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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09화 (508/774)

509화. 적(敵)이라는 한 글자 (1)

“헉헉!”

호흡이 흐트러질 때까지 신법을 펼쳐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고루마존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며칠 동안 물을 제외하곤 식사도 제대로 못 했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호북 전체를 뒤져 교주님의 안위를 살폈다.

천만다행히도 교주님은 괜찮으시다고 한다. 게다가 총군사의 연락도 받았다. 큰 위험이 사라졌으니 당장은 안심해도 된다고.

그렇다. ‘당장은’이다.

교주님께선 전(前) 의천맹주인 담사영을 만나러 가셨다고 했다. 그것도 그쪽의 본진으로.

위험천만한 행보였다. 교주님의 교섭 능력과 무력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 불안함은 믿음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그분의 신변에 위험이 생기면, 마도 무림 전체가 들고일어날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그 스스로가 분노와 좌절감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고루마존은 무당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전선 유지에 이상이 없을 테니, 한 손이라도 더 보태 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후욱!”

하지만 제아무리 정신력으로 버텨도 한계는 명확한 법이었다.

고루마존은 잠시 관도 옆 거목에 기대어 쉬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쑥덕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데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회복해야 한다. 한 시진만 회복하면 무당산까지는 금세 도착할 수 있어.’

고루마존의 눈에 마광이 깃들었다.

‘교주님. 제가 갈 때까지 부디 무사하시기를.’

그나마 안심인 것은 대호법인 무담과 극마에 이른 마동필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인가? 빙궁의 소궁주도 능히 제 몫을 해낼 만한 고수였고, 교주님께서 사역하시는 호왕도 있었다. 그 정도 전력이면, 행여나 위험한 일이 터져도 교주님의 도주 시간 정도는 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건 아무 일도 없이 잘 마무리되는 것이겠지만.

우우웅.

고루마존의 몸에서 은은한 마기가 일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달아나는 사람들 대다수가 양민으로, 마기가 발하는 섬뜩함에 겁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양민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무림인도 많았다.

심지어 무림인의 숫자가 양민보다도 더 많을 지경이었다. 현재 호북은 전쟁이 나기 일보 직전의 상태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리라.

“저, 저 사람 뭐야?”

“마인(魔人)이다!”

“마, 마인?! 설마 마교의?”

“엄청난 마기야. 이 정도 마기라면……!”

우우우우우웅.

고루마존의 마기가 점점 짙어졌다.

굳이 가부좌를 틀고 좌공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운공축기가 된다. 고루마존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고루마공(骷髏魔功)을 최대한 빠르게 회복시켰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더러운 마인 놈이!”

쿵. 쿵.

덩치 큰 중년 사내가 고루마존을 향해 다가왔다.

기세 좋게 다가왔지만 누가 봐도 무리하고 있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안색도 영 창백했다.

고루마존의 눈이 번뜩였다.

사내가 움찔했다. 아직 절정에도 이르지 못한 무공으로는 감히 마존의 눈빛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도 버티기는 하는 걸 보니 선천적으로 배짱 하나는 타고난 것 같았다.

“마인이 왜 여기까지 올라왔지? 너희 영역은 십만대산이 아닌가?”

고루마존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마기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이 빼빼 마른 노인의 눈빛은 참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한데 그 와중에 자신의 말에 대답도 안 한다. 철저하게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당장 꺼져! 남부의 너희 소굴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기어 나온 것이냐! 너희 마인 놈들 때문에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게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냐!”

편협한 시각이었다.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고 무림이 이 난리가 난 것은 모두의 책임이었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란 것이다.

다만, 소속 지파가 다르니 서로를 향한 증오와 원망으로 책임 전가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비단 이 사내만이 아니라 무림인들 대다수가 비슷할 것이다.

“이익!”

고루마존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정한 만큼의 힘을 축적하기 위해 애를 쓸 뿐이었다.

