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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78화 (477/774)

478화. 천하의 소유자 (3)

“거기! 흔들리지 않게 조심해!”

“맥은?”

“미약합니다! 다행히 회생단(回生丹)의 약력과 강인한 진기로 보호받고 있습니다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할 겁니다!”

“혈고로군. 혈고가 생명력을 빨아먹고 있어.”

“준비는 다 끝났는가? 자칫 개흉(開胸)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들었네만.”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일단은 원기(元氣)를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곡기를 끊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분 섭취는 잘 되어 있습니다.”

“바쁘게 되었군. 어서 움직여!”

혈혼각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지금껏 수도 없이 많은 환자를 받아 온 혈혼각이지만, 오늘 온 손님은 그야말로 특급 중의 특급이었다. 심지어 교주의 엄명이 떨어진 만큼,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허, 내 황제 폐하를 직접 보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거늘.”

멀리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던 현천진인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도 처음 보지?”

“네.”

주서윤의 얼굴에도 은근한 흥미가 드러났다.

현천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비로소 감정을 드러내게 된 주서윤의 모습이 기꺼웠던 것이다.

“날이 덥구나.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네.”

주서윤이 현천진인을 부축했다.

현천진인은 이제 거동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전신에 충만하던 내공으로 손상된 원정지기를 대신하고 있었지만, 한 번 깨진 원정지기는 여간해선 다시 복구하기 힘들다.

그렇게 주서윤의 부축을 받아 후원으로 온 현천진인이 정자 아래에 자리한 적송을 바라보았다.

적송은 눈을 반개한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안색이 무척이나 좋았다.

가만히 적송을 보던 현천진인이 주서윤에게 말했다.

“시원한 물이나 한 동이 받아다 주련?”

“아, 네.”

주서윤이 서둘러 뛰어갔다.

그런 주서윤의 뒷모습을 보는 현천진인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

비록 마인이었지만 주서윤의 변화는 빨랐다. 아니, 오히려 마인이라서 더 빨랐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감정을 드러낼 줄 알게 된 주서윤은 조금은 소심하면서도 착한 아이였다. 교주이자 사형인 서량이 두 노고수에게 가르침을 받으라고 데려다주었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노고수들을 챙겨 주었다.

말년에 이르러 참 괜찮은 아이를 봐서 좋았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감정에 깨달음도 얹어 주었으니, 본인 노력에 따라 근시일 내에 굉장한 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현천진인이 적송 옆에 앉았다.

털썩!

“어이쿠! 이제 부축 없이는 제대로 앉지도 못하겠구먼! 허허, 천하의 검신(劍神)이라 불렸던 내가 이런 꼴이 될 줄이야 뉘라서 알았을꼬.”

들으란 듯 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지만, 적송은 미동도 없었다.

현천진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늘 참 맑기도 하다. 산 밑에는 욕망에 물든 사람들 천지이건만, 저 하늘은 오늘도 구름 한 점이 없구먼. 사람들 마음이 다 저 하늘 같았으면 오죽 좋겠누.”

적송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현천진인이 혀를 찼다.

“벌써 가려는 건 아니지? 조금만 더 놀다 가세. 이제야 좀 재미있어지는 것 같구먼.”

그제야 적송이 반개한 눈을 떴다.

“천하의 말코 같으니. 친구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지.”

현천진인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 사람아. 어딜 먼저 가려고 그러는가?”

“갈 때가 이미 한참 지났는데, 언제 가든 무슨 상관인가?”

“불가에서는 속세를 사바세계라 한다지? 하나 이 사바세계에서도 즐거운 일들이 많구먼. 이왕 갈 거면, 마지막까지 즐길 거 다 즐기고 가게나.”

“도사 놈이 할 말인가?”

“파문 당한 지가 언젠데 도사는.”

“훌륭한 말코로다.”

두 사람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전, 적송은 열반에 들기 직전이었다. 만일 현천진인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그 자세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현천진인이 입맛을 다셨다.

“생각보다 빨리 갈 뻔했구먼.”

