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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81화 (480/774)

481화. 천하의 소유자 (6)

“교주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는가?”

“화, 황제와 만나고 계십니다.”

“이런 제길! 같이 만나자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호요성은 당황했다.

그는 교주로서 서량을 믿었다.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량은 극도로 위험한 사람이기도 했다.

상대는 다름 아닌 황제다.

물론 천하의 황제라도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취급하는 것이 바로 천마신교의 교주란 존재다.

그러나, 지금은 중원의 패권을 두고 많은 적과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평소 서량의 언행과 자존심을 생각하면, 정말 황제라도 그 자리에서 때려죽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가 아니다! 지금 어디에 계시냐?”

“혈혼각 후원입니다.”

“가자!”

* * *

“허허허!”

누운 자세 그대로 황제가 광소를 터트렸다.

“인마? 그런 말은 또 처음 들어 보는군. 저잣거리 잡배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고 했던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서 솔직한 노기가 드러났다. 아무리 그래도 황제이거늘 동년배에게 말을 건네듯 하다니, 이 망발이란 말인가.

서량은 깔끔하게 등을 돌렸다.

“처신하는 걸 보니 제법 머리는 있는 모양이더군. 하니 이만 나와라.”

그는 거칠 것 없다는 듯 창가 밖, 큰 나무 아래로 향했다. 그늘이 져서 시원한 곳이었으며, 고급스러운 다탁과 의자도 마련되어 있었다.

황제의 눈에 기광이 떠올랐다.

저 어린놈은 자신을 모욕한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압권은 그다음 행동이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가는데, 그것이 무언의 압력이 되어 강한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떠보는 것인가? 이 황제를?

드르륵.

의자를 빼고 앉은 서량이 손을 들어 의원을 불렀다. 의원은 고개를 넙죽 숙이더니, 잠시 후 차를 내왔다.

서량은 황제 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알 수 없는 눈으로 서량을 보던 황제가 일순 히죽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다향이 여기까지 진동하는 게, 아주 마음에 드는군.”

황제는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고 당당히 그곳으로 걸어갔다.

보행이 무척이나 안정적이고도 느긋했다. 평생을 거칠 것 없이 살아온 자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끄응. 아직 무릎이 시리구나.”

의자에 앉은 황제가 자신의 잔을 들어 올렸다.

그때, 서량이 말했다.

“좋은 판단이었다. 차를 다 마시기 전까지 오지 않았다면, 바로 머리통을 뽑았을 거야.”

순간 황제의 눈이 흔들렸다.

자신을 보지도 않은 채 다향을 음미하는 서량은 일견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더더욱 진심이 느껴졌다.

‘이 나를 시험하셨다?’

천하 누구도 자신을 시험할 수 없다. 자신은 황제니까.

해서 이놈을 시험해 보았다. 어떻게 반응하는지. 비단 이놈만이 아니라 의원들 모두를 시험했다.

한데 이제 보니, 이놈을 시험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시험대 위에 올라서 있던 게 아닌가?

‘참으로 오만방자한 놈이로다.’

절대적인 자신감이 깃든 목소리.

자신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그 눈빛과 목소리, 자세에서 황제는 서량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대략이나마 알 수 있었다.

‘농담은 해도 빈말은 안 하는 성격이로군. 게다가…….’

황제의 안광이 형형해졌다.

얼마 전까지 다 죽어 가던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인한 눈빛이었다.

‘차분해.’

차분한 위엄.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찍어 누르는 위엄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람 마음을 파고드는 안개와 같은 위엄의 소유자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정말 이런 사람이 드물게 있다.

가만히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데, 어느 순간 타인을 감복하게 만드는 능력의 소유자들이.

적어도 쉽게 볼 인재는 아니다. 황제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말투는 무척이나 거칠었다.

“찢어 죽일 놈이로다. 황제를 눈앞에 두고도 머리통을 뽑느니 마느니 하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서량은 재차 말없이 차를 들이켰다.

