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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97화 (496/774)

497화. 천하는 어디에도 없었다 (1)

“총군사님! 고루마존에게 온 서신입니다!”

호요성이 재빨리 서신을 펼쳐 들었다.

일순 그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제기랄.”

이미 호북으로 진입하셨단다.

게다가 광마존의 말이 압권이었다. 만일 교주님과 접선하지 못할 경우, 천마 이 군과 함께 그대로 밀고 올라가겠다고 한다.

거기서 밀고 올라가면 호북이다.

전 병력을 끌고 가 교주님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 되었다.

‘하긴, 그러니 차후의 일을 지켜본 연후에 움직이겠다고 하신 것이겠지.’

광마존은 똑똑한 사람이다. 어떤 의미로는 또 하나의 군사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지혜로운 마인이었다.

호요성이 한숨을 쉬었다.

‘교주님의 목숨을 위태롭게 해선 안 된다. 원주님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겠지.’

때로는 대국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게 바로 교주님의 목숨이었다.

‘이렇게 되면…….’

다급한 상황에 놀라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오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간이다.

혈응신을 보내고, 하오문의 거미줄 같은 정보망을 통해 공야치에게 전달된다 해도 며칠은 걸릴 것이다.

‘그렇다고 안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해.’

사실 지금 그가 선택해야 할 것은 하나다.

‘전쟁…….’

여기서 전쟁 발발의 분위기를 만든다면?

적은 결코 이쪽이 생각한 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잠시라도, 옥새를 탈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주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참 생각에 잠긴 끝에, 호요성은 결정을 내렸다.

“어쩔 수 없어. 옥새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결국 광마존의 생각대로 가는 게 옳다. 교주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그렇게 그가 일필휘지로 서신들을 작성할 때였다.

“총군사님. 괴정방(塊精房)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총군사님 앞으로 온 서신입니다.”

괴정방은 호남 인근에서 활동하는 정보 단체였다. 그 지역에서 나름 명성을 날렸지만 강호삼세나 하오문에는 비할 수 없는 곳이었다.

호요성은 무심히 말했다.

“거기 놓고 가게.”

“예.”

그렇게 모든 서신을 적은 그가 황금색 봉투들을 들었다.

‘이것만 모두에게 전달하면…….’

그땐 중원 천하가 초긴장 상태에 돌입할 것이다. 판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내용의 서신들이, 이 황금 봉투 안에 담겨 있었다.

호요성은 나직이 심호흡을 했다.

막상 일을 저지른다고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긴장된다는 증거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거늘.

“후우.”

숨을 뱉고 서신을 봉투에 넣으려던 그는 문득 비각 요원이 놓고 간 괴정방의 서신에 눈을 돌렸다.

“한데 괴정방에서 내 앞으로 올 서신이 뭐가 있지?”

호요성이 그 서신을 펼쳤다.

순간 그의 눈이 태양처럼 빛났다.

“혹시나 해서 괴정방을 통해 보내네. 굳이 비각 통해 봐야 일에 지장만 줄 것 같아서 말이야.

지금은 호남일세. 천룡칠주, 수왕이란 놈과 만났어. 길잡이로 보냈다더군.

함께할 생각이긴 한데, 우리가 또 상식대로 움직여 주면 재미가 없잖아? 담 늙은이의 시선을 돌릴 필요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송금백과 만나 볼 생각이네. 내가 뭘 의도했는지 자네라면 이해하지? 내가 워낙에 반골이라 막상 오라고 하니까 그렇게 가기가 싫더라고.”

주르륵.

호요성은 그대로 의자로 미끄러졌다.

“허어…….”

다행이다. 천만다행이었다.

적어도 한숨은 돌릴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서량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다.

호요성이 눈을 감았다.

‘정말이지, 부족한 총군사를 주군이 살려 주고 계십니다. 나중에는 저 같은 놈 뽑지 마십시오.’

긴장이 사라지니 사지에 힘이 쭉 풀렸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숨통이 트였으면, 그 숨통을 쫙쫙 벌리는 건 자신의 일이었다.

