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90화 (489/774)

490화. 운명이 부르다 (2)

“향이 좋군.”

“다행입니다.”

“향은 좋은데 뒷맛이 영 텁텁해.”

“아, 하면 다른 술을…….”

“이번 일이 딱 이 술과 같구먼.”

“…….”

“자네도 알다시피 황궁은 힘이 없네. 내 황궁의 작은 주인으로서 가진 힘은, 제국에 충성하는 몇몇 이들의 충심과 나 자신의 핏줄뿐이었지.”

“…….”

“말하자면 정당성이요, 명분이었단 말일세. 군웅할거(群雄割據)의 난세라지만, 나만큼이나 큰 명분을 가진 사람은 없어. 단 한 명만 빼고.”

“…….”

“그 한 명이 적의 손에 들어가 버렸군. 향 좋은 술이라 한 잔 마셔 볼까 싶어 따랐는데, 막상 삼키고 나니 뒷맛이 영 씁쓸해져 버렸어. 그리 생각하지 않나?”

“전하.”

“나는 자네들의 능력을 아네. 자네들은 그리 쉽게 당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한데도 이런 결정적인 일에는 영 맥을 못 추는구먼.

예전, 그 전대 마교주 때도 그러했지.”

담사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대 마교주, 즉 이천상을 말함이다. 주천양은 지금 담사영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주천양의 눈이 차가워졌다.

“알겠나? 나는 그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마신(魔神)의 힘을 직접 본 사람이네.

내 무공에 그리 큰 관심이 없어 잘은 모르네만, 그의 힘이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막강하다는 건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네.”

“……!”

“그런데도 난 마교가 아닌 자네들을 선택했어. 끝까지 자네들과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

“하나 이런 식이어서는 곤란해. 병 든 늙은이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실력으로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설마, 내 말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고개를 조아리는 담사영.

그의 눈이 차갑게 번들거리고 있음을 주천양은 보지 못했다.

‘피곤하게 하는군.’

마교가 아닌 우리를 선택했다? 헛소리!

애초에 주천양도 알고 있었다. 편을 바꾸게 되면 신변에 위협이 있을 것이라는 걸. 게다가 본인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자신 덕분이었다.

결국 자신의 힘이 황태자 본인의 힘이다. 그걸 아니 감히 다른 사람과 손잡을 수가 없었던 것뿐이다.

‘딱 맞긴 하다만.’

그는 중원을 평정한 후 황태자를 꼭두각시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주천양은 꼭두각시로서 제격인 사람이었다.

담사영은 주천양의 불평을 참아 내기로 했다. 마음 같아선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었지만, 대계(大計)를 위해선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팔다리를 분지르건 혓바닥을 뽑아내건, 중원을 평정한 후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

‘다만, 그 말은 맞아.’

병든 늙은이 하나 지키지 못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설마하니 놈들이 황제를 납치할 생각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 병력을 파견했지만, 설마 싶었던 생각을 실제로 저질러 버릴 줄은 몰랐다.

‘아니, 애초에 황제가 병에 걸려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부터가 놀랍군.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장강 이북에도 마교도는 많다. 숨겨진 비밀 지부에서 온갖 정보들을 끌어모으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깊게 파고들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담사영은 자신에게 있어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았다.

‘정보!’

그렇다. 정보력이 부족했다.

정확히 말하면, 정보력이 부족하지는 않다. 이미 장강 이북 전체에 헤아릴 수 없는 정보원들을 깔아 두지 않았나.

그 거미줄 같은 정보망을 피해 원하는 걸 쏙쏙 빼 간 상대가 대단한 것이다. 이쪽 정보력이 약하다고 폄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이렇다면, 더 강한 정보력을 구축하는 것도 맞다.

담사영의 눈이 번뜩였다.

‘공야치. 네놈이 그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마교주 놈에게 붙은 걸 알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하오문 하나는 철저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이번 황제 납치 사건에 하오문이 끼지는 않았다.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오문을 주시하느라 다른 쪽으로 신경을 못 쓴 것이다.

