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화. 황궁풍운 (8)
“현재 상황은?”
“수로의 쾌속선을 탈취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일전 검궁주와의 대결을 지켜보았던 자가 탔던 그 쾌속선입니다. 산동의 하구(河口)에 수백 척이 정박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 삼십 척을 탈취했으니, 넉넉하게 타고 올 수 있을 겁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소림 휘하의 문파들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거 도와준 건 고맙긴 한데, 그러다가 소림도 뒤집힐 텐데.”
“본인들이 직접 나서서 돕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우리야 고맙죠.”
“그렇긴 하다만.”
서량이 턱을 쓰다듬었다.
“방장까지 나섰으려나?”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북첨비각의 본부까지만 가면 끝나는 문제라서요.”
“절대고수가 끼어 있을 확률도 있잖나.”
“만약 그 정도 고수가 끼어 있으면 위 령주가 잘 조절했겠지요. 게다가 남궁 노선배도 함께하고 있으니, 계획에 큰 차질은 없을 겁니다.”
“이번 작전은 속도가 생명이야. 신중함이 과했다가는 작전을 개시조차 못 하겠지.”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바로 그 부분을 위 령주가 잘 조절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혈왕보의에 진천벽력탄(震天霹靂彈)까지 쥐여 주지 않았습니까. 어지간하면 돌파할 겁니다.”
“그러겠지.”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호요성도 알고 있겠지만, 세상에 완벽한 작전 따위는 없다. 오히려 최대한 간략화한 전술을 경험 많은 부대장에게 맡기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
아마 마왕령은 잘 해낼 것이다. 혹여 생각지도 못한 고수들이 진을 치고 있다 해도, 소림이 알아서 잘 받쳐 줄 것이다.
다만.
“이번 작전은 위 령주가 아니면 시킬 사람이 없었어. 실제로 믿을 만한 인재기도 했지. 다만 녀석에게 불안 요소가 있어서 말이야.”
“도주 부분, 그리고 정(情)입니다.”
“정확해. 그간 위 령주가 맡았던 작전 보고서를 보면, 위 령주의 작전 수행 능력은 탁월하기 짝이 없어. 하지만 한 번씩 황당한 실수를 할 때가 있더군. 바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야.”
“긴장을 과하게 푸는 감이 있긴 합니다.”
“그래. 신신당부는 했다만, 사람 버릇이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지. 뭐, 그거야 어떻게든 될 거라 믿고는 있다만…….”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녀석은 정이 너무 많아.”
물론 정이야 서량도 많다. 하지만 그에겐 위홍련이 갖추지 못한 것이 있었다.
지고의 무공, 순발력, 상황 분석 능력이었다.
위홍련은 그 세 가지가 서량에 비해 다소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자기 사람은 서량 이상으로 챙겼다.
좋은 상관이지만, 작전 중에는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이다.
호요성이 빙긋 웃었다.
“그렇게 불안해하시면서 왜 위 령주를 보내셨습니까?”
“불안한 건 아냐. 그냥 녀석에게 그런 단점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지. 그리고 말했잖아? 녀석이 아니면 마땅히 보낼 사람도 없었어.”
정확히는, 위홍련만큼 믿을 만한 부대장이 없었다. 그리고 위홍련에게는 위에 열거한 단점을 덮을 정도의 큰 장점이 있었다.
그녀보다 강한 사람은 많다. 그녀만큼 순발력이 뛰어난 사람도, 그녀 이상으로 부대를 잘 지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녀만큼 믿음직한 부대장은 없었다. 다른 사람을 보내면 불안하겠지만, 그녀를 보내면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군신지간을 떠난 문제였다.
“공야치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장강 이북 상황을 더 상세하게 조사한 후에 연락을 준다고 합니다.”
“녀석도 조심해야 할 텐데. 담사영이라면 언제고 반드시 하오문을 치려 할 거야.”
“그렇겠지요. 다만 제가 아는 공야치 소문주는 같은 적에게 두 번 당할 사람은 아닙니다. 필시 대비를 다 마쳐 놓았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다만.”
호요성이 피식 웃었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그 불충한 미소는?”
“불충하다니요?!”
“어디 교주 앞에서 그런 코웃음을.”
“쩝, 그냥요. 교주님도 참 힘드시겠다 싶어서 말입니다.”
“힘들다니? 뭐가?”
호요성이 저도 모르게 다시 미소를 지었다.
“중요한 일에는 언제나 발 벗고 나서시는 분이, 지금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 뒀음에도 전전긍긍하고 계시잖습니까?”
