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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84화 (483/774)

484화. 태풍을 불러오다 (2)

후두둑.

“음?”

호요성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뭐지? 지진인가?”

“판마정이오.”

“아, 그렇습니까?”

무담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교주님께서 수련 중이신가 보오.”

애초에 극마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이 충격파에 묻어 나오는 마기를 느끼기 힘들다. 호요성이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호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허! 그렇게 높은 경지에 오르셨음에도 저리 격렬한 수련이 필요한 겁니까?”

“모르겠소. 나는 교주님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오.”

자신이 모르는 경지에서 어떤 수련이 필요한지는 알지 못한다.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무담의 얼굴엔 부끄러움이 없었다. 상대가 교주이기 때문이리라.

“다만, 의아하긴 하오. 교주님의 경지는 천하제일을 논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오.

당장 나만 해도 실제 마공을 구현해 내는 수련보다는 정신적 수련에 치중하는 편인데, 저리 거대한 힘을 발산하시다니.”

무담이 희게 웃었다.

“무(武)란 끊임없는 단련의 연속. 교주님께서는 나의 상식마저도 뛰어넘으신 것 아닌가 싶소.”

호요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천마(天魔)시니 뭐가 달라도 다르시겠지요.”

“…….”

“아, 이건 좀 불손한 발언이었나요?”

“많이 불손했소.”

“괜찮습니다. 교주님께선 넘어가 주실 테니까요.”

아마 교주님과 단둘이 있을 때의 대화를 들으면 무담은 뒷목 잡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호요성이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황제는 어쩌고 있답니까? 아직도 밥이나 먹고 있습니까?”

“쉬고 있소.”

“그게 전부입니까?”

“지치기도 지쳤겠지. 외양을 보니 아직 회복이 더 필요해 보이더이다.”

황제 주청의 신변 보호는 호법원에서 맡았다. 그것도 호법원 최강이라는 일 조가 투입되었다.

“고민이 많은 모양이군요.”

무담의 눈이 빛났다.

“황제에게 뭔가 제의를 한 거요?”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무담은 어지간해선 저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며, 그만큼 그의 성격도 부드러워졌다는 뜻이리라.

‘괜찮겠지.’

신교에 무담만 한 충신은 없다. 그는 무담에게 그간 교주님과 함께 추진해 온 일을 말해 줘도 된다고 판단했다.

“사실은…….”

호요성은 그동안 서량과 함께 어떤 일을 해 왔는지 담담하게 얘기해 주었다.

황제에게 어떤 제의를 했는지도.

무담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국교?”

“그렇습니다.”

“그 말은, 천하일통 후 황궁의 힘을 키우겠다는 뜻이오?”

“물론입니다.”

무담의 눈이 깊어졌다.

그는 뼛속까지 마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황궁은 의천맹이나 철혈성과 비슷한 집단일 뿐이었다.

“힘은 마물이오. 물론 교주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실 테지만, 황궁이라는 존재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소.”

“만민(萬民)의 마음을 훔치는 건 황궁이 아니라 본교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무담의 얼굴에 난처함이 깃들었다.

“기실, 본교는 종교적 특수성을 안고 있는 무파나 다름이 없소. 총군사 말마따나 진정 국교로 추대된다면, 본교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이오.”

마도 무림에서 천마라는 존재는 황제보다도 높은 자리에 거한다. 신(神), 혹은 신의 대리인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당대 천마신교는 전형적인 무파이기도 했다. 경전을 읊고 신을 찬양하는, 신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무담이 지적한 것은 바로 그런 점이었다. 국교가 된다면, 그에 걸맞게 종교다운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오?”

“본교는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억지로 생활 양식을 바꾸고 경전을 뿌린다 한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천마를 섬기겠습니까?”

“흐음…….”

“국교는 핑계일 뿐입니다. 그저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교주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설령 국교로 받아들여진다 한들, 다른 종교를 탄압할 생각은 없다고.”

무담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그 말씀은?”

