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506화 (505/774)

506화. 불공대천(不共戴天) (6)

자정을 넘은 시각이지만 관도 주변에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무림인이었다.

그중에는 낭인도, 정사지간의 이름 모를 고수도, 심지어 새외에서 활동하던 무인도 있었다. 과거 의천맹 소속이었던 무사들도 있었으며, 사파 소속의 고수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러한 고수들이 끊이지 않았다. 남장현에서부터 무당산으로 이어지는 관도 옆길까지, 다소 띄엄띄엄하긴 해도 수많은 무인이 관도를 주시했다.

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의 교주가 무당산에 자리 잡은 담사영을 만나러 간다는 소문이.

무림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마교주 염라마제와 철혈성주 수라제가 절강에서 목숨을 건 생사전을 벌인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두 절대자의 부딪침은 전쟁 발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던져 주었으되, 그 불안함이 실제로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게 해 주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낙정혈사(落正血事)를 일으킨 마교의 전대 교주 이천상의 무력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신위였다. 그로 인해 의천맹은 와해가 되었고, 정파 무림은 크게 위축되었다.

고금제일마(古今第一魔), 절대마신 이천상.

그 고금제일마의 뒤를 이어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가 된 염라마제가 또다시 중원에 등장했다.

그리고 지금 ,천하제일마 염라는 전(前) 의천맹주이자 이제는 황군(皇軍)의 수장인 담사영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폭풍전야였다. 일촉즉발이었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마교주의 얼굴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모인 것은, 어쩔 수 없는 무림인의 본능일 것이다.

이립도 되지 않은 연배로 중원 정점의 무력을 손에 넣은 자. 단신으로 중원을 뒤흔들어 마도를 향한 세상의 인식을 뿌리부터 뒤집어 버린 자.

무림 역사상 최강자의 위엄을 보여 주었던 구대천마의 뒤를 이어, 천년마도(千年魔道)의 역사가 빚은 최고의 걸작이라는 명성을 휘날리는 십대천마의 얼굴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함이었다.

위험을 동반한 호기심이었다. 죽음을 감수하고서라도 보고 싶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들이 그렇게 궁금해하고 열망했던 마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헉!”

“어, 엄청나군! 저 호랑이가 염왕수(閻王獸)인가 봐.”

“호선차사(虎仙差使)다!”

염라마제가 직접 부리는 두 영물이 있으니, 세인들은 두 영물을 염왕이수라 하였다.

또한 염왕이수는 지옥의 염라가 지상으로 파견한 저승의 차사와도 같았으니 산처럼 큰 범은 호선차사로, 황금빛 요기를 두른 거대한 여우는 금요차사(金妖差使)로 불리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 영물 중의 영물. 짐승임에도 그 전투력은 구대문파 장문인 이상이라는 괴물들이었다.

그중 호선차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호선차사의 등에는 기골이 장대한 잘생긴 청년이 앉아 있었다.

“……꿀꺽.”

청년을 본 무림인들은 침을 삼켰다.

화아아아.

무시무시한 기세가 마치 봄의 산들바람처럼 불어온다. 서서히 뻗어 나가 의식하지 못한 새에 전신을 잠식하는 절대자의 기도가 시야에 보이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공포를 새겼다.

펄럭!

바람에 휘날리는 붉은 전포는 선혈에 담가 염색한 마왕의 날개였다. 마치 피를 뒤집어쓴 지옥의 마신을 보는 듯했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던 청년, 서량이 서서히 눈을 떴다.

“흡!”

“이익.”

서량과 눈이 마주친 무림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돌려 버렸다. 개중에는 끝까지 버티는 절정고수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몸은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젖어 들었다.

마공 개방으로 인한 마안(魔眼)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서량은 군림마황기도, 구유마공도 개방한 적이 없었다. 그저 자연스레 흐르는 존재감만으로도 만인이 숨을 죽였을 뿐이다.

눈빛도 그러했다.

맑고 깊은 눈은 도저히 마교주의 그것답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눈을 보는 순간 무시무시한 통찰력이 마음을 꿰뚫어 볼 것만 같다.

