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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87화 (486/774)

487화. 태풍을 불러오다 (5)

“시이발, 황제 개새끼.”

서량은 호요성이 욕하는 걸 처음 들었다.

“이봐, 목소리 좀 죽여.”

“어차피 그 양반은 듣지도 못하잖아요! 이런 젠장 할.”

황제는 안 듣지만 교주가 앞에 있잖아.

서량은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교주 면전에다 대고 시팔 저팔 욕하는 건 중죄 중의 중죄지만, 그의 심경을 생각하면 차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나름대로 황궁 세력을 넓혔다면서 믿을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왜 또 하북이야? 왜 또 북경이냐고!”

호요성이 머리를 쥐어 싸맸다.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뭐, 누구라도 믿기 힘들었을 수 있지.”

“그래도 황제잖아요! 세상에, 자기 사람이 정말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왜? 아주 황궁 뒷산에 묻어 놨다고 하지? 으아아아!”

완벽하게 정돈되었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봉두난발이 되었다.

서량이 헛기침을 했다.

“이왕 동맹을 맺었으니, 좋게 좋게 생각하자.”

“좋게 좋게 생각이 안 되니까 이러는 겁니다! 동맹만 아니었으면 제가 직접 가서 모가지를 날려 버렸을 거라고요!”

“어허, 진정 좀 하게.”

“싫어요!”

한참이나 씩씩대던 호요성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하긴, 다급하기도 했겠지요. 설마 싶기도 했을 겁니다. 자식이 자신을 몰아낼 거란 생각, 어지간하면 못 하거든요.”

“그렇지.”

“……동조하시는 겁니까?”

“그냥 그렇다고.”

이럴 때 잘못 건드리면 물린다. 서량은 오늘만큼은 조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옥새가 거기에 있다고 하니 안 찾아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맞아요, 맞는데 그냥 너무 열이 받네요.”

“이해하네, 이해해.”

호요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에도 마왕령을 보낼 순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이런 일에 쓰려고 만든 조직이지만, 이번 황제 납치 작전에서 큰 희생을 치렀다.

물론 재정비 후 출정시키면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해 내겠지만, 그래서야 자살 특공대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마왕령의 미래를 위해서도, 신교를 위해서도 마왕령을 투입하는 것은 무리다.

“구대마존은?”

“마존들은, 말하자면 전선을 유지 중입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북부로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어요.”

“즉, 적측에서도 마존들을 확실하게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이상 동향이 보이면 바로 알아차릴 겁니다. 그쪽에도 모사가 없는 건 아니니 그 목적도 금세 눈치채겠지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서량이 물었다.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면?”

위험천만한 얘기지만, 옥새를 얻기 위해선 충분한 가치가 있다.

호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옥새가 황제에게 없다는 것을.”

당연하다.

그들에게는 옥새가 없다. 하지만 황제에게도 없다.

옥새는 황제가 쓰러지기 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걸 황제를 납치하는 길에 찾아가진 않았다.

결국 서로가 옥새를 노리는 판국이니, 이쪽에서도 저쪽의 눈치를 보고 저쪽도 이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

“고민해 봐야지요.”

“고민?”

서량이 코웃음을 쳤다.

“이미 어느 정도 가닥은 잡았을 거 아냐?”

“저를 뭘로 보시고.”

“총군사, 희대의 천재, 천마신교 역사상 최초로 마도천하란 대업적을 이룰 교주의 오른팔.”

“쩝.”

“토해 내 봐.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은 그 작전을.”

호요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하면 전쟁 분위기 조성이 아니라, 진짜 전쟁이 터질 수도 있는데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전쟁이었어. 어차피 옥새가 있어야 명분을 가질 수 있다. 옥새만 손에 넣으면 돼.”

“그게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엉?”

호요성이 눈을 빛냈다. 황제를 향한 원망은 많이 수그러든 것 같았다.

“사실 이 부분이 참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변죽만 울리지 말고 말해 봐.”

