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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61화 (460/774)

461화. 시대의 선택 (1)

“서역에서 들여온 융단(絨緞)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군. 자네 덕분에 대신들 앞에서 면이 섰다네.”

“허허, 그저 사소한 선물이었을 따름이옵니다. 지상 모든 것이 전하의 소유물 아니옵니까. 저는 그중 하나를 전달해 드린 것뿐입니다.”

“하하! 자네의 혀는 여전히 달콤하군. 과거 많은 황제와 제후들이 아첨을 멀리하라 했지만, 나는 다르다네.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귀가 시린 것을, 싫은 소리는 오죽하겠나.”

“참으로 옳습니다. 첨언하자면, 저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씀드릴 뿐이옵니다.”

“알지, 알아. 자네의 솔직한 성격을 모르는 바 아니라네. 그래서 내 자네와 연을 맺은 것 아닌가.”

“허허허.”

호화스러운 곤룡포를 입은 삼십 대 장한, 주천양이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자, 한 잔 받으시게.”

“영광이옵니다.”

담사영이 공손히 잔을 들었다.

빈 잔을 채우며 주천양이 물었다.

“그나저나, 송 성주에게 달리 연락은 없던가?”

담사영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무엇인가?”

“송 성주가 크게 다쳤습니다.”

주천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송 성주가?”

“그렇사옵니다.”

“내 듣기로, 송 성주가 지닌 일신의 무력은 자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알고 있네만.”

“실로 그러합니다.”

“실제로 송 성주를 보았을 때, 나는 한 마리 사자와도 같은 용맹과 대장군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네. 무림에서도 가히 제일을 논할 만하다지 않았는가.”

“그렇사옵니다.”

“혹, 사고라도 겪은 겐가?”

담사영의 눈이 빛났다.

“오 개월 전, 송 성주가 부덕한 소인을 대신하여 천하의 악종과 단판을 벌였나이다.”

주천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악종이라 함은 그 마교의?”

“그렇사옵니다. 그 악종의 힘이 나날이 커져 가고 있사온데, 송 성주가 결심하여 승부를 벌였습니다만 결국 양패구상하고야 말았다고 합니다.”

“허!”

주천양이 고개를 저었다.

“새로이 교주직에 오른 악종의 나이가 이립(而立)이 채 되지 않는다고 들었거늘.”

“본디 마공(魔功)이라는 것이 그렇사옵니다. 무도한 연성 방법으로 비상식적인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있지요. 개중에는 어린아이들의 피를 뽑아내거나 여인의 정기를 취하는 등, 입에 올리기도 힘든 잔혹한 방법이 많습니다.”

“그야말로 악귀가 따로 없구먼. 소위 마공이라는 것의 잔악함을 익히 들어 왔건만, 담 맹주의 입으로 들으니 보통 악랄한 공부가 아닐세그려.”

담사영의 눈이 깊어졌다.

“그때 전하께서도 직접 보셨듯, 전대 교주의 무력은 실로 고금제일을 논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어찌 그런 힘을 손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비인외도(非人外道)의 술수가 아니었다면 결코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없사옵니다.”

주천양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그렇다. 의천맹이 한 마신의 손에 붕괴된 그날, 그 자리에는 주천양도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마신의 파괴 행위에 휩쓸리진 않았지만, 그 재앙 같은 힘은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전대 교주 이천상은 사람이 아니었다. 실로 지상에 내려온 신과도 같았다.

주천양은 난생처음으로 공포라는 것을 느꼈다. 고수라는 무인들을 수도 없이 만나 보았지만, 그처럼 규격 외의 힘을 뽐낸 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은, 자네나 송 성주도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기는 불가능하다는 뜻인가?”

담사영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천운이 따라 주어도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흐음.”

“다만, 마교의 악종은 다릅니다.”

“…….”

“그자는 전대 교주가 직접 인정한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어쩌면 이천상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를지도 모릅니다.”