서량에게는 어떠한 의도도 없었지만,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알아서 긴장한다. 그것이 바로 권좌가 주는 힘이었고, 서량이 이룩한 경지였다.

쿠르릉.

선두에 선 서량 뒤로 두 필의 말과 사두마차 한 대가 따라왔다.

보통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일수록 무리의 선두에 서지 않는 법이었다. 교주라면 당연히 저 마차 안에 있어야 한다.

서량은 달랐다.

그는 그러한 상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저 선두에 서고 싶으니 선다. 선두에 서야 하니까 선다. 그뿐이었다.

다만 이토록 많은 관객이 야밤부터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서량도 몰랐다.

‘많이들 왔군.’

정사간외(正邪間外)를 나누지 않는다. 천하 모든 무림인을 대표하는 자들이 모인 듯했다.

서량은 문득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담사영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죄 없는 양민도 서슴없이 죽이는 악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악인이 휘두르는 최강의 암검(暗劍)이었다.

하나 정작 그 암검인 자신은 세상 모두를 적대시했다.

담사영의 명령이 항상 그러했기 때문이다. 매번 상상도 못 한 곳의, 상상도 못 한 인물을 죽이라고 하였다. 하여 살왕으로서 그는 정사마(正邪魔)를 가리지 않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을 죽여 왔다.

다음은 누굴 죽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자주 가던 주루의 주인을 죽일 수도, 뒷골목에서 약자의 돈을 뜯는 파락호를 죽일 수도, 기예와 미모로 명성이 높은 기녀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서량은, 아니 천하진은 세상을 적대했다. 그것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었다. 나와 관계도 없는 자를 죽여야 하는 지독한 죄책감과 서글픔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발악하던 끝에 찾은 그만의 방법이었다.

그런 그가, 세상을 적대했던 천하진이, 이제는 천하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최강 조직의 수장이 되었다.

인생이란 참으로 기묘하다.

하늘의 이치란 참으로 알 길이 없었다. 도대체 자신을 왜 전생시켜 준 것일까? 지금의 이 모습이 옳은 것이라고, 그것이 참된 너의 모습이니 본래의 너로 돌아가라고 전생을 시켜 준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실,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대단한 위용이오.”

쿵.

호왕이 멈추어 섰다.

서량이 호왕 앞에 선 자를 내려다보았다.

“과거, 숭산에서 봤을 때와는 너무나도 달라졌구려. 그때도 대단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영역에 올라섰소이다. 염라마제, 지옥신의 이름에 걸맞는 존재감이외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속세의 공기는 어떻던가?”

자연스러운 하대였다.

천하의 마교주라도 쉬이 하대할 대상이 아닌데도 그리 말한다. 그러나 그런 서량의 모습은, 본인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어우러져 몹시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축축하더이다. 불사(佛舍)의 향은 어디로 갔는지 맡아지지도 않고, 선정(禪靜)한 불심은 갈 길을 잃고 헤매었소. 지독한 악취와 멀리 보지 못하는 자들의 탐욕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것이오.”

“세상은 본디 그러하지. 그것이 사람이고.”

“그렇소. 그래서 사백이 그리웠소. 개미만도 못한 깨달음에 허덕이던 우리와는 달리, 누구보다 깊은 불심으로 천하를 걱정하셨던 그분이야말로 소림 그 자체였소.”

“좋은 분이었지.”

스륵.

건장한 여덟 사내의 선두에 서 있던 사내가 삿갓을 벗었다.

짧게 기른 머리, 지우지 못한 계인(契印)이 남아 있었다. 소림 방장 혜심이었다.

혜심의 맑은 눈이 흔들렸다.

“그분께서는…… 어떻게 가셨소?”

서량은 솔직하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세상을 걱정하다가 가셨다. 숭고한 죽음이었어. 마도(魔道)를 걷는 우리마저도 포용하셨지. 부처의 대척점에 있는 우리를.”

“…….”

