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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76화 (475/774)

476화. 천하의 소유자 (1)

“마왕령이 칠가 연합군과 접선했습니다! 사흘 뒤면 본산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서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군.”

“예, 성공입니다.”

강서까지 진입한 이상, 임무는 완전히 성공했다고 봐도 좋다. 강서에는 칠가와 마존들이 버티고 있다. 애초에 천마신교의 영역권인 만큼 철혈성이라도 감히 치고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이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수고했네, 총군사.”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다 현장 마인들 덕이지요.”

겸양일 뿐이었다. 알맞은 전력 배치는 물론, 시기적절하게 정보를 통제하지 않았다면 이 작전은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군사와 현장 마인들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결과.

이제 남은 것은 황제를 어떻게 다루느냐만 남았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는 말자고.”

“예, 이미 신장부에서 열 명을 파견했습니다.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역시 우두머리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보이. 이거야 원, 위장이 다 뒤집힐 것 같아.”

“하하.”

잔뜩 긴장했다는 속내를 이제야 토로한다. 호요성은 서량의 인간적인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남은 일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들어가셔서 눈 좀 붙이시지요.”

마왕령이 출교한 이래, 한 번도 대전을 비운 적 없던 서량이었다. 아무리 극마의 고수라도 체력이 바닥났을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임무는 성공했지만,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몰라. 계속 주시하고 있어야 해.”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건 저희 일이지요.”

“아, 그런가?”

“예. 그러니 이만 들어가셔서 쉬십시오.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으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서량이 목덜미를 주물렀다.

“그러지.”

정말이지 교주직도 못 해 먹을 짓이었다. 하지만 익숙해져야만 한다. 작전을 보낼 때마다 항상 이리 긴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한숨을 쉬며 거처로 향하던 서량은, 문득 드는 생각에 마신궁을 나섰다.

서량이 당도한 곳은 혈혼각이었다.

“읏차! 어떠냐? 한 방 먹었지?”

“……한 수만 무를게요.”

“일수불퇴(一手不退)라고 들어 봤느냐?”

“아뇨.”

“이제라도 알거라. 한 번 둔 곳은 다시 무르기 없기란다.”

“…….”

“허헛, 대마불사(大馬不死)라 하지 않더냐. 고민해 보거라.”

주서윤은 핏발 선 눈으로 바둑판을 노려보았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옆에서 벼락이 쳐도 모를 것 같았다.

창가에서 안을 들여다보던 서량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평화롭구먼.’

요 며칠 동안 신교는 비상사태나 다름이 없었다. 천하의 황제를 납치해 오는 일이니 당연했다.

한데 이곳은 그런 급박함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였다.

현천진인이 창가를 힐끔거렸다.

서량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현천진인은 말없이 턱으로 후원 쪽을 가리켰다. 자신은 나가지 않을 테니, 그곳으로 가 보라는 뜻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서량이 후원으로 향했다.

우우웅.

후원 정자에는 적송이 있었다.

가부좌를 튼 적송의 몸에서는 은은한 금광이 일렁였다.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불기(佛氣)가 묻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魔)를 따르는 천마신교 내에서 항마불기(降魔佛氣)가 치솟는 광경은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서량은 나무 옆에 기대 한참이나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오셨는가.”

“왔소.”

적송이 무안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네. 운기에 집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기운을 흘렸어.”

“괜찮소. 어차피 다들 아는데, 뭐.”

“허허허.”

항마불기는 그 자체로 마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후원에서 홀로 내공을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량이 정자 위로 올라서며 물었다.

“그게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이오?”

“그렇다네.”

“굉장하군. 신공(神功)에는 한계가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소.”

“읽었나?”

“빤히 보고 있는데 못 읽을 건 뭐요?”

적송은 감탄을 터트렸다.

“자네는 실로 대단하네. 천마신교의 주인이면서 정종 무공에 대한 이해도 또한 남다르군.”

서량이 피식 웃었다.

“만류귀종이라 하지 않소? 이것저것 들여다보니, 결국 신공이나 마공이나 거기서 거깁디다.”

“허허.”

두 사람이 정자에서 마주 앉았다.

서량이 적송의 안색을 살폈다. 생각보다 안색이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당장 생명에 지장이 갈 만큼 생명력을 소진한 자의 얼굴이 저리 좋은 것도 문제라는 걸.

‘회광반조(回光返照).’

생명이 다하기 직전의 불꽃이야말로 가장 밝은 법이다. 지금 적송의 상태가 그러했다.

다만 그 과정이 다른 사람보다 현저하게 길 뿐이었다. 그만큼 그가 이룬 경지가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소이다.”

“그러게나 말일세.”

곧 죽을 사람에게 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례다.

그러나 서량의 언사는 거침이 없었고, 적송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받았다.

적송은 이미 생사(生死) 앞에서 초탈해진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말도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자네는 괜찮은가?”

“안 괜찮을 건 또 뭐요?”

“눈이 퀭하구먼. 자네 정도의 사람이 그런 얼굴이 되기도 쉽지 않지.”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마음고생이 심했소이다.”

“음?”

“한 단체의 수장이라는 것도 참 못 해 먹을 짓이더이다.”

서량은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적송의 눈이 깊어졌다.

“해서, 성공했는가?”

“사흘 뒤면 도착할 거요.”

“……허허.”

천하의 황제를 납치했단다. 대체 이런 배포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적송이 눈을 감았다.

황제를 납치했다는 사실에 불문 최고의 고수라는 적송도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황궁과의 대립은 생각해 봤을지언정, 납치라는 과격한 방법을 쓸 성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량은 적송에게 굳이 혜심의 파문을 알리지 않았다. 괜스레 혼란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구먼.”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군.”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는고. 굳이 황제 때문이 아닐세. 세상을 바로잡겠다, 정의를 세우겠다, 등의 명분은 있을지라도 그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환란은 결국 백성의 삶에 큰 피해를 줄 수밖에 없네.”

