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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82화 (481/774)

482화. 천하의 소유자 (7)

서둘러 혈혼각으로 향하던 호요성은 순간 멈칫했다.

“총군사님? 왜 그러시는지요?”

“잠시…….”

“예?”

호요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지?’

방금 뭔가 이상한 걸 본 것 같았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신경이 쓰였다. 한순간 빛나던 황금빛 물체가 자꾸만 눈에서 아른거렸다.

그 물체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신비로움이 발길을 잡아챘다.

마치 익숙한 산길을 오르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호랑이를 본 것처럼, 섬뜩함과 호기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총군사님?”

“…….”

“혹, 편찮으신……?”

“아니, 아니다.”

호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가자.”

“아, 예!”

다시 걸음을 옮기는 호요성.

그의 얼굴에 의아함과 찝찝함이 깃들었다.

‘분명 금빛 뭔가를 본 것 같은데?’

잊어버리면 그만일 것 같은 무언가다. 헛것을 봤을 수도 있다. 요새 하도 정신없이 살다 보니 잠도 제대로 못 자지 않았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호요성은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긴장을 풀었다면 모를까, 한창 날이 선 지금의 자신은 무언가를 잘못 볼 만큼 둔하지 않았다.

‘별거 아니겠지.’

설령 별거라도, 지금은 그런 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는 애써 자신이 본 ‘무언가’를 잊었다.

하지만 황금빛 서기를 뿌리는 무언가를 본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 * *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주청(周晴)이 미소를 지었다.

“과연.”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에야 확실히 알았네. 자네는 진실로 나의 목숨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늦었군.”

“늦을 수밖에. 황제든 무지렁이든, 목숨은 소중하기 마련이야. 내 목숨이 달린 일이니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 확인해 볼 수밖에.”

주청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햇빛을 받은 그의 얼굴에 언뜻 피로함이 드리워졌다.

“이보게, 마도 무림의 대종사여.”

마도 무림의 대종사.

지금까지와는 판이한 말투였다. 상대를 진심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위 마인(魔人)이라 불리는 족속들이 천마(天魔)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었네. 마인에게 있어 천마는 황제보다도 높은 신(神)으로 추앙받는다지?”

“그렇다.”

“황제도 모자라 신이라…….”

천자(天子)를 놔두고 저희끼리 신을 모시는 행태에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으려는 걸까?

주청이 눈을 감았다.

“힘들었겠군.”

뜻밖의 말이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힘들지.”

“그 ‘힘듦’을 알고 있다니, 자네는 그런대로 괜찮은 신(神)인 모양일세.”

다시 눈을 뜬 주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에 대해 조사해 봤다고 하였는가?”

“그렇다.”

“그래, 나는 어린 나이에 황제의 위(位)에 올랐네.

아는지 모르겠네만, 내가 황제가 된 것은 우연이었네. 황궁 인근에 역병(疫病)이 창궐했는데, 형제 중 그 병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오직 나 하나였거든.”

“그건 몰랐군.”

“모를 수밖에. 사람들은 이렇게 알고 있을 걸세. 황제는 즉위하기 전, 제 형제들을 모조리 독살한 인간이라고.”

주청이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소문이지. 그 악소문도 신화(神話)의 한 자락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구먼.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가 황제가 되고 싶어 형제들을 죽였다…….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다른 인간이긴 하지.”

“…….”

“자네에게는 형제가 있는가?”

“사형제들이 있지.”

“살려 두었나?”

“덤볐던 놈 셋 중 둘을 죽이고, 하나는 장기 말로 써먹는 중이다. 나머지는 손잡고 잘 놀고 있어.”

“대단하군. 자네를 만나 얘기를 나눠 보지 않았다면, 사정(私情)에 휩쓸리는 바보라고 생각했을 걸세.

자비란 힘 있는 자가 아니면 보여 주기 힘든 것이지. 그 젊은 나이에 천마라는 칭호를 얻다니, 자네가 얼마나 대단한 괴수인지 짐작이 가는군.”

