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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01화 (500/774)

501화. 불공대천(不共戴天) (1)

“맹주님.”

“…….”

“일단은…… 철혈성주를 소환하시는 것이…….”

“나가 보게.”

“예? 아, 예! 알겠습니다.”

홀로 남은 담사영은 탁자 위에 놓인 서신들과 각종 문서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가 자리에 앉았다.

“……일이 흥미롭게 돌아가는군.”

담사영의 표정은 필설로 형용하기 힘들었다.

극도로 분노한 것 같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살기가 넘치는가 싶으면, 씁쓸함이 감도는 것 같기도 했다.

“허! 며칠 쉬겠다고 하더니만, 나 몰래 이런 앙큼한 짓을 할 줄이야.”

서량과 만났단다.

자신 모르게, 희대의 대적인 저 마교주와.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 올라온 보고서를 보면, 이 첨예한 국면을 만들기 전에도 서로 몇 번이나 연락을 주고받은 것 같았다.

그는 송금백을 떠올렸다.

자신감 넘치는 사자왕의 얼굴, 그리고 자존감을 상실한 이빨 빠진 맹수의 얼굴을.

‘그게 다 가식이었단 말인가?’

담사영은 믿을 수 없었다.

송금백의 속내를 읽기란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다만 흘러가는 상황과 그와 손발을 맞췄던 일들을 복기해 보면, 그는 어지간해선 배신할 인물이 아니었다.

‘한데도 이런 보고가 올라왔다…….’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믿질 않았으니, 배신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까?’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다. 아직은.

다만 이건 확실하다.

‘강호십대살수조직 중 무려 여섯이나 병력을 파견했다. 그 정도면 조직의 명운을 걸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야.’

담사영의 눈이 번뜩였다.

‘뒤에 누가 있는 거지?’

두 거물이 만나는 그 시간에 정확히 맞춰 병력을 파견한다?

여섯이나 되는 살수 조직을 끌어모은 자금력과 영향력도 대단하지만, 시기를 맞추는 것도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두 거물의 움직임을 완전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훤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나다.’

그러나 담사영은 살수를 보낸 적이 없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아니면 누구인가?’

순간 담사영의 눈이 번뜩였다.

“설마 황태자가?”

가능성이 작다.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 가끔씩 보여 주는 황태자의 경거망동함은 정파 무림을 휘어잡았던 담사영조차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황태자일 수도 있다. 영향력, 자금력 무엇 하나 가지지 못한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결이 달라. 제아무리 경거망동한 자라도 굳이 철혈성주를…….’

이득이 없다.

무림에 대해선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사람도 아니다.

탐욕 때문에 그 똑똑함을 발휘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대국에 영향을 줄 정도의 무리수를 남발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치 이 대국에 발을 올리지 않은 자가 새로운 장기 말을 던져 놓은 것처럼…….’

순간 담사영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무림에 자신이 모르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새외도 마찬가지였다.

“있었어. 이 뜬금없는 살수전(殺手戰)으로 인해 아주 약간의 이득이라도 챙겨 갈 수 있는 자가.”

그리고 그 사람은?

덜컹!

“마교주입니다.”

“음?”

담사영이 뒤를 돌아보았다.

쪽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외팔이 청년이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깊은 눈빛이 너무도 인상적이라 팔 하나가 없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담사영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수련은 끝났느냐?”

“그렇습니다.”

“더 성장했구나. 이제는 월주(月主)의 힘도 잘 안착한 것 같다.”

“사부님께서 도움을 주신 덕입니다.”

“천하의 명사가 가르친다 한들, 재능과 노력 없이는 그리 빨리 성장치 못하는 법이다. 기특하구나.”

“감사합니다.”

“한데 방금 뭐라 하였느냐?”

단리후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수십 장의 문서와 서신들을 교차 검증해 본 그가 한 장의 문서를 들었다.

“마교주가 분명합니다. 정확히는, 마교 측에서 농간을 부린 것이겠지요.”

담사영이 빙긋 웃었다.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이것을 보십시오.”

단리후가 든 문서엔 지난 일 년간 마교의 움직임에 대한 행동 분석이 적혀 있었다.

“마교주와 송 성주의 접선은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간 몇 차례 접선했었다면, 철혈성이 황궁의 철갑 제작을 도왔을 때 진즉 황제를 납치할 수 있었을 겁니다.”

“흐음?”

“하지만 이걸 보면, 당시 마교는 남부의 민심 안정을 위해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지요.”

담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지 싶다만.”

“중요한 건 본질입니다. 마교가 얼마 전 굳이 힘들게 황제를 납치한 것은 이번 전쟁의 정당성을 취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황제의 존재는 민심을 잡는 것보다도 큽니다.”

“허허.”

“송 성주와 내통하고 있었다면, 보다 손쉽게 황제를 납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몇 번이나.

제아무리 바빴다 한들, 그런 기회를 놓칠 정도로 만만한 놈들이 아닙니다.”

“즉, 마교주와 송 성주의 접선은 절강에서의 생사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담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 머리를 쓰다 보니 이런 부분을 잡아내지 못했다. 그것을 제자가 잡아낸 것이다.

비록 편법이나마 조화경에 근접한 제자다. 무공의 재능은 말할 것도 없고, 일신의 재략 역시 수준급이었다. 실로 아껴 줄 가치가 있는 제자였다.

