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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53화 (452/774)

453화. 사자의 발톱 (3)

여극도의 눈이 번쩍였다.

'대단하군!’

먼 거리였지만 빙백의 내공으로 안력을 키운 그는 두 초고수의 공방을 대략적으로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철혈성주의 무공이 중원제일을 논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더니만, 틀린 말이 아니었어.'

그 무공보다 놀라운 것은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게 단련한 철두철미함이었다.

대저 사파의 무공은 정파의 무공보다 목적이 뚜렷한 편이었다. 그래서 마공처럼 연성이 빠르지만, 전반적인 안정감이 결여되어 있고 높은 경지를 구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송금백의 무공은 달랐다.

안정보다는 출력을 중요시하고, 깨달음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사파의 무공이었다. 한데 그 수준이 너무나도 높았다. 사파의 무공인데도 구파일방의 비기나 빙궁의 빙백무(水魄武)에 뒤지지 않는 완성도 있는 무학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학 자체의 단점을 메우고도 남을 만큼의 단련도에 있었다.

사파의 무공은 안정감이 결여된 무공이기에 큰 힘을 낼 수 있는 대신 지구력이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한데 송금백은 순수한 체력과 지독하게 섬세한 내공 운용으로 지구력에서 오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버렸다.

그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는 여극도도 잘 알고 있었다. 빙백신공 역시 약간의 안정감을 포기하고 출력 상승에 치중한 무공이기에,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완전무결한 무인이다. 아마 저만큼 상대하기 까다로운 고수는 달리 없을 것이야.'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그런 송금백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서량의 실전 능력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무공 실력이라기보다는 실전 능력이었다.

‘대체 어떤 아수라장을 겪었기에 저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그냥 보기에 아직도 서량은 송금백에 비해 반 수 아래였다.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지만, 세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반 수 차이가 무시무시한 실전 능력 덕에 모조리 상쇄되고 있었다. 뛰어난 무학이나 천하의 절공(絶功)으로 상대하는 게 아니라 감각과 창의성, 대담함과 집중력으로 격차를 메워 버린 것이다.

'저 감각과 경험 자체가 또 하나의 무공과도 같다. 저런 것은 배운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야. 천부적인 감각과 헤아릴 수 없는 실전, 그리고 무학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깨달음이 동반되어야⋯⋯.’

“저⋯⋯.”

여극도가 공야치를 바라보았다.

바위처럼 딱딱하던 공야치의 얼굴에 미세한 걱정의 빛이 드리워졌다.

“혹, 저 싸움을 전부 보고 계시는지요?"

“물론 보고 있네. 자네도 보고 있잖은가?”

“부끄럽습니다만, 제게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지라⋯⋯.”

두 고수의 공방이 너무 빨라서 공야치로선 자세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싸운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저 그것뿐이다.

여극도가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네. 두 사람의 무공은 거의 박빙이야. 다만 전반적인 균형감과 완숙함에서는 철혈성주가 한 수 위로군.”

“아⋯⋯!”

“하지만 서 교주도 만만치가 않아. 아니, 사실 철혈성주보다도 더 놀랍지. 저런 식의 야수 같은 싸움 방식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네.”

“결국, 결과가 나와 봐야 안다는 것이로군요."

“세상 모든 싸움이 그러하지.”

그때였다.

홀린 듯 싸움을 보던 여극도가 문득 무너져 가는 야산 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

햇빛을 받아 번쩍였던 광택.

질 좋은 보병(寶兵)임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것이 지금 왜 보이냐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창(槍)이었다.

여극도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이런 앙큼한 놈들을 보았나.”

“예?”

“사내들끼리 정정당당한 승부를 벌이고 있는 판에 장난질을 치려 들어? 아무리 자신들의 수장이라 해도 그러면 안 되지.”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공야치라 했지.”

"예, 선배님.”

“혹여 이따 내가 신호를 주면 곧바로 백 장 밖으로 물러나게나.”

“예?”

여극도의 눈이 차갑게 굳어졌다.

"만약 저놈들이 정말로 헛짓거리를 한다면, 그때는 나도 힘을 써야 할 것 같거든.”

*

*

*

“⋯⋯음.”

