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화. 운명이 부르다 (1)
우우우우웅.
운공조식에 들어간 이군성의 얼굴은 몹시 차분해 보였다.
얼굴도, 몸도 차분하지만 마기는 그렇지 않았다. 노을처럼 타오르는 마기가 연신 꿈틀거렸다. 당장이라도 다음 단계로 진입하려는 듯 잔뜩 흥분한 것이 느껴졌다.
무담은 무뚝뚝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준비는 다 되었는데.’
일대일 교습에 들어가기 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단한 성장세였다.
이군성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신교의 대호법이 단독으로 가르침을 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애초에 단련을 설렁설렁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차기 대호법으로서의 책임감이 그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재능은 차고도 넘친다. 단순한 무재(武才)로서는 마 호위보다도 뛰어나. 그러나…….’
마동필이 그 젊은 나이에 극마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교주님 덕분이다.
교주님께서 직접 창안하신 구유마공을 전수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마동필은 구유마공을 익히기 전에도 강했다. 그 연배에 구파 장문인급 무력을 손에 거머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 정도면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마동필 혼자였다면, 스승이 교주님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초절정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극마에 올랐다.
‘유연해진 것이다.’
무담은 과거 교주님을 만나기 전의 마동필을 기억했다.
마동필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딱딱한 마인이었다. 그 고지식함은 어떤 의미로는 호법 무사로서 타고난 것이었다.
하지만 교주님께서는 그 고지식함을 무너트렸다. 유연함을 강조했고, 창의성을 살리길 원했다. 노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니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런 식의 가르침을 받는다 하여 모두가 마 호위처럼 강해지는 건 아니겠지.’
이군성을 보는 무담의 눈이 깊어졌다.
‘마 호위는 자신의 천성과 줏대를 지니고서도 교주님을 닮아 가고 있었다.’
그렇다.
마동필의 무도(武道)는, 삶의 방식은 교주님과 판박이였다.
밥 먹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무(武)와 하나가 되었다.
말하자면 무생일체(武生一體)다. 의식하지 않아도 걸음걸음이, 손을 드는 동작 하나하나 전부가 무공의 연성이요, 깨달음의 구현이었다.
‘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또한,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방법도 아니다. 그러한 방식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대 그리해선 안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즉, 마동필은 누구보다도 지독하게 노력했고, 노력의 결과를 배가시켜 줄 스승을 만났으며,
성장하는 와중에도 또 다른 변화를 위해 끊임없는 관찰과 실험을 반복했고, 심지어 그 방법이 그 자신에게 최선으로 들어맞기까지 했다.
거기에 교주님과 함께 헤쳐 온 미칠 듯한 아수라장은 화룡점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 조장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마동필과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노력을 한다고 그처럼 빠른 성장세를 보일 수는 없다.
‘깨달음은 충분해. 단련도, 마음가짐도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무담의 얼굴에 곤란함이 어렸다.
‘하나만 더 얹으면 될 텐데.’
극마란 궁극의 경지다. 극마를 벗어난 초마(超魔), 즉 신화경에 드는 것은 말 그대로 입신(入神)의 경지이니 마공의 궁극은 극마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군성은 극마에 오를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극마지도(極魔之道)를 거닌 무담은 알 수 있었다. 이군성은 준비가 된 사람이지만, 근시일 내에 극마에 오르긴 힘들다는 것을.
말로도, 글로도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의 한 조각. 천기(天氣)의 균열 속, 찬연한 빛에 물든 무언가를 거머쥐어야만 극마가 열린다.
그리고 무담은 그것을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몰아치는 것은 아닌지.’
그때였다.
‘음?’
무겁고도 신비로운, 위엄 넘치면서도 유연한 기도가 느껴졌다.
무담이 재빨리 등을 돌렸다.
저 멀리서 서량이 걸어오고 있었다.
스륵.
서둘러 서량 앞으로 달려간 그가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대호법 무담이 교주님을 뵙습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한창 바쁠 텐데 내가 괜히 온 건 아닌가 싶군.”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교주님께선 언제라도, 어디에라도 이를 수 있는 분입니다. 감당키 힘든 말씀이니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자네는 여전하구먼.”
“송구하옵니다.”
“송구는 무슨.”
서량이 멀리 떨어진 이군성을 바라보았다.
“후계자 수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나?”
“다행히 잘 따라와 주고 있습니다.”
“그런 것 같군. 마기가 저리 날 서 있기도 쉽지 않은데.”
“예에.”
“어디 보자…… 음? 호오, 단련이 아주 잘 되어 있는데?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저리 연마시켜 놓다니, 무슨 요술을 부린 건가?”
무담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일 조장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듯합니다.”
“그렇기야 하겠지. 대호법이 직접 가르침을 내리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도 없을 거고.”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이군성을 보니 마동필이 생각난 것이다.
“일 조장도 벽에 걸렸군.”
“그렇습니다.”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어. 생지옥 같겠지.
톡 치면 부서질 것 같고, 한달음에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두들겨 보면 손만 아프고, 뛰어오르면 만장 높이의 까마득한 산봉우리처럼 느껴질 거야.”
무담도 전적으로 동감했다.
어떤 방식으로 두들겨도 열리지 않는 문.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르기에 어떤 식으로 뛰어넘으라고 조언조차 해 줄 수 없는 문.
그래서 극마를 선택받은 자들의 경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극마의 코앞까지 도달했으면서도 평생을 그 자리에서 맴도는 사람도 많았다. 어떤 자들은 절망하여 미쳐 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일 조장은 극마에 올라갈 수 있을 거야. 느껴져, 그 향기가. 다급함은 느끼지만 차분해야 한다는 걸 스스로도 아는 것 같아.”
무담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그것이 보이십니까?”
