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58화 (457/774)

458화. 수장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3)

제이 전략실이라 불리는 곳은 놀랍게도 교주전의 지하 통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위홍련은 한 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길었다.

서량의 뒤를 따르던 위홍련이 입을 열었다.

“저어⋯⋯.”

“편하게 말해. 오랜만에 봤다고 내외하는 거 아니지?”

“내외를 떠나서 교주님이신데요.”

“마왕령은 특작 부대야. 나는 자네나 자네 부하 될 사람들에게 딱딱한 군기를 원하지 않아.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가 실제 작전에 있어서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

“예전에 하듯이 편안하게 해. 기본 예의만 밥 말아 먹지 말고.”

"말투가 묘하게 격해지셨네요.”

“진심이야?”

"아닙니다. 하기야 옛날 교주님 말투는 엄청났었죠.”

“웃기고 있네. 너만 했겠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긴장이 풀렸다.

위홍련이 물었다.

"마왕령이라고 하셨죠?”

“어.”

“⋯⋯뭐어, 새로운 부대를 창설하신 이유야 제가 궁금해할 건 아닌데요. 그 부대의 장을 왜 저에게 맡기신 거예요?"

“궁금해해야지. 마왕령이 왜 창설되었는지도.”

“물론 궁금하긴 해요.”

"안에서 들어.”

말을 말아야지.

“그럼 왜 제게 그러한 중책을⋯⋯?"

"자네가 제일 적격이라고 생각하니까.”

“여, 영광입니다.”

“왜? 아니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자네의 그 솔직함이 그리웠어. 적어도 이런 부분에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예에. 저라는 년은, 아니 저는 특작 부대의 임무를 맡아서 이끌 정도로 머리가 좋진 않은 것 같아서요."

“본교는 전투 부대의 대장 자리에 멍청한 사람을 앉힐 만큼 만만하지 않아. 자네가 수년 동안 광마대의 대장으로 지낼 수 있었던 건 무공 외에 부대를 운용하는 능력도 뛰어나서야.”

“하지만 특작 부대는 다르잖아요?”

"들었어? 마왕령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암살, 폭파, 별동, 거점 탈취, 세작 침투 등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경우에 따라선 요인 호위 등의 임무도 맡게 되겠지요?”

“맞다.”

“저도 나름의 전략 전술을 배우기는 했습니다만⋯⋯. 그런 특작 임무는 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요.”

“그래서 그래.”

“네?”

"보고서를 보니 광마대가 특작 임무를 몇 번 맡았더군. 다른 전투 부대는 한 번도 맡지 않았지.”

“아⋯⋯."

“그 임무들에서 자네의 판단력은 빛을 발했어. 감이 좋든 머리가 좋든, 자네는 이미 결과로 보여 줬다는 거야.”

“그, 그렇게 되나요?”

“적어도 내 눈에는 적임자로 보였어. 그리고 전에 했던 말 기억하지?”

“네? 어떤 말이요?"

"그새 잊어버렸어? 널 팍팍 써먹어 주겠다고 했잖아.”

“⋯⋯!”

“그때 나는 네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고. 물어뜯을 대상을 정해 주면, 설령 그 대상이 본교일지라도 이유를 들먹이지 않고 해치워 버릴 사람이라고 했었지.”

위홍련이 멋쩍게 웃었다.

“그랬었나요?”

"그래. 나는 네게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겠다고 했고, 동시에 제대로 날뛸 수 있는 판을 깔아 주겠다고도 했다.”

“이제야 기억이 납니다. 분명 그런 대화를 했었죠.”

"그래. 비록 철검마존이 나 대신 너를 키워 줬지만, 날뛸 수 있는 판 정도는 내가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냐.”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위홍련에게는 보이지 않는 미소였다.

“물론 필요에 따라 쓰는 거니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 임무가 떨어지면 네 장기를 최대한 발휘하면 되는 거야.”

