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502화 (501/774)

502화. 불공대천(不共戴天) (2)

현에서 외따로 떨어진 작은 주루.

서량은 그 주루를 통째로 빌렸다. 굳이 여러 사람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사람이 없는 게 현천진인에게도 더 좋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행은 오랜만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푹 쉴 수 있었다. 물론 북부이니만큼 적측의 눈이 사방에 퍼져 있었지만, 굳이 신경을 쓰진 않았다.

“음, 다 씻었는가?”

“예.”

마동필이 계단을 가리켰다.

“대호법님께서도 씻고 오시지요. 주변 경계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 좀 함세.”

무담은 생각보다 유연한 사람이었다.

물론 마동필이 믿을 만한 사람이기에 호위도 유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확실히 의외는 의외였다.

일 층으로 내려온 마동필은 창가에 앉아 있는 서량을 보았다.

“어, 다 씻었냐?”

“예에.”

“어때? 오래간만에 뜨끈한 물로 싹 씻어 내니까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지 않나?”

“그렇습니다.”

마동필이 기감을 확장했다.

‘이상 없군.’

현천진인과 주서윤은 삼 층 거처에 있었다. 현천진인의 상세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고생하셨습니다, 교주님.”

“고생은 뭘. 그런 건 고생도 아니야.”

주서윤을 쉬게 하곤 한나절이 넘도록 현천진인을 돌본 그였다.

천마신교의 교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할 일은 아니지만, 서량은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직접 돌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마동필은 새삼스레 교주님께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다. 마도 무림의 신으로 추앙받는 사람이 그리 행동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탈하고 담백하다. 그래서 마동필은 서량이 좋았다.

“와서 한잔하지?”

마동필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죄송합니다. 호위 중에는…….”

“아, 그랬지?”

“예에. 게다가 적의 눈이 사방에 있는 만큼, 저는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든든하네. 사실 예전에는 말이 호위였지, 그냥 평범한 부하나 다름이 없었잖아?”

마동필이 멋쩍게 웃었다.

사실 그건 마동필보다는 서량의 문제에 가까웠다.

애초에 서량이 너무 막무가내로 움직인 탓도 있고, 그렇게 움직여도 상관이 없을 만큼 강해서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호위를 받기에는 지나치게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여전히 서량과의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 멀었지만, 그래도 같은 산의 흙을 밟는 처지였다.

십대천마, 신교의 교주 호위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한잔 안 할 거면 와서 차라도 마셔.”

“알겠습니다.”

마동필은 차를 마시면서도 사방에 둘러친 기감을 죽이지 않았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뿌듯하구먼.”

“예?”

“고죽림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를 별종이라고 생각했잖아? 근데 그중 하나는 교주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교주의 호위무사가 되어서 이렇게 마주 보고 있네.”

마동필이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저는 절대 교주님을 별종이라고…….”

“뭐 어때? 별종이 뭐 나쁜 말인가.”

나쁜 말이다. 그래서 마동필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간 고생이 많았다. 그 위치까지 오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거, 옆에서 본 내가 제일 잘 알아.”

“아닙니다, 교주님. 다 교주님의 은덕입니다.”

“은덕은 무슨. 네가 잘한 거지.”

서량이 피식 웃었다.

“전에 말했지? 앞으로 오래 살 거라고. 나보다 딱 반 시진만 빨리 뒈져 줘. 나 안 외롭게.”

마동필이 미소를 지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딱딱한 새끼.”

“하하.”

한참 웃던 마동필이 일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그를 놔두고 와도 괜찮겠습니까?”

“누구?”

“수왕이라는 자 말입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만압금마장 일격에 강휘가 후속타까지 시원하게 질렀잖아? 그놈 끌고 다녀 봤자 짐밖에 안 된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왜? 담사영이 허튼수작을 부릴까 봐?”

“그렇습니다. 저는 그리 똑똑하지 못하지만, 그간 담사영이 저지른 일을 돌이켜 봤을 때, 충분히 이쪽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봤다. 그게 그놈의 특기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을 거다.”

“예?”

서량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지는 하늘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정신이 하나도 없을 거다, 독사 같은 새끼.”

* * *

“후, 굴송차 향 좋네요.”

“그렇지요?”

다향을 한껏 즐기는 호요성의 얼굴은 그런대로 행복해 보였다.

소연심이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죽다 살아났거든요.”

“무슨 말씀이세요?”

“하하, 말씀드리기 좀 민망한 사안입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소연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잘 되었다 하니 다행이에요.”

그녀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자칫 호요성의 목이 달아날 뻔했다는 걸.

“한데 소 원주께서도 엄청 피곤해 보이십니다?”

“저야 안 바쁜 날이 없잖아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째 저보다 더 죽을상인데요? 근래 업무가 좀 과중하신 것 아닙니까?”

소연심은 솔직 담백하게 말했다.

“후계에게 물려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요.”

호요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후계라면, 주 총관 말씀입니까?”

“그래요.”

“허어, 후계자 수업이라? 피곤하실 만도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단순 업무 능력이라면 이미 저보다도 더 뛰어난걸요.”

“엑?”

“다만 무공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요. 제가 나머지 업무도 함께 처리하고 있어요.”

대단하다.

중원의 판도가 언제 뒤흔들릴지 모르는 형국이었다. 군사부만이 아니라 환희원 역시 초긴장 상태였고, 그만큼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 와중에 후계자가 맡고 있던 업무까지 직접 소화해 내고 있단다.

