말이 안 되잖은가?"

“그럼 교주님께서 속은 채 움직이고 계시단 말씀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네.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군. 만일 담 맹주가 정말로 절강에 있다면⋯⋯.”

공야치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상황이 급박하게 되었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절강에 대기하고 있는 비객(客)들에게 연락하게.”

“어떤 명령을 전하면 되겠습니까?"

“철혈성. 그곳에 철혈성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지 알아보라 하게.”

*

*

*

'굉장하군.’

여극도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교주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휘이이이잉!

땅을 박차고 나아가는 서량의 뒷모습은 적지를 향해 돌진하는 대장군과 같았다.

붉은 용포가 마치 진군의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올 만큼 멋들어진 신법이었다.

그렇다. 그 신법의 경지가 실로 대단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며, 허공에서도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사람들은 경공 최고의 경지를 허공답보라 말하며, 그 안에서도 경지를 세분화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 허공답보를 구사할 수 있는 고수라면 내공을 어떤 식으로 운용하느냐에 따라 자유자재의 신법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다.

하지만 서량의 신법을 보며 여극도는 생각을 달리하여야 했다.

'최소한 신법만큼은 나보다 한 수 위로구나.'

능공허도(凌空虛道)라는 말이 있다.

허공답보나 능공허도나 극한의 내공으로 육신을 허공으로 띄우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러나 서량의 허공답보는 완전히 다른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간간이 땅을 내디딜 뿐, 거의 하늘을 나는 수준이라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호사가들이 말하는 능공허도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공격을 받아도 사방 어디로든 여유롭게 피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사각(死角)이 없다. 아마 서 교주를 힘으로 압도하는 자는 있어도 신법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여극도라고 저러한 신법을 구현하지 못할 까닭은 없다. 그러나 요(要)는 내공의 운용에 있었다.

'저토록 적은 내공으로, 저리 깔끔한 신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당대 천하에 존재나 할는지.'

서량의 뒷모습을 보면 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보다 더 높은 곳을 지향하고 있어.'

저 놀라운 젊은이는 젊은 나이에 무림 최강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아직 부족하다고 여긴다.

더 높은 경지, 지금의 자신은 보지 못하는 신세계로 나아가려 한다. 그 욕망이 신법에서도 묻어 나오는 듯했다.

그것도 막연히 강해지고 싶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본인이 나아가려 하는 길을 확실히 알고 있어.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곳으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여극도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 미소에는 일말의 씁쓸함도 담겨 있었다.

'자네가 무엇을 추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선의 영역까지 넘보지는 마시게.'

여극도도 도달해 보지 못했지만, 보지 못해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선의 경지로 나아간 자를 반선(仙)이라고들 한다. 사람이 반선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면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사라져 버린다.

물론 반선이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서량은 이렇게 보고 있으면 정말 훌쩍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비록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지만 여극도는 서량이란 인물이 싫지 않았다. 자신을 도와줘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과의 혼사를 밀어붙일 생각도 한 것이다. 어여쁜 딸자식을 가진 빙장의 눈에 나쁘지 않은 사윗감이라면 기실 최고의 칭찬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인세를 훌쩍 떠나 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었다. 꼭 딸과의 혼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극도는 이 젊은 교주와 더욱더 많은 얘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이보게.”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아직 쉴 때는 되지 않았습니다.”

싸가지가 조금 없는 것도 같지만⋯⋯ 뭐, 지금은 워낙 날이 서 있는 상태니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은 맞나?”

“물론이지요.”

여극도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토록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고, 있는데도 섬세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그 역시 인간은 아니었다.

"나는 전혀 느껴지지 않네만?"

“저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으잉?!”

여극도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느껴지지도 않는데 올바로 가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는 겐가?”

“그놈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부하가 있거든요.”

“자네도 파악 못 하는 걸 부하가 파악한다고?”

“예.”

“설마, 그 부하란 사람이 전대 교주는 아니지?"

“⋯⋯돌아가신 분 얘기는 왜 꺼내십니까.”

“커험!”

“저를 지켜 주는 호위장이 그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여극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위? 자네를 호위하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었단 말인가?"

"호천마황단은 극마의 고수 여럿과 붙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나 호천마황단주의 감각은 육감의 완성형이라 불릴 정도로 예민하죠.”

“허어!”

"전에 한 번 본교가 뚫린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두 번이지만, 그중 한 번은 일부러 들여보내 준 것이라 들었으니 결국 한 번이라고 해야겠군요.”

“신교가 뚫렸었다고?”