주천양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내 비록 자네들만큼 무공에 정통하지는 못했으나, 그와 같은 경지가 단순히 부도덕한 연성 방법만으로 오르기는 힘든 경지라는 건 알고 있네.”

“실로 옳으십니다. 그러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천상 그자도 과거 마교 역사상 다시 없을 천재라 불렸던 괴물인데, 그런 이천상보다도 수년은 더 이른 시기에 송 성주에 필적하는 무공을 연성하지 않았사옵니까.”

“음.”

“전하께서 차후 제대로 된 국가를 정립하시고 중원을 다스리실 때, 마교의 악종은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더 강해지고 말고를 떠나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지요.”

“자네 말이 옳네. 그런 위험 인자를 가만두어서는 안 되겠지. 하물며 사사로이 곤룡포까지 입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천하의 역적이 따로 없는 행태이옵니다.”

“제아무리 황궁이 힘을 잃고 관부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시대라고 하나, 어찌 제국의 일원이 되어 그런 참담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무리이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담사영도, 주천양도 알고 있었다.

천마신교의 교주는 천 년 전부터 항상 곤룡포를 입어 왔다. 그것은 제국의 힘이 강성했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마(天魔)는 무적의 상징이기 때문에.

제국의 황제조차도 감히 천마신교를 역적의 무리라고 규정할 수 없었다. 천마의 절대적인 무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설령 전쟁을 벌인다 한들, 천마신교와 부딪치면 황궁이 날아갈 수도 있다. 천마신교의 은원은 실로 지독해서, 상대가 무림이든 황궁이든 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죄. 그러나 다시 한번 국가를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주천양에게 있어 천마신교의 행태는 두고 볼 수 없는 문제였다.

“한데, 자네는 괜찮겠는가?”

“예?”

주천양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보여 주었던 호의 가득한 미소와는 다른, 몹시 날카로운 눈빛을 동반한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자네는 무림에서 황제 부러울 것 없는 권력을 휘두르던 강자가 아니던가. 비록 유례없는 재앙에 지금껏 닦아 온 기반을 잃었으나, 자네가 작정한다면 다시 의천맹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이네만.”

말인즉, 굳이 자신을 도울 필요가 있겠냐는 뜻이었다. 나아가 자신을 휘둘러 천하를 통치하고 싶은 것이 아니냐는 뜻이기도 했다.

담사영이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소인의 과거를 미화하지 않겠습니다. 그때는 저 역시 권력에 취해 천하가 제 것인 양 날뛰던 망아지에 불과했지요. 하지만 그것은 일개 무부의 그릇된 야심에 불과한 것, 무림의 천하제일인이라 한들 어찌 황궁의 주인과 비할 수 있겠나이까.”

“하면, 짐의 휘하에서 천하를 바로잡기 위한 선봉장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겠는가?”

아직 황위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당당하게 짐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주천양의 야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담사영이 웃으며 말했다.

“제국의 권위를 바로 세우는 데에 앞장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삼생의 영광일 것입니다. 소신(小臣),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 황궁의 위엄이 만천하로 퍼질 수 있도록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겠나이다.”

그제야 주천양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를 믿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말이 나와서 말인데, 마교의 종자들을 어찌해야 좋겠는가? 제국의 위엄을 상케 하고 민심을 뒤흔든 작자들이니 시간을 끌 일은 아닌 듯싶은데.”

담사영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그에 대한 밑 준비가 거의 끝나 가고 있사옵니다.”

* * *

화르르륵!

불꽃처럼 타오르는 기파가 사위를 휩쓸었다.

숲의 청량한 공기가 삽시간에 끈적끈적하게 바뀌었다. 마치 달도 비치지 않는 야밤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세상이 붉은 광기로 물드는 듯했다.

장한, 을지군의 표정이 뻣뻣해졌다.

‘강하다!’

그것도 그냥저냥 강한 수준이 아니었다. 일순간 터져 나온 기파가 시야에 잡히는 모든 곳을 폭풍처럼 휩쓸어 버리는데,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사지가 돌처럼 굳어 버릴 정도였다.

티이이잉!

