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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70화 (469/774)

470화. 황궁풍운 (4)

“현재 위치는?”

“안휘와 호북 최남단에 주둔 중입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호남과 강서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기랄! 느닷없이 도발이야? 완전히 미쳤구먼!”

“일종의 진(陣)을 형성하여 남하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공격을 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군을 출병한 것 자체가 공격일세. 신교의 정보책도 저쪽을 주시하게 될 테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가 어려워졌어.”

“시야를 제한한다…… 고전적인 수법이로군요.”

“고전적인 수법을 지금까지도 쓰는 이유가 있지. 그만큼 효과적이라는 거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교에 연락은 취했나?”

“초지급으로 보냈습니다.”

“어쩌면 호 군사님은 이 사태를 이미 예견하셨을지도 몰라. 하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끼어들어야 해.”

“정보 교란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그리되면…… 담사영과 칠파를 주시하는 정보원 중 삼 할 이상을 빼내야만 합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별수 없지. 건너뛰세.”

“건너뛴다는 말씀은……?!”

“철왕팔세는 내버려 둔다. 교주님과 호 군사님께서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실 거야.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이 뒤에 병력 운영이 어떻게 될지를 알아보는 거야.”

“알겠습니다.”

“남부에 있는 정보원들을 최소만 남기고 모조리 북상시켜. 이제부터 전시 체제로 돌입한다.”

“명을 받듭니다!”

공야치가 이를 악물었다.

“……허를 찔렀군.”

* * *

“……으로 전선(戰線)을 깔아 두었다고 합니다.”

“그래?”

“속도가 유례없이 빠릅니다. 철갑기병(鐵甲騎兵)의 속도가 이 정도로 빠르긴 어렵습니다. 보는 눈도 많았을 텐데 현재 주둔지까지 이동할 동안 누구도 알지 못했다면, 이는 정보 교란 외, 그들만이 아는 길로 돌아왔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겠지.”

무담의 얼굴은 심각했다.

대호법은 신교의 방패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최선의 방어는 최고의 공격과도 상통하는 바였다. 때에 따라선 그 누구보다도 공격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는 집단이 호법원이었다.

“상대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제방을 쌓아 두고 이쪽 몰래 병력을 움직이겠다는 뜻이니, 선제(先制)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예, 교주님.”

시원하게 잔을 넘긴 서량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대호법.”

“하문하시옵소서, 교주님.”

“일 조장 이름이 이군성이라고 했나?”

“예? 아…… 예!”

이 다급한 순간에 뜬금없이 호법원 일 조장을 언급한다. 무담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드러났다.

“상당한 인재라고 들었는데.”

“무공은 아직 호법지장으로서 부족함이 있습니다만, 성품과 경험은 물론 상황 판단 능력까지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모자람이 없습니다.”

무담이 이렇게까지 평가할 정도면 정말 대단하긴 대단한 인재인 모양이었다.

서량이 웃으며 물었다.

“근래 일 조장의 무공을 봐주고 있다는 말은 들었네. 언제쯤 자네의 뒤를 물려받을 수 있겠나?”

듣기에 따라서 섭섭할 수도, 섬뜩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무담은 아무런 동요 없이 대답했다.

“이미 얻을 만한 깨달음은 전부 얻었다고 보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금세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벽(壁)이란 극마지경을 뜻함이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나랑 손잡고 저 멍청한 놈들 머리통을 두들기러 다녀야지? 그러려면 교육을 확실히 해 두도록 하게. 혹시라도 자네가 전사하면, 호법지장은 누가 맡겠나?”

무담의 눈이 흔들렸다.

“교주님……?!”

이번 역시 무담은 섭섭함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뜻밖의 제안에 놀랐을 뿐이었다.

함께 머리통을 두들긴다? 그 말은 이번 싸움에 전선으로 투입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마인으로서 바라 마지않는 일이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언제까지나 신교를 지켜 달라 말씀하신 것이 고작 칠, 팔 개월 전이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일 조장이 그리 쓸 만한 재인(才人)인 줄 몰랐지. 뭐,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

“자네도 한풀이는 해야 하지 않겠나?”

무담의 눈에 격동이 깃들었다.

“송구하옵니다, 교주님.”

저 무도한 놈들을 쓸어 버릴 수 있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교를 향한 충심은 죽어서 진토가 된다 한들 바뀌지 않겠지만, 선봉에서 적을 물리치는 상상을 항상 해 왔었다.

그 기회를 주겠다고 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일간 한번 같이 보도록 하지. 어서 가서 일 조장 훈련이나 제대로 시키게.”

“예!”

대답과 함께 벌떡 일어난 무담은 문득 자신이 교주님의 말에 휘둘렸음을 깨달았다. 지금 중요한 건 이군성의 무공을 봐주는 게 아니잖은가?!

“교주님. 하면 지금 상황은…….”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함세. 자네는 일 조장 가르치면서 칼이나 잘 갈아 두고 있게. 내가 나서고자 할 때, 함께 나서게 될 테니.”

“……명을 받듭니다.”

얼떨떨하지만 교주가 그러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무담은 공손히 인사하고 대전을 나섰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저렇게 좋을꼬.”

대전을 나서는 발걸음에 활력이 가득했다. 지금껏 무담이 저렇게 신나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태사의에 앉아 술을 홀짝이던 서량이 술병과 잔을 들고 일어났다.

“영 기분이 안 사는군. 저기서 마셔야지.”

창가로 와 작은 다탁 앞에 앉은 그가 다시 술을 따랐다.

“크, 좋다.”

