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화. 황궁풍운 (6)
“준비들 됐냐?”
“……?!”
“낯짝들이 왜 그 모양이야? 밥 안 먹었어?”
그때, 곽상(郭祥)이 손을 들었다.
“뭐여, 부령주?”
“대주, 아니 령주님.”
“뭐냐고.”
“아잇, 진짜. 소리 좀 죽이고 말씀하시면 안 됩니까?”
위홍련이 코웃음을 터트렸다.
“일 치르기 전에 말 몇 마디 하겠다는데 소리를 왜 죽여야 되냐? 내가 벙어리여?”
곽상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위홍련의 배포를.
“황궁과 지척입니다.”
“그러니까 대기한 거 아냐. 깨끗해. 주변에 아무도 없어.”
“그건 알지만요.”
주변에 누가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문제는 이곳이 황궁 근처라는 것이다.
황궁.
비록 지금은 세(勢)가 죽었지만, 황궁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공포는 양민은 물론 정사마(正邪魔)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황궁은 단 한 번도 과거의 위엄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그쯤 되면 우습게 볼 만도 하지만, 세상에 황궁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치 각인처럼.
천마신교가 삼십 년 동안 중원에 진출하지 않았을 때도, 대(代)를 이은 공포가 본능의 영역에 각인된 것처럼.
천마신교의 자랑스러운 마인인 그들도 황궁이 주는 위압감 앞에 간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위압감이 마신궁에 비하겠느냐마는, 그래도 황궁은 황궁이었다. 게다가 마신궁에 거하는 교주님은 신심의 대상이지만, 황궁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껄끄럽고 찝찝했다.
“어이구, 저런 걸 부령주라고 데려다 놨으니.”
“제가 뭐 어때서요.”
“됐어, 인마. 하여간 사내놈이 되어서 심장은 콩알만 해요.”
곽상이 발끈했다.
“여기서 사내놈이란 소리가 왜 나옵니까?”
“그럼 년이야?”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위홍련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여간 꼭 초를 쳐요. 적당히 조심스러우면 신중한 거지만, 과하면 쫄보가 되는 거라고 내 누누이 말했지?”
“그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 덕분에 부령주가 된 거 아닙니까? 령주님 막 나갈 때 막아 달라고요.”
“눈깔을 팍 씨.”
“아, 진짜.”
의도한 건 아니지만, 령주와 부령주의 만담 같은 대화 덕에 마왕령의 분위기가 한결 편안해졌다.
그들은 위홍련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광마대주로서의 이력보다는 그 실력 덕에 그녀를 믿고 있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그들의 상관은 교주님과 총군사가 직접 인정한 사람이었다.
믿고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위홍련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우리, 회식 몇 번 한 게 전부지? 마왕령 이백 중에 절반은 총군사님이 뽑았고 절반은 내가 뽑았는데, 회식 몇 번 했다고 서로들 친해졌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갑작스레 분위기가 묵직해졌다.
급작스러운 변화였지만 마왕수(魔王手)들은 자연스레 그녀의 기도에 몸을 실었다.
위홍련의 두 눈이 이글거렸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선을 함께 넘은 사람 아니면 안 믿어. 그래서 너희 중 절반은 믿지 않는다.”
위험한 발언이었다.
적어도 한 조직의 수장이 작전 개시 직전에 할 말은 아니었다. 호요성이 뽑은 마왕수 백 명의 눈이 깊어졌다.
“그래서, 이번 작전을 우리에게 일임해 준 교주님께 감사드린다.”
위홍련이 미소를 지었다.
“이번 작전이 끝나면 내가 너희를 믿게 될 테니까.”
“……!”
“조직이 창설된 지 고작 한 달도 안 됐는데, 내가 내 수하들을 온전히 믿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 아니겠어?”
“…….”
“물론, 그만큼 이번 임무는 힘들 거야. 어쩌면 너희 중 몇몇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어. 그게 나일지도 모르지.”
마왕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위홍련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쨌든 너희 전부 실전 경험 풍부한 개막장 인생들 아니냐? 항상 죽음을 끼고 살았는데, 이번이라고 별다를 거 없잖아? 이 별다른 거 없는 임무 하나로 서로 간의 믿음이 확실하게 싹튼다면, 진짜 남는 장사지. 안 그래?”
“…….”