“어? 어…… 그런가?”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이처럼 중요하고 위험한 임무를 타인에게 맡긴 것은 처음이지 싶었다. 당장 반년 전, 강서상회를 잡아먹을 때도 직접 강서성까지 뛰어가지 않았는가.
‘그렇군.’
서량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좀 실감이 가는 것 같아.’
수장의 책임감이야 질리도록 많이 느껴 봤다. 이래서 이렇구나, 저래서 저렇구나, 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하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번 작전을 통해서 또 하나 배우는 게 있었다.
‘나를 대입하면 안 돼.’
위홍련이 자신보다 약한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임기응변이나 전투의 흐름 파악, 상황 분석 능력이 자신보다 떨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천마니까. 게다가 삼공자의 몸으로 전생하기 전에는 살왕으로서 수십 년 동안 중원을 활보했던 죽음의 사자였다.
위홍련은 무엇 하나 자신보다 잘하는 게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험한 게 다르고 이룬 게 다르며, 천하를 보는 눈 자체가 다르니까.
하지만 그런 위홍련에게, 너는 왜 나처럼 못하냐고 말해서는 안 된다.
“총군사.”
“예, 교주님.”
“동필이한테는 연락 안 왔나?”
“아! 그러고 보니 말씀을 안 드렸군요. 저도 이제 깜빡깜빡하나 봅니다.”
호요성이 품에서 서신을 꺼내 들었다.
“이제 막 절강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빠르군. 그 녀석, 간만에 중원에 나갔다고 신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마 호위 성격 아시잖아요?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서 상황을 보고 싶었겠지요.”
“거경가주(巨鯨家主)는?”
호요성이 싱긋 웃었다.
“주산군도(舟山群島)에 도착했습니다.”
“좋아, 다들 각자 위치에 잘 흩어졌군.”
서량의 눈이 빛났다.
“배송만 제때 들어오면 되겠구먼.”
* * *
“다 타! 빨리!”
파라라락!
정박한 쾌속선에 오른 마왕령.
그러나 추적자는 여전히 있었다. 황궁을 호위하고 있던 절정고수들, 바로 금의천룡위(錦衣天龍衛)였다.
“개새끼들! 치사하게 화살을 날려?!”
진천벽력탄으로 황궁을 초토화시킨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티이이이잉!
수십 개의 화살이 쾌속선을 향해 날아왔다.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여느 궁병(弓兵)이 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쳐 내!”
티티티티팅! 퍼억!
“큭!”
“야! 너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화살이 우측 흉부를 관통했는데, 딱 폐장이 있는 곳을 뚫었다. 목소리에 공기 빠지는 소리가 섞인 이유가 그것이었다.
여느 관통상이 다 그렇지만, 특히나 저 부위는 내공으로 회복할 수 없는 부위였다. 위홍련이 이를 악물었다.
“어서 출발해!”
촤아아아악!
바다를 가르고 나아가는 쾌속선들.
그러나 금의천룡위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정박한 쾌속선은 황궁의 것이었다.
파라라락.
서른 채의 쾌속선 뒤로 이십여 채의 쾌속선이 따라붙었다.
여기까지 따라붙은 금의천룡위의 숫자는 마왕령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완숙에 이른 절정고수들이라 전력 자체가 매우 강했다.
‘황제를 보호해야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피피피피핑!
또다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도대체 화살을 몇 통이나 들고 다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위홍련이 버럭 외쳤다.
“막아라!”
파파파파팡! 쩌정!
수십 개의 화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마왕수들의 방어를 비집고 들어온 화살이 꼭 한두 대씩은 있었다. 그리고 그 한두 대의 화살에 맞은 마왕령들은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주르륵.
위홍련이 입술을 깨물었다.
가장 선두의 쾌속선을 탄 그녀였다. 화살은 그녀에게까진 닿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함께 탄 노인, 기절한 황제의 몸을 돌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빌어먹을!”
마음 같아서는 단박에 신법을 펼쳐 호포검으로 화살을 모조리 쳐 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임무는 후미를 차단하는 게 아니었다. 그 역할은 수하들의 몫이었다.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펄럭!
혈왕보의를 벗기자 안색이 파리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쩍 마른 팔다리가 앙상한 나뭇지를 연상케 했다. 머리는 거의 다 벗어졌고, 듬성듬성한 수염도 만지면 퍼석 부서질 것만 같았다. 해풍(海風)을 이기지 못해 덜덜 떠는 몸이 너무나도 연약했다.
딱 봐도 상세가 좋지 않았다. 위홍련은 품에서 황금빛 단약을 꺼내 들었다.
툭.
