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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56화 (455/774)

456화. 수장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1)

그날, 절강에서 벌어진 전투의 소식은 순식간에 무림 전역으로 퍼졌다.

천마신교 교주, 염라마제 서량과 철혈성의 성주, 수라제 송금백의 생사결.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대결이었다. 무림인이라면 설령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직관했을 절대자들 간의 생사결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어째서 부딪쳤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의 결투는 경천동지라 불릴 만했고, 야산 하나가 반쯤 무너질 정도로 위험천만했다는 것만이 알려졌을 뿐이었다.

놀랍게도 그 전투의 승패는 가려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철혈성의 정예와 함께 도주하는 송금백을 봤다고 했지만, 애초에 송금백의 얼굴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에 믿을 만한 소문은 아니었다.

반면 천마신교의 교주 서량은 당당하게 십만대산으로 돌아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전신이 피투성이에 치료도 받지 않은 기색이었지만, 보행에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는 목격담도 전해졌다.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의 승패를 알지 못해 아쉬워했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둘의 승패보다는 이 전투가 불러올 후폭풍을 염려했다.

어느 산골에서 은거하던 절대고수끼리의 싸움이 아닌, 무림을 삼등분한 강호삼세의 주인들끼리의 전투였다. 승패의 문제 이전에 천하의 정세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대사건이란 뜻이다.

사람들은 숨죽인 채 천마신교와 철혈성을 주시했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병력을 파견하면 그때부터는 전쟁이 터진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사람들은 서서히 긴장을 풀었다. 두 집단 중 어느 하나도 위험한 기색을 풍기지 않았던 것이다. 천마신교는 내외 관리에 힘썼으며, 철혈성 역시 이전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조용한 평화가 언제까지고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때의 전투가 앞으로 일어날 크나큰 사건의 중요한 기점이 되었을 거라는 걸.

그리고 다시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뜨거운 태양이 한참 세상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계절, 여름이 마지막 힘을 내는 그 시기.

천하를 뒤흔들 대사건의 시작은 중원의 한 복판, 호북성에서부터였다.

*

*

*

“헉헉! 와! 찐다, 져.”

“일어나라.”

“사부님. 너무 덥지 않으세요? 조금만 쉬었다가 해요.”

“날이 덥다고 적이 네 녀석을 기다려 줄 것 같으냐? 당장 일어나거라.”

"으으.”

비틀거리며 일어난 위홍련이 핏물을 뱉어 냈다.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지만, 안색이 무척이나 창백했다. 제법 심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철검마존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덥다고 툴툴거리고 있지만 자세는 완벽했다. 이제는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빈틈없는 자세가 자연스레 나온다.

'다 됐어.’

위홍련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영약을 취한 것도 아니요, 새로운 무공을 연성한 것도 아니었다. 지난 반년 동안 위홍련은 순수한 노력만으로 지금 이 경지에 올랐다. 보고 있는 철검마존이 놀랄 만한 성과였다.

'필경 확실한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겠지.'

호사가들이 나누는 무인의 경지는 많고 많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경지가 오를수록 다음 경지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룬 경지를 완숙하게 다듬어 내는 것 역시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 어려운 일을 위홍련은 고작 반년 만에 해냈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적어도 전투력만큼은 구대문파의 문주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자, 다시 오너라.”

“갑니다!”

그때였다.

“잠깐.”

위홍련이 주춤했다. 손에 쥐고 있는 호포검의 백광(白光)도 함께 수그러들었다.

“왜 그러세요?”

철검마존이 좌측 숲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숲에서 한 명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위홍련의 눈이 빛났다.

"마존을 뵙습니다.”

절도 있는 포권으로 인사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마동필이었다. 철검마존은 물론 위홍련도 반년 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무뚝뚝한 철검마존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마 호위?”

“오랜만에 뵙습니다. 미리 기척을 내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담백하면서도 예의가 분명한 인사였다.

