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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77화 (476/774)

477화. 천하의 소유자 (2)

군림마황기.

마도 역사상 최강의 마공임과 동시에 명실공히 천하제일마공으로 추앙받는 천마지학(天魔之學).

천 년이 넘도록 헤아릴 수 없는 마공들이 나타났지만, 그중 단 하나도 군림마황기의 위상에 미치지 못했다. 그에 근접한 유일한 마공이 바로 구유마공이었지만, 구유마공조차 군림마황기의 방대함은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불패의 역사는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완전(完全)의 영역에 접근한 무도(武道)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것은 본사의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도 마찬가지라네.”

“……!”

“소림에는 무수히 많은 신공이 있다네. 대승범천(大乘梵天), 반야(般若), 금강여래(金剛如來)의 신공들이 대표적이지. 그러나 온전한 칠십이절예(七十二絶藝)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신공은 무상대능력 하나뿐일세.”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적송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군림마황기에는 칠십이신기(七十二神技)라는 것이 있지.”

“그렇소.”

생각해 보면 신기한 우연이다.

군림마황기의 칠십이신기는 마도 무림을 대표하는 최강의 무공들이다. 그중 하나만 익혀도 천하의 고수 소리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것은 무상대능력 역시 마찬가지다.

무상대능력은 소림 방장이나 그 대(代)의 가장 특출난 자가 아니면 쉬이 전수하지 않는 극상승의 신공이었다. 나아가 소림에도 칠십이절예가 있어 천하 무림에 명성을 떨쳤다.

일흔두 가지의 절대무공.

그리고 그 일흔두 가지의 무공을 아우르는 극상승의 내공심결.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

“본사의 장경각과 이곳, 마경각의 구조는 판박이일세. 본사는 불법을 따르는 사찰이고, 자네들은 부처의 수행을 마지막까지 방해했다는 악신(惡神) 마라(魔羅)를 섬기는 이들일세. 마라, 천마 파순은 불법의 수행을 방해하는 욕망을 형상화한 존재지.”

“우연이 아니다?”

“우연일 리가 없지. 절대로.”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결국 노선배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뭐요? 본교와 소림은 깊은 연관이 있다는 뜻이오?”

“그렇다네.”

“…….”

“기실, 추적대에게 쫓길 때 생각했네. 여기서 죽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살 수 있다면 이 비사(秘事) 아닌 비사를 꼭 전해 줄 것이라고.”

적송이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알 수 없는 아련함을 품고 있었다. 마치 까마득한 세월을 산 노인이 젊은이에게 과거의 지혜를 전수하듯, 평온하고도 그윽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초대천마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도 알지 못하네. 그가 중원인인지, 새외의 사람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지. 혹은 서역에서 온 이방인이나 동이족 출신인지도 몰라. 천축국(天竺國)에서 건너온 사람이란 말도 있었지만, 그 역시 확인된 바는 아니라네.”

“…….”

“다만 하나는 확실하네. 초대천마는 불법과 연이 깊은 자였어.”

“불법…….”

“그렇다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대천마는 스스로를 마라의 화신(化神)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라는 적송의 말마따나 부처의 수행을 마지막까지 방해한 악신이며, 욕망을 형상화한 존재다.

당연히 불가와 연이 깊을 수밖에 없다.

서량이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설마 초대천마가 소림의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소림의 인물이라……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

덤덤한 목소리로 깜짝 놀랄 말을 하는 그였다.

“내가 말했지? 초대천마는 불가와 연이 있었다고.”

“그랬소.”

“그럴 수밖에 없네. 초대천마는 소림의 조사(祖師)와 친분이 깊었다고 하였으니까.”

순간 서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대천마가 달마와 친분이 있었다고?”

적송이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이 많네. 사람들은 이렇게 알고 있네. 달마조사께서 역근경과 세수경을 만들어 소림 무공의 근간을 닦은 일대종사라고.”

“그게 아니란 말이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네.”

“뜬구름 잡는 소리는 사양이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닐세. 본사는 대대로 소림의 조종에 대해 의문을 품어 왔네. 다들 달마대사를 조사로 알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전혀 다른 인물이 소림 무공을 창시했다고도 말하네.”

“그래서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오?”

“그렇다네. 심지어 이런 발언을 하는 자도 있었네.”

“무슨 발언 말이오?”

적송이 맑은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초대천마와 달마대사가 동일 인물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제기하는 자가 있었지.”

“……?!”

실로 위험천만한 발언이었다.

천마는 악과 욕망의 상징이었다. 그런 존재를 소림을 세운 조사와 동일시하다니, 파문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적송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할 일 없는 놈들이지. 우리의 조사가 달마인지, 불법에 능통한 이름 모를 승려인지가 대체 무슨 상관인가?”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우리는 불법을 따르는, 특별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머리 깎은 벽창호일 뿐이네. 그런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일세. 해탈에 이르러 만인을 빛으로 인도하는 것이지.”

“…….”

“조사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네. 다만 불법의 가르침이 옳다면, 그저 옳은 길을 걸을 뿐이지.”

상관이 있다. 적어도 서량은 그렇게 생각했다.

종교의 창시자는 언제나 특별한 인물로 전해진다. 그가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존재로 세상에 남았는지는 실로 중요하다.

그러나 적송은 그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파격도 그런 파격이 없군. 땡중들이 노선배의 말을 들으면 노발대발할 것이오.”

“왜 그럴 거라 생각하나?”

“땡중들은 부처를 모시는 이들 아니오?”

“허허, 그럴 리가? 우리는 부처를 모시는 이들이 아닐세. 오히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하는 이들이지. 자네도 알 텐데?”

서량은 입을 다물었다.