"예. 지금 중원에 나온 살수 한 명이 있는데, 그 자에게 한 번 뚫렸었지요. 그때 이후로 호천마황단은 몇 배의 수련과 연공을 거쳐 호위로는 천하제일이 되었습니다.”

당장 서량도 호천마황단의 눈을 피해 마신궁을 뚫을 생각을 하면 막막해질 정도였다.

“그들은 한 번 상대의 기감을 인지하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는 그들을 믿습니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걸 보니 확실히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었다.

잠시 말없이 서량과 보조를 맞추던 여극도가 다시 물었다.

“궁금한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자네는 담사영을 깊이 증오한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 원한을 어디서 어떻게 쌓았는지는 묻지 않겠네.”

“밑밥 안 까셔도 됩니다.”

"만약 자네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생긴다면 어쩔 텐가? 그러니까, 담사영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가 죽으면 천마신교가 끝장나게 된다면 그런 상황이라면 자네는 어떤 선택을 내릴 텐가?”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질문은 왜 하시는 겁니까?"

“가벼운 질문일세. 말 그대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뿐이야.”

"당연히 포기해야지요.”

여극도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

“물론입니다.”

“허허, 역시 자네는 교주로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일단 본교부터 살린 후 놈을 최대한 잔인하게 몰아붙이겠지요. 죽음에서 벗어났으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몰아붙여 생지옥을 맛보게 하는 수밖에요.”

"⋯⋯."

“사실 그냥 죽이는 것보다 그쪽이 더 유쾌한 복수가 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겠군요. 뭐, 그런 방법이 있다면 말입니다.”

담담한 얼굴로 살벌하기 짝이 없는 얘기를 잘도 한다.

여극도가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고민일세.”

“무슨 고민이요?”

“이렇게 무지막지한 사람한테 내 딸을 줘도 될지 말일세."

서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생각 없다니까요. 아니, 그리고 린이가 물건도 아닌데 뭘 주고 말고 합니까.”

“만약 린이가 자네에게 관심이 있다면 어쩔 텐가?”

“이 급박한 상황에 질문이 엄청 많으십니다.”

"이럴 때 아니면 이런 질문도 못 하지. 자네는 서량이자 교주이고, 교주이자 서량일세. 마인들은 자네를 신(神)으로 떠받들지만, 자네는 명백한 사람이기도 하네.”

“⋯⋯."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목숨 걸고 달릴 줄 알아야지. 행복을 추구하는 것, 그것은 사람의 권리이자 책임이며, 삶의 이유 아니던가?”

뜬금없지만 서량은 여극도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이유라⋯⋯.'

어쩐지 감찰사로 내려가기 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삼공자의 몸으로 들어와 어떻게든 신교를 나가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날들.

비록 나 자신을 정확히 보지 못했던 때이지만 오로지 자유와 행복을 좋았던 시절이었다.

서량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음?”

“세상에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건 저도 그렇지요. 그래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면, 적어도 미래에 후회라도 남기지 말자는 심경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것이 담사영이 죽이는 것인가?"

“과정일 뿐입니다. 그를 죽인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만큼 만만하게 살아온 인생은 아니어서요.”

“그렇⋯⋯.”

“그리고.”

우우웅.

서량의 눈에 마기가 일었다.

"거기까지 가는 데에도 장애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단 개인의 행복은 뒤로해야 하지요.”

여극도의 표정이 굳어졌다. 서량의 분위기가 돌변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적인가?”

"목표로 가는 길을 막는 무수히 많은 장애물 중 몇 개가 이 앞에 도사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면 어떻게 할 텐가?”

“뚫어야지요. 어차피 한 번은 다시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응?”

그때였다.

화아아아악!

눈에도 보이지 않는 저 머나먼 곳에서부터 폭풍 같은 기세가 터져 나왔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렬했는지, 그간 느끼지 못했던 단리후의 기척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정확히는 단리후의 은신술이 깨질 만큼 강한 기파라는 뜻이었다.

여극도의 눈이 번쩍였다.

‘이 정도 기파를 발산하는 자가 있었단 말인가?!?'

서량의 두 발에 불그스름한 빛이 번쩍였다.

퍼어어어엉!

폭발적인 힘으로 나아간 서량의 눈에 어느 야산 꼭대기가 보였다.

그리고 거대한 검을 땅에 꽂곤 평평한 바위 위에 앉은 위엄 넘치는 외모의 사내도.

“⋯⋯오랜만에 보는군.”

흑색 갈기를 두른 사자. 이런 곳에서 볼 줄은 몰랐던 무림 최고 거인 중 하나가 거기에 있었다.

“송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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