황제의 안광이 더더욱 진해졌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찍어 죽일 기세였다.

“네 녀석은 누구냐?”

“회복이 빠르다더니, 귓구멍은 막혀 있는 모양이군. 이곳 주인이라고 분명 말했을 터인데?”

“흐음.”

황제가 턱을 치켜들었다.

“하면 네놈이 마교주란 말이더냐?”

“아니지.”

“무슨 말장난이냐?”

“천마신교의 교주, 십대천마(十代天魔) 서량이다. 호칭을 분명히 해 두도록 해.”

황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놈이라 생각하긴 했다만, 설마하니 네가 마교주인 줄은 몰랐다.”

서량이 황제를 바라보았다.

‘…….’

황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릴 뻔했다. 자신을 보는 서량의 눈빛이 그야말로 살벌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코웃음을 칠 만큼 담대한 성격의 소유자가 그였다. 그런 그가 눈빛 한 번에 고개를 돌릴 뻔한 것이다.

“네 자존심을 챙기는 것까지는 허락하겠다. 스스로를 황제라 부르든 말든, 딱히 상관하고 싶진 않으니까.”

“…….”

“보아하니 사람 말귀 못 알아 처먹는 놈은 아닌 듯한데. 어렵게 구한 목숨을 이리 쓸데없이 날리면 좀 아깝지 않나?”

천하의 황제더러 이놈 저놈 해 댄다.

하지만 황제는 더 이상 그에게 함부로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서량의 무심하고도 강렬한 눈빛에서 진심 어린 살의(殺意)를 읽었기 때문이다.

물끄러미 황제를 보던 서량이 피식 웃으며 다시 차를 마셨다.

“개도 아닌데 자꾸 짖으면 보기 안 좋아.”

자존심을 자극하는 언사였다.

수십 년을 정적과 싸워 오며 굽힐 땐 철저하게 굽힐 줄 아는 황제였지만, 그런 그조차 꿈틀 치솟는 울화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문제는 그 분노보다도 훨씬 강한 경계심이었다.

‘이놈은 진짜로 죽이겠군.’

정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자신의 목을 날려 버릴 놈이었다.

황제는 한 가지만 더 확인하고 싶었다.

“이 나를 납치까지 해서 살려 놓은 것은, 너희에게도 원하는 바가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는군. 더 말해 보겠나?”

꿈틀.

황제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하지만 그의 어조는 종전의 평안함을 유지했다.

“아마도 너희가 이 난장을 피운 것은, 저 무도하기 짝이 없는 내 아들놈 때문인 듯한데 말이다.”

“거기까지 괜찮았어. 계속해 봐.”

“통상의 경우를 생각하면 나를 이용해 정당성, 즉 명분을 가져가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

한데 그게 영 이상하군. 너희들은 명분이나 이유를 들먹이는 족속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말이다.”

서량의 미소가 짙어졌다.

어떠한 악의도 없는 순수한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본 황제는 더더욱 경각심을 세웠다. 저 순수함은 순수 선이 될 수도, 순수 악이 될 수도 있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황궁의 주인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이야. 머리 회전이 빨라.”

“즉, 너희는 정말로 나를 이용해 이 전쟁의 정당성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냐?”

“써먹지도 않을 장작을 굳이 강까지 건너서 주워 왔겠나?”

황제의 눈이 깊어졌다.

“악마라 불리는 너희가 정당성을 챙기기 시작했다…… 천하가 지옥이 되겠구먼.”

“왜 그리 생각하지?”

“너희 마도가 위험한 것은 목적 없는 광기와 폭력 때문이지. 그런 너희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니, 그만한 재앙이 또 어디 있겠느냐?”

“틀렸다.”

“뭐라?”

“머리는 제법 굴릴 줄 안다고 생각했더니만, 역시 판에 박힌 상식에 좌우되는 건 황제라고 다를 바 없군.”

“……?”

