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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68화 (467/774)

468화. 황궁풍운 (2)

“참으로 쉽지 않군.”

담사영은 나직이 탄식을 터트렸다.

“어쩐지 그놈과 엮이면 하나같이 바보가 되어 버리는 것 같으이. 내, 마교주나 마존이 나설 경우엔 즉시 퇴각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거늘.”

“아마 마교주가 젊어서 그런 것 같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당장 담사영도 의천맹이 날아가기 전까진 서량을 얕봤으니까.

대단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아직 극의에 닿지 못하는 자.

그 극의란 무공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강호인으로서, 무림인으로서의 경험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량은 달랐다. 그는 이립도 되지 않은 나이로, 절대적인 무공은 물론 자신이나 철혈성주 못지않은 술책까지 쓸 줄 알았다.

이제는 의문이 필요치 않다. 그놈이 어떻게 그런 절대자가 되었는지 따지는 건 시간 낭비다. 중요한 것은 그가 천하제일을 논해도 부족하지 않을 절대자라는 사실이다.

“을지군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았다?”

“그렇소.”

“뭔가를 알아내 보려는 것이로군.”

“쉽지는 않을 것이오. 을지군의 무공은 나에 비해도 큰 모자람이 없소. 특히나 검도(劍道)로 단련된 정신력은…….”

“그런 것, 의미 없네.”

“음?”

담사영의 눈이 깊어졌다.

“놈의 능력은 지금의 나도 추측하기가 힘들 정도일세. 언제나 그랬지. 이만큼이다, 생각하면 항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는 했어.”

“……!”

“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을지군에게서 정보를 알아낼 것이네. 고문이든, 사술이든. 그 정도 작정도 하지 않고 놈을 생포했을 리가 없어.”

“그, 그 말은……?”

“알아챘다고 생각해야 하네. 앞으로의 대계에서 황궁이 무슨 역할을 하게 될지를.”

능적반(陵笛返)은 마교주를 향한 담사영의 과한 걱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가 본 사람 중 담사영만큼 눈치가 빠르고 술책에 능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이해하려 들지는 않았다. 담사영은 정쟁(政爭)에 능한 만큼이나 상대를 보는 안목도 탁월했다. 그가 지금껏 상대를 잘못 봤다고 하니, 그만큼 상대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자신은 그저 이번 싸움에서 알맞은 역할을 하면 그만일 뿐이다. 그 이상의 일도, 이하의 일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담사영이 능적반을 보며 물었다.

“자네는 어땠나?”

“무슨?”

“들키지는 않았겠지?”

능적반이 신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약간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소. 하지만 싸움이 끝나고 모두가 자리를 비울 때까지 모습을 드러낸 적도, 은신을 푼 적도 없소. 그리고 그들이 대산(大山)으로 향하는 것까지 전부 확인한 후 움직였소.”

“음.”

“뒤따르는 이들이 있는지도 매번 확인했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런 낌새라도 있었으면 이곳으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오.”

담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다만 그 사람의 능력과 과거를 믿었다.

“십대고수라는 호칭을 도박으로 딴 것은 아닐 터, 명왕(冥王)이라 불린 자네의 능력을 믿네.”

명왕.

밝을 명(明) 자를 쓴 명왕이 아니라 명부(冥府)의 왕이라는 뜻의 명왕이다. 그의 무공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알 수 있는 별호였다.

“고생했네. 이만 가서 쉬게나.”

“알겠소.”

능적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바로 문을 나서지 않았다.

“담 맹주.”

“말씀하시게.”

“아직 그 마음에 변함은 없소?”

“무엇이 말인가?”

능적반의 눈이 깊어졌다.

“황궁과 함께 천하를 손에 넣은 이후를 말함이오.”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왜? 내가 고개를 꺾을까 무섭나?”

“그렇소.”

담사영은 이런 능적반의 솔직함을 높이 평가했다. 적어도 능적반은 자신이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때와 말을 하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거짓말도 싫어했다.

수하로 다루기에 쉽지 않았지만, 제때 먹이만 주면 배신은 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게. 내 비록 칠십이 넘었지만, 천룡의 술(術)로 족히 일 갑자는 더 살 수 있을 걸세.”

“알고 있소. 하지만 죽지 않는 것과 야심은 관계없소.”