"아, 예.”

이런저런 대화를 했지만 위홍련은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마왕령. 교주 직속 특작부대.

신교에서 교주 직속의 부대는 천마군과 호천마황단뿐이었다. 그중 호천마황단은 철저하게 교주를 호위하는 부대일 뿐,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즉, 크기는 작을지라도 마왕령은 천마군 못지않은 대우를 받을 거란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직의 수장으로 자신이 임명된 것이다.

'이게 무슨 초고속 승진이람?'

물론 교주 직속 부대의 마인들은 그 이상의 요직에 앉기는 어려웠다. 은퇴할 때까지 철저하게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홍련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특작 부대라⋯⋯.’

제대로 날뛰게 해 주겠다는 한마디.

그 말을 듣자 그간 검과 함께 단련되었던 마음이 파랑을 일으켰다. 여유 있던 마음에 격정이 깃들고, 차분하던 눈빛이 점차 광포하게 뒤바뀌었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그녀의 본모습이었다.

천마신교와 대적했던 위씨 세가의 마지막 생존자.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배우고 익혔으며,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생활하길 십수 년.

어느새 그녀에게 전투란 죽음이 아닌 삶이 되었다. 즐기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던 천마신교에서의 생활이, 그녀의 천성까지 바꿔 버린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검사로서 깊게 단련해야 할 시기는 분명히 있었다. 바로 그때 철검마존과 사제지연을 맺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는 다시 싸울 때였다. 꾹꾹 억누르고 있던 전투 본능을 해소할 때를 드디어 맞이했다.

비록 적진을 쓸어 버리는 부대는 아니었지만, 적을 타격하는 부대의 수장으로서 또 한 차례 미친 듯이 날뛸 때가 온 것이다. 그것이 그녀를 두근거리게 했다.

잠시 후.

“오셨습니까?”

“오셨어요, 교주님!"

제법 널찍한 지하 전략실에는 호요성과 앵화가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벽면에 붙인 거대한 지도에 각기 다른 색의 굵은 실을 여기저기 연결해 두고 있었다.

위홍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레? 앵화도 있네?"

탁!

“억!”

위홍련이 갑작스레 얻어맞은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왜 그러세요?”

“인마, 앵화가 네 친구야? 본교의 시녀장이니라.”

“아?”

위홍련이 어깨를 으쓱했다. 서량과 대화 후, 서서히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것 같았다.

"앵화도 꼬박꼬박 존댓말 하는 걸 바라진 않을걸요? 그치, 앵화야?”

은근슬쩍 주변을 둘러본 앵화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사람 사이에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들었네요.”

위홍련의 눈이 퉁방울처럼 튀어나왔다.

호요성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시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명색이 교주님 담당 시녀장인데 쉽게 말을 놔서야 쓰겠습니까? 암요."

"헤헤.”

위홍련이 혀를 내둘렀다.

“독해졌어. 독해졌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위홍련의 얼굴은 몹시 밝았다.

호요성은 아니지만 서량과 앵화가 함께 있는 자리에 자신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더라도, 모두 성공해서 오랜만에 모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근데 앵화, 아니 시녀장님은 왜 여기에 있어? 교주님 수발들려고?”

호칭만 시녀장님이지 말투는 달라진 게 없었다.

호요성이 웃으며 대신 답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 시녀장님의 두뇌 회전이 보통이 아니라서요.”

위홍련이 놀란 눈으로 앵화를 바라보았다.

두뇌 회전이 보통이 아니라고? 그 말을 호요성이 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똑똑하다는 거야?

"나중에 보시면 알 겁니다. 아! 말이 나와서 말인데 시녀장님.”

“네!”

“그쪽 상단 자제분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계속 연락 주고받고 계시죠?”

앵화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네에. 이번 상반기 강서상회 무역 건은 성공리에 끝날 것 같다고 해요. 무역 연합이 워낙 본교에 호의적이라 일 처리가 쉬웠다고 하더라고요.”