“생불(生佛)로서 입적(入寂)하셨다. 장례는 대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치렀어. 천하를 걱정하셨지만, 그 표정은 누구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혜심이 눈을 감았다.

사백께서 신교에 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줄곧 그분의 상태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멍하니 보름달을 보다 눈물이 났다. 이유 없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과 함께 떠오른 것은 사백님의 웃는 얼굴이었다.

“스스로를 파문하여 속세의 다툼에 몸을 던진 못난 사질 놈이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봐 드리지 못했구나. 원통하고도 원통하다. 이 죄 많은 놈이 죽어서도 무슨 낯으로 그분의 얼굴을 뵐 수 있겠는가.”

탄식에 탄식을 더하는 혜심.

그러나 그는 소림의 방장까지 올랐던 사람이었다. 지극한 슬픔은 가눌 길이 없지만, 지금 당장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도 않았다.

혜심이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호원의 파계승들은 신교의 좌우를 맡게.”

삿갓을 쓴 여덟 파계승이 선두의 호왕부터 후미의 마차 좌우에 섰다.

서량이 의아한 눈으로 혜심을 내려다보았다.

혜심이 말했다.

“사백께서 말씀하셨소. 새로이 교주가 된 당대 천마는, 능히 세상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라고.”

“…….”

“그대에게는 많은 빚을 졌소. 하물며 사백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봐 드리지 않았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대가 가려 하는 길에 별다른 일이 없도록 손을 보태 주는 것밖에 없소이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혜심이 반장례(半掌禮)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파계승이 되었다 해도 여전히 소림의 사람인 그였다.

“얼마 안 되는 호의라도 받아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소.”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호의, 감사히 받겠다.”

“고맙소.”

혜심이 몸을 돌렸다.

선두에 선 호왕의 십 보 앞에 선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무림인들은 경악 어린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마도 무림의 총본산, 그 산의 주인인 마교주를 얼마 전까지 소림의 방장이었던 자가 호위하고 있었다. 이런 기막힌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혜심은 걸으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도 그의 보행은 일절 흔들림이 없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사리자(舍利子)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佛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혜심의 무겁고도 낭랑한 목소리가 심경(心經)의 진리를 퍼트렸다.

우우우웅.

서량의 가슴 속에 드리워진 무상대능력의 금광이 명멸했다.

혜심의 불심 가득한 낭송에 반응한 것이다. 낭송에 반응한 적송의 기는 두근거리던 서량의 마음을 안온하게 다독여 주었다.

‘편안하다.’

천마파순의 대리자가 불교 경전의 진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독인다.

서량은 그 대척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욕망의 화신인 파순은 무엇이고, 자비의 화신인 석가모니는 또 무엇인가.

그저 마음을 공(空)으로 두고, 발길 닿는 곳으로 나아가자. 그 끝이 어디인지 고민하지 말며, 그저 행하고 싶은 것을 행하자.

자비의 끝은 욕망의 끝과 닿아 있다. 그것이 부처의 가르침이었다. 또한 그것은, 현천진인이 말하던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이치와도 닿아 있었다.

서량이 눈을 감았다.

편안한 그 얼굴에 맑은 미소가 담겼다.

‘고맙소.’

적송과 현천진인이 함께하고 있었다. 의미 없는 긴장과 불안했던 한(恨)이 투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일행은 반나절이 넘도록 관도를 걸었다.

혜심의 낭송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서량의 자세는 여전히 꼿꼿했다.

그리고 저 동쪽 하늘에서 서서히 해가 떠오를 무렵.

관도를 벗어나 무당산 초입에 들어선 일행을 맞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혜심의 낭송이 멈추었다.

서량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에 외팔이 청년이 보였다. 단리후였다.

“오르시지요. 사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량은 저 멀리 우뚝 솟은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문득 이천상이 떠올랐다.

만약 이천상이었다면, 저 높고 높은 봉우리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담사영에게 어찌 말했을까?

“누가 감히 날 내려다보라 하였느냐.”

“……?!”

“담사영을 데려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