“이보게, 명왕.”

담사영의 눈에서 짙은 욕망이 일었다.

“나는 말일세, 강호에 나서기 전부터 천하제패를 꿈꾸었던 사람이네.”

“…….”

“바꿔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일세.”

“당신이 부렸던 가장 강하고 은밀했던 칼이 부러진 후, 당신은 어딘지 모르게 정체되어 있었소. 그것을 부인하진 못할 거요.”

“부인하지 않네.”

물끄러미 담사영을 보던 능적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시간을 뺏어 미안하오. 다음 명령이 떨어질 때를 기대하고 있겠소.”

“들어가시게.”

능적반이 방을 나갔다.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개는 쉬이 길들일 수 있지만 늑대는 길들이기 어렵지. 참으로 늑대 같은 위인이로다.”

물론 상관은 없었다.

지금껏 수백 마리의 늑대들을 원하는 대로 부려 본 사람이 그였다. 그중 백미는 단연 천하진이었다.

살왕 천하진. 그놈은 늑대 중 가장 강하진 않았지만, 가장 반골 기질이 뚜렷한 놈이었다. 그런 놈도 감히 짖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 자신이다.

놈에 비하면 능적반을 다루는 건 식은 죽을 먹는 것보다도 쉬웠다. 적어도 혈고까지 필요치는 않았으니까.

‘혈고라.’

혈고라고 하니 생각이 났다.

의천맹이 날아가기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앞선 십여 년 전에 가장 독한 혈고에 중독시킨 자의 상태가.

“여봐라.”

“부르셨습니까.”

담사영이 싸늘하게 웃었다.

표정과 달리 그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폐하께 갈 것이다. 상 의원을 부르도록 하라.”

* * *

“포착했습니다.”

호요성의 눈이 빛났다.

“하북(河北)에서 초지급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놈은 하북에 있습니다.”

“하북이라…… 절강에서 놓쳤다고 했지?”

“절강에서 함선(艦船)을 타고 하북까지 간 모양입니다. 추적자들의 발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 분명합니다.”

“보통 빠른 놈이 아닌데? 게다가 동해(東海) 날씨가 썩 좋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리 빨리 간 거지?”

“일반 함선이 아닙니다. 공야치 소문주에게서 온 정보로는 강호나 새외에서 만든 것도 아니랍니다.”

“그럼?”

“황궁제 쾌속선입니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역시 그렇군. 짐작은 했지만 말이야.”

“아마 황궁에 직접 보고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럴 수밖에. 정보망을 통해 전달하면 속도는 빨라도 정보 탈취의 위험이 있어. 직접 보고하는 게 가장 안전하겠지. 다만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지만.”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다 해도 너무 빨라.’

을지군과의 싸움을 몰래 지켜본 자.

그자에게 신장부주 철무정을 붙였지만, 철무정도 쉬이 접근하질 못했다. 군사부의 비각과 연계하지 않았다면 광동을 벗어난 순간 놓쳤을 것이다.

화경에 근접한 초절정 고수의 신법과 안목을 벗어날 정도의 무공과 은신술.

‘십대고수인가.’

서량이 물었다.

“정체는?”

“아직 불명입니다. 하지만 공야치 소문주의 판단으로는 십대고수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담사영이 따로 키운 고수일 확률은 없고?”

“배제할 수 없습니다만, 그간 조사한 담사영 휘하 조직들을 보았을 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조심해야 해. 놈은 양파 같은 놈이야. 까도 까도 끝이 어딘 줄 몰라.”

“물론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량 역시 상대가 십대고수 중 하나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다른 게 아니었다. 기감으로 느낀 놈의 은신술과 기질은 새외의 것도, 사술도 아니었다. 가히 정통 중의 정통, 중원 무공의 명맥을 잇는 것이었다.

담사영은 남에게 알리지 않은 은밀한 칼, 살왕조차 중원에 풀어 두었던 자다. 직접 기른 것인지는 몰라도, 새외의 무인은 아닐 것이다.

‘뭐가 됐든, 지금 중요한 건 그만한 적이 또 존재한다는 것이지.’

