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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92화 (491/774)

492화. 운명이 부르다 (4)

“총군사님. 현재 호천마황단이 절강을 지나고 있다 합니다.”

“벌써?”

“예.”

호요성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숨겨진 신교 최강의 조직이라고 하더니만, 이건 뭐 무지막지하구먼.”

호천마황단은 교주님께서 출발하기 반나절 전 하산했다.

하지만 고작 반나절일 뿐이었다. 교주님께선 이제 막 호남에 진입하셨을 것이다. 한데 마황단은 벌써 복건을 뚫고 절강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입이 떡 벌어지는 속도였다. 와중에도 은신을 유지해 적측 정보원들에게 걸리지도 않았다.

저런 자들을 더 양성할 수 있다면 향후 신교의 전력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양(陽)에선 천마군이, 음(陰)에선 마황단이 날뛰기 시작하면 어떤 전쟁이라도 무섭지 않으리라.

물론 그게 쉬웠다면 진즉에 양성했겠지만.

“절강지부에 연락을 취해. 앞으로는 철혈성의 영역이니 한층 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알겠습니다.”

호요성이 작전실의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붉은 실과 푸른 실이 수도 없이 교차한 지도였다. 이러한 지도가 무려 서른 장이 넘었다.

정보, 병력 운행, 주요 인사 동행, 민심의 흐름 등을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한 지도들이었다.

하북 쪽을 보는 호요성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공야치 소문주에게도 연락을 취해. 혹시 하북 쪽으로 정보원들을 집중시켰다면, 사천은 이쪽이 맡을 테니 당분간 빼지 말라고.”

“예.”

“그리고…….”

전달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호요성이 입을 열었다.

“무색사장에게 연락해. 행여나 모습을 드러낼 상황이 생기면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과거 중원에 나간 강우경은 죽은 형을 대신해 무색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넉 달 전이었다. 홀로 피 터지는 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그리고 서량은 무색사장 강우경에게, 전대 천마 이천상과의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다고 전했다.

강우경은 의리를 알고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다.

이번 한 번의 도움이 아니라, 향후 십 년간 천마신교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의뢰비 없이 일 순위로 일을 처리해 주기로 계약을 맺었다.

십 년이 지나면, 그때부터 무색사는 자유다.

‘이렇게 또 다른 판의 시작이로군.’

호요성의 눈이 번뜩였다.

구대마존 전체가 호남 북부를 시작으로 횡으로 전선을 유지하는 중이다. 때가 되면 신교 최강의 노장들이 북상하여 적들을 섬멸할 것이다.

‘어지간해선 싸움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최고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거머쥐는 것이다. 하지만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을 완전히 섬멸해야 한다.

천마군과 함께.

‘호남을 넘어가는 순간 교주님께 온갖 파상공세가 퍼부어질 것이다. 원로들이 너무 흥분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십대천마 서량을 향한 원로들의 충성심은 구대천마 이천상을 향했던 것에 필적한다.

문제는 서량이란 존재의 강함이었다. 그는 분명 천하제일마라는 이름에 걸맞은 막강한 무력의 소유자이지만, 이천상처럼 규격 외의 강함을 손에 넣지는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주시할 것이다. 적의 동향을, 서량의 신변을.

‘…….’

그럴 때가 아니지만, 호요성은 잠시 패배감을 느꼈다.

‘마황단주 말도 맞지.’

교주를 미끼로 삼아 옥새를 탈취하려는 계획을 세우다니.

놀랍도록 파격적인 작전이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평가였다.

애초에 마도 무림의 신을 미끼로 써서 전쟁의 판도를 바꿀 물건을 가져온다는 것 자체가 군사로서 역량이 떨어진다는 걸 뜻했다.

호요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한참 부족하다고.

그래서 더더욱 이번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어야만 한다.

“제기랄, 첩첩산중이구먼. 뭐든 한 방에 정리되는 일이 없네. 일 두 번 하는 건 질색인데.”

한참 투덜거리던 호요성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근데 저놈들 이상하네.”

그는 하남과 호북을 주시했다.

특히나 호북을 주시했다. 호북은 호남과 인접한 지역으로, 적의 군세(軍勢)가 가장 집중된 지역이기도 했다.

교주님께서도 일단 호북으로 가서 적의 시선을 몽땅 잡아챌 생각이시지 않은가.

