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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57화 (456/774)

457화. 수장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2)

마신궁의 대전에 구대마존 전부가 모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중에는 그간 모습을 보이지 않던 벽력마존도 있었다. 원로원주 광마존만큼이나 평범한 외양이지만 눈빛만큼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특유의 불만 가득한 음야마존도, 성정이 불같은 열화마존도, 침착하기론 마존 중 제일이라는 한음마존도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회랑에서 호요성이 등장했다.

“총군사가 원로들께 인사드립니다. 바쁘실 텐데 예까지 오시게 하여 송구합니다.”

교주의 명령으로 불렀지만, 이 일을 주도한 것은 자신이라는 걸 알려 주는 말이었다.

광마존이 입을 열었다.

“어지간해선 원로원을 소집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 그만큼 예삿일이 아닐 터이니 우리 눈치 볼 것 없다네. 물론 자네 성정에 눈치를 볼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일세.”

"하하, 그리 말씀하시면 상처받습니다.”

"칭찬일세. 신교의 총군사가 원로들의 눈치를 살펴서는 안 되지.”

여유가 느껴지는 대화였다.

과거, 서량이 판마정에 들어섰을 때 일대 사건을 일으켰던 광마존이다. 당시 그와 호요성은 짧지만 깊게 대립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끝에 지금은 서로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사이로 변모했다. 애초에 그런 일로 앙심을 품을 만큼 작은 그릇도 아니었고, 서로가 얼마나 신교를 위하는지도 알았기에 나올 수 있는 친근감이리라.

“한데 교주님께서는?"

“아, 이번 회의는 제가 주관하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교주 대리 역할을 한다는 뜻이었다.

음야마존이 툴툴거렸다.

“엉덩이 무거운 늙은이들이 불만을 품지 않을 만한 일이었으면 좋겠군.”

“음야.”

광마존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음야마존을 불렀다.

“총군사가 주관하는 회의지만 명령을 내린 분은 교주님일세. 쓸데없는 희언으로 교주님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말게.”

“⋯⋯그냥 그렇다는 말이외다.”

과거 크게 한 건 하려다가 광마존의 진심을 알고 조용히 뒤로 물러난 그였다. 후에 서량과 광마존 사이에 일어난 일을 들은 음야마존은 몇 달 동안이나 불안함에 잠을 설쳐야 했다. 언제든 서량이 자신을 내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량은 음야마존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데 쓸데없이 전력을 손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서량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음야마존으로선 그저 쥐 죽은 듯 지낼 수밖에 없었다. 가끔 툴툴거리긴 하지만 교주님 소리만 나오면 벌벌 떠는 게 그였다.

고루마존이 말했다.

“말씀하시오, 총군사.”

"예, 시간 길게 끌 것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호요성의 눈빛을 굳혔다.

“반정회(反正會)가 해체되었습니다.”

“⋯⋯!!”

대전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천생 무골인 열화마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정회라면 소림과 무당, 그리고 그 두 곳을 따르는 중소 문파들의 연합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들이 왜 해체했다는 겐가? 아니, 그들의 해체가 그리 심각한 일인가?”

광마존이 답했다.

“충분히 심각한 일이지.”

호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심각한 일이지요.”

철검마존이 눈을 빛냈다.

“반정회는 의천맹의 폭거를 보다 못한 소림과 무당의 연합이었소. 비록 우리와는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하나, 그들의 의로움만큼은 진짜라고 생각하오.”

“물론입니다.”

“애초에 대의(大義)를 위해 모인 집단인 만큼 언제 흩어져도 이상하진 않다고 생각하오만.”

“그렇습니다. 언제 흩어져도 이상하지 않지요.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결속과 해체에 문제가 되는 시기라는 게 존재합니다.”

“총군사께선 반정회가 하필 이 시기에 해체한 것이 문제가 된다고 보시는 게요?”

“그렇습니다.”

"어떤 면에서?"

호요성이 광마존을 바라보았다.

“원주님께선 이미 짐작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그저 짐작일 뿐이네.”