“그러게나 말일세.”

“속세에 미련은 없나?”

“바다만큼 깊지. 깨달음이고 자시고, 백 년 동안 살아왔음에도 하루하루가 새롭지 않은가. 볼 수 있으면 더 보고, 먹을 게 있으면 더 먹고 가는 것도 좋지.”

“자네도 땡중일세.”

“아네.”

“허허허!”

한참 동안 웃음을 터트리던 두 사람.

이내 웃음을 멈춘 현천진인이 입을 열었다.

“사흘 전, 자네의 몸에서 타오르던 금광(金光)이 옅어졌음을 느꼈네.”

적송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그게 보이던가?”

“이거 왜 이래? 나 현천일세. 다 죽어 가고 있지만 신안(神眼)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이걸세.”

“눈만 좋구먼.”

“교주에게 전했나?”

적송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천진인이 한숨을 쉬었다.

“위험할 수도 있네.”

“알고 있네.”

“그 금광기(金光氣)는 자네가 얻은 깨달음의 총화일세. 만일 교주가 그것을 이용해 군림마황기의 성취를 올린다면…….”

“이미 오를 대로 오른 경지일세. 깊어지는 것 말고는 더 할 것도 없어 뵈더구먼.”

“그 정도던가?”

“괜히 천년마도 역사상 최고라 불리는 괴물이겠나? 조금만 더 깊어진다면 우리가 엿봤던 무경(武境)에 이를 수 있겠더군. 다만 그 이상으로 날아오르려면 고생깨나 할 게야.”

“그 이상이라…… 그럴 수밖에. 신화(神化)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영역일 테니까.”

적송이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서 교주는 나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네. 그것으로 군림마황기의 성취를 강제로 올린다고 해 봤자, 끝이 좋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어.”

“끝이 좋지 않다…….”

현천진인의 눈이 흐려졌다.

“초대천마처럼 말인가?”

“초대천마처럼 될 수 있지.”

적송이 피식 웃었다.

“이왕 전해 준 것, 믿어 보시게나.”

“그래야지. 그래야만 하겠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현천진인의 눈에, 저 멀리서 조심스레 걸어오는 주서윤이 보였다.

현천진인의 눈에 따뜻한 빛이 어렸다.

“이보게, 땡중.”

“말씀하시게.”

“이런 생각을 해 본다네. 어쩌면 지난 세월 우리가 천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날뛰었던 게 다 헛것이지 않았나 싶어.”

“헛것은 아니지.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람도 많으니까.”

“저 아이의 웃음을 보게.”

적송이 주서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친 그의 얼굴에도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

“우리는 더 잘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 단순히 목숨을 살리는 것 말고, 저처럼 환한 미소를 짓게 해 줄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

“과거는 바꿀 수 없다지만, 참으로 아쉽네. 한 사람의 미소를 책임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더더욱 아쉬워.”

“그래, 그렇구먼.”

적송이 눈을 감았다.

따스한 미소는 그대로였다.

“새로운 시대에는, 저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일세.”

* * *

“후우.”

나직이 숨을 몰아쉬는 위홍련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홀딱 벗은 상의, 가슴에만 붕대를 돌돌 맨 그녀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단련된 근육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처가 그녀의 인상을 한층 더 강인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직 멀었다.’

손에 쥔 호포검이 피로 물들었다. 호구가 찢어져 피가 흐른 것이다.

‘이 정도로는 안 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번에 더더욱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약해.’

스스로를 분명하게 약하다고 인식한다.

물론 그녀는 약하지 않았다. 그 연배에 그만한 경지라면, 천하 어디에서나 대접받을 만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들의 시선, 남들의 기준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강해야 내 새끼들이 산다.’

황제를 납치해 오며 무수히 많은 수하를 잃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손발을 맞춰 본 적도 없는 이들이 반이지 않았나. 각자 온갖 사선을 넘나든 이들이었기에 그나마 칠십밖에 잃지 않은 것이다.

