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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67화 (466/774)

467화. 황궁풍운 (1)

쉬이이익!

내뻗는 검결이 몹시 사나웠다.

빠르고 격정적인 검결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흐트러지지 않는 검로(劍路)와 어디로든 뻗어 나갈 수 있는 자유가 느껴졌다.

굉장한 무공이었다. 위력의 문제가 아니라 검의(劍意)를 담아 내는 깨달음이 인상적이었다. 지극히 어려운 검법을 연성해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강한 자의식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그것을 따라 주지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호흡이 흐트러졌고, 호흡이 흐트러지자 검로에 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 번 생긴 빈틈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더 많은 빈틈을 만들어 냈다.

“허억! 허억!”

급격한 호흡 변화는 검경(劍勁)의 위력까지도 극단적으로 죽이고 있었다.

수련을 위한 검무(劍舞)라면 이 이상 휘두르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여인은 멈추지 않았다. 거친 호흡 이상으로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두 눈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푹!

저도 모르게 놓친 검이 땅에 꽂혔다.

“허어억!”

하얗다 못해 퍼렇게 질린 얼굴.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려 왔다다. 체내 공기가 너무 부족했고, 전신 신경이 한계까지 자극을 받았다. 무척이나 위험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후욱! 후욱!”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분명 호흡 기능을 상실했는데 그걸 순식간에 회복해 낸다. 퍼렇게 질렸던 얼굴에 혈색이 돌고,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흡!”

여인, 주서윤이 몸을 일으켰다.

우우우웅.

호흡이 돌아오자 전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과거 이천상의 허가로 새로이 익힌 마공, 나찰사기(羅刹死氣)였다.

그야말로 굉장한 기세였다. 도저히 그 나이대에서 보여 줄 수 있는 기파가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하는 힘, 이십 대 초반의 나이로 벌써 초절정의 영역을 넘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서윤은 자신의 경지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직 멀었어.”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경지에 오른 극강의 고수들을.

심지어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사형제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후계 싸움에서 승리하여 당대 신교의 교주가 되었다.

‘이 경지에 오른 지 벌써 일 년. 그런데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어. 재능과 노력 이전에,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거야.’

그간 신교에 오만 일이 다 터졌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잊었다. 애초에 그녀는 신교의 교주가 될 생각도 없었다.

그녀의 꿈은 그저 무사다운 무사가 되는 것뿐이었다. 온전히 무(武)라는 바다에 젖어 들어 사는 것, 그로 인해 한없이 높게 오르는 것이 삶의 이유요,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렇기에 죽음도 개의치 않았다. 가끔 종리영이 찾아와 누님은 불안하지 않냐고 묻곤 했지만, 그녀는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그 순간까지 강해지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숨에 미련이 없다. 교주가 된 셋째 오라비가 권력을 위해 자신을 숙청한다 해도 그녀는 아무런 불만이 없을 것이다.

그저 마지막 한순간까지 달려 나가면 그뿐이다. 이 젊은 나이에 죽는다 해도 자신의 무도(武道)는 그걸로 마무리된다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일 년이 지나도록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답답하지?”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주서윤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십여 장 떨어진 곳, 한 그루 커다란 나무 아래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서 있었다.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흩날렸지만 붉은 용포와 맑은 눈빛은 고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주서윤이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교주님을 뵈어요.”

서량은 평소처럼 그러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주서윤이 바뀌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미안하게 됐다. 영이 때도 그랬지만, 수련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어.”

“아니에요.”

주서윤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다.

이 무뚝뚝함은 마동필이나 고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으로서의 희로애락은 분명히 있지만, 선천적으로 감정의 동요가 남들보다 적은 듯했다.

“그나저나 그거, 나찰사기인가?”

“네.”

“상당하군. 익힌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그만한 경지라니, 노력을 많이 했겠어.”

“아직 부족하기 이를 데 없어요.”

“그 또한 분명한 사실이지.”

주서윤이 고개를 들어 서량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천상이야 애초에 규격 외의 존재이니 그렇다 쳐도, 그녀를 본 모두가 그 재능에 찬사를 보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오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분명하게 말해 주는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주서윤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자존심은 하찮은 것일 뿐, 자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마왕에게 제 경지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독하다고 해야 하나.’

종리영을 거경가로 보낸 이후, 곧바로 주서윤과 채여민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이 많아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찾아오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이 컸다. 혹시라도 불안에 떨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쏜살같이 달려왔더랬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주서윤의 두 눈은 시리도록 맑고 깊었다. 죽음의 공포, 상대를 향한 두려움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조금 전의 수련 말이다.”

“네?”

“호흡이 망가질 때까지 검을 놓지 않은 것.”

“아, 네.”

“한계를 돌파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느껴졌다. 너는 그것을 위해 그런 극한의 수련을 이어 온 것이지. 맞느냐?”

“맞습니다.”

“방법은 좋은데, 목적이 잘못되었군.”

주서윤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게…… 무슨……?”