“예. 종교를 빙자한 무파로서 황궁의 무력을 대신해 줌과 동시에, 교주님께선 황제와 동등한 위치로 올라서 천하를 굽어보시게 될 겁니다.”

무담의 눈이 깊어졌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소. 결국 천하를 삼키기 위해선 그럴듯한 직함이 필요하다는 뜻이로군.”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하면 총군사 말마따나, 천하일통을 한 연후에는 어떻게 할 거요? 정녕 황궁과 운명 공동체로 나아갈 생각이시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래서야 진정한 마도천하(魔道天下)라고 볼 수 없지요.”

“하면?”

호요성이 씨익 웃었다.

“교주님께서 진정 신(神)이 되셔야지요. 모두가 인정할 만한.”

* * *

퍼어엉!

서량이 왈칵 피를 토했다.

복부에서 퍼져 나간 충격파가 상체 전부를 휩쓸었다. 제때 힘을 주지 않았다면 온몸의 뼈마디가 다 부서졌을 것이다.

이천상이 접근했다.

가볍게 한 걸음 걷는다 싶더니 어느 순간 코앞이다.

같은 마황군림보인데도 차원이 다르다.

무공을 대성하는 것보다, 대성한 무공을 자신의 무도(武道)로 끌어들여 재탄생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 주는 일 보였다.

서량이 천마도를 올려 쳤다.

서걱!

이천상의 소매가 잘려 나갔다.

정확한 순간을 읽어 냈음에도 소매가 잘려 나간 것에 그쳤다. 순간의 반응 속도가 차원을 달리했다. 무적의 신위(神威), 절대마신의 위용이었다.

파지지직! 펑! 퍼퍼펑!

순식간에 백여 합을 교환했다.

서량의 무공은 속도의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것은 이천상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무공의 구현 속도는 이천상이나 서량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문제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노리는지였다.

서량은 그 신기(神技)에 이른 감각으로 이천상의 다음 행동까지 예측했지만, 이천상은 서량의 모든 공격을 너무나도 자연스레 넘기거나 받아쳤다.

‘역시나.’

그간 익힌 무공을 신들린 듯 쏟아붓는 서량의 얼굴에 감격이 일었다.

‘올라서고 또 올라서도 부족하다. 무공지로(武功之路)에는 정말 끝이 없어.’

이천상의 무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단순히 압도적인 힘으로 몰아붙이는 게 아니었다.

그의 무공은, 그의 대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리(武理)가 깃들어 있었다. 지금의 서량은 그 무리의 편린조차 읽기 힘들었다.

다만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나아갈 길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체감하는 것만으로도 서량에겐 큰 배움이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무공이 무엇인지, 훗날 자신이 엿보게 될 무적자의 경지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의 무공이 변화하고 있었다.

무섭게 몰아치는 서량.

그런 서량의 무공을 일일이 받아 주는 이천상의 눈은 맑고도 깊었다.

휘잉! 퍼어엉!

“큭!”

서량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이천상이 뒷짐을 졌다.

“충분하느냐?”

주르륵.

서량이 코피를 닦았다. 충격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코 점막이 터진 것이다.

“충분하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여기까지 하자.”

우우웅.

천마도가 울었다.

선천마기를 뽑아내 과거의 사람을 불러냈지만, 그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말하자면 서량이 지닌 능력의 한계였다.

가만히 이천상을 보던 서량이 자세를 풀었다.

“이제, 회복해라.”

“예?”

“다친 몸을 회복하라 하였다.”

서량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극심한 내외상에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회복합니까?”

“바보 같은 질문이다. 너는 나를 어떻게 불러냈느냐?”

“……!”

“나는 이미 죽고 스러져 없는 사람이다. 넌 그런 사람의 무공에 그리 큰 상처를 입었다.”

“제가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까?”

“그렇다.”

치이이이익!

서량의 몸 곳곳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그의 몸에 난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군림마황기의 반천축정술이 아니었다. 순수한 믿음으로 몸을 회복한 것이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판마정에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믿음만 충분하다면, 네 몸에 새겨진 상처를 회복하는 것도 금방이지.”

