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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88화 (487/774)

488화. 태풍을 불러오다 (6)

마동필은 상상 속의 대상을 노려보았다.

그 대상은 생각보다 쉬이 형상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호하고도 모호하다. 분명 ‘그’의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아니야. 더 날카로웠다.’

지이잉.

머리 한구석에 번갯불이 튀는 듯했다.

동시에 상상으로 구현한 존재가 점차 뚜렷한 형태를 갖춰 갔다.

‘그래, 저 정도였지.’

스르륵.

오로지 마동필의 눈에만 보이는 상상 속의 고수.

그 고수는 얼마 전, 절강 동해에서 수십 합을 겨루었던 중원제일창, 언극이었다.

위이이이잉.

자신을 향한 창날이 기이한 떨림을 발했다.

완벽한 창신일체(槍身一體)였다. 창이 나고, 내가 창이다.

비록 그 속내가 음험하고 살기는 흉포했지만, 하나의 병장기를 극에 이르도록 연마한 실력은 대가(大家)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동필이 중단으로 검을 올렸다.

치이이익.

흑혈마검에서 검붉은 불꽃이 타올랐다.

구유마기가 담긴 마검이었다. 주인의 힘을 받은 흑혈마검이 소름 끼치는 살기를 뿜어냈다.

스릉. 스릉.

창날이 좌우로 흔들렸다.

흔들린 건 좌우지만, 상하좌우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는 준비가 끝났다.

마동필의 이마에 식은땀이 어렸다.

‘대단하군.’

적을 상상하여 그와 대련을 하는 것.

이른바 독투(獨鬪)였다. 그러나 천하 무림인 중 마동필처럼 고차원적인 독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우우우웅.

언극의 창에 언뜻 마기가 희번덕거리는 듯했다.

상상의 존재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자신의 마기까지 공유하여 존재감을 드높인 것이다. 지난 세월, 관평과의 대련 후 홀로 연무할 때 쓰던 방식이었다.

‘빈틈이 없어. 그리고…….’

마동필의 눈이 번뜩였다.

‘온다.’

파아악!

한 자루 장창이 교룡처럼 꿈틀거리며 마동필의 중단을 노렸다.

곧고 정직한 일격이지만, 쳐 내기가 쉽지 않았다.

속도와 위력의 문제가 아니라 변초(變招)의 문제였다. 언극의 창술은 힘의 무공도, 속도의 무공도 아니었다.

창이라는 병장기 자체가 가진 근본적인 속성, 거리와 변화에 중점을 둔 정석적인 무공이었다.

스르륵!

창날이 허공을 꿰뚫었다.

받아넘기지 않고 피한 후 반격한다. 마동필의 검이 단숨에 언극의 목젖을 노렸다.

파라락!

언극의 신형이 불가사의한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창신일체의 움직임이었다. 그 자신이 창이 된 듯, 뱀처럼 음험하고 사이한 보법으로 마동필의 검을 피해 냄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각법을 질러 왔다.

쾅!

마동필의 주먹과 언극의 각법이 화려한 충돌을 일으켰다.

‘강하다.’

주먹이 시큰거렸다. 아니, 아마도 그런 위력의 각법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 봤던 언극의 무공이라면, 이번 한 수로 좌측 하박에 심한 부하가 걸렸을 것이다.

파바바박!

마동필의 검이 수십 개의 검영(劍影)을 그렸다.

각법을 피하지 않은 것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 거리는 검권(劍圈)이었다. 창술로 대처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쩌저저저정!

대처하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도 유연하게 검을 쳐 냈다.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 창술이었다. 심지어 창대에 실린 내공이 상상을 초월했다. 이 정도로 끌어올린 구유마공으로도 침투하는 힘을 막아 내지 못했다.

‘흡!’

화르르륵!

흑혈마검이 그린 궤적을 따라 화염의 칼날이 일었다.

폭풍처럼 쏟아져 나가는 구중마검세였다. 초절정 고수조차 피할 엄두를 내지 못할 무자비한 일격이었다.

언극의 대응도 눈이 부셨다.

쩌저정! 퍼어엉!

기공에는 기공이었다. 괴물 같은 창술로 검기(劍氣)를 튕겨 내더니, 뇌전과도 같은 일섬(一閃)을 찔러 들어왔다.

