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79화 (478/774)

479화. 천하의 소유자 (4)

“엇? 왔니?”

채여민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

우우우웅.

채여민의 몸이 그 자세 그대로 두둥실 떠올랐다.

채여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량이 혀를 찼다.

“오라비한테 너무 정 없게 대하지 마라.”

“네?”

“내가 교주긴 한데, 사석에서까지 그럴 필요 없다는 얘기다. 그냥 예전처럼 하면 돼.”

“…….”

“진짠데.”

“진짜요?”

“그래, 진짜다.”

채여민의 얼굴이 환해졌다.

“네!”

격식을 차리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예전처럼 서량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게 기쁜 모양이었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아직…….’

키나 외양이 그때 그대로다. 거의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마공의 성취는 달랐다.

‘벌써?’

십대마공 중 하나, 칠요대마신공(七曜大魔神功)이 벌써 오 성(五成)의 경지에 달했다.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성취였다. 채여민의 나이는 이제 열넷에 불과했다. 그 나이에 신교십대마공을 오 성이나 깨달았다는 것은 천하가 놀랄 일이었다.

“여민아.”

“네, 오라버니.”

얘는 빨라서 좋아.

“맥 좀 살펴볼까?”

“네!”

채여민이 당차게 손을 내밀었다. 서량을 오랜만에 봤는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채여민의 맥을 짚은 서량은, 그제야 그녀의 육신이 성장하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참나, 마공의 성취가 너무 빨라서 신체가 성장하지 못한 사례는 또 처음 보는구먼?’

칠요대마신공은 음공(陰功) 계열의 무공이었다. 한데 그 성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서 신체의 성장까지 억제해 버린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이럴 일이 없다. 이 정도 무공이라면 봐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적당한 때에 물꼬를 틔워 줄 테니까.

그러나 채여민은 지금껏 홀로 무공을 연마했다.

이천상이 살아 있었다면, 그녀의 성장이 멈춘 것을 보곤 적절하게 그 부분을 뚫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홀로 연마하다 보니, 중요한 부분에선 끊임없이 수련만 반복한 것이다.

‘기가 차는군.’

서량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홀로 수련에 열중했을 채여민을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나이도 어린 아이가 하루하루 무슨 심경으로 보냈을지를 생각하니, 서둘러 보러 오지 않은 게 미안했다.

‘일을 맡길 때가 아니군.’

신교에도 어린 무사들을 키우는 교육 기관이 있다.

서량은 채여민이 그곳에서 성장하기를 바랐다. 아무리 신교가 살벌한 곳이라곤 하나,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생활 방식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곳에서 제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 밝게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서량의 생각이었다.

한데 지금 채여민의 상태를 보니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음…… 당분간 시간 날 때마다 나랑 수련 좀 해야겠다.”

“저, 저요?”

“응. 어? 그렇게 볼 필요는 없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여민이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기초 좀 잡아 주려는 거야.”

채여민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요!”

“착하다.”

그때, 호요성이 말했다.

“교주님. 마왕령주와 소궁주가 왔습니다.”

“어어, 잠시만.”

서량이 채여민을 안아 올렸다.

‘음.’

생각해 보니 당장 얘를 맡길 곳이 없잖아?

구대마존은 전부 중원으로 나갔고, 무담에게 맡기면 채여민이 무서워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호요성에게 맡기자니 같이 할 일이 태산이었고, 신장부에 맡기려니 죄다 싸움꾼들뿐이다.

‘아잇, 시발.’

채여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랜만에 안겼는데도 자세가 무척 자연스럽다.

참 본받고 싶은 성격이었다.

“왜 그러세요, 오라버니?”

“어, 아니야. 너 그…….”

그때, 대전 밖에서 소리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환희원주가 교주님을 뵙습니다.”

그렇지!

“어, 어여 들어와.”

대전 문이 열리고 소연심이 들어왔다.

“교주님. 하반기 예산 문서를…….”

“그거 주고, 여민이 좀 받아.”

“네?!”