“생각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굳이 자신의 입이 아닌 원로원주의 입을 빌려 설명하게 한다.

광마존은 호요성이 노리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철검의 말마따나 반정회는 대의를 위해 뭉친 집단일세. 그 대의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의천맹일세. 소위 정파 연합이라는 집단이 진짜 정파다운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반정회가 원하던 목표일세.”

열화마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전대 교주님께서 의천맹을 와해시키지 않았소이까?”

"그렇다네. 그러나 의천맹이 와해되었다고 하여 반정회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는 건 아닐세. 의천맹이 무너졌으니 오히려 정파인들의 마음을 다독여 줄 존재가 필요한 법. 지금껏 반정회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네.”

“아?!”

“그런 반정회가 조직을 해체하겠다고 하네. 만일 새로운 정파 무림 연맹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굳이 해체할 필요가 없었겠지.”

“하면 반정회가 보기에 정파인들이 충분히 안정되었다고 생각한 거요?”

“그럴 리가 없네.”

광마존이 호요성을 바라보았다.

호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강호삼세를 정파와 사파, 마도를 대표하는 집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강호삼세 중 가장 강세를 보이는 집단은 단연 본교입니다. 하면 가장 약세를 보이는 쪽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정파일세.”

"그렇습니다. 본디 중원에서 가장 약세를 보이는 쪽은 줄곧 사파였습니다. 그러나 전대 교주님의 절대적인 무력 앞에 정파가 사파보다도 힘이 약해진 상황이 되었지요. 게다가 담사영이 소림과 무당을 제외한 일곱 문파를 휘하에 두고 있으니, 정파는 구심점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입니다.”

광마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즉, 반정회는 그들이 외친 대의 이전에 현실을 위해서라도 흩어져서는 안 될 조직일세. 그들은 정파의 구심점이 돼야 했어. 그런데도 조직을 해체한 것이지.”

열화마존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평생을 무공만 익히며 살아온 외곬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나 정치에 대해선 문외한에 가까웠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요?"

“반정회의 수뇌부들에게 별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조직의 해체는 말도 안 되는 짓일세. 하면 반정회는 어째서 해체가 된 것일까? 본교는 그들을 압박한 적이 없고, 철혈성이었다면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해체하지는 않았을 것일세."

“그럼?”

광마존이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즉, 반정회는 무림의 조직으로 인해 해체된 게 아니라고 볼 수 있네.”

“그런 조직이 어디 있단 말이오?”

광마존이 다시 호요성을 바라보았다.

호요성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광마존이 탄식했다.

“저 북해의 주인이 말하기를, 반년 전 교주님께서 철혈성주와 생사결을 벌일 때 철왕팔세가 주둔해 있었다고 했네. 그리고 그들의 경장갑주가 황궁제(皇宮製) 였다는 것도 말해 주었네.”

“⋯⋯!!”

“정무쌍신이 버티고 있는 반정회를 외압으로 해체할 수 있는 조직. 그곳은 강호삼세도, 새외사궁도 아닐세. 황궁이네.”

대전이 한순간 침묵으로 물들었다.

고루마존이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총군사. 이것이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호요성이 입맛을 다셨다.

“기실, 담사영이 황궁과 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은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주님께서 말씀하신 당시의 전투에서 철왕팔세가 황궁제 갑옷을 입고 있었다는 데에서, 담사영과 송금백이 손을 잡았다는 것도 확신했지요.”

“그, 그럼?!”

“담사영, 송금백 그리고 황궁. 그들이 손을 잡았다면 제아무리 본교의 힘이 강력하다 한들 쉬이 막기는 어렵습니다."

대전에 다시 한번 침묵이 찾아왔다.

마인은 호전적이고 자존심이 강하다. 그것은 마존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자신감 넘치는 마존들도 호요성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담사영과 송금백이 손잡고 이쪽과 싸워 보겠다 하면 오히려 이빨을 드러내겠지만, 거기에 황궁까지 꼈다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제아무리 힘을 잃었다고 해도 황궁은 황궁이다. 그들은 대륙의 중추이며, 만백성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조직이었다.