주청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이전처럼 살벌한 안광을 뿜어내지 않는 서량의 얼굴은 몹시 잘생겨 보였다.

“위엄과 관록이 엿보이는 얼굴이야.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좋은 수장이 될 걸세.”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하고 싶은 말은 많네. 그저 자네의 그릇이 범상치 않음을 알았기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 보고 싶을 뿐이야.”

“시간 아깝군.”

“고얀 사람이로고. 황제를 휘둘러 천하일통을 노리는 자가 그 정도 인내심도 없어서 어찌할까?”

서량의 얼굴에 흥미가 일었다.

“마음을 잡았나?”

“잡고 말고 할 게 있던가? 자네 말마따나 내 목숨은 이미 자네 손에 떨어졌다네.”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닌 모양이군.”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와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하네.

정체 모를 무뢰배와 손을 잡은 자식 놈의 감시 아래 숨만 헐떡이고 있는 삶보단, 수족이 다 잘렸을지언정 편히 먹고 살 수 있는 이곳이 더 낫지 않겠나?”

거짓말이 아니다. 진심이었다. 주청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황제가 되었지만,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라 생각했네.

책임을 통감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지. 꼭두각시 황제라도 하여간 황제 아닌가.

나는 권력을 휘두르는 삶보다는 내 안전이 보장된 평화로운 삶이 좋다네.”

“그렇군.”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 안전은 바람 앞에 등불이나 다름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

황궁의 힘은 약해. 그런데도 얼마 안 되는 권력을 쥐고자 난장을 치는 간신배들이 많았네. 그들은 그 알량한 권력을 위해 황제까지 갈아치울 작자들이었지.”

“그래서 갈아엎었나?”

“내 생에 처음으로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기 시작한 때였네. 천운이 따랐는지 모든 간신배를 몰아냈고, 황궁의 힘을 조금씩 키울 수 있었네.”

주청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이립이 되던 해에 황궁의 힘을 불리는 걸 멈췄다네. 그 정도면 무림의 무뢰배들도 적당하다고 여겼을 테니까.”

중원을 손에 넣은 무림 세력들의 눈치를 봐 가면서, 황궁을 키울 수 있는 한계까지 키워 낸 수완가였다.

천하의 주인으로 불릴 만한 그릇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그릇을 키울 준비가 된 자였다.

“황제든 교주든, 한 단체의 수장이란 자리는 고달픈 것이야. 세상에 책임 없는 권력은 없는 법이지.

한낱 짐승들도 제 우두머리의 힘이 약해지면 물어뜯는다네. 사람은 더하지.”

서량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정 그랬다면 아들에게 황위를 이양하지 그랬나?”

“안 하길 천만다행이지. 그놈이 내게 한 짓을 보게. 나를 위해서도, 천하를 위해서도 올바른 판단이었다네.”

“천하를 생각이나 해 봤나?”

“생각은 했지. 다만 외면하고 있었을 뿐일세.”

“솔직하군.”

“자네가 원한다면 내 속내를 꿰뚫어 보는 것쯤이야 손쉬운 일 아닌가? 다 아는 사람 앞에서 뭣 하러 거짓을 입에 담겠는가.”

주청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해 보니 처음이군. 남 앞에서 내 속내를 전부 보여 준 것 말일세. 내 자식 놈에게도 그런 적이 없거늘.”

그때였다.

“어쩌면, 그래서 황태자가 그리 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청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신교의 총군사입니다. 중원의 높으신 분께 인사드립니다.”

주청의 눈이 반짝였다.

“중원의 높으신 분이라…… 허허.”

“안타깝게도 저희는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라서요. 교주님이 옆에 계시는데 오체투지는 못 합니다.”

“알고 있네.”

호요성의 눈이 반짝였다.

주청의 목소리, 대응, 자세만으로도 상대의 성격을 파악한 그였다.

서량이 툴툴거렸다.

“또 뭔 사고를 치나 싶어서 쪼르르 달려왔나?”

“그래서 말씀드렸잖습니까? 같이 보자고.”