사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한데 상대는 자신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공명심에 괜히 나섰다가 창피만 당한 꼴이었다. 애초에 생각이 깊은 자도 아니었다. 그랬다면 누가 봐도 격차가 까마득한 상대에게 호통을 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

사내가 재차 입을 열었다.

“흥! 누가 마인 놈 아니랄까 봐 음침하기가 제 주인과 똑 닮았군!”

순간 고루마존의 눈이 번뜩였다.

강렬한 안광에 순간 사내도 주눅이 들었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다.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는 판에, 여기서 등을 돌렸다가는 개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마교주 놈, 서른도 안 된 애송이라지? 흥! 그 나이에 마왕이 되었다 하니 참으로 사악한 놈이군. 어떤 수로 그리 강해졌을지 누가 아나? 피를 마시고 살점을 뜯는 사악한 수법으로 그 자리를 꿰찬 것 아니야?!”

나름대로 기세를 탄 것일까?

사내가 연신 이죽거렸다.

“하긴, 무림에 도는 소문 대다수가 허황한 것이지. 전대 교주가 죽어 나자빠지니, 마땅히 세울 후계가 없어서 반쪽짜리 머저리를 세운 것 아니겠냐고?”

우둑.

“어?”

사내는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갑자기 오른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헉!”

오른쪽 무릎이 안쪽으로 쑥 하고 들어가 버렸다. 완전히 부러진 것이다.

인지하고 나니, 그때부터 무지막지한 고통이 느껴졌다.

“크아악!”

그 자리에서 쓰러진 사내가 오른 다리를 감싸 쥐었다.

그때였다.

“다시 한번 지껄여 보거라.”

어느새 사내 앞에 고루마존이 서 있었다.

사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두운 하늘을 등지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무시무시한 마귀가 있었다. 그 눈빛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심장이 덜컥 멎어 버릴 것만 같았다.

고루마존의 얼굴에 살기가 일었다.

“너 같은 개잡졸 놈이 감히 위대하신 천마(天魔)를 능멸해?”

우두둑!

“끄아아악!”

사내의 왼쪽 어깨가 쑥 하고 빠지더니, 팔꿈치가 역으로 꺾여 버렸다.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의 뼈를 부숴 버린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고루마존이 냉정하게 발을 들었다.

콰직!

“크르륵!”

지독한 고통에 사내가 거품을 물었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기절도 못 했다. 섬뜩한 충격에 심장이 멎었다 뛰기를 반복했다.

츠츠츠츠.

“커허어…….”

흑갈색 기괴한 마기가 사내의 몸을 두둥실 띄웠다.

“헉!”

“이, 이런!”

주변의 무림인들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땅에서 몸부림칠 때는 몰랐는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사내의 모습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오른 무릎이 부러져서 덜렁거렸고, 왼쪽 정강이는 완전히 으스러졌다. 왼팔 역시 뚝 꺾여서 피부 바깥으로 부러진 뼈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런 모습으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비참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고루마존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그에게 이 사내는 하늘 같은 교주님을 능멸한 죽일 놈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마음 같아선 신교의 형법당에 끌고 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평생 고문을 당하게 하고 싶었다.

다만 그럴 시간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주둥이는 화의 근원이라 하였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데서 우리 욕을 하는 건 상관없다만, 감히 내 앞에서 교주님을 모욕했으니 죽어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크르륵! 사, 살려…….”

고루마존은 짧게 웃었다.

고작 이 정도였다. 팔다리를 부수고 나니 살려 달라고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따위 놈이 교주님을 능멸했다는 생각에 더더욱 화가 치솟았다. 중원 무림인들 전체를 모아 놔도 교주님의 발치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네놈을 보니 이북 놈들의 정신 상태가 얼마나 머저리 같은지 알겠다. 감당하지 못할 상대를 건드리려면, 최소한 죽을 각오는 했어야지.”

“커헉!”