“에잇!”

직접 작성한 서신들을 몽땅 태워 버린 그가 재빠르게 또 다른 서신을 적었다. 경쾌한 붓놀림이었다.

“이봐! 어서 들어와!”

“아! 부르셨습니까?”

“이건 원로원주께 부치고, 이거는 하오문주에게 전해. 곧바로 무색사로 향할 수 있도록.”

“무, 무색사요?”

호요성의 눈이 반짝였다.

“적을 속이려거든 아군부터 속여라…… 죄송합니다, 교주님. 무례 한 번만 저지르겠습니다.”

부디 시기를 잘 맞출 수 있기를.

* * *

사흘 뒤.

서량이 도착한 곳은 호북 의성 인근의 이름 모를 산이었다. 좌측으로는 협곡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경치가 아주 그만이었다.

“음.”

산꼭대기를 바라보는 서량의 눈에 마기가 번뜩였다.

‘열둘이라…….’

불어오는 바람이 물 냄새를 담아 서량의 코로 들어왔다.

가만히 그곳을 보던 서량이 마차를 두들겼다.

스르륵.

휘장이 걷히고 주서윤이 얼굴을 들었다.

“노선배는 어떠냐?”

주서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안 좋으세요.”

쉴 때는 간간이 밖으로 나와 세상 공기를 마셨던 그였다. 먹는 것에도 충분히 신경을 썼고 약도 끼니마다 챙겨 먹었다.

하지만 환자에게 이런 강행군이 좋을 리가 없었다. 현천진인을 생각하며 몇 번이나 속도를 늦추었지만, 그런다고 그의 상세가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잠시 열어 봐.”

덜컹.

마차 문이 열리고 서량이 들어갔다.

“헉헉…….”

마차 안에 갖춰진 침상에 누운 현천진인의 안색은 무척 안 좋아 보였다. 숨소리도 거칠었고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서량의 얼굴에 옅은 안타까움이 일었다.

“노선배.”

“헉헉. 자, 자네인가?”

“그렇소.”

“할 일도 많은 사람이, 어찌 들어오셨는가.”

“철혈성주를 만나러 가오. 가기 전에 상세나 보러 들렀소.”

현천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안색은 좋지 않았지만, 그 미소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걱정하지 마시게. 내, 죽어도 무당산의 고즈넉한 산세 속에서 죽을 걸세.”

“…….”

“혈혼각의 회생단과 자네가 불어넣어 준 무속성 내공 덕에 충분히 버틸 만하다네. 그저 간간이 이럴 뿐이야.”

굳이 입 밖으로 꺼낼 말은 아니지만, 현천진인은 잘 버티고 있었다.

처음 원정에 손상이 간 후 치료가 끝났을 때도 석 달의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였다.

분명 의원들의 말이 맞았다. 석 달이란 시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현천진인의 기력은 급속도로 저하되고 있었다.

하지만 적송과는 달랐다. 아직 그의 원정은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보통 이 정도가 되면 얼굴에 사기(死氣)가 드리워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주변인의 도움 이전에 한 인간의 의지였다. 아직은 죽을 수 없다는 강인한 정신력이 깨져야 할 원정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다.

“노선배. 이번 일만 끝나면 곧장 무당산으로 향할 것이오. 그곳에 담사영이 있으니까.”

“헉헉.”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놈과 끝장을 보지는 못할 것이오. 놈과 싸우면…….”

“후욱, 전쟁이 벌어지겠지.”

“그렇소.”

“괜찮네. 내 마지막 가는 길, 그 정도의 선물은 필요 없어. 결국은 다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야. 어찌 남을 탓할까.”

“그리 생각지 마시오.”

“다, 다만, 헉헉. 마지막으로 무당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네.”

가만히 현천진인을 보던 서량이 그의 손을 쥐었다.

세인들은 당대 천하제일검으로 남궁언을 말한다. 그러나 전대 천하제일검은 현천진인이었으며, 원정이 깨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천하제일검이었을 그였다.