즉, 황궁을 적대하는 것은 천하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힘의 문제가 아닌 명분의 문제였다.

물론 천마신교는 지금껏 명분 때문에 눈치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황궁을 상대로 칼을 겨눠 본 적 또한 단 한 번도 없었다.

"준비는?”

모두가 철검마존을 바라보았다.

철검마존이 특유의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총군사는 그들이 손을 잡았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했소.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책도 어느 정도 준비해 놨을 거라 생각하오.”

책임을 묻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만큼 총군사 호요성의 역량을 믿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호요성이 씁쓸하게 웃었다.

“물론 그에 대한 대책은 마련해 두었지요. 나아가 실행 중에 있습니다. 병법에 말하길,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而後求戰)이라 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는 먼저 이겨 놓고 싸운다는 것이지요. 저 역시 그것을 추구하는 군사입니다."

마존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호요성의 눈이 빛났다.

"반정회가 이리 빨리 해체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지요.”

음야마존이 슬쩍 비아냥거렸다.

“모든 대비를 마쳤다고 하지 않았는가? 반정회의 해체도 염두에 두었어야 마땅하지 않나?”

“물론 염두에 두었습니다. 말씀드렸듯, 이리 빨리 와해가 될 줄은 몰랐지만요. 사실 반정회가 해체될 가능성은 이 할 이하라고 잡았습니다.”

"하면 어쩌겠다는 겐가?”

“그래서 어르신들을 부른 겁니다.”

“응?”

씁쓸했던 호요성의 표정이 일순 차갑게 변했다.

“반정회 건을 맡아 주십시오. 아홉 분 모두.”

“⋯⋯?!”

“전 무림의 시선이 어르신들께로 향할 수 있도록 출정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

*

*

그날 밤.

“잉?”

위홍련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교주전으로 찾아왔지만 서량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계시지?”

통상 대전과 교주 개인의 공간을 통틀어 교주전이라 부르지만, 교주 개인의 공간만을 일컬어 교주전이라 하기도 한다. 위홍련이 들어온 곳은 바로 낮에 호요성과 마존들이 대화를 나누던 대전이었다.

위홍련이 머리를 긁적일 때.

[회랑 안으로.]

귓가를 파고드는 전음이 그녀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익숙한 서량의 전음이었다. 위홍련이 서둘러 회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의 눈에 서량이 보였다.

“크허! 시원하다!”

위홍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왔냐?”

“왜 그러냐? 표정이 영 이상한데?”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위홍련이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광마대주가 교주님을 뵙습니다.”

"어? 동필이한테 못 들었나?"

“⋯⋯예?”

"마왕령주로 임명됐다니까 뭔 광마대주야?”

“아⋯⋯.”

“하긴, 몇 년을 광마대주로 있었으니 입에 달라붙었을 만도 하지. 이해한다.”

"저⋯⋯ 교주님?”

“왜?”

위홍련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

"일이야 하루하루가 일이지.”

“뭐 그렇기는 한데요.”

“왜? 내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냐?"

“네.”

“솔직하기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얘기한다. 서량은 위홍련의 그런 성격이 좋았다.

그가 텁수룩하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었다. 신교의 교주답지 않은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한 손에는 호리병을 쥐고 있는데, 누가 봐도 술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방탕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매끈한 피부와 건장한 체격이 아니었다면 주정꾼으로 봐도 이상하지 않을 외양이었다.

“내상 입었네?”

"아, 그렇게 됐습니다.”

서량이 손을 휘둘렀다.

후우우우웅!

위홍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붉은 마기가 일었다 싶은 순간, 잔존하고 있던 내상이 무서운 속도로 수복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경지였다.

위홍련이 놀라다 못해 얼이 빠져 있을 때.

“슬슬 시간이 됐다 싶었지. 저쪽으로 들어가자.”

"네? 아, 네! 근데 저기가 어딘데요?"

서량이 몸을 돌렸다.

"제이(第二) 전략실(戰略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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