그 일섬을 피하지 못해 법왕검(法王劍)을 펼쳐 막았지만, 충격에 몸이 뒤로 젖혀졌다. 무서운 위력이었다.

파아악!

언극의 창이 기기묘묘하게 움직였다.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막을 수는 있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고수와 고수의 생사결에서 수 싸움은 필연이다. 그리고 그 수 싸움에선 눈 한 번 깜빡이기도 전에 세 수, 네 수를 점해야 승부가 된다.

그런 수 싸움에 능한 마동필이기에 알 수 있었다.

‘이대로는 진다.’

이백 합? 아니, 백여든아홉 합.

딱 백여든아홉 합이면 언극의 창이 자신의 심장을 꿰뚫을 것이다. 그러한 미래가 그려졌다.

‘하지만…… 흑혈마검의 힘을 받는다면.’

후우우우웅!

생각이 일자 시커먼 검신에서 구유마화가 타올랐다.

마동필이 거침없이 일검을 휘둘렀다.

‘마흔 합 안에 승기를 가져올 수 있다.’

쾅!

“헉!”

마동필이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오호, 매서운 일격이로세.”

어느새 마동필 앞에 나타난 서량이 손을 흔들었다.

“이제 구유마화를 자유자재로 쓰는군. 그래, 이 정도 무공이면 괜찮지.”

“교, 교주님?!”

“어, 안녕?”

마동필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감히 교주님께 검을…….”

“야야, 그러지 마라.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질리지도 않냐?”

서량이 웃으며 벌겋게 달아오른 손을 활짝 펼쳤다.

“괜찮아. 네가 강해지긴 했어도 상처를 입을 정도는 아니니까.”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서량의 손바닥에는 붉은 자국이 일자로 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검상(劍傷)도, 화기(火氣)에 의한 화상도 없었다.

‘대단하시구나.’

마동필은 감탄했다.

혼신을 다한 건 아니지만, 어지간한 고수 서너 명은 그 자리에서 불태워 버릴 만큼 막강한 일격이었다. 그 막강한 일격이 교주님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은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절대무공. 이것이 바로 천마(天魔)의 무공이었다.

“옛날보다 독투의 효용성이 늘었어. 대단한데?”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그렇다는데.”

“……예에.”

“독투는 상상력과 집중력이 뛰어날수록 큰 위력을 발휘하지. 하지만 넌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

상상의 적을 만들 때는 냉정함이 필수야. 나와 적의 실력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해야 제대로 된 훈련이 가능한 법이지.”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달인의 경지야. 판마정을 제외하면, 나보다도 낫겠어.”

“감당키 힘든 말씀입니다.”

“하하.”

서량이 물었다.

“언극이었냐?”

마동필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 움직임이 딱 장병(長兵)의 고수와 대결할 때의 움직임이었더랬지. 한데 너만 한 수준의 고수와 이 정도 접전을 벌일 만한 장병의 고수가 흔하겠냐?”

“아!”

“신창 언극과 수십 합을 주고받았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와 싸우고 있었던 모양이군.”

마동필은 생각했다.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강해질지 모르겠지만, 절대 교주님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따라잡힐 분도 아니지만, 평생을 노력해도 저분의 발끝이나마 따라갈 수 있을까 싶었다.

새삼 교주님의 대단함에 감탄하며, 마동필이 물었다.

“한데, 예까지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무슨 일로 오기는. 너 보러 왔지.”

“아, 예. 하명하십시오.”

“하명…… 딱히 명령을 내린답시고 올 만한 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만.”

“……죄, 죄송합니다.”

“하하, 근데 오늘은 맞아. 너한테 명령을 내릴 게 있어서 왔지.”

“아, 예.”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중원에 나갈 일이 생겼다.”

마동필의 눈이 번뜩였다.

“교주님께서 말씀이십니까?”

“어, 근데 좀 골치가 아파.”

“예?”

“호천마황단에게는 따로 명령을 내렸거든. 그래서 그네들 없이 나 혼자 나가게 생겼어.”

마동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네가 긴장 좀 해야겠다. 뭐, 항상 그래 줬지만.”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목숨으로써 교주님을 지킬 것입니다.”

“그래, 부탁 좀 한다.”

부탁을 한다.

교주님께서는 저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마동필은 새삼 이번 중원행이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느낌은 정확했다.

