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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91화 (490/774)

491화. 운명이 부르다 (3)

“성신(聖神)께서 출발하셨습니다! 모두 예를 갖추십시오!”

천마신교의 내성과 외성을 잇는 대성문이 개방되었다.

평소 수많은 마차와 마인들이 오가는 통로였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곳을 오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거대한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두웅! 두웅!

북소리가 컸다.

내성 안쪽에서 울리는 북소리가 외성 중앙까지 들릴 정도였다. 강인한 내공을 담은 북소리, 그것은 전장의 북소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웅장함을 담고 있었다.

놀랍게도, 내외의 업무를 담당하던 모든 마인이 대로 좌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쿵. 쿵.

대지를 울리는 발걸음.

그 발걸음 소리가 내성 끝을 지나 외성에 다다랐을 때쯤, 이름 모를 마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주님께서 납십니다!”

동시에 마인들이 격동을 담아 외쳤다.

“군림성교(君臨聖敎)! 천마불사(天魔不死)!”

무릎을 꿇고 있던 마인들이 그대로 고개를 조아렸다.

“미욱한 마(魔)의 자식들이 성신을 알현하나이다!”

신교 전체가 떠들썩해질 정도로 우렁찬 외침이었다.

뜨거운 마음, 경애와 신심이 깃든 목소리였다. 불꽃 같은 외침이 한마음으로 모여 신교 십대천마(十代天魔)의 강림을 환영했다.

후우우웅!

마황거(魔皇車)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마기가 폭풍처럼 사위를 휩쓸었다.

마인들의 얼굴에 환희가 들어찼다.

마도 무림 역사상 다시없을 천하제일마공 군림마황기가 번져 나왔다.

새로운 천마를 맞이하여, 모든 마인이 처음으로 십대천마의 존재감을 느끼는 자리였다. 그 기파는 실로 무시무시한 위엄을 담고 있었다.

존경스러운 마기였다. 너무나도 높고 높아 감히 바라볼 생각조차 들지 않는 절대적 힘의 확산이었다.

이천상과는 다르다.

이천상의 마기는 애초에 인간이 담을 수 없는 마기였다. 온전한 선천의 영역에 거하고 있었기에, 온갖 환청과 환각까지도 유발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신(神)적인 능력의 증명이었고,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초월자의 고뇌와 군림의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서량의 마기는 어떠한가.

서량이 발산하는 군림마황기는 한없이 높은 산이요, 산정(山頂)을 뒤덮은 먹구름이었다. 위엄이었고 오만이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파고들어 불과 벼락을 일으키는, 존재할 리 없는 마운(魔雲)으로 만인을 뒤덮었다.

이천상의 마기는 하늘이었다.

서량의 마기는 지옥이었다.

홀로 고고한 자의 후예는 아직 입신(入神)에 들지 못했으나, 그래서 더더욱 무섭다.

언제든 천하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자신감이 마인들의 심장을 터질 듯 두근거리게 했다.

쿵. 쿵.

거대한 마황거, 그 선두에 선 것은 대자연이 만들어 내지 못한 지옥 칼산의 대왕이었다.

주인의 피처럼 붉은 마기가 성장하니, 그 권속인 악마의 몸뚱이도 성장했다.

천근에 이르렀던 동체가 전체적으로 조금 커진 느낌이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거호(巨虎)는 엄청난 무게감을 발산하면서도 무척이나 날렵해 보였다.

붉은 눈의 호왕이었다. 천하 괴수의 정점이요, 진정한 백수지왕(百獸之王)이었다.

신교의 주인이 키우는 두 마리의 영수 중 한 마리가, 더 오를 데 없는 천마의 위엄을 끝 간 데 없이 증폭시켰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흉포한 성정은 드러나지 않았다.

내공 고수가 기를 갈무리한 것처럼, 팔방으로 비산하는 흉성을 다스리고 신비로운 신수(神獸)로서의 모습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호왕의 뒤를 따르는 천하 명마들 역시 오연한 자태로 이동하고 있었다.