가만히 마동필을 보던 철검마존이 고개를 저었다.

“반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수련을 했습니다.”

“대체 얼마나 단련했기에?"

마동필이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철검마존 못지않게 무뚝뚝한 얼굴은 여전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가볍지 않은 여유, 강자의 표정이었다.

“직분을 망각하고 세상을 잊은 채 지냈습니다. 교주님께서 배려해 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세상을 잊은 채 수련에 몰두했다⋯⋯ 말은 쉽지만 그 말에 진정으로 무게가 실리긴 어렵지. 자네, 수도 없이 죽음을 겪었군.”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 강해지기 위해서 목숨을 던지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재능 없는 자의 발악이었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저 운이 좋았을 따름입니다.”

"운만으로 그 경지에 올라섰다고 생각하지 말게. 그게 정녕 운이었다면, 자네는 천하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일 걸세.”

철검마존이 위홍련을 힐끔거렸다.

위홍련은 잔뜩 충격받은 얼굴로 마동필을 보고 있었다. 입을 떡 벌리고 침까지 질질 흘리는 걸 보니 정신을 반쯤 놓은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그리 놀라운 검사가 되었다니 반갑네. 훗날 시간이 되면 나와 검무(劍舞) 한번 추세나.”

천하의 철검마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란 정말 쉽지 않다.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영광입니다. 마존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무공이 성장하고 경지가 올라가니 반응도 달라졌다.

과거의 마동필이라면 절대 이리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에 고지식한 성정인 데다가 교주의 밀착 호위 임무까지 맡았으니 더더욱 날을 세웠을 터였다.

하나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이전의 그가 한 자루 날 선 보검이었다면, 지금의 그는 보검의 예기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칼집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 어인 일로 예까지 오셨는가.”

"교주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네. 말씀하시게.”

"교주님께서 원로원을 소집하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미 마신궁으로 향하셨습니다.”

철검마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지금 바로 출발하겠네.”

"알겠습니다.”

납검한 그가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위홍련을 바라보았다.

“마 호위.”

“예.”

“내 아둔한 제자에게 반 각만 시간을 내줄 수 있겠나?"

마동필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고맙네. 먼저 가 볼 터이니 담소라도 나누다 오게.”

그렇게 철검마존이 사라졌다.

마동필이 위홍련을 바라보았다.

“그간 잘 지냈소?”

멍하니 마동필을 보던 위홍련이 한숨을 쉬었다.

“다 그렇게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교주님과 함께 지내면 다들 그렇게 빨리 성장하는 거냐고.”

마동필이 고개를 저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오. 위 대주의 성장 역시 상식을 벗어났다고 생각하오. 과거 중원에서 봤던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오.”

"어째 놀리는 것처럼 들리는걸?"

"결코 그렇지 않소.”

위홍련이 쓰게 웃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야. 나름대로 태산의 칠부 능선까지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을 보니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군.”

“위 대주의 목표가 분명하다면, 현재 위 대주가 도달한 곳은 분명 태산의 칠부가 맞을 거요.”

“당신은?”

“모호하오.”

“목표가 어느 영역이기에?”

“정해 두지 않았소.”

위홍련의 눈이 깊어졌다.

“별다른 목표도 없이 그리 빨리 강해질 수 있었단 말이야?"

"목표를 세우기엔 그분은 너무도 머나먼 곳에 계시오.”

“그분이라니? 설마 교주님?”

“그렇소.”

위홍련이 혀를 내둘렀다.

“교주님을 쫓아가고 싶은 거야?"

“쫓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소. 다만 그분의 밀착 호위이니, 최소한 그분의 바로 밑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허!”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나로서는 혹여 그분께서 힘을 잃으셨을 때를 대비해야 하오. 교주님께서는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노니는 분이며, 당연히 그분을 노리는 자들도 같은 영역에 거하고 있소. 그들의 마수에서 교주님을 지키기 위해선, 최소한 그분의 뒷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는 나아가야 하오.”