“이번에는 진짜 위험할 거야. 내가 직접 미끼가 되는 작전이거든.”

“미, 미끼 말씀이십니까?”

서량은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마동필에게 설명해 주었다.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그런…… 위험한 작전을…….”

“어쩌겠냐? 어지간하면 호 군사도 나한테 이런 거 안 시켜. 그 말인즉, 달리 방도가 없었다는 뜻이지.”

“그렇군요.”

“참 못된 군사지?”

마동필이 웃으며 말했다.

“못된 군사지만, 그만한 군사도 없습니다.”

“하하하!”

이것이 마동필과 진천의 차이였다.

마동필은 유연하고 진천은 강하다. 마동필 역시 진천과 같을 때가 있었지만, 그는 서량과 수도 없이 많은 사선을 건너온 전우(戰友)였다.

그래서 그를 ‘이해’하는 것이다. 서량을 이해하니, 자연 호요성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그리도 위험한 작전이라면, 그저 목숨을 다해 지켜 드리는 것밖에 할 수 없으리라.

“하면 언제 출교하실 생각이십니까?”

“이틀 뒤 석양이 질 때. 바로 그때 출발할 거다.”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아, 그리고.”

“예?”

서량이 몸을 돌렸다.

“혹시 모르니까,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 둬라.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더라.”

“…….”

“나도 많이 먹어 두려고.”

* * *

“예?”

여강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도요?”

“응, 너도.”

“……전 남아서 수련하면 안 됩니까?”

“응, 안 돼.”

“이제야 가닥을 잡았는데요?”

“응, 내 알 바 아니다.”

여강휘가 투덜거렸다.

“느닷없이 오셔서 이러기 있습니까?”

“너를 데리고 가야 궁주께서도 위험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실 거 아니냐.”

여강휘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많이 위험한 모양입니다.”

“많이 위험하지. 어지간하면 내가 이런 말 안 하잖아?”

“그건…… 그렇지요.”

여강휘가 입맛을 다셨다.

“교주님께서 위험하다고 하시니 갑자기 으슬으슬해집니다. 하산하자마자 대차게 싸우는 거 아닙니까?”

“그럴 일은 없어. 어쨌든 남부는 우리 거니까. 다만…….”

서량이 눈을 빛냈다.

“전선(戰線)을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렇군요.”

“음식을 먹는 족족 독이 섞여 있을 수도 있고, 자려고 들 때마다 비수가 날아올 수도 있다.

친절하게 웃으며 다가온 양민이 느닷없이 살수로 돌변할 수도 있고, 살수인 것 같아서 죽인 사람이 죄 없는 양민일 수도 있지.”

“…….”

“우린 그런 판으로 가는 거다.”

“적에게 존재를 알릴 생각이십니까?”

“일부러 알릴 생각은 없어. 수상하게 여길 테니까. 하지만, 알아서 알게 되겠지.”

여강휘의 얼굴에 진지함이 깃들었다.

“아버지께 미리 연락은 드렸습니까?”

“여기로 오기 전에 연통을 보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빙궁의 병력을 파견해 달라고. 다만, 적의 시선을 피해서 중원으로 들어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거다.”

“그렇겠군요. 그 말씀은 즉…….”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

여강휘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교주님께서 죽어도 전쟁이 발발하겠지요.”

“그렇겠지. 하지만 내가 죽으면 전쟁을 감수할 만하지, 저쪽에서는.”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여강휘가 눈을 빛냈다.

“또 누가 함께 갑니까?”

“동필이랑 호왕. 금호는 모르겠다. 한번 물어나 보려고.”

“아, 예.”

“그 외에 따로 지시한 놈들도 있어. 그놈들은 이미 하산했다.”

“상당히 갑작스럽긴 합니다만…….”

“갑작스럽지.”

“뭐,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슬슬 실전을 뛸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죽을 준비는 됐나?”

여강휘가 미소를 지었다.

“안 됐습니다. 그러니 살 겁니다.”

서량이 몸을 돌렸다.

“이틀 뒤 저녁에 출발할 거다. 밥 든든하게 먹어 둬.”

“아! 그런데, 누구랑 만나실 생각이십니까?”

서량이 걸음을 멈추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강휘를 보는 그의 눈에 은은한 흥분이 일었다.

“담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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