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55화 (454/774)

455화. 사자의 발톱 (5)

“성주님을 뫼셔라!!”

“우아아아!”

쿠르르릉!

산천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수백 기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이한 광택을 내는 흑색 갑주. 심지어 전마(戰馬)에도 경갑을 씌웠고, 손에는 시커먼 장창을 들었다.

추왕혈사 이후 새로이 개편된 철왕팔세의 모습이었다. 말단의 기파도 고수 소리 듣기에 부족하지 않으며, 산악인데도 진형의 흐트러짐 없이 달려 나간다.

전마도 보통 전마가 아니었다. 전설 속의 적토마(赤免馬)라도 된 양, 진형을 형성하면서도 질주하는 속도가 절정고수의 신법보다도 빨랐다.

두두두두!

산천을 뒤흔들며 질주하는 철왕군.

그들의 눈에, 부러진 거목에 등을 기댄 채 연신 피를 토하는 송금백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송금백을 향해 재차 달려드는 마귀의 모습도.

“투창(投槍)!!”

파파파팡!

수백 자루의 창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대저 화살이든 투창이든, 멀리 있는 목표를 맞추기 위해선 곡사(曲射)가 기본이다. 하지만 그들의 투창은 반듯한 직사(直射)였다.

그런데도 힘이 떨어지지 않고 똑바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 힘을 보여 주는 것은 속도였다.

넉 자 길이의 단창 수백 자루가 눈 깜짝할 새에 서량의 면전에 도달했다.

서량의 마안이 번뜩였다.

퍼퍼퍼펑!

불길 가득한 장력이 투창을 거세게 튕겨 냈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그물망처럼 날아온 것이 아니라 서량만을 노려 시간차를 두고 쏘아졌기에, 한두 번 막는 것으로는 그 많은 창들을 전부 쳐 낼 수가 없었다.

퍼펑! 콰르르릉! 피슉!

서량의 몸에 하나둘 창상이 나기 시작했다.

살심이 폭발하여 반쯤 제정신이 아니라 해도 그의 무력이 저하되는 건 아니었다. 서량은 극치에 이른 자, 무의식적으로 펼쳐 내는 무공이라 한들 정명한 정신으로 구현해 내는 무력과 큰 차이가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투창을 다 막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지쳤다는 뜻이었다. 정신력으로 이겨 낼 수 없을 정도로.

“다시 투창! 벌집으로 만들어라!”

피피피피핑!

굵은 단창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제아무리 서량이라도 그걸 다 막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의 목표는 송금백이지, 철왕팔세가 아니었다.

애써 쳐 냈던 투창 세례가 다시 한번 날아온다. 서량의 살기가 마구 증폭했다.

“크아아악!”

서량이 괴성을 질렀다. 구유마공의 열세마왕공포식(裂世魔王恐胞式)이 극한까지 발휘되었다.

“크으윽!”

“이익!”

괴성을 들은 모두가 정신이 뒤흔들리는 충격을 받았다. 체력이 떨어지고 내공 소모도 극심한 와중에 전방위로 충격을 주는 가장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무시무시한 천마후(天魔吼)로 구유마기에 탄력을 실은 서량이 땅을 박찼다.

콰콰콰쾅!

수백 자루의 단창이 서량이 있던 자리에 폭음을 내며 꽂혔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서량. 투창은 피해 냈지만 철왕군의 눈까지는 피하지 못했다. 단창을 날리지 않고 대기 중이던 이백 기마무사들이 강궁(强弓)의 시위를 당겼다.

피유우우웅!

투창보다 배는 더 빨랐다. 이번만큼은 서량도 피해 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 철왕군은 이번에야말로 악명 높은 마교주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파바바바박!

굵은 화살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한 자루 거대한 검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화살들을 몽땅 쳐 낸 것이다.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서량의 앞을 방패처럼 막은 채 회전하는 검은 압도적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헉!”

“저, 저건?!”

거검 태천.