창밖을 바라보는 서량의 얼굴에 미소가 그득했다.

철혈성의 철왕팔세가 움직였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는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심지어 놀라지도 않았다. 저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마왕령과 원로원을 출격시키려 하지 않았나. 제대로 허를 찔렸음에도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이 생각은 들었다.

“이제 시작이구먼.”

누가 시작을 끊었든, 이번 싸움이 끝나면 모든 게 다 정리될 것이다.

담사영 역시 그럴 각오를 하고 터트린 싸움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량도 마찬가지였다. 이 싸움이 길지 짧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중간하게 끝낼 생각은 없었다.

‘사부님.’

이천상의 얼굴이 떠올렸다.

어떠한 순간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강철의 교주.

문득 궁금했다. 이천상은 신화의 세계에 올라 이십 년 동안 정진한 끝에, 마도천하를 향한 욕망을 제외한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그랬기에 어떠한 일에도 놀라는 법이 없었다. 이후 서량을 만나 서서히 인간성을 회복했지만, 그래도 세상의 섭리를 꿰뚫어 보는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

한데 이천상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그러한 경지에 오르기 전의 이천상은 어땠을까? 과거의 그는 그래도 사람이지 않았나. 화를 내거나 슬퍼하기도 하고,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지 않았을까?

‘궁금합니다그려. 사부님이라면 지금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지.’

반선으로서의 이천상이 아닌, 반선지경에 오르기 전의 이천상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차가운 표정 속 불같은 살기를 드리우지 않았을까? 당장이라도 전군(全軍)을 소집하여 적도들을 격파하려 들지 않았을까?

‘분명 그러셨겠지.’

이천상의 전술에 후퇴는 없다.

막무가내라는 뜻이 아니었다. 후퇴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적과 부딪친다는 뜻이었다.

즉, 언제나 승리를 상정하고 움직인다. 설령 변수가 생겨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정 안 되면 자신이 나서면 되니까.

이천상은 그런 사람이었다. 절대무적의 힘을 갖고도 방심하지 않는 와중에, 극히 세밀한 전략 따위는 또 무시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그 모든 변수를 감당할 만큼의 능력과 자신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자신은 어떠한가.

“……사부님, 나는 말입니다.”

서량이 잔을 들었다.

“호쾌한 것도 좋지만, 뒤통수치는 걸 더 좋아합니다. 왜냐구요? 내 사람들이 쓸데없는 개죽음을 당하는 게 싫거든요.”

어디선가 이천상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그들의 죽음은 개죽음이 아니다. 그들의 신심(信心)을 그런 식으로 재어서는 안 돼. 그래서 교주는 겸허함을 알아야 하고, 동시에 냉혹해야 한다.

진정 이천상이 살아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이해는 합니다만, 그러고 싶지는 않군요.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도 이천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답다.

잠시 후, 대전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총군사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호요성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여전히 볼은 홀쭉했지만, 두 눈은 어느 때보다 형형했다.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검은색 전포(戰袍)를 걸쳤는데, 그 모습이 알 수 없는 위엄을 자아내고 있었다.

서량이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오셨나, 뒤통수 맞은 총군사님?”

위엄 넘치던 호요성의 분위기가 단숨에 흐물흐물해졌다.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교주님.”

“하하, 농담이야. 앞으로 잘 풀어 가면 되는 거지, 뭘.”

“그 말씀이 더 무섭습니다. 못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말씀으로 들려요.”

“잘 이해했구먼.”

호요성이 진저리를 쳤다. 가끔은 서량의 저런 말투가 감당이 안 될 때가 있었다.

“그나저나 혼자서 웬 술을 드십니까? 심란하십니까?”

“심란은 얼어 죽을. 오히려 속이 다 시원하구먼.”

“……어쩌면 저는 본교 역사상 가장 거친 교주님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끄럽고, 무슨 일이야?”

호요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북첨비각(北尖秘閣)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서량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북첨비각이라 함은 지난 반년 동안 북쪽에 자리 잡은 신교 분타 정보원의 팔 할을 쏟아부어 만든 임시 조직을 뜻함이었다. 그리고 북첨비각이 하는 일은 하나였다.

“뭐라던가?”

“저희 예상이 맞았습니다.”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쩐지, 황태자 놈이 미친년처럼 날뛴다 싶었지. 어떻게 참았을꼬? 그 지랄맞은 성격에.”

거침없는 욕설이었다.

호요성이 말을 이었다.

“‘그’는 황궁 별장에 머물고 있다 합니다. 신분이 신분인지라 경호는 철통같다고 합니다.”

“어디까지 접근해 봤대?”

“안까지 침투해 봤다고 합니다.”

“호오? 쉽지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그게 가능했다는 건?”

“예. 완전히 방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담사영 그 늙은이가 그렇지 뭐. 하지만 혹시 모르니 사람을 딸려서 보내기는 해야 할 거야?”

“예.”

서량이 잔을 채우며 말했다.

“지금 당장 남궁 노선배한테 전령 날려. 준비하시라고.”

“알겠습니다.”

“원로원은?”

“광동 북부로 나가 있습니다. 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위 령주 불러와.”

“예.”

호요성이 대전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위홍련이 들어왔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마왕령주 위홍련이 교주님을 뵙습니다.”

“애들 상태는 어때?”

“상태는 좋습니다.”

“여럿 죽겠군.”

“그럴 것 같습니다.”

“네가 잘 챙겨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쨌든, 준비는 끝났다 이거지?”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이제 가서…….”

퍼석!

서량이 쥔 잔이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황제(皇帝)를 내 앞에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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