“나와 총군사님이 짠 작전은 별거 없어. 하지만 난 그래서 좋다고 생각해. 내가 맡았던 임무와 겪었던 실전 중, 작전이 복잡해서 성공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
마왕수들 역시 위홍련의 말에 공감했다.
열 명도 아니고 백 단위의 부대가 움직이는 일이다. 작전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부대 운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즉, 진짜 실전에 들어갔을 때는 최대한 간결한 작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간결함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복잡하지도 않은 작전, 잊은 놈들 없지?”
“예!”
“그래, 절대 잊지 마라. 중간중간 내가 내리는 명령을 무조건 따라. 단독 행동은 금물이고, 언제나 다섯이서 조를 짜서 움직여.”
“…….”
“쪽팔리게 첫 임무에 사상자 내지 말자.”
그것으로 위홍련의 말은 끝이었다.
딱히 전의(戰意)를 고취시키거나 감동을 주는 연설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홍련이 몸을 돌렸을 때, 마왕수들의 눈빛은 싸늘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작전 준비 완료다.
“노선배님.”
한옆에 앉은 노검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씀하시게.”
“슬슬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언제든지.”
“좋습니다.”
“그나저나, 자네 정말 대단하구먼.”
“뭐가요?”
“이런 게 바로 실전 전투 부대란 말이지? 죽음을 끼고 살아왔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라……. 참으로 든든하고도 서글픈 말이었네.”
“뭐, 남궁에도 이런 조직들이 있지 않습니까?”
“있긴 하네만, 자네들처럼 살벌하진 않아.”
“좋네요. 그래도 우리가 남궁 한 번 이겼네.”
“허허허.”
남궁언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 화통한 여아가 마음에 들었다. 괜히 검왕이랍시고 아부를 떨거나 필요 이상으로 딱딱하게 대하지도 않았으니까.
물론 성격 외적으로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또 하나 있었다.
‘대단한 검기(劍氣)로고.’
지금은 기척을 죽였지만, 본신의 기도를 개방했을 때의 위홍련은 한 자루 검을 방불케 했다.
어설프게 연마한 이가 아니었다. 좋은 스승에게 한계까지 단련된 검사 특유의 날 선 기도가 인상적이었다.
‘남궁에도 이만한 검객은 쉬이 찾기 어렵지. 서 교주, 자네는 참으로 복이 많네.’
강함이 아니라 검객으로서의 완성도를 뜻함이었다. 비록 지나치게 거칠어 쉬이 극마에 오르진 못할 것 같지만, 지금 그대로 정진한다면 훗날 또 다른 절대고수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긴, 그때까지 내가 살아나 있을지 모르겠구먼.’
덜컹.
위홍련이 문을 열었다.
어두운 밤. 환한 달빛 아래 거대한 성이 눈에 띄었다.
곳곳에 불을 켜 두었고, 사방에 수문위사를 배치했다. 이 먼 거리에서도 느껴질 만큼 그 크기가 실로 압도적이었다.
위홍련이 턱밑으로 내리고 있던 복면을 코에 걸쳤다.
처처척.
동시에 마왕수 전부가 복면을 썼다.
“마왕령 전원.”
스르륵.
위홍련의 몸에서 인기척이 사라졌다.
“은환마공(隱煥魔功) 개방.”
스르르륵.
이백 마왕수들의 인기척도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남궁언은 내심 깜짝 놀랐다.
‘이럴 수가?’
바로 옆에 있는 그조차도 이들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실로 대단한 은신술이었다. 듣기로는 벼락치기에 불과하고, 유지 시간도 일각이 채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게 어딘가?
은환마공은 바로 호천마황단이 익히는 두 개의 마공 중 하나였다. 비록 마왕령에게 전수된 건 전반부에 불과했고, 지속 가능 시간도 짧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화아아악!
한 줄기 바람이 이백의 귀신을 황궁의 서방대문(西方大門)으로 안내했다.
“음?”
수문위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흠, 기분 탓인가?’
그때였다.
피슉. 피슉. 피슉. 파라라락!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을 때, 수문위장의 목이 떨어졌다.
투두두두둑!