송금백의 애병 태천거검을 끌어와 바위도 깨부수는 화살 세례를 막았다. 비록 어검(寂劍)으로 인해 내공 소모가 심했을지언정, 천하의 신병(神兵)인 태천의 신기(神氣) 덕에 무리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량은 모두가 놀랄 만한 광경을 보여 주고도, 또다시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신기(神技)를 펼쳤다.

티이잉! 부아아앙!

그 널찍한 거검에 두 발을 딛고 올라서 송금백을 향해 나아간다.

검을 밟고 어검을 구사해 자유로이 날아다닌다. 극치에 이른 어검술, 상상을 초월하는 운용이었다. 마치 전설 속 검선(劍仙)의 화신이 된 것 같았다.

'이, 이런!’

피를 토하던 송금백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애병을 빼앗겼다는 분노도 잊었다. 어검을 저런 식으로 운용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더 무서운 것은 속도였다. 피하기는 이미 늦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데 거검에 실린 내력이 심상치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티이잉!

송금백이 바닥에 박힌 단창 하나를 뽑아 날렸다.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단창이 날아가는 속도는 철왕군이 날린 것보다 빨랐다.

퍼어억!

서량의 옆구리 살점이 한 움큼 떨어져 나갔다. 완벽히 피해 내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살심 가득한 두 눈을 보면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송금백이 기어이 소리를 질렀다.

“미친놈아!!”

콰아아앙!

동시에 봉우리 끝자락이 무너져 내리며 서량과 송금백이 아래로 떨어졌다.

어검의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철왕군은 서둘러 전진을 멈춰야 했다. 더 갔다간 함께 아래로 떨어질 게 분명했다.

"이, 이럴 수가!”

“밑으로 가라! 어서!”

“성주님을 구해라!”

무서운 속도로 부서진 절벽 밑으로 말머리를 돌리는 철왕군.

하지만 서량과 송금백은 그들의 존재를 잊었다. 한 명은 살기에 가득 차서, 다른 한 명은 살기로 물든 존재의 공격 때문이었다.

'이!’

퍼어억! 퍽!

절벽을 구르며 내려오니 온몸에 찰과상이 생겼다.

그래도 서량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굴러떨어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송금백의 멱살을 잡곤 미친 듯이 주먹을 날렸다.

퍽! 퍼억!

송금백의 얼굴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그나마 내공 소모가 심해서 다행이지 자칫 머리통이 날아갈 뻔했다. 송금백 역시 이를 악물며 마주 주먹질을 했다.

퍼버버벅!

죽음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두 절대자.

각자의 생존을 도모해야 함이 옳은 상황에서 타격전을 벌인다. 미친 짓도 이런 미친 짓이 없었다.

송금백이 소리쳤다.

“이러다 다 죽는다!”

“크아악!”

퍼어어억!

송금백의 입에서 피가 터졌다.

이번 일격으로 뇌가 흔들렸지만,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주!’

자신이 여기서 죽어 버리면 큰일이다. 대계(大計)가 시작된 이 시점에 큰 기둥이 빠지면 철혈성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이제는 개인의 생존이 아닌 집단의 생존 문제였다.

펄럭!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송금백이 옷을 찢고 벗어난 것이다.

그 순간, 귓가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놓치지 마.'

'지금 죽이지 않으면 평생 못 죽여.’

'안 돼! 저놈을 죽이면 전쟁이 터진다!'

'너는 서량이 아니라 천마신교의 교주야!'

움찔!

무리해서 권풍을 내지르려던 손이 주춤했다.

'이미 이겼어. 이 정도면 충분해.'

‘죽여! 분명 우환이 될 놈이야!’

서량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의 눈에 도주하는 송금백이 보였다. 내공으로 부러지고 터진 상처를 막고 있었지만 신법은 불안정했다. 허벅지 근육이 한 움큼이나 터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절뚝거리며 도망가는 약자, 그리고 피.

패배로 얼룩진 사냥감의 뒷모습이 서량의 흉성을 자극했다.

“크아아아!”

퍼어어어어엉!

혼신의 힘을 다해 내친 장력이 송금백을 향해 쏘아졌다.