서량이 소연심 품에 그대로 채여민을 안겼다.

소연심은 얼떨결에 채여민을 안아 들었다. 재미있게도, 채여민은 익숙하게 소연심의 목을 끌어안았다.

“여민이 알지?”

“네? 아, 네!”

“당분간 여민이랑 좀 놀아 줄 수 있나? 내가 지금 일이 많아서 말이야. 간간이 여민이 호출할 테니까 신경 좀 써 줘.”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거부할까.

소연심은 당황이 묻어 나오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며, 명을 받듭니다.”

“어, 이만 가 봐. 바쁠 텐데.”

바쁜 걸 알면서도 애를 맡기는 심보는 또 뭐란 말인가.

소연심은 저도 모르게 채여민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칠공녀님을 보긴 처음이다. 이렇게 보니, 참 예쁘긴 예쁘다.

“그,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어, 수고! 그리고 위 령주랑 강휘는 들어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대전으로 들어온 위홍련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군……!”

“됐어, 인마! 얼른 전략실로 가자!”

뭐가 그렇게 바쁜지 서량은 연신 사람들을 재촉했다.

그렇게 서량의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서량은 조금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잠잘 시간도 줄여 가면서 돌아가는 정황과 미래를 대비했다.

극마의 고수라도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은 신경 쓸 게 많아지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머리가 복잡해지면 휴식이 절실해진다.

그러나 서량에게는 버젓이 휴식을 취할 시간이 없었다.

열흘.

무려 열흘 동안 그는 두 시진도 채 자지 않았다. 걸핏하면 날을 샜고, 정 쉬고 싶으면 잠을 청했다.

그것도 쪽잠에 불과했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꼭 수면을 취해 주었다.

한 번은 호요성이 물었다.

“근래 들어서 업무량이 너무 과하신 거 아닙니까? 저보다 일을 더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서량의 답변은 걸작이었다.

“앞으로 몇 달 놀려고 미리 해치우는 중이야.”

정말로 그럴까 봐 호요성은 공포에 떨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고, 다시 하루가 지난 날 정오.

서량은 그간 호요성과 머리를 싸매고 만든 계책, 천하일통지계(天下一統之計)의 구상을 정확히 칠 할 완성시켰다.

* * *

우우우우웅.

태사의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서량은, 가슴팍에서 피어오르는 황금빛 기운에 눈을 떴다.

그가 자신의 심와(心窩)를 내려다보았다.

심와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밝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금광은 몹시 편안해 보였다.

서량의 얼굴에 떨떠름한 기색이 서렸다.

‘아직 안 사라졌나.’

그는 습관적으로 군림마황기를 끌어 올렸다.

쿠구구궁.

대전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과거, 고금제일의 전설을 만들었던 이천상은 마기를 개방하는 것만으로 천마신교의 내성 전체를 뒤흔든 적이 있었다.

이천상이 품고 있던 힘은 본디 인간은 물론 대자연에도 허락되지 않은 파멸의 극치였다.

그 모든 힘을 개방했다면 천재지변까지도 일으켰을, 이승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궁극의 선천마기(先天魔氣)였다.

천하제일을 논하는 지금의 서량도 괴물 같은 이천상의 위압감을 따라가긴 어려웠다.

그러나, 이천상보다 빠르다.

이천상은 서량의 나이일 적 이 정도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물론 서량은 전생을 겪은 초고수였으며, 애초에 시작점부터가 다르니 비교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군림마황기의 욕계문을 열고 지금의 경지까지 오른 속도만큼은 이천상조차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단순히 시작점이 빨라서가 아니라, 무공을 이해하는 속도와 그것을 몸에 붙이는 능력 자체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아마 이천상도 그런 서량의 재능을 간파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는 속도는 자신에 비할 수 없지만, 오른 이후부터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서량의 특성을 꿰뚫어 봤을 것이다.

천하의 이천상조차도 감탄한 괴물 같은 재능.

그 타고난 감각과 무공 분해 능력으로도 모자라,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의 위기까지 넘나들었던 서량도 이 금광기(金光氣)를 떨쳐 내긴 힘들었다.

