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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05화 (504/774)

505화. 불공대천(不共戴天) (5)

“그러셨군요.”

“그래.”

주서윤의 얼굴에 사무치는 슬픔이 깃들었다.

서량이 담담하게 물었다.

“슬프냐?”

“……네.”

“강해졌구나.”

주서윤이 젖은 눈으로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슬프다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줄 알게 되었어. 넌 충분히 강해졌다. 아마 두 노선배도 지금의 널 보면 뿌듯해하실 것이다.”

“…….”

“다만, 슬퍼하는 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으셨겠지. 게다가 그간 너와 함께하며 충분한 깨달음을 전해 주셨을 것이다. 너도, 그리고 현천 노선배도 작별의 시간이 가까워졌음은 잘 알고 있었잖느냐?”

주서윤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적송과 현천진인은 단순한 노인들이 아니었다.

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노인은 주서윤의 마음에 환한 빛을 드리워 주었다. 둘에게 주서윤은 친손녀와 같았고, 주서윤 역시 두 사람을 친조부처럼 모셨다.

그녀가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혈육의 정.

처음 느꼈기에 그것을 잃었을 때의 충격도 크다. 주서윤은 무공 성장의 정체 외에, 처음으로 슬픔과 절망을 맛본 것이다.

“현천 노선배가 너에게 지검(智劍)을 전수하셨지?”

“네.”

“지검, 지혜로운 깨달음의 검은 그분의 모든 것이었다. 그것을 네게 전수하신 것만으로도 너와 노선배의 관계는 완성(完成)된 것이다. 이별의 인사는 달리 필요치 않지.”

“……흐흑.”

주서윤이 슬피 흐느꼈다.

서량은 그런 그녀를 다독여 주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감정을 추스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잠시 후, 진정된 그녀가 눈물을 훔쳤다.

“할아버지는 무당산으로 가신 거죠?”

“무당산과 하나가 되셨지.”

“할아버지를 뵙고 싶어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옥새 탈환 때문이지만, 동시에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 나온 중원이다. 이제 슬슬 출발해도 되겠지.”

서량이 후원으로 나와 일행을 불러 모았다.

그가 무담과 마동필, 주서윤과 여강휘를 둘러보았다.

“때가 됐다.”

왠지 모를 전율을 일으키는 한마디였다.

서량의 눈에 마기가 치솟았다.

“우린 내일 아침 무당산에 도달할 것이다. 오늘 밤 자정에 출발할 테니, 준비 단단히 해 두도록.”

무담과 마동필이 고개를 조아렸다.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아. 난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다.’

자유를 갈망했던 천하진, 복수에 미친 살왕.

아니다. 이제 그의 가슴 안에 그러한 존재들은 없었다.

깊게 쌓인 한(恨)에 몸부림쳤던 과거의 그가 아닌, 천마신교의 단 하나뿐인 신(神)으로서 담사영을 만나러 간다.

서량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을 믿었다.

* * *

“맹주님. 빙궁 측 전력이 감숙 가욕관을 통과했습니다.”

“그래?”

“예.”

담사영이 단리후를 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속도.”

단리후의 눈이 깊어졌다.

“생각보다 느리군요.”

“그래, 느리다.”

“그래서 더 의심이 갑니다.”

“맞는 말이다. 철저하게 흔적을 지워 가며 이동하고 있어. 그래서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이다.”

정보원이 물어 온 빙궁 측 전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초절정고수만 무려 일곱에, 그를 뒤따르는 삼십여 명도 누구 하나 고수 아닌 이들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곳에는 화경의 고수로 의심되는 자까지 끼어 있었다.

“빙궁의 전력이 대단한 건 알지만, 누구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 하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그곳에 궁주는 없다는 것.”

“그렇습니다.”

북천괴성, 북해제의 무공은 중원삼제(中原三帝)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다. 말하자면 순수한 무공만으론 새외제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정도 무력을 지닌 자가 저만한 병력과 함께할 리가 없다. 그것은 상식의 문제였다. 힘을 배분하여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는 것, 당장 전쟁이 터진 게 아닌 이상 한쪽에 과한 힘을 싣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문제는 북해제가 빙궁에 있는지, 아니면 다른 길을 통해 중원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벌써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언제, 어떤 고수가 와도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병력을 분배해 두었어. 지금은 오로지 가욕관을 통과한 빙궁 병력에 집중해야 할 때다.”

“예.”

담사영이 천지각주에게 물었다.

“송 성주에게 연락은 했는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철혈성 본진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데, 그 전에 연락이 닿을 것입니다.”

“반드시 그래야지. 송 성주가 철혈성으로 들어가는 순간 언제 기어 나올지 알 수 없어져. 그는 무조건 우리의 시야 안에 있어야 하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담사영의 눈이 깊어졌다.

“염라는?”

“남장현 인근, 외진 산속의 주루에서 며칠째 머무르고 있다 합니다.”

“따로 이상 동행은 없는가?”

“아직은 없습니다.”

“흠.”

그때, 단리후가 말했다.

“염라에 관한 얘기가 나온 김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어젯밤, 수주(水主)의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떻더냐?”

“혈수신기(血水神氣)가 통째로 뒤흔들렸습니다. 염라의 천마지학은 뇌기(雷氣)를 생성해 내지요. 번개는 물의 천적인 만큼 전신 세맥까지 스며들었던 혈수신기가 이상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담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뇌기라……. 그래, 그랬었지.”

그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을 되살렸다.

오롯이 신의 반열에 오르고도 무한의 욕망을 지닌 채 속세에 남기로 한 괴물.