노인의 입을 억지로 벌린 그녀가 단약을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이라지만, 그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목젖을 툭 치는 손길이 몹시 거칠었다.
꾸르륵.
단약이 노인의 목으로 알아서 넘어갔다.
위홍련이 함께 탄 곽상에게 말했다.
“난 이 시간부로 이 망할 노친네의 몸 상태를 끌어 올릴 거야. 어떻게든 버텨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발놈아! 지금 걱정 안 하게 생겼어!”
부령주, 곽상이 씨익 웃었다.
“정 안 되면 진천벽력탄 하나 쓰죠.”
위홍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그거 하나 남았어?”
“예.”
“미친 새끼야! 그럼 진즉에 썼어야지! 애들 다치는 거 안 보여?!”
“안 되죠, 지금은.”
“뭐?!”
곽상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이런 물건은 최후에 최후까지 남겨 둬야 합니다. 저희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임무를 성공리에 마치는 거 아닙니까?”
“새끼야! 저 개 같은 놈들만 다 수장시키면 끝나는……!”
“확신하십니까?”
위홍련은 순간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곽상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왜 령주님이 부르자마자 바로 들어왔는지 아십니까? 그래도 령주님은 아랫사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그랬어요.”
“……지랄.”
“다만 전에도 이러다가 임무 몇 개 말아먹을 뻔하셨잖아요? 이번에도 그러면 안 되죠. 교주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인데.”
“니 똥 굵다, 이 망할 놈아.”
“됐으니까 어서 이 존귀하신 분 몸이나 돌봐 주세요. 우리 중에 령주님만큼 섬세한 내력 운용이 가능한 사람은 없어요.”
위홍련이 고개를 돌렸다.
“조금만 버티자.”
“예!”
그렇게 마왕령을 태운 쾌속선이 바다를 건넜다.
쾌속선의 속도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속도도 속도지만, 힘이 무척 좋아서 어지간한 물살은 죄다 가르고 지나갈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상대 측 쾌속선도 마찬가지였다. 화살을 다 쓴 금의천룡위는 진기를 담아 활시위를 당기기까지 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들 역시 사람인지라 지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활의 위력이 떨어졌다.
반면 마왕령은 그들보다 숫자가 두 배 이상 많았다. 간간이 후미를 교체하고 체력을 보전하니, 이틀이 지나고서부터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공격은 없어졌지만, 살기 넘치는 공격보다도 무서운 것이 점차 마왕령을 엄습했다.
바로 허기와 갈증이었다.
“조금만…….”
위홍련의 얼굴은 홀쭉했다. 물을 마시지 못해 입술도 쩍쩍 갈라졌다.
쾌속선에 구비된 수통은, 무림인의 경우 스무날은 거뜬히 버틸 만한 양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함께 탄 황제였다.
황제에게는 많은 물과 식량이 필요했다. 최소한의 목숨줄을 붙여 두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오직 황제 하나 때문에 마왕령 전체가 허기와 갈증에 시달렸다.
“조금만 참자, 우리.”
그렇게 다시 하루가 지났다.
마왕령을 태운 쾌속선이 절강으로 진입했을 무렵.
쏴아아아아!
“뭐, 뭐야?”
저 멀리서 수십 척의 배들이 다가왔다.
위홍련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장강수로채? 이 개새끼들이, 장강에서나 놀 것이지 바다까진 뭣 하러 나왔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마왕수 중 온전한 체력을 지닌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저놈들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위홍련은 곽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결연한 빛이 어렸다.
“……제 말 듣기 잘했죠?”
“그러게.”
“령주님은 어떻게든 그 노친네를 잘 붙들고 가셔야 합니다. 아셨죠?”
“당연히…… 그래야지.”
곽상이 품에서 진천벽력탄을 꺼내 들었다.
“제기랄, 이거 한 발로 어떻게든 시간을 벌었으면 좋겠는데…….”
그때였다.
두우우우우우웅!!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다란 울림의 북소리.
깜짝 놀란 마왕령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피이이이이이이잉!!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진 거함(巨艦)에서, 한 자루 거대한 장창이 허공을 갈랐다.
그 장창은 단숨에 마왕령이 탄 쾌속선을 지나, 가장 가까이 따라붙은 수로채 배에 박혔다.
콰직! 콰아아앙!
창에 맞은 배가 일순 폭발을 일으켰다.
“뭐, 뭐여?!”
“뭐긴 뭐야.”
위홍련의 표정이 밝아졌다.
거함의 선두에서 또 다른 창을 들고 있는 자는 덩치가 무척 좋은 중년 사내였다.
“살았다, 시벌. 고래 아저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