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507화 (506/774)

507화. 불공대천(不共戴天) (7)

“총군사님!”

“어찌 되었다고 하던가?!”

“탈환에 성공했답니다!”

호요성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퇴로는?”

“육로(陸路)입니다! 수로는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두 번이나 당해 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바닷길에서는 호천마황단의 최고 장점인 은신술을 펼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혹시 몰랐다.

“주요 거점 해역마다 쾌속선을 배치하라고 해! 육로라면 철혈성의 영역을 지나지 않을 수 없다! 혹시라도 일이 터지면 그 즉시 수로로 바꿔야 해!”

“명을 받듭니다!”

호요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러나 아직은 웃을 때가 아니었다.

‘교주님.’

- 자네도 알지?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확신하는 때, 바로 그때야말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걸. 나는 자네가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 군사가 되었으면 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서량의 말에는 강한 설득력과 확신이 어려 있었다. 경험에서 묻어 나오는 확신이었다.

그 확신이 호요성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는 마황단주가 자신의 손에 직접 옥새를 쥐어 주기 전까지는 절대 긴장을 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남궁세가의 비책으로 안휘는 비교적 안전하다. 차라리 안휘로 빠져서 오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위험이 생겨날 수 있다. 남궁세가를 이용해 철혈성을 압박했고, 동시에 담사영의 눈을 돌렸지만 실제로 철혈성의 영역은 그 어느 곳보다도 긴장감이 넘칠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철혈성이 안휘를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다. 당연히 남궁세가도 그냥 당해 주진 않겠지만, 혹여 힘 싸움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커진다.

‘이걸로 충분해. 지금이야말로 빠질 시기다.’

남궁단과는 자주 연락하고 있었다. 호요성은 남궁단이 무공 못지않게 지략 역시 출중한 사람임을 알았다.

‘대국을 보는 눈이 출중해. 알아서 빠져 줄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연락은 취해 둬야겠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교주님 말씀대로 지금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호요성은 서신 여러 장과 문서들을 추렸다. 남궁세가, 철혈성, 그리고 서량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이것을 각 목적지로 전달하게. 최대한 빨리.”

“예!”

호요성이 의자에 몸을 묻었다.

나른한 자세였지만 두 눈만큼은 무섭도록 빛나고 있었다.

“교주님께서 안전히 돌아오시기만 하면 된다. 그럼 모든 게 끝나.”

* * *

무담은 오솔길 좌측에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마동필은 우측 소나무를 기점으로 기감을 곤두세웠다.

단 두 사람이었지만, 그 둘은 이백 명이 볼 수 있는 곳을 보는 고수였다. 호위로서는 일당백, 무인으로서는 만인지적이다. 두 사람이 자리를 잡자 철옹성 안에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마차 안에 있는 주서윤은 눈을 감고 원전무층검의 구결을 암송했다. 그저 암송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공이 활발해졌다. 신묘한 무공이었다.

팔대호원의 파계승들은 후방 멀리서 올라오는 무림인들을 차단하는 역할을 자청했다. 사천왕상처럼 우뚝 선 그들의 기세에, 몰려온 무림인들은 이도 저도 못 하고 멈춰 서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엔 서량이 있었다.

서량이 말이 없자 호왕도 엎드려 눈을 감았다. 이곳이 적지(敵地)임은 야수의 감각으로도 알 수 있을 터, 그런데도 몹시 편해 보였다.

일행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만이 주변을 에워쌌다.

‘신기하군.’

그들을 보는 혜심의 얼굴은 묘했다.

‘적지에 왔음에도 누구 하나 불안해하지 않는구나. 평온하고도 평온하다. 이 침묵이 결코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주군을 향한 믿음. 신교의 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충심이 그들의 불안을 없애 주었을 것이다.

혜심은 문득 의아해 물었다.

“한데…….”

“음?”

“한 사람이 안 보이는구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여강휘?”

“그렇소. 빙궁의 소궁주도 함께한다고 들었는데, 그가 보이지 않는구려.”

“보낼 데가 있어서.”

“보낼 데?”

서량은 말없이 호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왕의 목에서 동굴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답이 없으니 재차 묻기도 뭐하다. 혜심은 나무에 기대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서량이 입을 열었다.

“소림은 무사한가?”

“무사하오.”

“그렇군.”

또다시 대화가 끊겼다.

반 각 후, 이번에는 혜심이 대화의 시작을 잡았다.

“어떻게 하려 하오?”

“뭐가?”

“담사영을 만나러 간다는 것만 들었을 뿐이오. 교주는 그를 어찌할 생각인지 궁금하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우문(愚問)이다. 나와 담사영은 할 얘기가 너무도 많아. 그저 만나는 것만으로도 일대 사건이지.”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오?”

“목적이야 많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다음 움직임은 어디가 될지, 그리고…….”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우리가 계산한 한 수가 잘 먹혔는지.”

따로 노림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혜심이 궁금한 것은 하나였다.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시오?”

“기회?”

“중원을 대혼란으로 이끈 악인을 징벌할 기회 말이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할 수 있다면 죽여라?”

“천하를 위해서 그것이 좋다고 생각하오.”

“파계승이라 이건가? 함부로 죽음을 입에 담는군.”

“뭐라 생각해도 좋소. 나는 지금껏 담사영이라는 인간이 저지른 짓을 보며, 강호 역사상 이처럼 악랄했던 자가 또 있었는지 생각해 봤소. 단언컨대, 담사영 같은 자는 없었소.”

그래, 그런 놈은 또 없지.

혼자서 무수히 많은 집단을 무너트렸고, 이내 무너진 조직을 자신의 휘하로 두었다. 그것도 모자라 직접 세상에 나서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가 의천맹주가 되었다.