마치 헤아릴 수 없는 귀신의 무리가 산 자를 잡아먹으러 돌진하는 듯했다. 구유인화장(九幽勸禍掌)의 유혼비천(幽魂飛天)이었다.

병장기로 어검을 쓸 수 있는 절대초식. 그 모든 힘을 응축시켜 내치니 지금의 송금백으로서는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송금백의 얼굴에 절망이 깃든 순간.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유혼비천의 장력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쩌저저저적!

이내 절벽 밑 전체가 빠른 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주변 온도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서량과 송금백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북해의 절대자, 여극도의 등장이었다.

'굉장하군.'

유혼비천을 막은 여극도의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다 쓰러져 가는 상태에서도 이만한 무공을 구사한단 말인가.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본래 위력의 삼 할도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함에도 어깨가 다 삐걱거리는 듯했다.

“서 교주. 이만 진정하시게.”

“크으으.”

“자네가 부탁하지 않았나. 자네를 막아달라고. 이만 정신을 차리시게.”

서량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퍼엉!

기회를 틈탄 송금백은 도주를 감행했다. 뜻밖의 고수가 개입했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상황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멀어지는 송금백을 보는 서량의 눈이 다시 한번 번뜩였다.

그때, 여극도가 진각을 밟았다.

쿠우우웅!

깊고 강력한 진각에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정신을 차리게.”

“으윽.”

“자네가 왜 그리 무리했는지 알고 있네. 일부러 스스로의 살기에 잠식당했단 것도 알고 있어. 그러나, 마도대종사로서 자네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가 흉하네.”

"⋯⋯."

“여기서 멈추게. 그리고 더 성장하게나. 굳이 살기에 잠식당하지 않아도, 무공으로 상대를 누르지 않아도 원하는 대로 천하를 주무를 수 있을 만큼 성장하게.”

덤덤하게 흘러나오는 여극도의 목소리는 마치 기억에 없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같았다.

“기억하게.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자네가 왜 내게 철혈성주를 죽이지 못하도록 말려 달라고 부탁했는지를 떠올려 보게.”

번쩍!

서량의 머리로 한 줄기 번개가 내리꽂혔다.

'철혈성주를 죽여선 안 된다고?'

우우우우웅

그의 몸에서 검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넘쳐흐를 만큼 왕성했던 살기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흉흉했던 두 눈이 조금씩, 조금씩 맑아졌다.

여극도의 얼굴에 흡족한 빛이 떠올랐다.

“과연 대단하네. 그 정도 살기에 몸을 던지는 것도 아무나 못 하지만, 그리 훌훌 털어 버리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

“크윽!”

서량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살기를 뽑아내자 이성이 돌아왔고, 이성이 돌아오자 지독한 목적의식으로 잊고 있던 고통이 올라왔다. 마기로 부러진 뼈를 고정하고 출혈을 막았지만 끔찍한 고통만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극도가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었다.

여극도가 혀를 찼다.

"족히 두 달은 정양해야겠군. 이만 가세나.”

"아니, 그래선 안 됩니다.”

“무슨 말인가?”

“그 전에 궁주님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서량이 지친 얼굴로 물었다.

“궁주님께서는 본교와 손을 잡으실 겁니까?"

이 시점에서 물어볼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극도는 그의 얼굴에서 초조함과 다급함을 보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현 무림의 시국을 떠나, 자네 덕분에 이렇게 살지 않았나. 빙궁은 절대 은혜를 잊지 않는다네.”

"하면 부탁드리겠습니다. 궁주님께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철왕팔세를 공격해 주십시오.”

“공격?!”

“제가 공격하면 그것은 전면전이 됩니다. 하지만 궁주님은 다릅니다.”

제아무리 여극도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게 무슨⋯⋯?”

“시간이 없습니다. 목숨을 거실 필요는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적의 병력을 줄여 주십시오.”

서량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동지로서의 능력을 제게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하십시오."

가만히 서량을 보던 여극도가 피식 웃었다.

“암, 그 정도 철두철미함은 있어야지.”

자리에서 일어난 여극도가 북쪽을 바라보았다.

“몸을 추스르고 있게. 금방 돌아오지.”

콰아앙!

여극도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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