‘안 되겠군. 놈을 이용해 마교를 뒤흔들려고 살려 두고 있었건만, 이렇게 된 이상 완전히 뿌리를 뽑아 버려야겠어.’

그가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한 잔 받게.”

“예? 아, 예.”

담사영이 공손하게 술을 받았다.

주천양이 한숨을 쉬었다.

“잠깐 욱해서 심한 소리를 하기는 했네만, 여전히 자네들을 믿네. 훗날 세워질 제국의 방벽으로서, 다시는 이와 같은 실수를 해선 아니 되네.”

“전하의 성심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차후, 결코 이런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나이다.”

“자네를 믿네.”

두 사람이 말없이 술을 마셨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제 저쪽에서 어찌 나올 것 같은가?”

담사영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저들은 선황(先皇)을 납치했습니다. 나름의 명분을 챙기겠다는 의도겠으나, 옥새 없이는 그것이 가능할 리 없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게다가 그 늙은이, 혈고에 중독되어 오늘내일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담사영은 주천양에게 굳이 많은 걸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마교에는 혈고의 해독법이 존재한다.’

황제의 혈고를 해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장 생명력이 강한 놈이었고 주술적인 대법도 시행되었으니, 설령 해독법을 알아도 중간에 죽을 확률이 높았다.

담사영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방심해선 안 돼. 서량, 그놈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 대부분을 해치운 놈이다. 황제를 납치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정상으로 돌려 놓을 거야.’

게다가 황제는 용신일원공(龍神一原功)을 익혔다.

용신일원공은 양생의 극치요, 상생의 총화다. 그것을 익히면 다른 무공을 연성하지 못하는 대신, 육신이 항상 최적의 상태로 가동된다.

선황 주청은 용신일원공을 사십 년이 넘도록 익혔다. 혈고만 잡아 뜯을 수 있다면 자체적으로 회복이 가능할 수 있다.

‘일단은 선황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야 해.’

그렇다면?

‘어떻게든 옥새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주청이 옥새를 어디에 숨겨 두었느냐다.

황궁 전체를 샅샅이 뒤져 봤지만 옥새는 찾지 못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도 옥새를 찾기 위해 수많은 무인이 동원되었다.

‘이 정도로 찾았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황궁에는 옥새가 없다고 봐도 좋아.’

일단은 병력을 주둔시켜 놓은 뒤, 다른 곳을 뒤져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문제는 어디에 숨겨 놨는지 도통 가늠이 되질 않는다는 것이지만.

주천양이 물었다.

“그렇다면 슬슬 밀어붙여도 되지 않겠는가.”

“예?”

“늙은이를 데려가긴 했지만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일세. 설령 살아 있다 한들 옥새 없이는 명분도 세우기 힘들어. 그렇다면 놈들을 선황 납치범으로 몰아가 여론을 뒤집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일 성싶네.”

담사영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만에 하나라도 선황이 깨어나고, 그런 선황이 마교와 손을 잡았다면 더더욱 골치가 아파질 수 있습니다.”

“골치야 아파질 수 있겠다만,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일이야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잖은가?”

“그 말씀은……?”

“내 듣기로, 마교에는 사람의 정신을 현혹하는 몹쓸 사술이학(邪術異學)이 많다고 알고 있네.

혹여 늙은이가 마교와 손을 잡고 전면으로 나선다 한들, 마교의 사술에 걸려 꼭두각시가 되었다고 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순간 담사영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군.’

이건 담사영도 생각하지 못했던 바였다.

주천양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만일 그리되면 천마신교는 진짜 역적으로 몰리게 되네. 백성들은 단순하지.

제아무리 돈을 풀고 민심을 잡아도, 마음에 의심의 싹 하나만 틔워 주면 금세 돌아설 것이네. 이유인즉, 평생 받기만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야.”

“…….”

“민심은 대국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일세. 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네. 민심이란 것 자체가 파도를 타기 때문이지.”

담사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천양을 보았다.