“운 좋은 줄 알거라. 내게 여유가 있었다면 넌 수십 년에 걸쳐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생지옥을 겪었을 테니까.”

고루마존의 목소리는 음침하고도 강렬했다.

그 말을 들은 무림인들은 몸을 떨었다.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고루마존이 떠 있는 사내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사내의 눈이 극심한 공포로 충혈되었다.

쾅!

흉골이 부서진 사내가 훨훨 날아 땅바닥에 처박혔다.

비참하고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상대를 몰라본 것도 모자라 상대 조직의 우두머리를 욕했으니, 어쩌면 그의 죽음은 그 스스로 자초한 것일는지도 몰랐다.

“흥!”

고루마존은 코웃음을 치며 관도 밖으로 나왔다. 쓸데없는 곳에 내공 소모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어떻게든 무당산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대로 가시게?”

고루마존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좌측 산길을 바라보았다.

“그냥 가면 안 되지. 사람은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어. 그럼 당신도 마땅히 책임을 져야겠지?”

“누구냐?”

고루마존은 내심 깜짝 놀랐다.

거의 내상에 준하는 내공 소모가 있었다지만, 저리 가까이 접근한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감각이 무뎌지진 않았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였다. 상대가 기괴한 술수를 썼든지, 아니면 자신보다 더 강한 고수이든지.

“흐음. 이 정도 마기라면 백팔마장 수준은 훌쩍 뛰어넘었고, 설마 소문 자자한 마존(魔尊)인가?”

“누구냐고 물었다.”

“나?”

모습을 드러낸 자는 놀랍게도 서량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다소 왜소하고 어깨가 말렸으며, 눈도 길게 찢어져 있어서 유독 음침해 보이는 외양이었다. 하지만 지닌바 힘은 놀랍도록 강렬했다.

“나는 토정(土精)의 대사제, 지왕(地王)이라 한다. 세상천지에 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 갈 수 없는 곳도 없지.”

고루마존이 눈살을 찌푸렸다.

“천룡칠주?”

“어? 우릴 아나? 아, 하기야 마존이면 최고 수뇌부니까 우리를 모를 수 없겠군.”

그때, 저 멀리서 강렬한 화기(火氣)가 짓쳐 들었다.

고루마존은 깜짝 놀랐다. 한참 멀리서 다가오는데, 그 속도가 그야말로 엄청났다. 가히 번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왕(火王)도 왔나 보네? 이것 참 먼저 가려고 했더니만, 마인 하나 때문에 여기서 마주하게 되는군.”

지왕이 씨익 웃었다.

“우연인지 뭔지, 세상일이라는 게 참 재미있어. 그렇지?”

고루마존이 짧게 말했다.

“길을 막지 마라. 나는 갈 곳이 있다.”

“우리도 갈 데가 있어. 그런데 그냥 지나치진 못하겠더라고. 이곳에 있는 무림인들은 다 우리 재산이거든? 말하자면, 댁은 허락도 없이 우리 재산을 파손한 사람인 거야.”

재산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의아한 건 고루마존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른 무림인들 역시 웅성거리고 있었다.

콰아앙!

그들과 오 장 거리 떨어진 곳에 거대한 화염이 작렬했다.

“지왕.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버릇없는 어르신 훈계 좀 하고 있었지.”

화왕이 고루마존을 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뒤집혔다.

“마인?!”

지왕이 짐짓 차갑게 말했다.

“안 돼, 함부로 건드리면. 지금 무당산에서…….”

화왕은 지왕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분노가 정수리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 너희가 황제를!”

퍼억!

화왕이 고루마존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밀쳤다.

콰드드드득!

한껏 밀려난 고루마존의 두 발이 땅에 고랑을 만들었다.

화왕이 으르렁거렸다.

“마인 놈들은 보이는 족족 다 죽여 버리겠다!”

고루마존의 눈에 살기가 치솟았다.

“안 되겠군. 다 박살을 내 버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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