“…….”

“그저, 천하를 이런 난세로 치닫게 만든 우리 모두의 부덕함에 한숨이 나올 뿐이야.”

서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송이 한숨을 쉬었다.

“해서, 교주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신가?”

“그 전에, 내가 왜 황제를 납치할 생각을 했는지부터 설명해야겠소.”

“음?”

서량은 현재 황제의 상태를 설명했다. 황태자가 어찌 그리 날뛸 수 있었는지, 담사영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적송이 탄식을 뱉었다.

“그랬구먼.”

“그렇소.”

“허허, 참으로 힘들구먼. 담사영, 그자는 어찌하여 그리 참담한 죄를 자꾸만 저지르는지.”

천하의 적송도 치가 떨리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꼬박꼬박 담 맹주라 부르던 사람이, 지금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서량이 담담하게 말했다.

“같은 부류로 얽히고 싶진 않지만, 무림인 중 사람 죽이길 예삿일로 여기는 놈들이 지천이오. 당장 나만 해도 목적을 위해 적의 부대 하나 날려 버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개백정이외다.”

“나는 결과만으로 사람을 같은 부류로 엮고 싶지 않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적군을 죽이는 자와, 천하를 망가트릴 야욕을 위해 세상을 기만하고 속이는 자는 전혀 다르다네.”

“불법을 따르는 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소.”

“허허.”

적송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지고한 무공을 연성했음에도 평생 누군가에게 살수를 써 본 적이 없는 고결한 무인이었다.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쥐고도, 선악(善惡)을 판단하는 데 있어 신중함을 잊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는 무림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난세가, 소림이라는 단체가 그를 무림으로 끌어들였을 뿐 그는 속세의 다툼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면, 교주께서는 이제 어쩌실 생각이신가?”

“무엇을 말이오?”

“황제를 소생시킨 뒤, 그를 어떻게 할 생각이냔 말일세.”

“도구로 쓸 생각이오.”

“도구?”

“그렇소.”

서량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황태자는 담사영과 손을 잡았소. 담사영이 아무리 간이 커도 단독으로 황제를 중독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오. 물론 주도는 했겠지만.”

“그렇겠지.”

“하지만 난 황궁의 권력 다툼에는 관심이 없소.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천하요. 난 천하를 위해서 그 권력 다툼이라는 놈까지 이용해 볼 생각이외다.”

“천하라…….”

적송이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현천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시대가 그를 선택했다면, 그 운명의 흐름에 모른 척 쓸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 아니겠는가.

눈을 뜬 적송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소?”

“……자네.”

“말씀하시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겠나?”

서량의 눈에서 이채가 발해졌다.

적송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에게도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을 걸세.”

“그리 말하니 겁이 다 나는군.”

“그래서, 들어주지 않을 텐가?”

“들어 보고 판단하겠소.”

“손해는 안 보고 살겠구먼.”

“천마신교의 교주 노릇을 하려면 손해 안 보고 살아도 힘드오.”

적송이 빙긋 웃었다.

“신교에도 본사의 장경각과 같은 장소가 있을 것일세. 자네들이 말하길, 마경각이라고 했던가?”

“그렇소만?”

“나와 함께 그곳에 들어가 주게.”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경각은 신교의 모든 무공과 경전을 모아 둔 장소였다. 그 중요성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나마 홀로 보내 달라 하지 않은 게 다행일까? 아마 본인도 무리한 부탁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이유는?”

“가서 말해 주겠네.”

가만히 적송을 바라보던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십시다.”

“으응?”

적송이 눈을 끔뻑였다.

“지, 지금?”

서량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언제 가자고? 살날도 얼마 안 남은 양반이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허허허!”

“갑시다.”

“그러세.”

* * *

마경각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고수들이 지키고 있었다.

서량은 그들을 모두 물렸다. 적송이 자신에게 따로 할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서량은 장경각 입구를 보며 생각했다.

‘신기할 정도로 닮았어.’

과거 언제인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소림의 장경각과 신교의 마경각이 판에 찍은 것처럼 몹시 닮아 있다고.

‘아마 천마벽력권을 가져왔던 때였던 것 같군.’

살왕이었을 적, 그는 소림의 장경각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각내 깊숙한 곳까지 가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소림의 대표 절학인 칠십이절예(七十二絶藝) 같은 것은 구경도 못 해 봤다.

다만 그 구조가 어떠한지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살수지왕이라 불린 그는 어떤 곳을 가도 그곳의 환경을 병적으로 외우고 다녔다.

“과연, 예상대로군.”

“음?”

입구를 넘어 안쪽으로 걸어가던 적송이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본사의 장경각과 닮았네. 아니, 닮은 부분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똑같다고 해도 무방하군.”

서량의 눈이 빛났다.

적송은 마경각 구석구석을 거닐었다. 비록 구조는 같았지만, 그 크기에 있어서는 장경각보다 훨씬 넓었다.

헤아릴 수 없는 무공 서적과 경전들이 즐비한 마경각.

한참이나 내부를 둘러보던 적송이 한쪽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슬슬 체력의 한계를 느낀 것이다.

“말코와 함께 신교로 오며 이런 생각을 했네. 추격대에 잡혀 죽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살아남아 우리를 받아 준다면 이 부분에 대해 꼭 얘기해야겠다고.”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이오?”

적송이 투명한 눈으로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어찌나 맑고 깊은지 서량은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자신을 느꼈다.

“알려 줌세. 초대천마(初代天魔)가 군림마황기(君臨魔皇氣)를 어찌 만들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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