“다행이로군요.”

"네에.”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네?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앵화의 얼굴에 망설임이 일었다.

교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신교를 위해서 어린 시절 유일했던 친구를 통해 강서상회의 비밀 자금을 통째로 빼앗았다. 그녀는 정말이지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 친구의 천인상단은 강서상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상단으로 올라섰지요.”

“마, 맞아요. 오히려 고마워하더라고요.”

“그럴 겁니다. 천인상단은 예전부터 강서상회 내에서 가장 약세로 손꼽혔던 상단이지요. 본교를 증오하던 자들끼리 모였지만, 기실 천인상단은 실질적으로 다른 상단의 뒤처리나 하고 있었지요.”

“네에.”

“시녀장님의 활약 덕분에 본교도 살고 천인상단도 살았습니다. 친구를 속였다는 죄책감은 당연합니다만,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으니 그만 마음을 푸십시오.”

“마, 마음을 풀라니요?! 저는 전혀 그런 생각을⋯⋯.”

서량이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추억은 추억일 뿐이야. 그 추억이 현재로 돌아온 순간, 더는 아름다울 수 없게 되지.”

"아⋯⋯!”

“나와 총군사는 너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런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만, 이왕 일이 벌어졌으니 그 친구와는 새로운 추억을 쌓아 가면 좋겠다.”

앵화가 고개를 숙였다.

“저는 언제까지나 교주님을 모시는 시녀입니다. 사사로운 정에 마음이 아플 수는 있어도 지난 일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호요성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강서상회 하반기 무역 회동에 직접 참여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에?! 제, 제가요?!"

“왜 그리 놀라십니까?”

“저, 저는 그런 능력도 배짱도 없는⋯⋯."

“제 최고 장점 중 하나가 사람 보는 눈입니다. 제가 보기에 시녀장님은 상업 관련으로는 군사부의 정보책들보다도 훨씬 더 능력이 있어요.”

“아⋯⋯."

“그래서 여기까지 모신 것 아닙니까. 시녀장님의 의견도 들어 보고, 향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도 논의해 봐야 하거든요. 그렇죠, 교주님?”

서량이 말없이 끄덕였다.

느닷없이 큰일을 맡게 된 앵화는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주먹을 흔들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전략실이 떠들썩해질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였다. 정작 소리를 지른 당사자는 당황해서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위홍련이 앵화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좋겠다, 시녀장님. 그치?"

"헤헤.”

호요성이 지도를 툭툭 건드렸다.

“자, 이제 모일 사람은 전부 모였으니 회의 겸 시험을 시작해 볼까요?”

위홍련이 눈을 끔뻑였다.

“회의⋯⋯는 그렇다 치고, 시험이라니요?"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동필이한테 못 들었어?”

"네? 뭘요?”

“금일 자시, 교주전으로 들어서 지닌바 능력을 증명하라고 했잖나?”

“아⋯⋯!”

“이미 마왕령주로 임명했으니 어떻게든 널 써먹어 줄 거야. 하지만 널 더 공부시킨 후 써먹을지, 지금 당장 써먹을지는 지켜봐야지.”

서량이 턱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실전이야 입에 단내가 나도록 겪어 봤으니, 이제부터 총군사와 어디부터 공략해야 할지 토론해 봐.”

“공략이라 하심은, 전투를 치를 곳이 있다는 뜻인가요?"

“전투? 그 정도가 아니지.”

“네?”

"전쟁이다.”

“⋯⋯!!”

“먼저 이겨 놓고 전쟁을 터트리기 위해서 마왕령이 필요한 거야. 그러니 다시 한번 목숨 걸고 달려 봐.”

“저, 전쟁이라니요? 어디와 전쟁을 벌인단 말씀이세요?”

서량의 시퍼런 마안이 지도의 북쪽을 바라보았다.

“황궁.”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