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54화 (453/774)

454화. 사자의 발톱 (4)

곧바로 진격하려던 서량의 몸이 순간 주춤했다.

'아니다.'

충격은 확실하게 받았다. 그러나 검을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검병과 손에 얼음이 끼어 내공으로 떼어 내려 하지 않는 이상 절대 뽑히지 않는다.

'놓친 게 아니라 일부러 뽑아낸 것!'

그때였다.

후우우우웅!

하늘 높이 날아가던 거검에 또다시 먹물 빛 진기가 어렸다.

손으로 직접 쥐고 휘둘렀을 때보다 훨씬 더 진한 진기였다. 마치 검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라도 된 양, 검신 안에 봉인되어 있던 흉기(凶氣)가 치솟는 느낌이었다.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파아아아악!

거검이 움직였다.

허공에서, 저 스스로.

'어검!’

피유우웅! 퍼어어억!

서량이 절묘하게 검을 피해 냈다. 눈부신 회피 능력이었다.

그대로 땅에 박혀야 할 거검은, 놀랍게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손가락으로 지그시 두부를 누르듯 부드럽게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서량의 마안이 사방을 훑었다.

'어디?!’

콰아앙!

폭음과 함께 땅속에서 튀어나온 거검이 곧바로 서량의 등을 노렸다.

곧바로 회피하려던 서량은, 순간 난감함을 맛보았다. 어느새 피투성이가 된 송금백이 코앞까지 접근한 것이다.

찰나지만 이 대 일의 승부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애초에 회피하려던 것 자체가 실책이었다.

아니, 사실 실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한 평가였다. 제아무리 송금백이라 해도 진천벽력파를 맞고 어검을 쓰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게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와중에 그 자신도 치고 들어올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량의 마안에 송금백의 얼굴이 보였다.

코와 입에서 피를 쏟아 내고 있었고, 낯빛은 창백하기만 했다. 확실히 무리한 것이다.

'그래, 당신도 그걸 원하는군.'

절대고수 간의 싸움은 한 합으로 끝날 수도, 칠 주야 동안 이어질 수도 있는 법.

이 싸움은 누가 봐도 후자였다. 두 고수의 심(心), 기(氣), 체(體)는 완벽의 영역에 접어들었고, 둘 다 져서는 안 될 이유도 확실하다. 방심을 유도하려고 해도 각자 너무나 단련이 잘 돼서 수 싸움에 의미가 없는 지경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이 싸움은 지구력 싸움이었다. 그러나 서량도, 송금백도 그걸 원하지는 않았다.

번쩍!

그 찰나에 찰나를 쪼갠 순간.

서량은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껏 전력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확히는, 전력은 냈지만 평소 자신의 싸움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는 것을.

'나는 이 싸움에 모든 걸 던지지 않았어.'

지금껏 그가 자신보다도 강한 상대를 기어이 이겨 낼 수 있었던 이유.

실력이 좋아서? 경험이 많아서? 감각이 뛰어나서?

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다. 설령 내 목숨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생사결에 임하는 무인의 당연한 자세였다. 적어도 서량이 생각하기에는 그러했다.

'하면 나는 이번 전투에 무슨 마음으로 임했던가.'

자문에 대한 답변은 금세 떠올랐다.

화풀이다.

그는 진심으로 화가 났고, 그 화를 송금백에게 풀려 했었다.

당연히 죽일 생각도 확실했다. 죽이기 위해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전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지는 않았다.

'내가 교주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이런 곳에서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전에는 자신의 죽음을 책임져 줄 사람이 있었지만, 교주가 된 지금의 그는 어깨에 짊어진 만인(萬人)의 책임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가 실수했군.'

서량의 눈이 냉정을 되찾았다.

'나는 결코 이리 함부로 움직여도 될 사람이 아니었어.'

그걸 자신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전투에 이전처럼 몰입하지 못한 것이다.

비로소 서량은 깨달았다. 이천상이 왜 함부로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지를.