송금백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가슴팍의 의복이 시커멓게 눌어붙어 있었다. 묵혈괴룡공의 내력으로 대부분의 충격을 상쇄했지만, 내부가 진동하여 내공 운용에 작은 이상이 생겼다. 내상은 덤이었다.

주르륵.

입가에서 흐르는 핏물을 닦아 낸 송금백이 자세를 바로 세웠다.

후속타는 없었다. 그건 당연했다. 상대 역시 무시 못 할 상처를 입었을 테니까.

송금백의 생각은 반만 맞았다.

공격을 받았을 때는 제법 심각한 상처였지만, 어느새 서량의 마기는 내부의 충격과 상처를 상당 부분 수복하고 있었다.

이 정도 고수와의 격전에서 내상이 축적되면 반드시 패배한다. 찰나의 시간만 있어도 받은 충격을 어떻게든 해소해야만 한다.

서량이 옆구리를 매만졌다.

“주먹질이 제법이군.”

"내가 할 말이다. 차라리 목을 노릴 줄 알았는데 거기서 촌경이라?"

“목부터 대비하고 있던 놈이 어디서 개소리를.”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상대의 말투를 떠나, 놈의 능력만큼은 확실히 대단했다.

그 짧은 사이에 목을 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곧바로 최대 피해를 주는 촌경으로 공격을 전환했다는 뜻 아닌가. 그러한 창의성과 반응 속도는 어느 고수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힘든 싸움이 되겠군.'

송금백이 손을 뻗었다.

후우웅. 터억!

여섯 자 길이의 묵직한 거검이 그의 손에 잡혔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송금백보다도 더 커 보이는 거검이었다. 그러한 검을 평범한 체격의 그가 손쉽게 한 손으로 드는 모습은 몹시 이질적이었다.

“근접 박투에서 끝내 버리려고 했더니만 기어이 힘을 쓰게 만드는구나.”

지이이이잉!

거검이 울었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마침내 꺼내 드는군.'

주르르륵.

뜬금없이 송금백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물론 슬퍼서 우는 것은 아니었다. 투명한 눈물은 서서히 핏빛으로 물들어 피눈물로 바뀌었다.

두 줄기 붉은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와 턱 끝에 맺혔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자문(刺文, 문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피눈물이 멈추었다.

피눈물을 전부 쏟아 낸 그의 두 눈은 진한 먹물을 칠한 듯 완전한 흑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흰자위까지 몽땅.

휘이이이잉!!

부서지고 터진 야산 정상에서 솟구쳐 올라간 용권풍이 하늘까지 닿을 듯했다.

묵혈괴룡공의 진정한 개방이었다.

송금백이 입을 벌렸다.

낮은 기온이 아닌데도 그의 입에서 허연 김이 일었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콰아아앙!

거대한 불꽃이 송금백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송금백이 묵혈괴룡공을 개방할 때, 서량은 이미 구유마공을 극성까지 끌어올린 상황이었다. 이 차전이자 진짜 승부가 시작되었으니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화르르르륵!

타오르는 불꽃이 야산의 삼분지 일을 집어삼켰다. 천하에 열양공(熱陽功)이 많다지만 땅이 끓어오를 정도의 불덩이를 쏘아 내는 열양공은 구유마공이 유일할 것이다.

실로 천마신교의 교주다운 무공을 보여 주는 서량.

하지만 송금백도 달리 송금백이 아니었다.

후욱!

불꽃의 벽을 뚫고 나타난 거검이 단숨에 서량의 가슴팍을 노렸다.

노린 것은 가슴이지만 워낙 검이 큰 탓에 살기가 목과 하체까지 전달되었다. 게다가 그 고온의 불꽃 속에서도 검신(劍身)에는 그을음 하나 없었다.

압도적인 신병이자 거병(巨兵)의 자태.

서량의 두 주먹에 불꽃이 어렸다.

쾅! 콰앙!

주먹질 한 방으로 거검의 투로를 흐트러트리고, 권배로 가격하여 단단한 진기에 한 줄기 금까지 냈다.

휘이이이잉!!

지독한 열기를 담은 광풍이 일었다.

터어어엉!

순식간에 불꽃에서 빠져나온 송금백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그 무거운 거병을 회초리 휘두르듯 가볍게 다루는데 무지막지한 검풍(劍風)이 쏟아져 나왔다.

