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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94화 (493/774)

494화. 운명이 부르다 (6)

“다 되었소이다.”

“…….”

“어디 한번 움직여 보시오.”

“…….”

“음, 잘 되었구먼. 확실히 회복이 빠르구려. 아마 나였다 해도 성주만큼의 회복 속도를 보이긴 힘들었을 거요.”

“겸손은 사양이오.”

“겸손이라니? 그리 말하지 마시오. 내 비록 천하일통의 야망으로 이리 날뛰고 있소만, 칼 한 자루에 목숨을 건 무인이기도 하외다.”

“…….”

“굳이 내 자존심 깎아 먹으면서까지 성주 칭찬을 하지 않소. 고작 이 정도 칭찬으로 되살아날 자존심도 아니고.”

송금백은 침묵했다.

자리에 앉은 담사영이 차를 홀짝였다. 여유가 묻어 나오는 몸짓이었다.

그렇다. 그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딱 한 번, 고금제일의 마신이 천지를 뒤흔들 적을 제외하곤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았다.

여유를 잃는 순간 세상을 명징하게 보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럽군.’

송금백은 그가 부러웠다.

담사영의 능력이 부러운 게 아니었다. 그의 한결같음이 부러웠다.

이천상이라는 절대의 재앙을 맞아 가장 큰 패를 잃은 그였다.

물론 그 패 말고도 수많은 전력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의천맹만큼 공을 들여 만든 세력은 없을 것이다.

정신에 극심한 타격을 입었음이 분명한바.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약화된 전력을 재정비했고, 다시 천하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재정비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끄러미 담사영을 보던 송금백이 툭 던지듯 물었다.

“어찌하려 했소?”

“음? 무슨 말이오?”

“그 입에 올리기도 힘든 절대마신이 의천맹을 부수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찌 천하를 일통하려 했소?”

찻잔을 쥔 담사영의 손이 멈칫했다.

송금백의 눈이 깊어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궁금하더구려. 당신은 새외사궁의 이인자라는 천룡궁부터 사로잡은 뒤 중원에 진출했소.

의천맹주가 되었고, 구파일방와 오대세가 대다수를 손에 넣을 수 있었소.”

“…….”

“그뿐이 아니지. 지금은 저 무도한 놈들에게 빼앗겼지만, 마교를 증오하는 자들을 추려 강서상회까지 세웠소이다.

그 강서상회로 마교와 본성을 주시함은 물론 장강 이남의 상권을 손에 넣기에 이르렀소.”

“굳이 지난 얘기를 꺼내 드는 저의가 무엇이오?”

“게다가 황태자와도 연을 맺고 있었더군.”

“…….”

“기실, 이 정도면 당신 혼자서 새로운 제국을 건설해도 문제가 없었소이다.”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제국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만들어지겠소이까? 설령 그랬다 한들, 반쪽짜리 천하였겠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오. 당신은 저 마교의 소교, 아니 염라마제가 소교주로서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잠잠했소.

하지만 그가 움직이자 기다렸다는 듯 대응을 시작하며, 점점 야욕을 드러낸 것 아니오?”

“야욕이라니? 허허,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리 들으니 기분 좋은 말은 아니외다.”

“대체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우문(愚問)이오. 나는 언제나 천하를 바라 왔고, 지금도 천하를 바라오. 목숨이 끊어지는 그 날까지 내 눈은 천하를 향해 있을 것이오.”

“하면 저 염라마제가 중원에 나오기 전까지는 어찌 움직이지 않았소이까?”

“그 또한 우문이외다. 나는 의천맹을 손에 넣기 전부터 마교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소.

마교가 삼십 년 동안 대외 활동을 금지해 그들에 대한 정보가 극히 미미한 상황에서, 내 어찌 함부로 움직일 수 있었겠소이까?”

“정녕 그것뿐이오?”

“그게 아니면 또 무엇이 있겠소이까?”

담사영의 미소가 짙어졌다.

송금백은 그 미소에서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는 듯한 환상을 보았다.

“거국적으로 생각해 보면 나의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소이다. 성주 말마따나 만일 내가 새로운 제국을 건설한 연후에 마교까지 토벌하려 했다면,

그땐 어떻게 되었겠소?”

