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사자의 발톱 (1)
파아아악!
오해잠영비(海潛泳飛)는 하오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경신술로, 내공 소모가 적으면서도 빠르고, 은신 역시 뛰어난 독보적인 신법이었다.
신법의 전반부만 대성해도 신법의 대가 소리를 들을 만하고, 후반부까지 대성하면 누구도 쫓아오지 못할 만큼 빠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오문에서 가장 신경 써서 만든 무공. 전투가 아닌 정보의 탈취와 전달을 위해서 수백 년 동안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만든 일절(一絶)의 무공이 바로 오해잠영비였다.
터엉! 터어어엉!
물 위를 달려 나간다.
공야치의 무공 수준을 생각하면 수상비(水上飛)는 언감생심 쳐다도 볼 수 없는 경지였다. 하지만 공야치는 가능했다. 신법 자체의 수준이 너무나도 뛰어났고, 그 신법을 대성하기까지 한 그는 신법계에 있어선 십대고수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속도가 나오는 것이다.
퍼어어어엉!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속도가 빨라졌다.
중원 전체에 뿌리를 내린 하오문의 분타는 지역마다 적게는 오십 개, 많게는 백여 개가 분포해 있었다.
그리고 공야치는 무려 이틀 만에 여든두 개의 분타를 돌파하고 있었다.
[소문주님께서 의향 분타를 돌파하셨습니다!]
[한 시진 전, 소하 분타를 돌파하셨다고 합니다!]
[절강, 절강에 진입하셨습니다!]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병석에 누운 문주를 대신하여 하오문의 모든 것을 총괄한 자. 말이 소문주지 기실 문주라 해도 무방할 공야치의 돌진에 하오문 전체가 따라 움직였다.
[보고합니다! 현재 절강 구룡산(九龍山) 줄기를 따라 수창(遂昌)으로 이어지는 야산에서 무림인들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위험 등급 최상(最上)! 초고수들 간의 접전입니다! 반경 백 장 안으로의 진입은 불가합니다!]
[일천이 넘는 고수들이 포진한 상황입니다! 완전갑주와 기마대(騎馬隊)까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철혈성의 철왕(鐵王)일 확률이 높습니다!]
[절강 북부에서 또 다른 병력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철혈성의 적풍대(赤風隊)입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쏟아지는 정보.
공야치는 그리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각 분타에서 쏘아 대는 수백 개의 전음을 모조리 들었다. 그중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들은 곧바로 머리에서 지웠고, 중요한 정보들만을 골라서 취합했다.
극상의 신법을 전개하며 위험 요소가 있는 곳을 피해 간다. 와중에 들은 정보를 취합하고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퇴로는 어디로 잡아야 하는지까지도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행위. 하오문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공야치의 능력이었다.
‘철왕의 기마대? 최근 철혈성 인사들이 황궁의 고위급 관료들과 접촉했다는 보고가 많았다. 군납(軍納) 외에 황궁 비전으로 제련한 철제 무구를 선물 받았다고 하더니, 이제야 제대로 선보일 모양이로군.'
그는 황궁의 황태자가 천마범정대전 당일 의천맹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황태자가 역사상 최강, 최악의 천마라 불리는 이천상의 마수에서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확실해. 송 성주는 황궁과 거래를 하고 있다. 황궁의 황태자가 의천맹에 있었으니, 이는 곧 담 맹주 역시 황궁 측 인사와 연을 맺었다는 뜻. 즉, 담 맹주와 송 성주가 손을 잡은 것을 확신해도 되겠지.'
이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정보 업계에서 활동하다 보면 유추만으로 움직일 때와 확신하고 움직일 때가 따로 있었다.
이제야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두 거물이 손을 잡았다는 걸.
담 맹주는 내게 그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어. 그때도 그는 나를 완전히 믿지 않았지만, 최소한 굵직한 것들은 공유했었다.
공야치의 눈이 빛났다.
'나의 배신을 확신하고 있었던 게 아니야. 지금의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전대 천마다.'