“그래서 목표가 없다고 한 거구만?"

“그렇소. 그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강해지고 계시니까.”

가만히 마동필을 보던 위홍련이 그 자리에서 벌러덩 누워 버렸다.

“졌다! 당신이 이겼어!”

지금껏 마동필에게 한 번도 졌다고 말한 적이 없던 그녀가, 이제야 비로소 패배를 인정했다.

마동필은 넉살 좋게 받아쳤다.

“예전에도 많이 이겼소. 위 대주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

“후벼 파네, 후벼 파.”

“패배가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소?”

“나는 부끄러워. 지지 않기 위해 살아온 인생이거든.”

“그럼 지금부터 인생관을 바꿔 보는 것을 추천해 드리겠소.”

“지기 위해 살아가라고?”

“패배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오.”

위홍련이 쓴웃음을 지었다.

“말은 쉽다. 바꾸기 쉽지 않을걸?"

"자존심을 내려놓기란 언제나 어려운 법. 하물며 위 대주처럼 자존심 하나로 온갖 역경을 헤쳐 온 무사라면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겠소.”

“얼씨구.”

"물론 권고일 뿐이오. 귀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흘려들으시오.”

위홍련이 벌떡 일어났다.

“이 양반아. 자존심에도 정도가 있지, 극마(極魔)에 이른 초고수의 권고를 어떻게 그냥 흘려들을 수 있겠어?”

마동필이 미소를 지었다.

“극마가 아니라 초마지경에 달한 고수의 말이라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껍데기에 불과한 뿐이외다.

“하지만 당신이 내게 해 준 말은 껍데기가 아니잖아?”

“그걸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위 대주의 몫이오.”

위홍련이 또다시 미소를 지었다.

“좋네. 스스로에게 더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그렇다고도 볼 수 있소.”

“날도 더운데 수련 빼먹을 이유 하나 생겼군.”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런 위홍련을 보며 마동필은 생각했다. 그녀도 참 많이 달라졌다고.

스스로 자존심을 세운다 생각하지만, 위홍련은 이미 충분히 유연해졌다. 설령 자신이 극마에 이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

그녀의 패배 인정은 무사로서의 승부가 아닌 무인으로서의 자세를 뜻하는 것이었으니까.

"내상은 심하오?”

“뭐, 내상약 먹고 치료하면 얼추 열흘이면 낫겠지.”

"잘 됐군. 당장 거동에 이상이 없는 걸로 알겠소.”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예까지 온 것은 원로원의 소집 때문만이 아니오.”

“그럼?”

"교주님께서 위 대주에게 밀명(密命)을 내리셨소.”

위홍련의 눈이 번뜩였다.

곧바로 자세를 바로 한 그녀가 공손히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교주의 밀명을 듣는데 방만한 자세로 들을 순 없었다.

마동필이 미소를 지었다. 전투 시만큼은 누구보다도 군인다운 성정을 보이던 그녀가, 이제는 작전 중이 아닐 때도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마도 교주님께서는 이런 위홍련의 변화를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녀가 바뀐 걸 알았으니 이러한 중책을 내려주신 것이겠지.

“현시간 부로 광마대주 위홍련을 새로이 창설될 교주 직속(敎主直屬) 특작 부대(特作部隊), 마왕령(魔王令)의 령주로 임명한다.”

위홍련은 깜짝 놀라 마동필을 올려다보았다.

마동필이 차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교주 직속인 만큼 군사부가 아닌 마신궁 소속으로 두며, 교주와 총군사를 제외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주요 작전은 암살, 폭파, 별동, 거점 탈취, 세작 침투 등으로 일반 전투 부대가 수행하지 못하는 작전을 전부 담당한다.”

“⋯⋯!!"

“금일 자시(子時) 교주전으로 들어 지닌바 능력을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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