의천맹주가 되고도 만족하지 못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사이를 갈라 놓은 뒤, 탐욕이라는 독을 풀어 정파를 정파답지 않게 오염시켰다. 그 뒤, 악랄하게 변한 대다수의 문파를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황태자와도 연을 맺어 두었다. 아니, 어쩌면 무림을 정벌하고 황궁까지 삼키려 든 것인지도 모른다. 담사영의 탐욕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적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참 치열하게도 살아온 남자야.”

행위의 부덕함을 떠나, 정말 대단하다 아니 말할 수가 없다. 그 지독한 욕망을 그 나이 먹도록 유지한 것도 놀라웠고, 욕망을 그저 욕망으로 두지 않은 채 모조리 자신의 손으로 이뤄 버린 추진력도 대단했다.

서량은 새삼 담사영이 한 짓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세력을 끌어모아 자신의 기반으로 삼는 능력만큼은 고금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능력에 한해서만큼은 자신이나 이천상보다도 뛰어날 것이다.

물론, 자신이나 이천상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 굳이 시도하지 않았지만.

“천하의 어떤 악인이라도 본받을 점은 있는 법이지. 용서하기 힘든 적이지만, 나는 담사영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혜심의 눈이 깊어졌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지. 그러나 그 대상이 담사영이기에 듣고 싶지 않은 말이구려.”

소림이, 천하가 담사영 하나에게 이토록 유린당했다. 태산북두 소림방장으로서, 혜심은 담사영을 증오했다.

그리고 스스로 파문을 내린 순간, 그는 불도(佛道)를 따르는 승려에서 서슴없이 참악(斬惡)의 판결을 내리는 극단적인 무인이 되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가슴에 증오를 담고 있군.”

“바다처럼 깊은 증오를 담고 있소.”

“해탈에 이르는 것은 포기했나?”

“나 같은 놈에게 해탈이 무슨 소용이겠소. 설령 그 방도를 안다 한들, 따르지도 못할 것이고 따르기도 싫소.”

혜심은 승려에서 속인(俗人)이 되었다. 하지만 그리 말하는 그에게도 여전히 불심은 남아 있었다. 평생을 그리 배웠기 때문이다.

다만 굽힐 줄도 모르고, 부러지지도 않는 천성이 그로 하여금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도록 종용했을 것이다.

“그저 담사영을 없앨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오.”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말이야.”

“……?”

“나중에 이 광기 어린 전쟁이 끝났을 때. 담사영이 죽고 천하가 안정을 되찾았을 때도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면, 그때 반드시 나를 찾아와라.”

혜심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적송 노선배가 남긴 깨달음이 있거든. 그 깨달음을 당신에게도 전해 주지.”

“내게…… 말이오?”

“비록 파계승이지만, 당신의 혼은 여전히 숭산을 향해 있음을 알았거든.”

혜심의 얼굴에 혼란이 깃들었다.

사백께서 남기신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다만, 속인이 된 자신이 그러한 깨달음을 전달받아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서량은 그런 혜심을 보며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한없이 증오에 불타, 천하는 물론 스스로도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을.

“옆으로 물러나게.”

“……?”

“악역 등장이야.”

깜짝 놀란 혜심이 오솔길 위를 바라보았다.

‘……?!’

서량의 말이 옳았다.

인지하지 못할 땐 몰랐지만, 그가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듣는 순간 알게 되었다.

후우우우웅.

기묘한 기세였다.

신비롭다는 표현도 어울리고, 기괴하다는 표현도 어울린다. 맑다는 표현도 어울리고, 소름 끼친다는 표현도 어울린다.

어느 하나의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도무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기도였다. 기도의 강약을 떠나, 그 분위기 자체가 너무나도 독특했다.

‘이런 기운이?!’

혜심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후욱!

마동필의 몸에서 저절로 붉은 기운이 치솟았다. 무담의 강철 같은 기도가 은은하게 떨렸다.

호왕이 낮게 울며 몸을 일으켰다. 주서윤은 암송하던 원전무층검결의 구결을 순간 잊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크나큰 영향을 주는 절대자가 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일순간 폭발을 일으키는 기괴한 기파는 하늘 끝까지 닿을 돌풍과도 같았다.

서량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드디어.’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자신을 살수지왕으로 키웠던, 개처럼 키웠던.

철저하게 더러운 칼로 키웠던,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했던.

무저갱을 꽉 채울 한(恨)을 안겨 주었던,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가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만인가.’

모르겠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얼마나 강해졌는가.’

모르겠다. 가늠이 되질 않았다.

‘어느 정도로 성장했는가.’

모르겠다. 다만 그 연배에 다시 한번 변화를 꾀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파지지지직!

서량의 몸에서 폭포수와 같은 뇌광이 번져 나왔다.

훅!

안개처럼 스며들었던 기괴한 기운을 통째로 날려 버릴 듯 패도적인 기운이었다. 천마신교의 주인, 파순의 점지를 받은 자만이 구현할 수 있는 최강의 마공이었다.

“놀랍소이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목소리.

오솔길 저편에서 한 줄기 그림자가 보였다.

“대단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어. 이런 기운을 품고도 그리 냉정하고 파격적인 전략을 짜낼 수 있었단 말이오? 사람이 아니로군.”

서량의 눈이 불을 뿜었다.

마침내, 전혀 다른 얼굴 위로 똑같은 눈빛을 머금은 당대 천마가 최강의 호적수를 포착했다.

담사영이 감탄 어린 얼굴로 말했다.

“반갑소. 담사영이라 하오.”

서량이 희게 웃었다.

“처음 뵙소. 나, 서량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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