적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간파해 냈다. 이번 일이 끝난 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대강 감이 잡혔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 인근의 양민들이 모두 대피했습니다! 위험도 극최상(極最上)! 반경 백오십 장 안으로의 진입은 불가합니다!]
그럴 수는 없지.
마침내 공야치의 감각에도 격전의 울림이 느껴졌다.
콰르릉!
극치에 이른 힘과 힘이 부딪치니, 강한 폭발력에 집채만 한 바위가 날아다니고 깊게 뿌리 내린 거목이 우수수 잘려 나갔다.
대지가 신음하고 하늘이 놀라 먹구름 뒤로 숨었다. 치솟는 살기와 광기가 습하던 공기마저 건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퍼어어어엉!
불길이 치솟았다.
익숙한 불길이지만, 동시에 낯선 불길이기도 했다. 적어도 공야치의 기억 속에 있는 불길보다 두 배는 더 컸고, 열 배는 더 살벌했다.
'교주님!’
그때였다.
“그만.”
파바바박!
공야치는 십여 번의 발길질로 대지를 밟아 속도를 늦추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새하얀 남자가 서 있었다. 머리카락도, 피부도, 의복도 전부 하얗다. 전신에서 무서운 냉기가 흘러나오는데, 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자는?!’
"자네가 하오문의 공야치인가?"
공야치가 침착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북해의 주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극도의 눈이 반짝였다.
“나를 알아보는가?"
“물론입니다.”
"대단하네. 서 교주가 수천 리 밖에서도 이곳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천재라고 하더니만, 그 말이 틀리지 않았으이.”
"과찬이십니다.”
“어찌 되었든 더 이상의 접근은 불가하네. 서 교주가 내게 부탁했어. 혹여 자네가 온다면 자네를 지켜 달라고 말일세."
공야치의 눈이 흔들렸다.
저 급박한 와중에도 서량은 자신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자신이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교주님!’
진정 뛰어난 자는 자신이 아니라 교주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분과 연을 맺어 하나의 복수를 성공했고, 개인의 역량을 키웠으며, 하오문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고도 의천맹으로 향하는 자신에게 전혀 섭섭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미래를 응원해 주었다. 자칫 적으로 만날 수도 있었던 사이인데, 마치 먼 지역으로 여행 간 친한 친구처럼 여겨 주었다.
삼생(三生)의 영광이었다. 그가 천마신교의 교주임을 떠나, 사람으로서 이런 인연으로 다가와 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제는 자신이 도움이 될 차례였다. 그간 못 했던 것들을 모두 해 줄 것이다. 이번만큼은 하오문이 위기에 처한다 한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힘내십시오, 교주님.”
콰아앙!
첫 일격은 곧게 들어갔다.
정직하고도 솔직한 일권(一拳)이었다. 즐겨 쓰는 천마벽력권을 구사한 게 아니었다. 그저 타오르는 마기를 담아 내친 평범한 주먹이었다.
그 주먹을 막은 송금백의 눈빛이 대번에 바뀌었다.
재차 후속타를 날리려던 서량이 그 자리에서 양손을 펼쳤다.
퍼어어엉!
두 팔이 삐걱거리는 듯했다.
서량처럼 주먹을 내친 것도, 손에 쥐고 있는 거검을 휘두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힘을 개방하며 기공으로 밀어 낸 것에 가까웠다.
그것만으로도 방어가 벅찰 정도였다. 완벽한 방어는 아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충분히 대단한 일격이었다.
푸스스스스.
송금백의 몸에서 은은한 적색 광휘가 피어올랐다.
"느닷없이 일격이라니, 성질도 급하구먼.”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음에도 송금백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자네가 내게 공격을 가한 순간, 우리의 운명은 완전히 갈리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겠지?"
“개소리는 그만하지.”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뇌화를 흩뿌리는 두 안광은 송금백의 머리통을 당장이라도 관통할 듯 위험천만하게 빛나고 있었다.
“골방에서 썩어 가는 쓰레기 같은 늙은이와 손을 잡은 게 네놈이다. 제법 호탕한 인사라고 생각했건만, 그 저열한 본성을 버릴 순 없었던 모양이군.”