“…….”

“파멸했겠지. 이천상 그 무시무시한 괴수에게 말이오.”

담사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아무리 그라도 이천상이란 이름 석 자를 입에 올리는 것은 부담이었다. 그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였다.

그만큼 이천상이란 존재가 규격 외였기 때문에.

천하에 무서운 것 없는 담사영에게, 전무후무한 공포를 각인시킨 무적자였기에 그렇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내가 어땠느냐가 아니오. 현재의 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지.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행동을 보여 주고 있소이다.”

닮았다.

송금백은 생각했다. 저 용암처럼 불타오르는 욕망의 화신(化神)은, 놀랍게도 서량과 닮아 있다고.

무섭도록 닮았고, 또한 그만큼이나 달랐다.

서량 역시 마도천하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자다. 하지만 천하를 손에 넣는 방법, 천하일통에 이르기 위한 방법의 차이가 컸다.

또한 담사영은 철저하게 힘을 모아 머리를 써 천하를 쥐려 했지만 서량은 아니었다.

서량은 이미 존재하는 힘을 두고, 직접 천하를 돌아 세상이 어떤 무대인지를 시험했다.

방법은 다르다. 하지만 목적은 같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닮았다.

목적은 같다. 그러나 방법이 다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다르다.

‘마치 서로를 증오하는 쌍둥이 같다.’

서로가 서로를 만들었다. 그렇게 보였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사이이거늘.

송금백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고쳐 준 것, 고마웠소이다.”

담사영의 눈이 빛났다.

“어딜 가시오?”

“내가 아니어도 담 맹주는 충분히 제 할 일을 하는 분이오. 나는 며칠간 머리를 정리해야 할 것 같소.”

“정리라 함은?”

“내가 당신과 잡은 손을 뿌리칠까 두려운 거요?”

“물론이오.”

솔직하게도 대답한다. 송금백은 그런 담사영의 대범함에 항상 놀랐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사파의 종주요. 당신이 날 배반하지 않는 한, 나 역시 당신을 배반하지 않소.”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송 성주의 인품을 내 어찌 의심하겠소? 하나 성주도 알다시피, 세상일이라는 게 항상 순리대로 흐르진 않더이다.”

“나의 내공에는 맹주 덕에 얻은 천룡의 힘도 녹아들어 있소이다.”

“그래서 더 겁이 나오. 갈수록 힘을 불리는 그 힘은 필시 천하제일을 논할 만할 테니.”

송금백이 피식 웃었다.

“왜? 나를 확실하게 잡아 두지 못할 것 같으면, 저 무당파와 하오문처럼 본성도 쓸어 버릴 생각이오?”

“쉽게 쓸어 버릴 수 있는 조직이었다면 지금까지 놔두었겠소?”

송금백이 몸을 돌렸다.

“며칠만 쉬었다 오리다. 심신(心身)을 강건히 한 후에 다시 찾아오겠소.”

담사영이 웃으며 그를 보내 주었다.

“부디 마음에 흔들림이 없기를 바라오.”

등을 돌린 송금백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문득 그는 서량의 냉소적인 반응을 떠올렸다.

- 독사 같은 놈과 무언가를 이뤄 보겠다고 결심했다면 상대를 이용할 생각을 해야지, 동맹을 맺어? 결국 네놈도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어.

- 네놈은 그가 너를 어떻게 다루는지조차도 모르면서 믿지 않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병신에 불과해. 독사는 위협이 되지만, 병신은 조롱을 받는 법이지.

통렬하기 짝이 없는 일갈이었다. 그 말은 폐부 깊숙한 곳까지 찌르고 들어와 무서운 심마(心魔)를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

서량과의 전투에서 입은 모든 내외상을 회복한 송금백은 그의 말이 아니라고 선뜻 답할 수 없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라고?’

부들부들 떨리던 주먹에서, 서서히 힘이 빠졌다.

한 차례 탄식한 송금백이 방을 나섰다.

“……흐음.”

홀로 남은 담사영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고양이가 사자로 크는 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한 법이지. 그러나 사자가 고양이로 쭈그러드는 것은 순간일지니.”