을지군의 후방에 몸을 숨긴 궁수 중 하나가 시위를 놓쳤다. 목표 없이 튕겨 나간 화살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저격(狙擊)에 능한 궁수들에게는 안법(眼法)과 신법(身法), 부동심이 필수다. 특히나 완벽한 호흡 조절로 유지되는 부동심은 눈앞에 벼락이 떨어져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기로 유명했다.

그런 궁수 중 하나가 시위를 놓칠 만큼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 힘은 설마…….’

활활 불타오르는 안광. 끝 간 데 모르고 퍼져 나가는 기파.

그리고 천지를 뒤흔드는 위엄까지.

‘마교주!’

서량이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오들?”

적송이 쓰게 웃었다.

“괜찮지 않네.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으이.”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고집이 는다고 들었소. 노선배를 보니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얼마만의 조우이거늘 그리 독설을 날려야겠나?”

“그런 꼬락서니로 내 앞에 나타났으니, 주먹을 날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거요.”

“허허허.”

현천진인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인가?”

“그러게나 말이오.”

“미안하게 되었네. 자네 덕에 혈고의 지옥에서 빠져나왔거늘 다시 이런 꼬락서니가 되었구먼.”

“알면 됐소.”

처음 만났음에도 마치 오랜만에 본 사이처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눈다. 하물며 현천진인은 다 죽어 가는 상태가 아니던가.

“그나저나.”

서량이 천마도를 어깨에 걸쳤다.

을지군을 노려보는 그의 눈빛이 몹시 사나웠다.

“칠가의 눈을 피해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제법 한 실력들 하는 모양이구먼.”

“마교주인가?”

서량이 차갑게 웃었다.

“예전에 어떤 얼치기 놈의 기도와 제법 유사하군. 그놈이 아마 검궁 출신이었지?”

검궁의 부궁주.

극마로 향하는 길이 활짝 열리는 데에 도움을 주었던 적이었으며, 전생한 이후 일대일 대결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실감했던 난적.

을지군의 기도는 바로 그때 부궁주와 몹시 비슷했다. 그러면서도 이룬 경지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검궁주로군.”

그렇다. 을지군은 새외사궁 중 검궁의 주인이었다.

을지군의 눈빛도 사나워졌다.

“언제부터 마교주가 정무쌍신과 연을 맺었지? 천하가 놀라 자빠질 일이로군.”

“담사영과 송금백은 물론 너희 버러지 같은 놈들도 황궁과 손을 잡은 마당에 이게 뭐 별일이라고.”

“……!!”

“표정 일그러지는 걸 보니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차아아앙!

을지군의 좌수에 붉은 검이 들렸다. 흑사신검보다 더 굵고 기다란 장검, 홍련대검(紅蓮大劍)이었다.

“긴말할 필요 없겠지.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서량은 그저 웃어만 보였다.

을지군이 외쳤다.

“마교주를 죽여라!”

실로 위엄 넘치는 목소리였다. 후미에 은신하고 있는 궁수들에게 내리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조용했다.

을지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뭣들하고 있는 것이냐? 당장 마교주를……!”

툭! 데구루루.

을지군의 발밑으로 몇 개의 수급이 굴러왔다.

“헉!”

을지군은 깜짝 놀랐다. 그 수급의 정체는 바로 은신하고 있는 궁수들이었던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실력 좋은 궁수들이더군. 주인을 잘못 만나 개죽음을 당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뭐, 뭐라고?!”

서량의 압도적인 기파에 감각이 무뎌진 을지군은 알 턱이 없었다. 그가 데려온 궁수들이 호천마황단의 손에 몰살을 당했다는 걸.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개개인의 실력은 물론 부대로서 뛰어난 전력을 자랑하던 궁귀조(弓鬼組)가 소리도 못 지르고 죽어 나간 것이다.

서량이 천마도를 들어 올렸다.

“날 만난 순간 도망칠 생각부터 했어야지.”

“……!!”

“어차피 죽을 것, 편하게 뒈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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