날 선 독설에도 송금백은 흔들리지 않았다.
“세상 돌아가는 판이 다 그런 것 아니겠나. 자네가 처음 나를 만났을 때를 기억하게. 자네는 되고 나는 안 된다? 그리 생각하면 곤란하지.”
“나는 과정이나 방법을 말하는 게 아니야. 네놈의 안목을 말하는 것이다. 독사 같은 놈과 무언가를 이뤄 보겠다고 결심했다면 상대를 이용할 생각을 해야지, 동맹을 맺어? 결국 네놈도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어.”
송금백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뭐라고 말해도 좋네. 튀어나온 돌이 정을 맞는 법. 그냥 두기에는 자네들, 너무 위험하게 컸어.”
"여기까지 오니 내가 섣불렀다는 생각도 드는군. 하긴, 네놈이 손을 잡은 독사가 그냥 독사는 아니니까.”
“이제야 인정하는가?”
"너희 둘의 힘을 버티고 버티다가 네놈이 담사영에게 피를 빨리는 꼬락서니를 구경하는 것도 제법 각별한 재미가 될 것 같단 말이다.”
“하하, 내 비록 얌체 같은 행동은 했다만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네. 설마하니 내가 담 맹주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믿음과 행동은 다르지. 네놈이 아무리 그를 불신한다 한들, 지금껏 너는 그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어. 반정회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
“⋯⋯.”
"네놈은 그가 너를 어떻게 다루는지조차도 모르면서 믿지 않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병신에 불과해. 독사는 위협이 되지만, 병신은 조롱을 받는 법이지.”
송금백의 얼굴이 조금 더 굳어졌다.
반면 서량의 미소는 한층 짙어졌다.
“이제야 알았다. 너는 너보다 약자 앞에선 호탕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너와 대등하거나 강한 자 앞에서는 으르렁댈 줄만 아는 머저리라는 걸.”
“말이면 다인 줄 아는가.”
“나나 담 늙은이가 없다 한들, 네놈은 평생 천하제일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콰아아앙!
서량의 몸이 비틀거렸다. 송금백이 내쏜 장력에 맞은 것이다.
치이이이익!
송금백의 발밑에서 시뻘건 연기가 피어올랐다.
적색 광휘를 둘렀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살기요, 기파였다. 진기의 압력은 그대로였지만 기질이 바뀌었다. 이제야 상대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까 말했지? 주둥이 잘못 놀리다가 스러져 버린 천재가 무더기라고.”
우우우우웅!
적색 광휘와 붉은 안개가 서서히 어둡게 변했다.
검붉게 변한 진기는 이전보다 훨씬 사악하고 강렬했다. 어떤 의미로는 천마신교의 마공보다도 흉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거칠기 짝이 없는 힘. 순도 깊은 흉흉함이 하늘에 닿아, 누구도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을 듯했다.
철혈성의 삼대호법무공 중 하나이자 송금백 스스로가 개량, 발전시킨 철혈성 역사상 최강의 신공.
묵혈괴룡공(墨血怪龍功)이었다.
“결심했네. 자네를 여기서 죽이기로.”
“새삼스럽지도 않군. 네놈은 그게 문제야. 쓸데없는 격식으로 스스로를 한계 짓지. 그래서 네놈이 천하제일이 못 되는 거다.”
"마음껏 주둥이를 놀리거라. 이 싸움이 끝난 후에는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다.”
콰아앙!
서량이 진각을 밟았다.
위협적인 전광이 사라지고, 어느새 전신 가득 핏빛 화염이 타올랐다. 구유마공을 완전히 개방한 것이다.
그 기파는 송금백의 묵혈괴룡공에 비해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얼추 기분은 풀었으니, 이제 사파 최강자를 진짜 병신으로 만들어 볼까.”
“이놈!!”
퍼어엉!
두 사람의 양손이 서로를 꽉 움켜쥐었다.
양손을 맞잡은 두 사람 주변으로 폭풍 같은 충격파가 번져 나갔다.
콰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