“보인다기보다는 느껴지는 거지. 저 마기를 보게.
당장이라도 탈바꿈하려고 난리를 치고 있지만, 와중에 냉정함은 잃지 않았어. 그것이 곧 일 조장의 성격이요, 마음이겠지.”
“……!”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분명 극마에 오를 거야.”
무담이 고개를 조아리며 존경심을 표했다.
기(氣)로 감정을 읽고 마음을 읽는 걸 넘어, 사고까지도 분석해 내는 경지다. 지금의 무담으로서는 요원한 경지였다.
‘가히 신인(神人)이시구나.’
이립이 채 안 된 연배에 천마(天魔)의 칭호를 얻으신 분이었다. 새삼 교주님의 광대무변한 무공 경지에 존경심이 솟구쳤다.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물론이옵니다.”
“좀 걷지.”
두 사람이 오솔길을 걸었다.
잘 정비된 길이었다. 운치가 제법 좋았다.
“나, 중원에 나가야 할 것 같네.”
무담이 놀라서 서량을 보았다.
서량은 옥새에 관한 얘기, 호요성의 작전 얘기를 해 주었다.
“해서 직접 가야 할 것 같네.”
“…….”
서량이 멋쩍은 듯 웃었다.
“우리 대호법 심경이 복잡해질 것 같아서 직접 왔다네. 말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교주가 직접 결정한 사안이다. 통보였지만 이렇게 말씀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하면 호천마황단은 이례적으로 이번 작전의 주역이 되는 것이로군요.”
“그렇지.”
무담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일었다.
“과연 그들이 잘 해낼 수 있겠습니까?”
호천마황단의 실력은 무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닌 말로, 구대마존 몇 명을 상대해도 부족함이 없을 최강의 부대가 바로 마황단이었다.
그러나 수성전(守城戰)과 침투전(浸透戰)은 다르다. 제아무리 마황단이라도 침투전에까지 능할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잘 해낼 거야. 못할 것 같았다면 주역으로 세우지도 않았어. 차라리 내가 직접 가서 옥새를 빼앗고 말았겠지.”
“물론 그렇습니다만.”
“문제는 나지. 설령 지금의 내가 당적할 이 없는 천하제일인이라 해도 위험한 건 매한가지야.
스승님처럼 압도적으로 강하지 않는 한, 머릿수로 밀고 들어오면 답이 없거든.”
“…….”
“그래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데려가려고 하네.”
“그러시군요.”
“그 사람 중에 자네도 껴 있었으면 싶었네.”
무담은 깜짝 놀라 서량을 보았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 전에 말했잖나. 작정하고 날뛰어야 할 때 함께 세상에 나가 인생을 불태워 보자고.”
“교, 교주님.”
“비록 전면전은 아니지만, 까딱 잘못하면 대규모 접전이 일어날 수도 있네. 그래서 자네도 함께하는 건 어떤가 싶었지.”
서량이 걸음을 멈추었다.
무담 역시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일 조장을 보니, 차마 같이 가자고 말할 수가 없구먼.
저 정도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옆에서 허튼 길로 빠지지 않도록 잡아 줄 사람이 필요해.”
무담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서량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 위험한 길을 몇몇 사람만 딸려 보내 드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량의 말마따나 이군성은 중요한 고비에 서 있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 괴상한 길로 빠져 버리면 극마에 이르는 기간이 더더욱 길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교주님.”
“음?”
“본교의 어떤 마인의 사정도 교주님의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담의 눈이 강렬한 광채를 발했다.
“나아가 일 조장은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그런 인재가 아니었다면 후계자로도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랬겠지.”
“마인으로서 중원에 나가 신교의 위엄을 한 자락이라도 보여 준다면, 그것은 참으로 두근거리는 일일 것입니다.
하나, 저는 저의 욕망만을 위해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저는 아직도 대호법이기 때문입니다.”
“…….”
“본교의 가장 높고 성스러운 분을 지키는 것, 그것이 저의 일입니다. 그간 그 일을 여러 사람에게 맡겼지만, 이런 사태에서까지 남에게 맡길 순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가?”
“적의 칼날이 교주님께 닿을 순 없을 것입니다. 이 늙은이의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무담이 무릎을 꿇었다.
“감히 교주님께 간청드립니다. 부디 제가 대호법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중원행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대호법.”
“예, 교주님.”
“난 담사영을 만날 생각이네.”
“……!”
“그 독사 같은 놈이 어떤 흉계를 꾸며 놓을지 몰라. 어쩌면 잘됐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적의 수괴가 제 발로 찾아왔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겠다 날뛸지 모른단 말이야.”
“…….”
“죽으면 안 되네.”
“……?!”
“자네도 죽어선 안 돼. 자네 손으로 직접 대호법의 직위를 후계자의 어깨에 얹어 주어야 해. 그 일이 끝나기 전에 죽는 것을 허락할 수 없네.”
“……교주님.”
“나를 살리고, 자네도 살게. 이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다면 절대 자네를 데리고 가지 않을 거야.”
무담의 눈이 일렁였다.
참으로 감당키 힘든 분이었다. 당신을 지켜 달라 말씀하시면서, 호위무사로서 목숨을 걸지 말라고 하신다.
어려운 요청이었다. 이 위험한 중원행에서 자신하기 힘든 주문이었다.
하지만 그 말씀이, 어찌 이 늙은 신하의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가.
“언감생심 어찌 교주님의 명령을 어길 수 있겠사옵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 끝까지 교주님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나아가, 후계자에게 대호법의 직위를 건네기 전까지 절대로 죽지 아니하겠나이다.”
서량이 웃으며 무담을 일으켜 세웠다.
“함께 가세. 그리고 함께 돌아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