“뒤가 없는 상대만큼 무서운 게 없습니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옥새를 탈취당한 걸 알면, 그때부터는 명분이고 뭐고 없이 끝까지 몰아붙일 거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판도를 보면, 아직은 본교가 우위에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저희는 하나로 똘똘 뭉친 데다가 강서상회를 집어삼키며 중원 상권의 절반을 거머쥐었으니까요.”

“그렇지.”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간 장강 이남의 백성들이 최대한 편히 살 수 있도록 천금을 풀어 지원했지요.”

“그래.”

“말하자면, 본교는 이미 하나의 나라나 다름이 없습니다. 물론 백성들이 본교의 마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저희에 대한 여론이 매우 좋습니다.”

“맞아.”

“하지만 적이 뒤가 없이 싸우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져요.”

“엉?”

호요성이 암울한 얼굴로 말했다.

“놈들이 우리가 아니라 백성을 잡아 죽이기 시작하면, 그땐 백성들도 본교를 외면할 겁니다. 제때 지켜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요.”

“…….”

“말하자면, 저놈들이 학살극을 염두에 두고 진군하는 순간 이쪽은 끝장입니다.

저희는 남부의 민심은 잡았어도, 각지에 즉각 전쟁이 가능한 병력은 파견하지 못했지요.”

“그렇지.”

“적의 전쟁 수행 능력을 완전히 잡아먹는 초토화 작전. 놈들이 이 악물고 그런 작전을 쓰게 되면, 저희도 골치가 아파집니다.”

그것이 마도 무림의 가장 큰 단점이다.

비록 와해되어 버렸지만 의천맹과 철혈성은 각 지역에 즉각 전쟁이 가능한 병력을 주둔시켰다. 그건 과거 강호삼세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곳으로 밀집되지 않은 힘. 그래서 모이기는 어렵지만 국지전에선 큰 이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천마신교는 다르다.

마도칠가가 있긴 하나 머릿수가 너무 부족했다. 애초에 천마신교는 종교이며, 단일 무력 집단이다.

곳곳에 지부는 세워 두었지만 강력한 전력을 분산하진 못했다.

“지금이라도…….”

“안 됩니다. 저희가 못 본 새 남부 곳곳에 정보원들을 침투시켰을 겁니다. 십만대산까지는 오르지 못했어도,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알아차릴 겁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 가는 걸 보니 과연 군사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이북 쪽에다가 초토화 작전을 감행할 수는 없잖아.”

죄 없는 백성을 죽여 적의 전쟁 수행 능력을 말살시킨다?

절대 그래선 안 된다. 그것은 최후의 최후에나 쓸 법한 방법이며, 설령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한들 서량은 결코 그리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즉, 쥐도 새도 모르게 옥새를 탈취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그렇다고 대군을 보내 확 쓸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도 그렇지.”

“큼직한 미끼를 보여 준다 한들, 놈들 역시 함정을 염두에 둘 겁니다. 적어도 하북 일대를 철통같이 에워싸겠지요.”

“하지만 미끼를 던지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뭐야? 적들이 함정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크나큰 미끼를 던짐과 동시에,

작전 수행을 위한 병력을 파견함은 물론 적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은신술이 필요한…….”

“결정적으로, 적이 초토화 작전을 쓸 생각을 못 하게 해야 합니다.”

호요성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 역시 호요성을 바라보았다.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나로군.”

“……예, 그게 최선입니다.”

호요성이 황제를 그렇게 욕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길을 열어 줄 사람이 오직 서량뿐이었던 것이다.

서량의 얼굴에 흥미가 일었다.

“그렇군.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로군.”

“더하여.”

“호천마황단.”

“……그렇습니다.”

호요성이 천장을 힐끔거렸다.

“호천마황단은 오직 교주님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입니다. 설령 총군사라 해도 호천마황단에 명령을 내릴 수 없지요.”

“그렇지.”

“즉, 교주님께서는 호천마황단이라는 절대적인 방어막 없이 적의 미끼가 되셔야 합니다.”

또다시 침묵이 일었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말이지, 나도 신교의 교주로서 나름의 자각을 하고 있어서 말이야. 내 개인적으로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크게 보면 엄청 무모한 짓이야.”