너무나도 높은 경지에 올라서? 하늘의 제지를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 이전에 한 조직의 수장이요, 신(神)이라 불리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그런 사람이 사건만 터지면 본인이 해결할 수 있다며 선봉에 선 장군처럼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늘 아래 누구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는 경지에 도달한 이천상조차 그리 행동했다. 섭리의 문제 이전에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문주, 수장의 무게다.

수장이 목숨을 걸어야 할 때는 오직 한 경우밖에 없다.

'신교의 안위가 걸린 일이 아니라면, 나는 함부로 목숨을 걸어선 안 되는 위치에 서 있다.'

머리로는 알았던 진실을 송금백과의 싸움을 통해 실감한다.

찰나의 시간은 말 그대로 찰나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서량의 사고는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 스스로도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모를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자는 어째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내가 약할 거라고 확신했나?’

번쩍!

머리 한구석에 또 다른 번개가 쳤다.

'철왕팔세.”

그렇다.

그가 살왕이었을 적보다 한층 더 두텁고 질긴 기질을 드러내는 철왕팔세가 근처에 주둔해 있었다. 송금백은 진정 죽을 상황에 직면케 되어도 철왕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빠져나갈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하고 확실한 자신이 있으니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신교의 사업과 개인의 목표를 위해 불붙은 멧돼지처럼 돌격한 자신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하나의 깨달음은 이내 또 하나의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나는, 이자를 죽여서도 안 된다.'

송금백은 확실하게 자신을 죽일 생각이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담사영과 손을 잡은 그는 이미 천마신교를 공격할 준비를 어느 정도 해 뒀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량은 달랐다.

지금 송금백을 죽이면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천마신교의 전력(戰力)이 강하다는 사실 하나만 믿고 무작정 덤벼드는 건 지나치게 무책임한 행위다.

상대에 대해 무엇 하나 알아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저 거치적거리니까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

어느 정도의 전력조차 유추하지 못한 상황에서, 누구와 붙어도 자신이 있으니 무섭지 않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철없는 자의 사고다. 적어도 한 단체의 수장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이었다.

'상대를 알고 일을 벌이는 것과 모르고 돌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지.’

착잡했다.

수많은 마인들의 목숨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자가, 말로만 책임을 느낀다고 주절대며 정작 행동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니.

쉬이이이익!

소리가 느릿하게 퍼져서 들려왔다.

어느새 송금백의 주먹이 그의 가슴 반의반 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 주먹에 맞으면 뒤로 튕겨 나갈 것이고, 그리되면 그대로 거검에 몸이 꿰뚫려 죽게 될 것이다.

서량은 눈을 감았다.

'모순이로군.’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선 이전처럼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교주이기 때문에 함부로 목숨을 걸어선 안 된다.

이 싸움에서 송금백을 죽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사결에, 몰입하지 않으면 분명히 패배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이전에 일으켰던 사건 사고와는 달리, 너무나도 큰 실수를 해 버린 지금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송금백.’

서량이 재차 눈을 떴다.

이제 송금백의 주먹은 서량의 의복에 닿아 있었다.

‘부디 당신의 몸이, 나의 살법(殺法)에도 버틸 수 있을 만큼 단련되었기를 바란다.'

무의식적으로 살기를 제어했던 구유마기가 일시에 폭발했다.

퍼어어어어엉!!

무시무시한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울컥!

서량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송금백의 주먹을 완전히 막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거검은 피해 냈다. 찰나지간 사고를 하면서도 그의 두 발은 마황군림보를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콰직!

땅을 손으로 움켜쥔다.

단단한 흙이 손가락 모양 그대로 파였다.

'빠르다!’

송금백이 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자세를 한껏 낮춘 서량이 보였다.

휘이이잉!

송금백의 머리 위로 태천거검이 요요로운 빛을 발했다. 어검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법 아픈 일격이었을 걸세. 무리한 나보다 더 심한 내상이겠지.”

주르륵.

송금백의 두 눈에서 다시 한번 피눈물이 흘렀다.

처음보다 더 굵고 진한 피눈물이었다. 양쪽 볼에 새겨진 핏자국이 더욱 짙어졌다.

“이제 끝을 내도록 하지.”