정면으로 받았다간 죽음을 면치 못할 위력이었다. 불길에 휩싸였던 송금백 역시 의복 곳곳이 상했을 뿐, 별다른 충격을 입진 않은 듯했다.

역시나 강하다. 서량은 곧바로 자신의 절기를 꺼내 들었다.

후우우웅! 콰아앙!

충격파에 맞은 불꽃의 장벽이 뒤로 확 누웠다.

송금백의 눈이 번뜩였다.

'도법? 아니, 장법(掌法)인가?'

파라라락!

붉은 용포의 그림자가 환영처럼 눈을 어지럽혔다.

순식간에 송금백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서량이 쌍장을 퍼부었다.

쾅! 콰르릉!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피처럼 붉은 열기가 바람의 방향에 따라 회전하며 송금백에게 퍼부어졌다.

구유인화장(九幽禍掌)의 일 식, 육연지옥풍(六連地獄風)이었다.

죽음의 칼바람으로 적을 갈아 버리는 도법이 장법으로 전환되며 바람의 압력으로 상대를 짓눌러 터트리는 끔찍한 무공으로 화했다.

사아아아악!

충천하는 거검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바람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마침내 진신진력을 내는 서량 앞에서 송금백 역시 자신의 절기를 꺼내 들었다.

후우우우웅!

태천거검에 먹물 빛 진기가 어렸다.

우우우우!!

검신에서 용음(龍吟)이 울려 퍼졌다.

포효하는 용의 외침이었다. 지금껏 무패전승의 전설을 자랑한 사파 최강의 검도(劍道), 암룡무상검(暗龍無常劍)이었다.

남궁언의 깨달음 깊은 창천검, 제왕검과는 뿌리부터가 달랐다. 남궁언의 검(劍)이 주인과 하나가 되어 적을 굴복시킨다면, 송금백의 검은 철저하게 도구로 사용되었다.

검신 가득 어떻게든 적을 죽이겠다는 살벌한 의지가 넘실거렸다.

시커먼 비늘로 몸을 감싼 흉악한 용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드는 듯했다.

서량의 양손이 그대로 앞으로 질러졌다.

콰아앙!

짓눌려 터진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주르륵.

서량의 손 곳곳에 검상이 새겨졌다. 종극무간도(終極無間道)의 불꽃으로 막아 냈지만, 완벽히 막아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충돌에서 우위를 점한 송금백이 재차 뛰어들어 암룡일도(暗龍一道)의 참격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

기온이 낮아졌다.

착각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던 야산 정상의 기온이 갑작스레 뚝 떨어진 것이다.

'빙궁의 무공?!'

아니다.

초고온의 불꽃을 내뿜던 서량의 기가 열기를 거둬들이고 하강하는 온도에 힘을 실었다. 그러자 일대의 공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송금백의 눈이 커졌다.

휘이이이잉! 퍼어어억!

전조도 없이 쏟아져 나온 냉기 가득한 장법에 그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하늘을 찢을 듯한 굉음도, 폭발적인 살기도 없었다.

그저 조용했다. 조용히 스며들어 터트리고 순식간에 사방을 장악한 냉기가 팔한지옥(八寒地獄)의 광경을 만들어 냈다.

종극무간도에 이어지는 극한(極寒)의 공격력, 혈규대홍련(血파大紅蓮)이었다.

'이놈?!’

재빨리 자세를 잡은 송금백은 순간 손에 감각이 사라진 걸 느꼈다. 검병과 검병을 쥔 손이 통째로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휘두르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묵혈괴룡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그가 재차 암룡무상검을 펼쳤다.

쿠웅!

죽음의 검도가 펼쳐지기 전.

얼어 버린 야산을 강제로 일깨우는 무지막지한 진각이 있었다.

화르륵! 화르르륵!

무간의 불꽃이 떠오를 정도의 화염이 치솟았다. 하지만 불꽃이 튀는 형상은 불이 아니라 번개를 닮아 있었다.

송금백의 눈이 커졌다.

번개처럼 이글거리는 불꽃의 일격, 천마벽력권의 진천벽력파(振天壽靂波)가 송금백을 맞이했다.

콰아앙!

거검이 하늘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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