천룡의 대사제들만 해도 대단한 전력이다.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중원 무공과는 다른 그들의 능력 때문에 그렇다. 그런 골치 아픈 전력 외에 십대고수급의 강자가 더 포함되었으니, 한층 더 조심스러워질 필요가 있었다.

“담사영, 송금백, 남궁 노선배를 제외한 십대고수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 둬.”

“이미 명령을 내렸습니다. 보름 안에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

“그런데…….”

호요성이 주서윤을 힐끔거렸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했다.

“일 좀 시켜 보려고.”

“아, 예.”

일을 시킬 만한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주서윤의 얼굴은 어딘지 창백했다. 몸이 아픈 것 같지는 않고, 뭔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눈동자도 흐리멍덩했다.

“위 령주는?”

“마왕령에 들일 인재들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좋아. 동필이는 소궁주한테 갔고?”

“그렇습니다.”

“아마 많이 힘든 상황일 거야. 사령단급 영약 하나 준비해 둬. 빙공(氷功)에 어울리는 놈으로다가.”

“알겠습니다.”

“원로원 출격 시기는?”

“조정 중입니다만, 위 령주의 인재 선발이 끝나면 그 즉시 투입할 생각입니다.”

“좋아. 부채꼴로 퍼트리는 것 잊지 말고.”

“물론입니다. 이미 원로원주에게도 말해 두었습니다. 북상하면서 어느 지역을 담당할지도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능동적이군. 진즉에 이런저런 곳에 써먹을걸.”

“위기가 곧 기회입니다. 내색은 안 하지만, 원주 역시 오랜만에 흥분했을 겁니다.”

“한 번씩 살살 긁어 줘야겠군.”

주서윤이 서량과 호요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몹시 바빠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얘기가 착착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세상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적어도 조금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오라버니는 대체…….’

보아하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게 분명했다. 아마 자신만큼 무공 연성에 힘을 쏟을 시간도 없을 것이다.

한데도 서량은 진즉에 극마에 올랐고, 자신은 일 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이었다.

주서윤의 눈이 깊어졌다.

타인에게 신경 쓰는 법이 없던 그녀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의 눈은 서량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고 있었다.

그때, 서량이 주서윤을 보았다.

“어때? 바쁘지?”

“네?”

“전략실 말이다.”

이곳은 마신궁의 전략실이 아니라 군사부의 전략실이었다. 이곳 전략실은 제이 전략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복잡했다.

수많은 사람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군사부 소속의 비각 요원들이었다.

“네, 엄청 바빠 보여요.”

“그래, 저 친구들이 본교에서 가장 바쁜 이들이지. 저들은 무공을 수련할 새도 없을 거다.”

딱 봐도 그래 보인다. 무공 수련은커녕 잠잘 시간도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강해.’

비각 요원들의 무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탄탄했다. 바쁘게 이곳저곳을 오가는 중에도 몸에 밴 보법과 신법에 눈이 팽팽 돌아갈 지경이었다.

적어도 경신술에서만큼은 주서윤보다도 뛰어난 그들이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러했다.

“따로 보고할 사항 있으면 연락해.”

“알겠습니다. 어? 근데 교주님은 어디 가시려고요?”

서량이 주서윤의 머리에 손을 턱 하니 올려 두었다.

주서윤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 딱딱하기 짝이 없는 녀석 사람 만들 겸, 대대적인 출격 전에 이런저런 준비도 할 겸 여기저기 둘러보려고.”

“저 빼고 노시면 안 됩니다.”

“나도 양심이 있는데, 이 사람아.”

“아, 예.”

“뭐야, 그 떨떠름한 대답은? 설마 날 능멸하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슬아슬해, 가끔?”

호요성은 후다닥 문서에 얼굴을 파묻었다.

서량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가자.”

“……어디로요?”

“전쟁 준비하러.”

“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하나만 말해 둘까?”

“네.”

“전쟁이 터지면 많은 사람이 죽을 거야. 승자가 누가 되든 말이지.”

“…….”

“승리가 진짜 승리로 남기 위해서는, 전후(戰後)의 복구가 누구보다도 빨라야 해. 나는 너와 영이, 여민이 등이 그런 젊은 세대의 주축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

“괜한 말을 했군. 자, 너 사람 만들 곳으로 가자.”

“어디로……?”

“곧 뒈질 늙은이들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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