종이 한 장 차이로도 목숨이 오가는 것이 고수 간의 싸움이다. 이 정도로 심하게 차이가 벌어진 이상 서량이 자신을 이길 확률은 이전보다 훨씬 더 줄어들었다.

그렇게 송금백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때.

파지직.

서량의 등 위로 어두운 번개가 일었다.

송금백의 얼굴이 확연히 굳어졌다.

'저 번개는?’

순간 끔찍하기 짝이 없는 과거가 떠올랐다. 저보다 훨씬 더 진한, 오직 어둠으로 가득한 흑색 번개를 뿌리던 악마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권위와 역사로 가득했던 의천맹의 수많은 건물을 단신으로 박살 내고, 의천맹 병력의 칠 할을 날려 버린 무림 역사상 최악의 괴수.

'천마(天魔)!!'

그때, 서량의 허리춤에서 휘황찬란한 광채가 터져 나왔다.

번쩍! 콰아아아앙!

어느새 거검 태천을 저 멀리 날려 버린 것은 한 자루 호화로운 장검이었다. 태천만큼은 아니지만, 여느 장검보다 더 길고 굵은 검신에는 황금빛 용문(龍紋)이 새겨져 있었다.

송금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저 검이 어떻게?!”

그날, 전무후무했던 역사를 만들어 낸 최악의 마신과 함께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던 검.

싸우기 전에도, 싸우던 순간에도 보이지 않던 저 검이 이제야 비로소 보였다.

파지지지직!!

황금빛 용문을 타고 흐르는 시퍼런 번갯불이 시야에 닿는 영역 전부에 끔찍한 마기를 뿌려 대고 있었다.

부르르르르,

서량의 몸이 떨려 왔다.

떨림이 강해질수록 그의 몸에서 이는 살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했다.

퍼어어어엉! 콰앙!

뿜어져 나온 살기가 마기와 섞여 멀리 떨어진 나무와 바위까지 마구 갈아 버렸다.

지금껏 보여 주었던 살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토록 지고한 경지에 오른 자가 진정 살심에 물들었을 때, 어떤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부르르 떨리던 서량의 몸이 일순 덜컥! 하고 멈추었다.

“⋯⋯님. 만일 제가 적을⋯⋯ 대로 죽여선⋯⋯ 를 멈추게 해 주셔야⋯⋯.”

잘 들리지도 않는 혼잣말.

그러나 마지막 한 마디만큼은 송금백의 귀에도 확실하게 들렸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콰아아앙!

“헉!”

송금백이 충격으로 입을 쩍 벌렸다.

박찼다 싶은 순간 코앞까지 도달한 서량이 상상을 초월하는 살기를 쏟아 내고 있었다.

퍼어억! 퍼어억! 콰앙! 콰르르릉!!

짧은 순간 수십 번의 공방을 주고받는 두 사람.

하지만 그것은 공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일방적이었다.

피부가 찢어지고, 팔이 부러지고, 마황보의 대부분이 뜯겨 날아간 상황에서도.

두 눈은 충혈되고, 코와 입에선 피를 뿜고, 마기가 살기보다도 약해졌음에도.

서량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공격하는지, 어딜 노리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목표는 그저 송금백의 죽음이다.

절대 죽여서는 안 될 상대를 앞에 두고, 신(神)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어 밀어붙인다. 자신의 목숨을 또 다른 절대자에게 맡긴 채, 죽여선 안 될 사람을 찢어 죽일 각오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퍼억! 콰득! 콰드드득!

송금백의 오른팔이 부러지고 왼쪽 다리의 근육이 한 움큼 떨어져 나갔다.

'이⋯⋯!'

송금백의 얼굴에 마침내 두려움이 치솟았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서량은 웃고 있었다. 피를 토하면서도 미친 듯이 웃어젖히며 자신의 몸을 찢어 내려 하고 있었다.

생애 두 번째로 보게 되는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

처음 봤던 자가 신(神)이 된 괴물이라면, 지금 보는 자는 악마(惡魔)가 된 괴물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이 괴물 놈아!!”

콰득!

송금백의 장이 서량의 빗장뼈를 부러트렸다.

동시에 서량의 주먹이 송금백의 가슴을 후려쳤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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