그를 시작으로 서방대문을 지키던 수문위사 삼십여 명의 목이 모조리 잘려 나갔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들은 제 죽음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남궁언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일세의 대협이요, 협객이었다. 그러나 작전 중에 적의 수문위를 처치하는 것을 불편해할 정도로 선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름 아닌 황제를 납치하는 일이다. 안타까움은 있을지언정 마왕령의 행동을 막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놀란 것은 마왕령의 움직임이었다.
‘어떻게?’
이백 귀신들은 서방대문을 타 넘기가 무섭게 엄청난 속도로 후원 별장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방에 불이 켜져 있는데도, 그리고 그만큼 많은 수의 무사들이 곳곳을 지키고 있음에도 아무도 마왕령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황궁은 넓다. 별장의 위치를 알고, 마왕령의 움직임이 기민하다 한들 은환마공을 오래 유지하기는 힘들 텐데.’
게다가.
‘고수가 있다.’
남궁언의 눈이 깊어졌다.
‘십대고수급 강자. 그것도 둘이나?’
놀라웠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다. 정확히는 십대고수로 추정되는 무인 하나와 십대고수를 떠올릴 만큼 대단한 기도를 자랑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담사영이 방심할 만도 하구나.’
수문위사들은 볼 것도 없이, 저 두 명의 절대고수만 배치해도 이곳은 난공불락의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누가 있어 이곳을 노리겠는가?
‘기(氣)가 느슨하게 풀어져 있도다. 저들 역시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군.’
저들은 남궁언의 기를 읽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남궁언은 작정하고 기를 숨기고 있었고, 저 두 명의 절대고수들은 과하리만치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 또한 그럴 만했다. 언감생심 누가 있어 황궁에 침입하려 들겠는가?
‘정말 서 교주가 보통 사람은 아니야.’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번쩍!
남궁언의 눈이 싸늘한 검광(劍光)을 품었다. 황궁 별장으로 향한 마왕령 중 하나의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공이 풀리고 있다.’
이백 명의 마인이 똑같이 배웠다고 해도 똑같은 성취를 이루진 못한다. 각자의 재능 차이도 있고, 노력도 있을 테니까.
다만 한 명의 인기척이 드러났으니, 곧 다른 마왕수들도 은환마공이 풀릴 것이다.
‘한데 왜 그렇게들 다 흩어져 있지? 나야 감당키 힘든 고수를 상대해 주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그때였다.
후우웅.
남궁언, 그리고 황궁 내에 거하고 있는 절대고수 둘.
그리고 별장 가까이서 대기하고 있던 백여 명의 절정고수들은 일순간 늘어난 인기척을 느꼈다.
“뭐냐?!”
“벼, 별장?”
남궁언이 몸을 일으켰다.
‘내가 나서야 하는가?!’
콰아아아앙!!
“헉!”
남궁언은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황궁 동방대문 방향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단순한 화탄이 아니었다. 무림 금용암기라는 벽력탄(霹靂彈)을 서너 개 응축시켜 놓은 듯한 폭발이었다.
그리고 그 폭발은,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콰콰쾅! 콰쾅!
동서남북은 물론이요, 황궁 내 가장 높은 첨탑 다섯 개가 밑동부터 터져 나갔다.
“으아아아악!”
“피, 피해라!”
콰아앙!
첨탑이 무너지며 온갖 건물들을 박살 냈다.
그 피해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제아무리 위력이 강한 화탄을 썼다 해도, 통째로 무너지거나 반파된 건물들이 너무 많았다.
남궁언은 깨달았다. 저들이 어떤 곳에서 화탄을 터트렸는지.
‘건물의 각도, 풍향, 고수가 밀집한 곳 등을 모조리 계산해서 화탄을 배치했구나!’
세상에, 신생 조직이라면서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의문은 의문일 뿐이었다. 그의 귀로 위홍련의 전음이 들려왔다.
[노선배님! 북서쪽 이연소문으로요!]
파아아아악!
이제는 기를 감출 것도 없었다. 창궁무애신공(蒼穹無涯神功)을 있는 힘껏 개방한 그가 위홍련이 말한 곳으로 단숨에 날아갔다.
어느새 그의 눈에 파도처럼 궁 밖으로 뛰쳐나가는 마왕수가 보였다.
‘……!?’
대체 언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두 발에 화염의 풍륜(風輪)을 일으키며 나타난 절대고수가 마왕수를 향해 단창을 휘둘렀다.
후욱!
남궁언의 몸이 번개가 되어 짓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