‘똑똑하군.’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구석을 짚었다. 그릇은 작아도 보고 들은 것이 한둘은 아니다. 그냥 바보는 아니라는 것이다.

담사영이 읍했다.

“전하의 말씀이 실로 옳습니다. 하나,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신중해서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

“다만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민심을 뒤집을 방법은 분명히 있다고 사료됩니다. 적측의 반응과 행동 양상을 점검한 후, 괜찮다고 생각되는 그때 밀어붙여 보겠습니다.”

주천양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의 무수히 많은 장점 중 하나가 인내심이고, 사려 깊음이지. 자네를 믿네.”

“영광이옵니다.”

“한 잔 받게.”

“예.”

공손하게 술을 받아 마신 담사영의 눈이 태양처럼 이글거렸다.

‘선황이 살아 있다는 전제하에, 놈들은 분명 옥새를 노리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놈들의 병력 이동에 특기할 만한 사항이 보이면, 바로 그때가 움직여야 할 때다.’

* * *

“조여 오고 있다.”

“예?”

“담사영이 본문을 조여 오고 있어.”

음상단주는 깜짝 놀랐다.

“어,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널찍한 방 안, 헤아릴 수 없는 문서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몇 날 며칠 동안 문서들을 확인한 공야치가 내린 결론이었다.

“교주님께선 황제 납치에 성공하셨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빠트린 상태야. 바로 옥새지.”

“그렇습니다.”

“의천맹이라고 그걸 모르진 않을 거야. 애초에 황제는 신교와 연이 없었네. 그렇다면 이 옥새를 누가 쥐는가. 이것이 관건이야.”

“그렇지요.”

“생각해 보게. 천마신교는 반드시 그 옥새를 찾으러 갈 거야. 황제가 회복했으니, 옥새만 찾으면 이 전쟁의 정당성을 가져갈 수 있어. 하나…….”

“…….”

“옥새를 찾기 전에, 황제가 납치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이야. 담사영은 간사한 자이지만 허를 찔렸을 때의 대처도 눈부시지.

분명 정보력의 부족을 통감하고 있을 걸세.”

“그렇다면 본문을 없애는 것보다는 불러들이는 쪽이…….”

“천만에. 담사영에게 있어 본문은 믿을 수 없는 정보 단체일 뿐이네.

다만 뿌리를 뽑기도 뭐하고, 허위 정보를 유포하여 신교를 혼란케 할 방도 중 하나로 놔두었을 확률이 커.”

“…….”

“하지만 사정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가지치기에 들어가겠지. 확실하지 않은 힘은 다 배제하고 시작할 거야.”

“……그중 하나가 바로 본문이로군요.”

“그것도 가장 빨리 없애야 할 가지라고 할 수 있네. 게다가 이 문서들을 보게.”

공야치의 눈이 빛났다.

“산동, 하북, 산서의 정보원들이 정보를 뽑아내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네.

담사영이 정보 통제를 시작했다는 증거야. 그리고 그 움직임은 곧 장강 이북 전체로 확산되겠지.”

“그, 그럼……?”

“역추적일세. 담사영이 나를 추적하고 있어.”

“헉! 그렇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큰일이지. 큰일이기는 한데…….”

공야치의 눈이 깊어졌다.

음상단주가 결의에 차 말했다.

“일단 임시 거처의 주요 문서들부터 챙기겠습니다. 즉시 하남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 기다려.”

“예?”

“이틀만 기다리세. 교주님께서 언질을 주셨으니.”

“하, 하지만 소문주님!”

“내가 아는 교주님이라면 때를 놓치지 않으실 거야. 나는 교주님을 믿네.”

그때였다.

하오문도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문주님. 신교에서 서찰이 왔습니다!”

“어서 이리 주거라!”

재빨리 서신을 확인한 공야치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역시!”

공야치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간의 피로가 싹 날아간 표정이었다.

“음상단주. 사천과 감숙에 퍼진 정보원 전부를 하북으로 돌리게.”

“예?”

“교주님께서 움직이셨네. 중원으로 오고 계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