‘하남이야 그렇다 쳐도…….’

하남 숭산은 소림의 요람이요, 정파 무림의 성지다.

의천맹이 여태 그들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마음 같아선 천년을 내려온 불심의 성지를 싹 불태워 버리고 싶겠지만 봉문한 그들을 불태우기엔 명분이 서지 않는 것이다.

물론 소림 방장이 황제 납치 계획에 끼어들었다고 했으니 나름의 명분은 있었다.

말이 파문이지, 이건 거의 눈 가리고 아웅이다. 부담스럽긴 해도 못 쓸어 버릴 명분은 아니란 것이다.

‘아마 방장도 철저하게 계산했겠지. 소림에 해가 되지 않을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한 거야.

아닌 말로 적들을 죽이진 않았으니, 방장과 팔대호원의 무승들에 대한 수배로 마무리 지었겠지.’

문제는 여기였다.

“무당파는?”

소림 그리고 무당.

그들은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다.

두 문파가 합세하여 일으킨 반정회가 잠시나마 의천맹이란 거대 단체를 막아섰다는 것만 봐도 두 단체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무당은 약해졌다. 그리고 무당을 약하게 만든 것은 담사영이었다. 현천진인을 혈고로 중독시키고, 아래 배분의 도사들을 몽땅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현자 배 어른들이 혈고의 저주에서 벗어나 무당의 힘을 되찾았다고는 하나, 그것은 과거의 바름을 되찾았다는 것이지 실질적인 무력을 되찾은 건 아니었다.

즉, 무당파가 아직 건재한 것이 이상하다.

정확히 말하면, 무당파에 변고가 터졌다는 정보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게 의아하다.

“담사영은 정보력의 부족을 통감하고 있다. 그래서 즉각 하오문을 몰아치고 있는 것이겠지.

앞으로 확실하지 않은 힘은 모두 쳐내겠다는 뜻, 즉 가지치기하는 셈인데.”

담사영은 교활하다. 교활하지만 불리한 것을 즉각 버리거나 채울 머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오문을 쳐내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무당파도 쳐야 정상 아닌가?’

소림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무당은 아니다.

같은 태산북두라도 급이 있는 법. 두 문파 모두 정파 무림의 태양으로 존경받지만, 세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소림의 이름값이 무당보다도 높다고 봐야 한다.

즉, 소림을 놔두려면 무당을 녹여 버려야 하고, 무당을 살리려면 소림의 현판 정도는 부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다.

그것이 담사영의 행동 방식이었다. 지모는 성장할 수 있어도 체계가 잡힌 행동 양상은 바뀌지 않는 법,

무당파가 불에 탔다는 정보가 진즉에 이쪽으로 전해졌어야 했다.

담사영이라면, 마땅히 그리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왜……?’

호요성의 눈이 번쩍였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천하일통지계를 세우느라 밤잠을 설쳐 가며 달린 시간만 반년이 훌쩍 넘는다.

빠트린 부분이 없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생각지 못하다니?

호요성의 눈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지난 반년 동안 모아 놓은 문서들과 중원 전도들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빌어먹을.”

호요성이 다급히 비각주를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당장 교주님께 연통 넣어. 지급으로! 최대한 빨리 도달할 수 있도록!”

비각주는 호요성이 이리 다급해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서둘러 서신을 받아 챙기곤 곧장 밖으로 나갔다.

쿵!

벽을 후려친 호요성의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우리만 읽고 있는 건 아니었단 말이지?”

군사로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저질러 본 적 없는, 사소할 땐 지극히 사소하지만 문제가 커질 때는 한도 끝도 없이 커질 수 있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타성(惰性), 다른 말로는 방심이라 했다.

호요성은 마황단주 진천의 말을 떠올렸다.

- 그러나 이런 식이면 곤란하오. 당신은 본교의 총군사요. 교주님께서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없는 선에서 최선의 답을 도출해야 마땅할 것이오.

호요성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마황단주 말이 맞았다. 그는 절대 교주님이 위험에 처하도록 만들어선 안 되었다.

그간 어떤 아수라장이라도 격파해 낸 무적의 해결사였기에, 군주가 아닌 무인으로서 그를 신뢰했기에 이런 일을 벌였다.

뼈아픈 실책이었다.