평생 무당의 송문고검(松紋古劍)을 잡아 휘둘렀을 손. 굳은살 잔뜩 박인 그 손은 어느새 이리 초라해져 버렸다.

“다시 돌아오겠소.”

“헉, 허억…….”

“서윤아. 노선배의 호흡이 안정되면 바로 약을 드려라.”

“네, 오라버니.”

서량이 마차에서 나왔다.

“대호법, 동필이.”

두 사람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대기하도록. 저기는 호왕과 함께 올라갈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옷자락이라도 붙잡고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두 사람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서량이 여강휘를 힐끔거렸다.

“출교하기 전보다 기(氣)가 단단해졌다. 오는 내내 수련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여강휘의 입가에 언제나처럼 멋진 미소가 떠올랐다.

“저야 뭐 천재니까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오면서 말했던 거, 기억하고 있지?”

“물론입니다.”

“갔다 올게.”

“부디 무사히 다녀오시길.”

“당연히 무사하지, 인마.”

그때, 기종의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누구요?”

서량이 서늘한 눈으로 기종의를 바라보았다.

기종의의 얼굴이 잔뜩 경직되었다. 서량 때문이 아니라, 저 산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의 존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저, 저 사람 설마……?”

“그래, 그 설마다.”

기종의의 얼굴에 충격이 깃들었다.

“당신 설마, 철혈성주와 우리 몰래 내통하고 있었소?!”

서량이 몸을 돌렸다.

“가자.”

크르르릉.

호왕이 일어나며 그와 보행을 맞추었다.

그때, 기종의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나도 가겠소! 내 철혈성주에게 똑똑히 따져……!”

순간이었다.

서량의 눈이 무시무시한 전광을 발하는가 싶더니, 그의 오른손에서 금마(禁魔)의 힘이 치솟았다.

콰앙!

“크아아악!”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기종의가 이 장 뒤의 바위에 그대로 처박혔다.

파지지지지직!

“크아악! 아아아아악!”

쏟아 내는 핏물이 그대로 증발했다.

만압금마장(卍壓禁魔掌)이 적중한 복부에서부터 엄청난 뇌전이 일며 전신을 누볐다. 그 뇌기(雷氣)가 범람하는 강물처럼 그의 내공을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몸 전체에서 방전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수기(水氣)를 내공 근본으로 하는 그에게 군림마황기는 천적 중의 천적이었다.

기종의가 입을 떡 벌리며 벌벌 떨었다. 어느새 비명도 뚝 끊어져 버린 것이다.

서량이 손을 거두었다.

“미안하군. 담 늙은이, 그 개자식에게 갈 때까지 잘 다독여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게 건방은 적당히 떨었어야지.”

그가 여강휘에게 말했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허튼수작은 부리지 못할 것이다. 마음 편히 쉬고 있어.”

여강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터어어엉!

서량과 호왕이 산길을 달렸다.

콰직! 콰드드득!

잘 닦인 길로 올라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최단 거리로 산 정상에 오를 뿐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나무들, 바위들을 그대로 깨부수면서 올라갔다.

마치 내 길은 내가 만든다는 듯, 무서운 속도로 올라간 일인일수가 어느새 산 정상에 올랐다.

후웅.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깨부수고 전진했음에도 서량의 의복에는 먼지 하나 묻지 않았다. 그 옆을 따라온 호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랑이인가? 염왕이수라 하더니, 그중 하나로군.”

저벅저벅.

걸어가는 서량의 발밑으로 기묘한 방전 현상이 일었다. 위협적인 전광은 군림마황기의 마기를 담고 있었다.

“얼마 만이지? 반년 만인가?”

“얼추?”

“더 성장했군. 그새 더.”

“무공은 답보 상태야.”

“무공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반년 전의 그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달라진 게 있다면, 너의 눈이겠지.”

그때도 그랬지만 더 이상의 존대는 없었다.

송금백이 몸을 돌렸다.

시린 두 눈에 떠오른 감정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또 만나는군.”

서량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갈 때 다 된 사자 양반, 장송곡 한 소절이라도 불러 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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