“판마정에서 입은 상처는, 판마정 안에서 회복할 수 있는 것이로군요.”

“그렇다.”

어느새 서량의 몸이 말끔해졌다. 극도로 소모한 내공도 전부 채워졌으며, 찢어진 살갗과 부러진 뼈도 본래대로 돌아왔다.

다 뜯어진 옷까지도.

이천상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마 안 남았군.”

“…….”

“잠시 걷지.”

“예.”

츠츠츠츠츠.

널따란 평야가 황량한 산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절벽을 향해 걸었다.

서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전히 강력하시더군요.”

“반면 너는 성장했구나. 다만 그 속도가 예전과 같지는 않더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당연한 것이다. 궁극의 영역에 올라선 자에게는 반걸음의 성장에도 십년적공(十年積功)이 필요한 법. 그것을 생각하면, 너의 성장은 여전히 빠르다고 볼 수 있다.”

“그렇군요.”

어느새 두 사람은 절벽 끝에 다다랐다.

이천상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황제와 손을 잡았구나.”

서량은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판마정, 자신이 아는 것은 이천상도 다 알고 있다.

“내가 원하던 마도천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압니다.”

“그렇겠지. 욕계문을 통해서 다 봤을 테니.”

이천상이 눈을 감았다.

“동시에, 나는 알고 있었다. 너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천하를 도모할 것임을.”

“그것도 압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죽겠습니다. 황궁까지 끌어들이시다니, 덕분에 똥줄 탔어요.”

“너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했다.”

“제자를 향한 믿음이 어마무시하십니다.”

“동시에 나를 믿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인재라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지.”

“여전하십니다.”

“네가 아는 나니까.”

서량이 입을 다물었다.

이천상의 한마디는 지금의 상황이 비현실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명확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대로의 나이기도 하다.”

“예?”

“지금 이 몸은 너의 상상으로만 구현해 낸 존재가 아니야. 천마도 안에 봉인된 나의 선천마기에는 내 영(靈)이 담겨 있다. 단순한 사념의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이지.”

“…….”

“그래서 이런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그렇군요.”

서량이 탄식했다.

이천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가 이리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줄 줄은 몰랐다.”

“그 스승에 그 제자인 것이지요.”

“…….”

“사부님은 언제나 신(神)이었지만, 또한 인간임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십 년이 넘도록 육신을 지상에 묶어 놓을 수 있었지요.”

이천상이 피식 웃었다.

“한 방 먹었구나.”

“청출어람입니다.”

“안다. 그래서 네가 좋다.”

푸스스스.

이천상의 발이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나를 통해 답은 얻었느냐?”

“스승이 괜히 스승이겠습니까? 얼마나 성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방향은 잡았습니다.”

“퇴보할 수도 있다.”

“그래도 디뎌 봐야지요.”

“항상 나아가려는 네 성정, 그 성정이야말로 지금의 너를 있게 한 원동력이지.”

발과 정강이를 넘어 허벅지까지 가루로 부서져 휘날렸다.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이제 곧입니다.”

“…….”

“사부님께서 승천하신 그곳, 과거 의천맹이 자리 잡은 그곳에 따스한 이불을 깔아 드리기로 했지요.”

“그랬지.”

“추워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어느새 이천상의 하체가 사라지고, 복부와 가슴까지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천상이 서량을 돌아보았다.

“업무가 많다고 무리하지 마라. 쉴 때는 쉬어 줘야 하는 법이다.”

“총군사가 들으면 학을 떼겠군요.”

“몸이 완성되었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어지간하면 밥은 굶지 말거라.”

“매일 산해진미를 맛보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반드시 잠을 자 두어야 한다. 그래야 기(氣)가 잘 통한다.”

“이제부터라도 그러겠습니다.”

“그래.”

푸스스스.

이천상의 얼굴이 점차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웃어라. 넌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

“……예.”

휘잉!

바람에 따라 휘어져 올라가는 가루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서량이 눈을 감았다.

그는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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