“……호북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 * *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그렇구만.”

무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서량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래서 탁상공론이라는 말이 생긴 거지. 직접 와 보지 않는 이상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거야.”

호남에 진입하고, 마도칠가의 영역에서도 벗어났다. 앞으로 사나흘을 더 북상하면 호남 북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호남 북부에는 마존 둘과 천마군 하나가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일대가 첨예한 긴장감으로 가득할 것이다

문제는 이곳이었다.

관도 주변이 생각보다 훨씬 휑했다. 아직 전권(戰圈)이라 불릴 만한 곳이 아닌데도 유동 인구가 적은 것이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호왕의 무지막지한 외양에 질겁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을씨년스럽군.’

호남의 양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호왕의 털을 쥔 서량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절대 길게 끌어선 안 돼.’

태사의에 앉아서 호요성과 함께 천하일통지계를 세울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

바로 양민들의 삶이었다. 세상의 분위기였다.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 그들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피부에 와닿게 느끼지 못했었다.

‘마도천하를 위함이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든 이러한 공포 분위기가 길게 지속되어선 좋을 게 없다. 할 수 있는 최단 시간 안에 이 망할 전쟁을 끝내야 해.’

새삼스레 마음을 다잡게 된다. 서량의 두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마차 안에서 서량의 얼굴을 본 현천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서윤아.”

“네, 할아버지.”

“원전무층검결(圓轉貿層劍訣)의 구결은 다 습득했느냐?”

“네.”

“장하구나. 보통 많은 양이 아니었거늘.”

“아니에요.”

“원전검(圓轉劍)과 무층검(貿層劍)은 내가 한평생 갈고닦은 깨달음의 총화다. 그것은 단순한 무공이 아니야.

겉으로는 신선(神仙)의 도(道)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고뇌와 나만의 해답이 함께하고 있느니라.”

“네.”

“자, 너의 사형을 봐라.”

주서윤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이느냐?”

“……복잡해 보입니다.”

“내 눈에는 보인다. 네 사형의 안타까움이. 자괴감과 서글픔,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적에 대한 강한 살의가 보인다.”

“…….”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곧, 천하를 향한 안녕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네 사형의 마음이다.

천하가 네 사형을 악마들의 왕이라 부르고 있지만, 정작 네 사형은 누구보다도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구나.”

“네?”

“허허, 언젠가 네가 원전무층검을 대성하게 되는 날이 오면, 네 사형에게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게다.”

현천진인의 미소가 짙어졌다.

‘잘하고 있네.’

권좌에 앉아 세상을 볼 때는 모르는 것, 막연히 알고 있던 것을 체감하게 될 때.

바로 그때, 위정자는 본인의 정치를 어느 노선으로 잡아야 할지 확신할 수 있는 법이다.

‘자네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 장담하지.’

답답한 얼굴로 사방을 쓸어 보던 서량이 문득 현천진인을 보았다.

서량이 웃으며 물었다.

“몸은 어떠시오?”

“괜찮네. 이렇게 세상 공기를 맡으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힘이 나는 것 같아.”

“그래 보이는구려.”

“자네는 다르군.”

“무슨 말이오?”

“나는 세상에 나와 기력을 되찾았는데, 자네는 세상에 나와 혼란에 물들었단 말이지.”

서량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뭐.”

현천진인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예전에는 보지 못한 것들이 이제야 보이는가? 떽! 그런 면에서는 참 늦구먼.”

“반성하고 있소.”

“괜찮네. 기실, 그것을 볼 줄 아는 사람도 얼마 없는 판국이야. 그런 걸 생각하면 자네는 참으로 기특한 군주일세.”

서량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현천진인이 말을 이었다.

“북동쪽 백이십 리.”

“음?”

“무슨 말이오?”

“북동쪽 백이십 리에서 고수가 접근하고 있네. 제법 강한 고수가.”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백이십 리라고……?’

현천진인이 호들갑을 떨며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온몸에 살기가 득실득실하군. 나는 무서우니, 자네들이 잘 달래서 돌려보내게나.”

창의 휘장이 가려졌다.

‘백이십 리 밖의 기척을 느꼈다? 진짜로?’

서량이 북동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기감을 증폭해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많은 양민의 인기척만이 감각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허! 완전히 신선이 다 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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