“폭력과 광기, 순수한 악으로 똘똘 뭉친 극악한 집단이 천 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어떻게?”

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항상 머리를 굴려 왔다?”

“본교가 몇 번의 중원 침공을 제외하고 그토록 긴 세월을 십만대산에 틀어박혀 있었던 이유는, 그 이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

“내 욕망의 방향이 하늘로 향했다. 하늘에 이르기 전, 눈에 보이는 대지를 내 발아래 두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황제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천하의 주인인 황제 앞에서, 천하제패를 당당하게 언급한다.

아무리 마교주래도 이놈은 너무 심하다. 최소한의 상식이라는 게 있다면 힘을 잃은 황제일지라도 이런 식으로 대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참으로……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작자로구나.”

“그런가?”

“내 일찍이 무수히 많은 악종과 간신들을 만나 보았다. 그러나, 단언컨대 네놈만큼 무도한 자는 없었어.”

나름의 울분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서량은 차디찬 일갈로 그의 감정을 걷어차 버렸다.

“그래서, 네놈들을 떠받들어 주면 세상을 더 이롭게 만들기라도 한다더냐?”

“……!”

“황제고 나발이고 내 알 바 아니다. 보아하니, 너희에게 맡긴다 한들 천하 만백성이 신음하는 것은 똑같을 듯한데.”

“우매하기 짝이 없구나. 해서, 너의 꿈이 천하 만백성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냐?”

“장난하나? 그게 정말 가능할 것 같나?”

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랑 말장난하자는 건가?”

“말장난이 아니라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다만,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적어도 나나 총군사가 너보다는 나은 것 같군.”

“그 무슨 요언이냐?!”

“현실은 인지하고 있다. 세상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행복해질 순 없어.”

“한데?”

“그러나,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위정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지.”

“……!!”

“나는 지금 황제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황제 따위, 누가 하든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야.

그러나 그 황제가, 내가 살아갈 이 시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면 나의 칼은 언제고 그 싯누런 궁전을 향하겠지.”

“…….”

“나는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너의 과거 행적을 알아보고 나니 딱히 알고 싶지 않아졌어.”

“나의…… 행적을 알아보았다고?”

“너는 능력이 있더군. 적어도 네 아들보다는.”

“……?!”

“하지만 네 아들은 두말할 것 없는 네 핏줄이 맞는 모양이다.

다만 네놈은 황궁의 힘을 부풀리려 했고, 네 아들은 분수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큰 것을 얻으려 했다.

넌 너의 능력을 알았고, 네 아들은 본인의 능력을 몰랐어. 그게 전부다.”

무섭도록 예리한 분석이었다.

간단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이었다. 황제는 상대의 분석에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잠시 후, 황제가 입을 열었다.

“해서, 너희의 목적은 천하일통이다?”

“그렇지.”

“무지한 놈들이로다. 정녕 너희가 천하일통을 할 수 있으리라 보느냐? 아니,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한들 유지나마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건 총군사가 걱정할 일이지, 네놈이 걱정할 일이 아니야.”

황제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깨닫게 된다. 이놈은 자신을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구.

이놈은 자신을 써먹기 좋은 장기의 말, 즉 도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황제다. 자존심으로는 누구 못지않다는 말이지.”

“그래서?”

“내가 죽으면 너희도 골치가 아파질 터인데, 그리 오만하게 나오는 건 어인 자신감인가?”

“힘이 있고 머리가 있으니, 이 정도 자신감은 챙겨 가면서 살아야지.”

“참으로…….”

“그리고 누가 골치가 아프다던가?”

“뭐?”

“나는 하루라도 빨리 천하를 손에 넣고 싶었다. 그것이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모두에게도 좋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서량이 차갑게 비웃었다.

“너 하나 죽는다고, 우리가 중원을 못 밀어 버릴 것 같은가?”

“…….”

“정히 궁금하면, 이 자리에서 죽여 주랴?”

황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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