“누가 들으면 내가 사고뭉치인 줄 알겠네.”

“아니었습니까?”

“대가리를 그냥.”

“또 죽이네, 마네 협박하고 그러셨죠?”

“어떻게 알았어?”

“거 보십시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제길, 그럴까 봐 같이 오자고 한 건데.”

“어쨌든 분위기가 나쁘진 않잖아?”

“저 요새 심장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놀랄 일은 사양이라고요.”

“약 달여 줄게.”

“제발! 약이면 다 되는 게 아니라고요!”

주청은 상당히 놀란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독특한 군신지간(君臣之間)이군.”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추 분위기는 만들어 놨으니, 나머지는 군사가 해 봐.”

“뭘요?”

“천하일통지계의 남은 삼 할을 완성해야 할 거 아냐?

안전 제일주의니, 평화주의니 해도 가슴 속에 품은 야망의 불길을 꺼트리지 않은 작자더군. 말이 통하겠어.”

“교주님도 계셔 주세요.”

“아, 됐어. 배고파. 밥 먹으러 갈 거야.”

“애처럼 왜 그러세요, 정말!”

서량이 툴툴거리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네, 진짜.”

호요성이 주청에게 재차 고개를 숙였다.

“저희 교주님이 이렇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주청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많이 이해해야 할 것 같네. 자네들은 신(神)을 이런 식으로 떠받드는 모양이지? 신선하군.”

“겉으로 보이는 예의야 어떻든, 마음만 향해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허.”

주청이 눈을 감았다.

“마음만 향하면 그뿐이라……. 그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로군.”

몇 번이나 그 말을 곱씹던 그가 재차 눈을 떴다.

“그래, 천마신교의 총군사께서는 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겐가?”

호요성이 서량을 힐끔거렸다.

서량은 모른 척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이고 있었다. 나비가 팔랑이며 그의 검지 끝에 내려앉았다.

“엣헴! 교주님과 이런저런 얘기는 다 하셨을 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시게.”

“들으셨지요? 저희가 천하일통을 원한다는 것.”

“참으로 패기만만하더군. 그런 말을 황제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하는 사람도 달리 없을 게야.”

“괜찮으십니까?”

“괜찮고 자시고, 나에게는 힘이 없다네.”

“애석하지만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호요성의 얼굴에 진지함이 어렸다.

“조건에 동의해 주신다면, 힘을 되찾아 드리겠습니다.”

주청이 눈살을 찌푸렸다.

“조건부로군? 하긴, 지금 내가 이런저런 걸 따질 처지는 아니지. 계속해 보게. 그 조건이 무엇인가?”

“본교와 황궁 사이의 동맹을 원합니다.”

“동맹?”

“그렇습니다.”

주청이 씁쓸하게 말했다.

“동맹이란 힘이 비슷할 때 맺을 수 있는 걸세. 자네들 힘이라면 황궁을 집어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텐데?”

“맞는 말씀입니다. 아닌 말로, 무력으로 점거하고자 한다면 본교 병력의 이 할만 뚝 떼어서 보내도 가능하지요.”

“한데 어찌 동맹이라 하는가?”

“말씀드렸잖습니까? 힘을 드리겠다고요.”

“힘?”

서량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빙빙 돌리지 말고 그냥 말해, 이 사람아.”

호요성이 헛기침을 했다.

“천하일통지계의 마지막이지 않습니까.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다고요.”

“개뿔.”

주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힘을 주겠다는 말은, 내게 황제로서 걸맞은 권력을 주겠다는 뜻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황제에게 걸맞은 권력을 드리기 위해선 중원을 한번 청소해야 합니다.”

“하면?”

“교권(敎權)을 인정해 주십시오.”

“……교권?”

“그렇습니다. 황권(皇權)과 교권(敎權)의 분리. 저희는 황궁과 손을 잡고 천하를 도모해 보려 합니다.”

“……!”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호요성의 두 눈이 찬란하게 빛났다.

“새로이 재탄생될 천하에, 본교를 국교(國敎)로 인정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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