“맞습니다. 사실, 앞뒤 안 가리고 적을 쓸어 버릴 생각이라면 교주님께서 나서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 그대로 옥새를 찾음과 동시에 전력으로 밀어 버리면 그뿐이니까요.”

“적, 그리고 북쪽의 백성들까지 전부.”

“예.”

그때였다.

허공 어디에선가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주님. 모습을 드러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게.”

스르륵.

어느새 서량의 뒤에서 한 남자가 안개처럼 나타났다.

전신을 흑회색 무복으로 감싼 남자였다. 눈을 제외한 얼굴을 전부 가려서 나이를 짐작기 힘들었다. 다만 옷 위로 드러난 신체는 너무나도 탄탄했다.

호천마황단주, 진천(秦闡)이었다.

진천이 입을 열었다.

“총군사.”

“말씀하십시오.”

“그렇게 하시오.”

“예?”

“초토화 작전을 쓰시란 말이오.”

호요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진천의 눈이 깊어졌다.

“내 그간 교주님을 향한 호 군사의 경망스러운 태도를 가만히 참고 들어주었던 것은,

교주님과 그대의 사이가 단순한 군신지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실제로 교주님께서도 그러한 관계를 편히 여기시니 두고 본 것뿐이외다.”

“…….”

“그러나 이런 식이면 곤란하오. 당신은 본교의 총군사요. 교주님께서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없는 선에서 최선의 답을 도출해야 마땅할 것이오.”

준엄한 질책이었다.

서량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지 않았다. 그저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할 뿐이었다.

호요성이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만, 그 초토화 작전을 거부하시는 게 교주님이십니다.”

“감히 교주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현실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시오. 그 외에 방법이 없다면, 당신이 무능한 것뿐이오.”

“제가 무능하다고 욕을 먹는 거야 아무 상관 없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방법을 찾지 못했지요.”

“그럼 시간을 더 들여 찾아보시오.”

“시간이 있었다면 이곳에 와서 교주님께 징징댔겠습니까?”

두 사람의 눈빛이 불똥을 튀기며 부딪쳤다.

호요성을 노려보던 진천이 재차 입을 열었다.

“사흘의 시간을 주겠소. 그 전에 방법을 찾아내시오. 그게 아니면 당신은 내 검에 죽을 것이오.”

“사흘 안에 방법을 찾아낸 연후에 단주 손에 죽는다 한들 전 아쉽지 않습니다. 천하일통지계는 다 세워 두었으니, 제가 없어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겁니다.”

호요성이 눈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방법은 없습니다. 사흘은커녕 하루도 아까운 판국이니,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 지껄이십시오.”

“…….”

“교주님을 향한 단주의 충성심은 잘 알고 있지만, 간과하지 마십시오. 당신 이상으로 교주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많다는 것을요.”

“…….”

“그리고 그중 하나가 접니다.”

무색투명한 눈으로 호요성을 노려보던 진천이 입을 열었다.

“죽고 싶소?”

“본교의 승리를 위한다면 죽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요.”

그때, 서량이 손을 들었다.

“그만.”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서량이 물었다.

“호 군사. 시간이 그리 빠듯한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적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되거든요.”

“그렇단 말이지.”

진천의 눈이 흔들렸다.

“교주님.”

“마황단주.”

“……예.”

서량이 히죽 웃었다.

“내 안전은 잠시 동필이한테 맡겨 두게.”

“교, 교주님!”

“이번 작전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가 생지옥으로 떨어질 걸세.”

“…….”

“내 부탁을 들어주겠는가?”

가만히 서량을 보던 진천이 무릎을 꿇었다.

“어찌 부탁이라 하십니까. 교주님을 향한 저의 신심(信心)을 헤아려 주십시오.”

“그래, 그럼 명령을 내림세.”

서량의 두 눈에 무서운 위엄이 깃들었다.

“이틀 뒤 떠나도록 하지. 작전 내용은 호 군사에게 듣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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