첫 작전, 그것도 난이도 최상의 작전에서 칠십을 잃은 것은 큰 흠이 아니다. 조직의 눈으로 보면 분명 그러했다.

그러나 위홍련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했다.

한 명이 죽든 칠십이 죽든, 가슴이 찢어지는 건 똑같다. 다만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던 수하 중 다시 못 보게 된 놈들이 일흔 명이나 된다는 것이 원통할 뿐이었다.

앞으로 더 잘해 나가면 된다. 더 많은 작전, 더 많은 경험으로 손발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부터가 완성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해!’

우우우우웅!

호포검에 격렬한 마기가 깃들었다.

상당한 내외상은 물론 체력이 극도로 고갈된 와중에도 이런 수련을 강행한다. 이건 수련이 아니라 몸을 망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참을 수 없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기에는 죽은 수하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퍼퍼퍼펑! 콰직!

허공을 터트리며 휘둘러지는 호포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사나운 기세를 뿜어냈다.

‘내가 강해져야 한다.’

부아아아앙!

‘모두를 지킬 수 있도록 나부터!’

콰앙!

위홍련의 눈이 흔들렸다.

“……으으, 무지막지하군요.”

스릉.

위홍련이 재빨리 검을 회수했다.

어느새 그녀 앞에는 아름다운 청년 한 명이 서 있었다. 피부는 물론 머리카락까지 새하얀, 얼핏 보면 여인이라 착각할 정도로 아리따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당신은?”

“한참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부득불 이렇게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여강휘가 혀를 내둘렀다.

“엄청난 검력(劍力)이네요. 천강수(天罡手)를 십 성까지 끌어올렸는데도 상처가 났어요.”

그의 주먹에는 일자형 검상이 새겨져 있었다.

물론 빙백신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면 이런 상처가 날 리 만무했다. 그 말은, 빙궁의 후계자가 전력을 다해야만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위홍련의 검이 날카롭다는 뜻이었다.

위홍련이 고개를 숙였다.

“소궁주를 뵙습니다.”

“아, 예.”

여강휘가 머리를 긁적였다.

몇 번 본 사이기에 위홍련의 성격은 얼추 알고 있었다. 한데 평소와는 달리 무척이나 깍듯하지 않은가.

괜히 이질감을 느끼는 것 같아 미안했다.

“한데 여긴 어떻게?”

“아! 교주님께서 전달 좀 해 달라고 말씀하셔서요.”

“교주님이요?”

신교 소속도 아닌 사람에게 전언을?

여강휘가 웃으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아무래도 다음 작전은 저랑 같이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위홍련의 눈이 번뜩였다.

두 눈에서 무자비한 검기가 쏟아지는 듯했다. 여강휘는 괜스레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여자도 괴물이군. 세상엔 참 괴물이 많아.’

위홍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빙궁과 관련된?”

“정확히는, 빙궁과 함께 중원에 나갈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가시지요.”

“가다니, 어딜 말입니까?”

여강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인사나 하자고 온 건 아닙니다. 중원으로 나가야 하지만, 아직 시일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바로 그 부분을 이제부터 논의해야 합니다.”

“그럼?”

“예. 전략실 호출입니다. 같이 가시죠.”

위홍련의 눈에 마기가 스쳤다.

또 다른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 * *

“으음.”

“어? 오셨습니까?”

괜히 주변에서 서성이던 여자아이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총군사님.”

“어이쿠! 그런 인사는 감당키 어렵습니다!”

“아니에요. 총군사님이신데요.”

“하하!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럴 순 없어요. 저는 아무런 직책도 갖지 않은 말단 나부랭이인걸요.”

“…….”

“…….”

“……누가 그럽니까?”

“소당이요.”

“당장 목을 잘라 버려야 할 사람이로군요.”

“아니, 소당이 직접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에요. 혼자 중얼거리는 걸 들었는데…… 그냥 제가 생각하기에도 맞는 것 같아서요.”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호요성이 환하게 웃었다.

“자, 들어오십시오, 칠공녀님.”

“네에.”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