“잠은 언제 주무시는 겁니까?”

“최소로 자지요. 그거야 총군사께서도 그렇잖아요?”

“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호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은퇴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소연심이 미소를 지었다.

“저도 마인이에요. 지난 십수 년간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기 바빴지요.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니, 차라리 잘 됐다 싶군요.”

만일 전쟁이 벌어지면 본인도 직접 참가할 생각이라는 말이었다.

호요성이 고소를 지었다.

“대단하십니다.”

보통 의지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마인이라도 저리 마음먹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요. 화아라면 교주님을 잘 보필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지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원주에서 물러나게 되면 주 총관을 잘 부탁드려요.”

호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 원주를 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안 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딱 그 정도가 적당하다.

소연심의 얼굴에 한 줄기 후련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나저나, 교주님은 어떠세요? 무탈하시죠?”

호요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무탈하냐는 말이 괜히 웃겼던 것이다.

“예. 무탈하십니다. 앞으로도 만수무강하셔야지요.”

“중원의 잡것들이 교주님께 무례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에요.”

크게 저지를 뻔했지.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교주님께서 잡것들을 두들겨 패고 계시는 형국이에요.”

소연심의 얼굴에 감탄이 일었다.

자세한 걸 듣지 않아도 교주님께서 얼마나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주고 계시는지 알 수 있었다. 호요성의 얼굴이 그리 말해 주고 있었다.

“하긴 대호법님과 마 호위도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예. 교주님 한 분만 해도 무적에 가까우신데, 극마에 오른 초고수 둘이 함께하고 있으니 절대적으로 안전하실 겁니다.”

“…….”

“음? 왜 그러십니까?”

“아니에요. 좀 묘해서요.”

“예?”

소연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절대적으로 안전하시다…… 총군사께서 그런 말을 쓰시는 건 처음 들어요.”

호요성은 괜히 움찔했다.

“음…… 그렇군요. 교주님께서 안전하시길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어서요.”

“호호, 총군사님의 충성심이야 모두가 알아줄 만하죠.”

호북은 위험하다. 다만 그 위험이 철혈성주와의 대담과 살수전으로 많이 축소되었을 뿐이다. 여전히 위험은 산재해 있다.

결정적으로 무당산.

‘무당산에 담사영이 있다. 아니, 설령 담사영이 없더라도 요충지임이 분명해. 필시 적의 화력(火力)이 가장 집중된 곳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담사영도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지형적으로 봐도, 적의 움직임을 봐도 그렇다. 담사영은 그곳에서 교주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호요성이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역시 여러 집단과 잡다하게 동맹을 맺는 것보다는, 확실한 전력 하나와 동맹을 맺어 두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네?”

“빙궁이요.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아, 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소연심은 별생각 없이 차를 홀짝였다.

호요성 역시 웃으며 차를 음미했다.

‘무조건이다. 놈들은 무조건 감숙으로 눈을 돌릴 거야.’

호요성은 전략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기가 막힌 요책도 좋지만, 가끔은 평균을 유지하며 적의 공세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호요성은 훗날을 위해 자신의 능력과 욕망을 자유자재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많이 익숙해졌을 것이다. 교주님과 나의 연계에.’

서량은 교주의 위(位)에 오르기 전부터 파격적인 행보로 중원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호요성의 지략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

그는 보이는 것과 달리 치밀하면서도 정석적인 전술을 애용하는 사람으로, 굳이 쉬운 길을 어렵게 돌아가는 것은 선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량은 즉흥적인 전략과 그 속에서의 효율적인 전술을 통해 원하는 것을 뽑아내는 데에 능한 사람이었다.

강한 힘보다는 최소한의 힘으로, 정석보다는 파격으로, 힘보다는 속도로 적을 농락하는 데에 능했다.

그 능력은, 가히 또 하나의 천재 군사라 불리어도 부족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호요성은 서량이 교주가 된 후, 철저하게 그에게 맞춘 전략을 이용해 대국의 흐름을 유지했다.

세밀한 데에선 자신의 독단으로 처리했지만, 큰 줄기는 무조건 서량의 성향에 맞추었다.

이번 살수전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었다.

호요성은 그런 전략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량은 아군마저 속이는 기만책으로 적의 중심부를 뒤흔들 사람이었다.

‘잘 길들었을 것이다.’

적은 총군사의 존재는 알아도, 총군사가 신교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모른다.

서량이라는 거목 뒤에 숨은 천마신교 총군사의 지략.

그는 지금 이 순간, 파격에 익숙해진 적의 시선을 피해 정석적인 침투전으로 원하는 것을 빼 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노림수는 점차 현실이 되어 대국의 판도를 또 한 번 뒤흔들고 있었다.

“총군사님. 하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호요성이 벌떡 일어났다.

비각주가 고개를 숙였다.

“마황단이 하북 침투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소연심이 깜짝 놀라 호요성을 보았다.

“마, 마황단이라니? 설마 호천마황단을 말하는 건가요?”

호요성의 귀에는 소연심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꽉 쥔 주먹에 군사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 깃들었다.

‘옥새 탈취 후, 퇴각만 제대로 하면 된다. 그럼 우린 모든 것을 갖출 수 있어.’

그동안 꿈만 꿔 왔던 마도천하가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낸다. 천하의 진정한 주인만이 앉을 수 있는 하늘의 옥좌에 교주님을 앉혀 드릴 때가 머지않았다.

‘교주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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