잘 훈련된 명마는 주인을 믿고 주저 없이 범에게 뛰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명마들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진정 호왕을 두렵지 않은 존재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명마들 위에는 각기 무담, 마동필, 여강휘 등이 타고 있었다.

강한 전력이었다.

셋 중 가장 약한 여강휘만 해도 구파 장문인이 부럽지 않은 무공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마동필은 극마에 이른 초고수였고, 무담은 극마의 경지에서 이미 수십 년을 거닌 극강의 고수였다.

이들 하나하나가 군단급 무력을 갖추었다. 교주의 호위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꼭 숫자가 많다고 해서 강한 게 아님을 증명하듯, 세 사람의 기세 역시 첨예하게 날이 서 있었다.

나아가 마황거 후미에는 마왕령이 뒤따르고 있었다. 신교의 주인과 함께 나설 이들은 아니지만, 세상을 향한 신의 일 보(一步)와 함께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나아갔다. 신교의 신이.

당대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 염라마제 서량의 중원행이었다.

* * *

“쓰으벌, 오그라들어서 죽을 뻔했다.”

외성을 나서자마자 마황거에서 내려 산 밑으로 걸어 내려간 서량의 첫 대사는 장엄한 분위기에 물들었던 일행의 뒤통수를 격하게 날렸다.

무담이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교인 모두가 교주님의 행차에 전율을 금치 못했습니다. 교주님께선 교인들이 한 번이라도 대면하길 바라 마지않는 분이니, 너무 그리…….”

“알아, 알아. 싫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고.”

서량이 멋쩍게 웃었다.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겠어. 신교의 주인으로서 자각은 있지만, 천성이 이래서 그런지 좀 간지럽긴 하더라고.”

“예에.”

어지간해서는 고쳐지지 않을 성정이었다.

옛날에는 이런 교주님의 모습이 답답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교주가 떠받듦을 좋아하진 않는다. 흉포한 교주가 있으면 무심한 교주도 있고, 허영 가득한 교주가 있으면 담백한 교주도 있는 법이다.

교주의 성정이 어떠하든 그저 교주이니 떠받들 뿐이다. 무담은 서량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마황거도 돌려보냈겠다 슬슬 속도를 올려 볼까?”

“알겠습니다.”

서량이 호왕의 등에 올라탔다.

그때, 여강휘가 물었다.

“한데 교주님.”

“엉?”

“전에 말씀하셨죠? 굳이 적에게 움직임을 알리진 않을 거라고요.”

“그랬지.”

여강휘가 떨떠름한 얼굴로 호왕을 보았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것 같은데요.”

천근이 훌쩍 넘어가는 거대한 호왕에게 맞춤형 등자까지 걸었다. 심지어 호왕의 옆구리에는 천마도까지 걸려 있었다.

무늬만 괴물 호랑이지 전마(戰馬)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그 외양은 어디까지나 거대한 호랑이다.

염라마제가 끌고 다니는 두 영수, 염왕이수에 대한 소문은 중원 각지에 퍼져 있었다.

게다가 서량 역시 특유의 붉은 전포를 걸치고 있으니, 소문이 안 날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굳이 알릴 필요는 없지만 숨어서 갈 생각도 없어. 그래서 말했잖아? 장강을 넘으면 미칠 듯한 공격이 시작될 거라고.”

“그렇긴 합니다만.”

“괜찮아. 우리의 역할은 미끼야. 미끼임과 동시에, 유사시에는 강력한 전력으로서 적을 격파할 전투 부대의 역할까지 겸하는 거지.”

“그렇군요.”

“긴장해. 이미 전장에 발을 들였다고 생각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량이 후미의 마차를 힐끔거렸다.

“동필이는 시간 날 때마다 영감님 몸 좀 살펴 드리고.”

“예, 교주님.”

그리 크진 않지만 단단한 마차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 마차는 과거 살왕마차를 축소함과 동시에 방호력은 몇 배나 끌어 올린 철갑마차였다.

화포를 맞아도 부서지지 않는 것은 물론, 완충 자재들도 충분히 썼으니 내부까지 충격이 전달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 마차 안에는 현천진인과 주서윤이 있었다.