담사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차라리 그게 낫겠소이다, 송 성주. 이왕 고양이가 되려거든 작고 작은 새끼 고양이가 되어 주시오. 그래야 키워 주는 사람을 잘 따를 것 아니겠소?”

* * *

“헉! 교, 교주님?!”

호남 북부 전선.

광마존과 고루마존이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삼가 교주님을 뵙습니다!”

천마 이 군이 뒤이어 외쳤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우렁찬 외침이었다.

얼마 만에 뵙는 교주님인가? 그들의 얼굴에 깃든 감격과 희열은 필설로 형용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놀랍군.’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기종의는 내심 섬뜩함을 느꼈다.

‘절대적인 충성이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서량의 모습.

저 충성 가득한 인사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는다. 자신은 그 정도 충성을 받을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모습이 기종의로 하여금 극심한 경계심을 갖게 했다.

‘더더욱 철저하게 호위해야 한다.’

만일 장강 이북에서 마교주가 해를 입는다면?

그때는 저 무지막지한 마군들이 천하 각지에서 폭발적인 북상을 벌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를 지우며 철저한 파괴를 일삼을 것이다.

마도대종사, 마교주가 신(神)으로 숭배받는 광경을 직접 보니 실감이 되었다.

“찬바람 맞아 가면서 고생들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왜? 이런 말도 못 하나?”

“그, 그것이…….”

고루마존이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그 모습을 본 서량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야. 뭘 새삼스럽게 그리 당황하나?”

“아, 예.”

“밥들은 잘 먹고 있지?”

“물론입니다.”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잠도 푹 자 둬야지.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음, 어디 보자.”

서량이 저 멀리 떨어진 군대를 바라보았다.

“호오, 철왕팔세로군. 저들도 아직 주둔하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눈치 싸움이 장난이 아니구먼. 수고들이 많아.”

“아니옵니다. 한데…….”

광마존이 의아한 눈으로 기종의를 바라보았다.

“저자는……?”

“담사영의 수하일세.”

“예, 예?!”

“날 보자고 길잡이를 보냈더군. 안내받으면서 가는 와중에, 자네들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길 좀 틀었다네.”

번쩍!

광마존과 고루마존의 마안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번들거렸다.

그 마안을 본 기종의는 가슴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이곳에는 서량을 제외해도 극마의 고수만 네 명이 있는 셈이었다.

심지어 이 무시무시한 전력 외에 천마신교 최강의 전력이라는 천마군까지 도열해 있었다.

생지옥이 이럴까. 기종의는 평생 처음으로 위축되는 자신을 느꼈다.

“교주님. 담사영을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광마존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그, 그것은…….”

“왜? 뒤통수 맞을까 봐?”

차마 대답하기 힘든 말이었다.

설령 뒤통수를 맞는다 한들 천마는 무적의 상징이므로 절대 죽지 않을 거라 믿어야 한다. 천마불사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너무 위험했다. 하필이면 적군의 영역에서 두 수장이 만난다니?

“뭐, 어쨌든 잘 있으니 다행이구먼.”

“교주님. 이런 말씀 드리기 송구하오나…….”

“아, 됐어. 괜찮아. 무사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

“……예에.”

광마존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그 속내를 아는 듯 서량이 웃어 보였다.

“왜? 여전히 불안한가?”

“아, 아니옵니다.”

“아니기는. 얼굴에 다 쓰여 있구먼.”

광마존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근데 말이지.”

“예?”

“나도 불안하거든. 담사영, 그 독사가 혹여나 함정을 설치해 둔 건 아닐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

서량이 품에서 서신을 꺼내 들었다.

붉은 봉투로 잘 싸인 서신이었다.

“그러니 이걸 저쪽에 전해 주게.”

기종의는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내공으로 철저하게 목소리를 죽였다.

광마존의 눈이 빛났다.

“철왕팔세에게 말입니까?”

“주둔하고 있는 팔세의 수장에게 전해. 철혈성주에게 전달하라고.”

“……!”

“설령 놈이 함정을 파지 않더라도, 나는 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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