“또 보시다시피, 염라가 교주의 위에 오른 직후 세상에 나온 것은 절강 사태 이후 처음입니다.”

“그렇지.”

“염라는 그 누구보다도 파격적인 인물입니다. 진짜 중요한 일에는 사람을 보내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양상을 보입니다. 과거 소교 시절에도 그러했지요.”

“음, 분명 그러했지.”

“하지만 송 성주와의 만남 때문에 중원에 나온 것은 아닐 겁니다. 만일 송 성주와 접선키로 했다면 대놓고 북상하지는 않았겠지요.

분장을 하든 배를 탔든, 어떻게 해서든 모습을 감추고 올라왔을 것입니다.”

담사영의 눈이 번쩍였다.

“네 말이 옳다.”

“예. 즉, 이번 송 성주와의 접선은 즉흥적인 만남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송 성주 성격이라면 마교주의 접선 요청을 수락할 만합니다.”

“하면 살수 조직은 역시?”

“그렇습니다. 즉흥적인 만남인 만큼,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지극히 소수입니다. 저희나 철혈성, 그리고…….”

“마교.”

“예. 철혈성주가 살수를 소환했을 리는 없으니, 무조건 마교입니다.

이번 살수전은 마교 측에서 벌인 전략의 하나입니다. 송 성주의 마음에 의심의 싹을 틔우기 위한 기폭제로써 활용되었을 겁니다.”

놀라운 안목이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서일까. 아니면 무공이 성장하며 지략까지도 한 단계 더 성장해서일까.

단리후는 현 대국의 흐름을 거의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마교주는 파격적인 인물이지만, 어지간해서는 세상에 나오지 않지요.

그가 굳이 세간의 눈을 피하지 않고 세상에 나온 것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유…… 그렇지,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그 이유라면, 현재로선 하나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의 눈이 빛났다.

“옥새다.”

“옥새입니다.”

담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옥새를 탈취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했는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이상 동향은 보이지 않았다.”

“은신술에 능한 고수들을 보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장강 이북을 넘어오는 순간, 저희 정보망을 피해 가진 못할 것입니다.”

“그건 자신해도 된다. 다만…….”

“예, 사부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무심하기 짝이 없는 단리후의 얼굴 위로 차가운 기색이 드리워졌다.

“허(虛)를 찔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

언제나 그랬다. 마교는 언제나 이쪽의 허를 찌르고 들어왔다. 예측한 대로, 상식적으로 움직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마교주의 중원행만 봐도 그렇다. 제아무리 옥새가 중요하다 한들 교주가 직접 세상에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너무도 당연하게 한다. 그래서 상대하기 어려운 조직이었다.

“놈들은 무슨 짓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주가 나온 것처럼 대놓고 탈취조를 보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동감한다. 그건 파격이 아니라 바보 같은 짓이니까.”

“예.”

“파격…… 파격이라. 놈들은 대체 어떤 파격적인 작전으로 옥새를 탈취하려 할까?”

그때였다.

“맹주님. 급보입니다!”

두 사람의 눈이 빛났다.

“들어오게.”

천지각주가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남궁세가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궁이?”

“그렇습니다.”

담사영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단리후 역시 뜻밖이라는 기색이었다.

“남궁세가의 가인(家人) 일곱이 철혈성의 무력조와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뭣이?!”

안휘는 철혈성의 영역권과 맞닿아 있었다.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부딪친다면 충분히 부딪칠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이다.

“해서?”

“현재 남궁가주가 철혈성에 공식 항의 문서를 전달했습니다.

안휘 전체에 공문을 날려 연을 맺은 문파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보니, 실제로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입니다.”

설마하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남궁세가의 전력으로는 철혈성을 감당하기 힘들다. 하지만 철혈성의 주요 병력은 중원 한복판에 전선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남궁세가의 힘으로도 충분히 철혈성을 공략할 수 있다.

게다가 남궁세가에는 당대 중원제일검이 있다. 그가 함께한다면 상상 이상의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정보가 있나?”

“정확한 정보는 아닙니다만, 다소 뜻밖이라…….”

담사영에 앞서 단리후가 물었다.

“뜸 들이지 말고 당장 말씀하시오.”

“아, 예! 감숙 옥문관을 통해 빙궁의 무인들로 의심되는 자들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담사영과 단리후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시선을 마주하던 중 담사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느냐?”

“빙궁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도 그와 같다.”

“남궁언은 황제를 납치하는 데에 손을 보탠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그런 짓을 도왔다가는 가문 전체의 목숨이 위태롭지요.”

담사영이 탁자에 흩어진 서신 하나를 들었다.

“마교주의 일행 중 빙궁의 소궁주로 의심되는 자가 섞여 있다.”

“길잡이일 확률이 높습니다만,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어쩌면 인질일 수도 있을 겁니다.”

담사영이 천지각주에게 명령했다.

“지금 당장 북서 정보망을 옥문관으로 집중시키게! 빙궁으로 추정되는 이들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빙궁 소속이 확실하다면…….”

담사영이 얼굴에 무시무시한 살의가 드리워졌다.

“옥새를 찾게 한 연후, 천룡궁주를 소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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