‘굳이 따라올 필요는 없었는데.’

이번 중원행에 현천진인이 동반하는 것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서윤까지 따라오는 것은 예정에 없었다. 너무나도 위험한 길이기에 서량은 철저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천진인이 주서윤의 편을 들어 주었다.

- 허허, 뭐 어떤가? 사람은 세상에 나가 봐야 클 수 있다네. 그 길이 위험천만한 길이라도 말이야.

게다가 천하제일마인 자네와 극강의 고수들이 보호해 주고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천하 어떤 고수라도 방심하면 죽는 게 이 바닥이다. 위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현천진인이라고 그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까지 말한 걸 보면, 나름의 생각이 있을 거라고 보았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목숨도 얼마 남지 않은 양반이.’

적송의 타계 후, 현천진인의 몸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 거동이 불편한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얼굴 전체에 병색이 완연해졌다고 할까.

의술로 잡을 수 있는 병마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현천진인 역시 아무런 걱정 없이 서량과 함께할 수 있었으리라.

죽음이 내정된 자에게는 두려울 게 없을 테니까.

“자, 슬슬 달려 보자.”

“예!”

투우웅!

호왕의 걸음은 경쾌했다.

무게가 많이 나가니 뛸 때마다 땅이 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몸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날렵하고 조용했다.

호왕의 뒤를 무담과 여강휘가 말을 몰아 따랐고, 그 뒤의 사두마차는 마동필이 몰았다.

그렇게 일행은 관도를 따라 그대로 북쪽으로 향했다.

사람 많은 관도이니 이 특색 넘치는 일행의 모습을 모두가 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호랑이와 그 위에 올라탄 위엄 넘치는 마인의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두두두두.

일행의 북상 속도는 몹시 빨랐다.

호왕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말들 역시 영약을 먹여 키운 일세의 명마였다. 순발력과 체력 면에서 따라올 말이 없었다. 가히 준 영물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허어, 빠르구나.”

창밖의 광경이 제대로 볼 새도 없이 휙휙 지나갔다. 천하 어떤 마차보다도 빨랐다.

그러면서도 마차 안으로 전달되는 충격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바퀴와 차체 사이사이, 명장(名匠)들이 만든 완충재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불편하시죠? 좀 누워 계세요.”

주서윤의 말에 현천진인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죽으면 오랫동안 누워 있을 것이다. 앉을 수 있을 때 많이 앉아 둬야지.”

주서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현천진인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섭섭하냐?”

“…….”

“허허! 이놈아,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죽음은 필연이다. 나도, 너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느니라. 내 이날 이때까지 산 것만으로도 원시천존의 축복이 아니겠느냐?”

“…….”

“다만 이별의 순간에 찾아오는 슬픔은 어쩔 수 없겠지. 죽으면 질리도록 누울 육신처럼, 너 역시 내가 죽고 나서 슬퍼해도 늦지 않다.”

“……네.”

“웃자. 한평생 웃고 떠나도 모자랄 인생이니라. 나는 네가 많이 웃었으면 좋겠구나.”

주서윤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무심한 얼굴에 새겨진 미소는 많이 어색했지만, 그래도 예뻐 보였다.

“그래, 앞으로도 그리 웃거라. 웃고 또 웃다 보면 좋은 일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네, 할아버지.”

“자, 네 사형이 열심히 달리는 동안 그간 알려 주지 못했던 후반부 구결이나 알려 주마.”

주서윤이 자세를 바로 했다.

현천진인이 편안한 표정으로 구결을 읊조렸다.

무공의 구결이라지만, 그것은 무공이 아니기도 했다. 그가 전하는 것은 깨달음이었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깨달음을, 실체로 구현해 주서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손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옆에 주서윤을 앉혀 놓고 노래를 부르듯, 시를 읊듯 깨달음을 전해 주는 현천진인의 모습은 적송의 말마따나 하늘에 오른 이의 그것과 같았다.

사흘 후, 일행이 호남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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