그 괴물의 힘은 이미 무공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었다. 한 번 검을 휘둘러 전각 몇 개를 날려 버리고, 내젓는 손짓 한 번으로 벼락을 퍼붓는다. 일 보(一步)에 지진을 일으켰으며, 갈라진 땅속에서 펄펄 끓는 용암을 불러일으켰다.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 재해와도 같은 힘 앞에선 천하제일을 논하는 두 절대고수의 무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중 가장 끔찍한 힘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벼락, 뇌기(雷氣)였다.

본디 뇌기는 인간에게 허락된 힘이 아니었다. 천룡궁의 술사 중에도 제대로 된 뇌기를 구현하는 술사는 셋을 넘지 않는다.

그런 고차원적인 힘을 소나기처럼 퍼붓는 광경은 끔찍함을 넘어 감동적이었다. 세상의 종말, 말세로 치닫는 천하를 본 담사영은 처음으로 겁에 질려 무릎을 꿇었다.

‘그것이 천마지학.’

군림마황기가 괜히 천하제일마공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다.

정점이라 불리는 무공들은 수준의 고하를 따지는 게 의미가 없다. 분야가 다를 뿐, 무엇이 더 뛰어난가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군림마황기는 뭔가 달랐다.

이천상의 무공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여타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영역에 거한다. 중원 정점의 무공 중 가장 파괴력 넘치는 무공을 꼽자면 두말할 것 없이 군림마황기일 것이다.

“하나 다행히도, 혈수신기는 여느 수기(水氣)와는 다릅니다. 강력한 뇌기에 직격타를 당했다 한들 몇 달 요양하고 나면 본래의 힘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란다. 즉, 기종의가 본래의 힘을 되찾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빙기(氷氣)입니다.”

“빙기?”

“예, 염라와 함께한 빙궁 소궁주에게도 당한 모양입니다. 뇌기로 충격을 받은 혈수신기가 그 상태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담사영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칠요의 힘을 모두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안 봐도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갔다.

“혈수신기는 무사하더냐?”

“천만다행히도 소량의 혈수신기가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다만 그간 불렸던 신기는 폐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허!”

담상영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숙주가 죽어도 능히 회수할 수 있는 기운이었거늘, 아예 못 쓰게 만들어 버렸단 말이지? 참으로 고약한 놈들이로다.”

“다행히 아직 칠요집전술을 일으켰던 신지(神地)가 남아 있습니다. 기종의의 몸에서 혈수신기를 뽑아내 풀면 금세 많은 양의 신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어쩔 수 없지.”

담사영이 담담한 목소리로 소름 끼치는 말을 했다.

“기종의의 몸에서 혈수신기를 뽑아내거라.”

“예.”

“산 채로 뽑아내야 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숙주가 죽으면 충격을 받을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의식이 있는 채로 혈신기(血神氣)를 뽑아내는 건 끔찍한 고통을 수반한다. 산 채로 불에 타 죽는 것보다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담사영이었다. 수하라고 한들 언제든 부러질 수 있는 검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쓸 만한 검이 망가졌으니 안타까울 순 있어도, 또 다른 검을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담사영을 향한 기종의의 충심을 생각하면 참으로 악독한 주군이었다.

단리후가 말했다.

“어찌 되었든 염라는 이곳으로 올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토주(土主)와 화주(火主)는?”

“하루 거리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 좋아.”

그때였다.

‘……?’

담사영은 저도 모르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단리후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사부님?”

“…….”

“사부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음? 아, 아니다.”

그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는다. 단리후의 의아함이 커졌다.

담사영의 눈이 흔들렸다.

‘뭐였지, 방금?’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성스러운 기운이 이곳 전체를 에워싼 것만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이 산 전체로 스며든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넘겨 버리면 그만일 것 같은, 그러나 묘하게도 신경이 쓰이는 느낌이었다.

“사부님. 혹, 칠기(七氣)가 흔들리신 겁니까?”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저 근래 잠이 부족했던 듯싶다.”

“오늘은 제가 맡고 있겠습니다. 오늘 하루는 쉬시지요.”

“할 일이 태산이거늘 어찌 쉴 수 있겠느냐. 걱정하지 마라. 네 사부는 그리 약하지 않다.”

의천무제로서 갖고 있던 본래의 무공에, 칠요집전술로 모은 칠주의 신기까지 전부 손에 넣었다.

게다가 원인 모를 내공 증폭도 서서히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었다. 담사영은 그렇게나 강해졌다.

“차라도 한잔 마시자꾸나.”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맹주님!”

문밖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천지각주가 대신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마교주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긴장 상태로 접어들었다.

“들어오너라.”

천지각 무인이 들어와 곧장 무릎을 꿇었다.

천지각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서신은?”

“서신은 없습니다. 다만 감시자들에게 접촉해 직접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내용이기에?”

“내일 아침 즈음에 무당산으로 진입할 거라고 했답니다.”

단리후가 담사영을 보았다.

담사영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드디어 오는가.”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신교의 새로운 신, 십대천마 서량.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 제 사부처럼 괴물 같은 힘을 품에 안은 마신(魔神)일까? 송금백과의 싸움 이후 더 성장했을까? 아니면 퇴보했을까?

“후야.”

“예, 사부님.”

“칠십이암묘 전체에 연락해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전시 체제에 돌입하라고.”

“알겠습니다.”

쾅!

담사영이 두 손으로 탁자를 쳤다.

그의 얼굴에 은근한 긴장과 강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천하 절반을 손에 넣은 마도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무척 기대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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