‘어떻게 다루는지는 알겠는데…….’

적송이 건넨 이 금광기, 정확히는 적송의 깨달음이 녹아들어 간 무상대능력은 서량의 중단전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불가의 내공임에도 불구하고 군림마황기와 구유마기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

한없이 투명하고도 자유로운 기운, 그것은 어쩌면 적송이 원하는 삶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서량의 눈이 빛났다.

‘이 무상대능력을 군림마황기에 녹여 낸다면?’

할 수 있다. 그는 이 기운이 자신의 의도대로 군림마황기의 파괴력을 극대화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선 안 돼. 그랬다가는…… 괴물이 된다.’

무상대능력을 통해 군림마황기의 초창기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적송 말대로였다. 군림마황기는 수없이 많은 천재가 천 년 동안 보수하고 살을 입혀 만든 천고의 마공이었다.

당연히 최초의 군림마황기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최초의 군림마황기, 그 본질이 얼마나 지독했느냐다.

“초대천마 당신, 군림마황기를 창안하기 전부터 괴물 같은 실력의 소유자였군.”

서량이 보기에 처음의 군림마황기는 구유마공보다도 지독한 살기와 극한의 마기를 추구하던,

말 그대로 악기(惡氣)와 마기(魔氣)로 똘똘 뭉친 죽음의 무공이었다.

그걸 창안하고 익힌 초대천마는 정말 대단한 양반이었다. 초창기 군림마황기는 그 기운이 너무 지독해서 초대천마가 아니면 누구도 익힐 수 없었으니까.

그러한 마공을 깎아 내고 살을 입혀, 인간의 육신에 박아 넣을 수 있도록 개량한 이대천마(二大天魔)는 또 얼마나 지고한 무인이었던가.

문제는.

“이 무상대능력의 기운으로 군림마황기의 파괴력을 극대화하려면 본래의 것으로 되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로군.”

더할 것, 뺄 것도 없이 완벽하게 가다듬어진 당대의 군림마황기.

이 무상대능력을 이용, 군림마황기의 파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수많은 천재가 보수한 구결과 법문들을 몽땅 벗겨 내야 했다.

즉, 초대천마가 익혔던 최초의 군림마황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그럴 순 없지.”

무상대능력 덕에 군림마황기의 이면을 엿보았다.

그래서 서량은 포기했다. 그는 강해지고는 싶어도, 괴물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이 기운을 마냥 품고 다니기에는 영…….”

서량은 이제 기(氣)로서 상대의 감정을 읽어 내고, 마음을 간파하며, 나아가 사고까지 읽어 내는 경지에 이른 자였다.

하지만 이 기운에 깃든 깨달음만큼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돌아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운이니 악한 의도는 없는 것이 분명한데, 두루뭉술하여 진의(眞意)를 깨닫기가 힘들었다.

서량의 얼굴에 불만이 일었다.

“그 양반 참 성격 독특하네. 그냥 틱 건네주면 끝이야? 말이라도 해 주든가, 염병할.”

정체 모를 기운을 품에 안고 있자니, 그 기운이 아무리 선하고 순수해도 떨떠름하다.

그래도 이득은 있었다.

‘심리적 피로가 예전보다 훨씬 덜해졌어.’

교주가 된 이후, 서량은 설명하기 힘든 중압감에 눌려 있었다.

하지만 이 기운을 넘겨받은 이후론 그 중압감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안정적인 기운이 감정과 사고를 담담하게 유지해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천하일통지계를 예정보다 훨씬 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남은 삼 할은 자네 몫이야, 호 군사.’

서량이 태사의에 머리를 묻었다.

‘아직 중원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이쪽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를 테니까.’

이번에는 이쪽에서 먼저 공격할 것이다.

서량의 사고가 순식간에 중원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머리 한구석에 착착 배열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교주님!”

대전 밖에서 호요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황제가 깨어났습니다.”

서량의 마안이 번뜩였다.

“드디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