물론 알고 있었다. 그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기에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승려에게 부처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아니, 불교라는 종교 자체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교의 조종인 부처는 무엇인가?

다른 이들보다 먼저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든 선배일 뿐이다. 그가 이룬 업적이 위대하고, 그가 세상에 남긴 깨달음이 고결하여 그를 선망하는 것일 뿐, 누구도 석가모니가 될 수는 없다.

“초대천마는 소림의 조사, 일단은 달마조사라 부르겠네. 그는 달마조사와 만난 적이 있다네.”

“시기상 그럴 수가 있소?”

“그건 모르네. 다만 그와 같은 신인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라면 이백 년은 너끈히 살 수 있다고 하더군. 하긴, 이제 와서 천마신교와 소림의 역사가 정확히 천 년 전인지, 그 이상인지도 모르는 판국 아닌가.”

“…….”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만났다는 사실이지.”

“그럴 수가 있나…….”

“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나?”

“한 사람은 마도의 조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소림의 조사요. 만나자마자 죽이려 들었을 것 같은데.”

“허허, 하지만 자네와 나 역시 서로에게 칼을 겨눈 적이 없지 않은가?”

서량의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도 들은 것에 불과하네. 스승님의 말을 빌자면, 두 사람은 은근히 죽이 잘 맞았던 모양일세. 아주 잠깐이었지만 활발한 교류를 했다고도 전해지지.”

“즉, 노선배의 말은 이것이오?”

서량이 눈을 빛냈다.

“소림의 장경각과 본교 마경각의 구조가 닮은 것. 칠십이절예와 칠십이신기가 존재하는 것은 두 조사(祖師)가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네.”

“자칫, 군림마황기를 달마대사가 만들었다고도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군.”

“그리고, 무상대능력을 초대천마가 만들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지.”

“…….”

적송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대화가 너무 길었던 모양이다. 호흡이 점차 가빠지고 있었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른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든,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세. 내가 말하고자 한 건 군림마황기와 무상대능력이 일맥(一脈)일 수도 있다는 얘기야.”

“그럴 리는 없소.”

“어찌 그리 생각하나?”

서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소림의 무상대능력은 항마불기(降魔佛氣)의 극치외다. 반면 군림마황기는 역천마기(逆天魔氣)의 극치지. 극과 극은 통한다지만 애초에 서 있는 곳도, 추구하는 것도 다르오.”

“그럴 수밖에. 무공은 고정된 게 아니야. 군림마황기도, 무상대능력도 수백 년을 거쳐 완성되어 왔네. 초기, 원형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걸세.”

이 역시 옳은 말이었다.

“물론 난 초대천마가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그가 광기에 휩쓸려 벌인 혈사(血事)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어. 그 기록의 절반만 사실이어도 초대천마는 악마나 다를 바 없는 위인이었네.”

“…….”

“그러나, 소림과 신교의 시작점이 같았을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네.”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엄청난 얘기를 들어 버린 것 같군.”

“기실, 그리 엄청난 얘기도 아닐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와 같은 사정이야 숱하게 있을 걸세. 권력을 잡기 위해 형제 간에도 칼부림을 벌이는 세상이거늘”

“그렇군.”

서량이 눈을 빛냈다.

“그걸 왜 지금 얘기해 주는 것이오?”

적송이 고개를 저었다.

“우문(愚問)일세. 우리가 만났을 때는 이런 살가운 얘기를 할 상황이 아니었잖은가. 게다가 난 곧 죽을 몸이네. 지금에서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얘기해 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네.”

“…….”

“그리고 난, 이곳에 도착해 자네와 얘기를 나누며 비로소 확신했네. 군림마황기와 무상대능력은 일맥(一脈)이라고.”

그간 서량은 시간이 날 때마다 혈혼각에 들러 두 사람의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다.

천하 정세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무론(武論)에 관한 얘기도 많았다. 해서 서량은 두 절대고수의 무리(武理)를 많이 흡수했고, 적송과 현천 역시 마도무공의 화신이라는 서량이 전해 주는 파격을 접할 수 있었다.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적송은 확신했던 것이다. 두 무공의 시작이 같았다는 것을.

다만 한쪽은 세상을 교화시키는 불광(佛光)으로 화했고, 다른 한쪽은 천하 최강의 힘을 추구하는 쪽으로 발전했을 뿐이었다.

“뭐, 나름대로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이군.”

“그럴 수도 있지.”

적송이 빙긋 웃었다.

“하나 자네의 표정을 보니, 그리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닌 것 같네.”

서량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재미있는 얘기이긴 했지만, 내게는 그저 꽤 흥미로운 얘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내게 중요한 것은 현실과 미래요. 과거에 무슨 인연으로 얽혔든, 당장의 미래를 평온하게 만드는 것보다 중요할 순 없소.”

적송이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현천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 시대가 그를 선택했다면, 그 운명의 흐름에 모른 척 쓸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 아니겠는가.

새삼 현천진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네 말이 맞네. 징그럽게도 오래 살았지, 우리는.’

적송이 눈을 떴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는 서량을 보며, 적송은 마음을 굳혔다.

“군림마황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 주겠다고 했지?”

“이미 다 말했잖소?”

“아니지. 나는 그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만 얘기해 주었을 뿐이네.”

“음…… 그것도 그렇군.”

적송이 손을 들어 서량에게 뻗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그의 손은 서량의 가슴에 닿았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서량조차 뿌리칠 수 없었다.

“무상대능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며칠 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네. 그래서 군림마황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유추할 수 있었지.”

“……?!”

“군림마황기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졌다네.”

우우우웅!

적송의 손에서 황금빛 서광이 일었다.

고죽림의 비처.

번쩍!

금호의 눈이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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