“대저 무공이든 학문이든, 수련의 방법은 많다. 너처럼 육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방법도 있고, 참오하여 사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세상에 강해지는 방법은 셀 수도 없이 많아.”

서량이 턱으로 그녀의 손을 가리켰다.

그녀의 고운 손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만한 경지에 오르고서도 손바닥이 찢어지도록 수련을 거듭한 것이다. 지독하리만치 대단한 열정이었다.

“중요한 것은 목적이지.”

“……?”

“방금 네가 했던 단련은 무엇을 위한 단련이었느냐?”

주서윤은 즉각 대답했다.

“강해지기 위함입니다.”

참으로 그녀다운 대답이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다들 강해지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단련하는 거지. 하지만 넌 너무 멀리 갔어.”

“멀리……라니요?”

“목표가 세분화되지 않았잖아. 호흡이 무너져 육체가 죽음 직전까지 가는 그러한 훈련은 생사전(生死戰)을 목표로 한다.”

“……!”

“그 훈련이 지금의 네게 필요한 훈련이 맞느냐? 아니면 목적 없이 표류하는, 그저 무의 바다를 건너고 싶다는 몸부림에 불과할 뿐이냐?”

“저는…….”

“나찰사기는 왜 익혔는지 알고 있나? 너의 검법이 왜 그리 사나워졌는지는? 그 사나운 검법으로 뭘 할 거지? 나찰사기를 대성하고 나면 어떤 무공을 익힐지는 생각해 두었느냐?”

“저, 저는 그저…….”

“네가 무공을 익히는 이유가 무엇이냐? 강해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서량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너는 왜 그리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냐?”

주서윤은 답하지 못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옛날에는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이내 이유가 중요하지 않아졌기에 잊고 있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뗀 사람이 종종 기본 중의 기본인 천자문(千字文)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름의 학식을 갖춘 그에게도 기본에서 다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

“…….”

“너는 사서삼경을 다 떼었으면서도 줄곧 천자문을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왜 그것을 공부하는지는 모르고 있어. 강해지고 싶어서? 그걸로 끝내선 안 되지. 네가 공부하는, 단련하는 부분의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전에 말했지? 너는 세상을 너무 좁게 보고 있다고. 강함이라는 단어에 갇혀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빼앗고 있다고.”

“……!!”

“숲속에 갇힌 자는 숲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법. 생을 불태울 만한 꿈을 찾은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너는 정작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이유조차 모르고 있어. 그런 사람이 어찌 극의(極意)를 엿볼 수 있겠는가?”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검을 내려놔라.”

“네?!”

“네가 왜 그리 강함에 집착하는지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라는 말이다. 무시당하기 싫었든 그저 무공이 좋았든, 어떤 이유라도 상관없다. 너는 네가 그렇게 된 분명한 이유를 찾아야만 해.”

서량이 주서윤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수련은, 훗날 다시 검을 쥔 이후에도 그만두는 게 좋아. 극마에 이르지도 못한 몸으로 매번 신체의 산소 공급을 중단하는 수련을 반복하는 건 실로 엄청난 무리를 준다. 몸도 몸이지만, 특히 두뇌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는 수련이다.”

“…….”

“즉, 너는 네가 하는 수련의 목적은 물론이거니와 그 수련으로 인해 몸이 어떻게 망가질지에 대한 대비책도 고려해 보지 않았다는 뜻이지.”

주서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강함의 획득, 오로지 그것을 위해 달려온 인생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건드려 보지 않은 수련이 없었다.

그것은 고행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한데 그러한 고행이 다 의미가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주서윤은 검을 쥔 이후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서량의 말이 옳은가는 둘째였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정말 가슴에 사무치도록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말인즉, 그녀는 타인의 말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로 살아왔다는 뜻이었다. 그동안은 왜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의아할 정도였다.

‘자존심? 아니야. 나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옳다는 사실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주위에 휩쓸렸을 수도 있다. 천재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살다 보니, 자신이 진짜 천재라고 생각하며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여긴 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은 틀렸다는 것이다.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걸 넘어서 스스로의 생각을 완전히 바꿀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갑자기 사지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강한 자아(自我)로 유지되었던 무(武), 고행을 통해 쌓아 온 지금의 경지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주서윤은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생애 최초로 느껴 보는 크나큰 충격에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힘드냐?”

“……네.”

솔직한 답변이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 주서윤은 제대로 된 사고를 이어 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자격을 갖추었다. 거대한 철벽으로 스스로를 꽁꽁 에워싸고 있던 애벌레가, 비로소 한계를 절감하고 날개를 달기 위해 몸을 불리고 있는 것이다.

“힘들 때는 쉬는 게 좋지. 하지만 딱히 쉬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 같은데?”

주서윤이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서량이 손을 내밀었다.

“검은 나중에 휘두르고, 당분간은 나랑 놀까?”

“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많은데, 거기에 손 하나 보태겠냐는 말이야.”

주서윤은 서량의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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