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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10화 (509/774)

510화. 적(敵)이라는 한 글자 (2)

쿠르르릉.

천둥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담사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장소가 다소 멋없지 않소? 무당산의 경치는 실로 절경이라오. 이왕 여기까지 오신 김에, 거처로 함께 올라가십시다.”

“싫소.”

“허! 집주인이 되어 객(客)을 맞이하려면 마땅히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소? 좋은 술과 차가 구비되어 있소이다.”

“호랑이와 마주하는 거야 별거 아니지만,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한 처사가 아니겠소?”

담사영이 씨익 웃었다.

그가 농담처럼 한마디를 던졌다.

“천하의 염라께서 겁을 내시는 게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두려운 상대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끌고 오지도 못했소이다.”

“허어, 그 말은 참으로 기분이 좋소만 진정 여기서 얘기를 마무리할 참이오?”

서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오솔길 입구가 왠지 참 마음에 들더이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을 해 보니, 기습을 막기에 아주 유용한 지형이더군.”

“허허.”

“거창하게 수성전(守城戰)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소?”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내 당신을 충분히 인정하오만,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오. 아닌 말로, 작정을 하면 지금도 당신을 잡을 수 있소. 피해는 크겠지만 말이오.”

“그것 때문에 그렇소이다.”

“음?”

“혹여 귀측이 우릴 공격하는 일이 생긴다면, 억울해서라도 그냥 죽어 주기는 힘들지 않겠소? 당신 말마따나 피해라도 입힌 후에 죽어야 마음이 편하겠지.”

“…….”

“아마 그것이 내 스승의 마음이지 않았나 싶소.”

담사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서량은 낙정혈사를 말하고 있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그때의 기억을, 근래 들어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담사영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허허, 철두철미한 사람이로군.”

담사영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서 교주처럼 깐깐하신 분께서 어찌 그리 즉흥적인 전략을 구사했단 말이오? 대단하시오. 혹, 지금껏 신교가 우리를 상대했던 방식은 교주가 아니라 귀교의 총군사 머리에서 나온 것이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워낙에 머리가 좋소이다. 가끔은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오호.”

그간의 정보와 소문에서 유추한 서량의 성격은 즉흥과 파격,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렇게 보니 보통 성격이 아니었다. 언제 어느 때라도 판을 뒤집어엎을 수 있을 듯한 불같은 기질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리 말을 들어 보니, 그간 신교를 움직이던 것은 교주가 아니라 군사였던 모양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군.’

즉흥, 그리고 파격.

그러나 지금 담사영의 눈에 비치는 서량은 불같은 성격과 냉정한 이성을 동시에 갖춘 자였다.

이런 자는 어떤 작전이라도 즉흥적으로 움직이기 힘들다. 그런 성격으로 마도 무림의 정점에 섰기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유인즉, 스스로의 단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단점조차 파악하지 못한 자가 조직의 수장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담사영의 오해였다.

서량은 필요한 경우 충분히 냉정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필요할 때였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냉정이 필요한 때였다. 담사영을 보는 자리에서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 될 테니까.

인생에서 가장 냉정해진 시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담사영은 그 냉정함을 읽었다.

“총군사…… 총군사라.”

담사영이 싱긋 웃었다.

순간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담사영이 언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작정하고 뭔가를 캐내려 할 때. 즉, 지금 내게서 뭔가를 얻어 내려 하고 있군.’

담사영이 입을 열었다.

“귀교의 총군사는 아주 과격한 사람인 모양이오. 그리 거대한 단체를 움직이는 데 있어 매 순간 정석을 피하다니.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그런 전략을 내세우긴 힘들지.”

“감당은 안 되도 믿을 만은 하더이다. 어지간하면 다 들어주고 있소.”

“허허, 서 교주의 배포가 참으로 놀랍소. 정석이 괜히 정석이라 불리는 것이 아닌데, 그것을 비틀어 대는 총군사를 전적으로 믿는다니 말이오.”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겠소?”

담사영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렇지. 결과만 좋으면 되었지. 하기야, 그간 귀교의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전략 전술에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셔야 했소이다. 교주의 무력 외에, 총군사의 지략이 돋보이는 움직임이었소.”

“허(虛)를 찔러 사건을 아군에 유리하게 이끄는 것. 그것은 그대도 잘하지 않소?”

“허허허허.”

허를 찌른다.

서량의 입에서 직접 그 말을 들으니, 더더욱 확신하게 된다.

‘빙궁이다. 옥새를 노리는 것은 빙궁이 확실해.’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알아냈다. 뭔가를. 혹은 확신했거나.’

담사영에 대해 아는 게 많다 보니, 언제 어떤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몰라도 변화만큼은 확실히 읽어 낼 수 있었다.

‘내게서 무엇을 알아냈지?’

아직은 모른다. 더 얘기를 진행해 본 후, 무엇을 가져갔는지도 알아보는 수밖에.

“좋소. 굳이 위로 올라가고 싶지 않다면 이곳에서 얘기를 하십시다.”

“그럽시다.”

“아! 그 전에.”

“음?”

“설마하니 이번에도 살수를 부르진 않았길 바라겠소.”

천연덕스러운 기습이었다.

물끄러미 담사영을 보던 서량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알았소이까?”

그 반응에 오히려 담사영이 놀랐다.

“그것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오?”

“인정 안 할 건 또 뭐요?”

“송 성주를 떼어 내려 한 것 아니었소이까? 그 사실이 알려지면 서 교주에게 큰 낭패가 아니겠소?”

서량이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나야 당신을 속일 수 있다 쳐도, 저들은 당신의 눈에서 벗어나기 힘들지 않겠소?”

“…….”

“통하지도 않을 거짓말은 하지 않소이다.”

“……허허허.”

“그리고.”

서량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미 당신에 대한 송금백의 믿음은 떨어지기 직전의 동경만큼이나 위태롭소이다.”

“…….”

“나, 그리고 당신. 둘 중 누구의 말을 믿어 줄 것 같소?”

담사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오?”

“별짓 안 했소. 그저 의욕을 좀 불어넣어 준 것뿐이지.”

“의욕?”

“욕심이 너무 어중간한 인간이라서 말이외다. 제대로 한판 붙으려면 작정하고 욕심을 내든지, 그게 아니라면 얌전히 빠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했지.”

담사영이 탄식을 뱉었다.

“후자를 택했겠군.”

“과연 뛰어난 안목이시오.”

“허어.”

이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담사영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송 성주. 당신 실수한 거야.’

이것은 서량을 욕할 게 아니라 송금백이 멍청한 거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서량은 말 몇 마디로 대국의 판도를 바꿀 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준 셈이지만, 반대로 송금백은 스스로 물러나면서 한때나마 손을 잡은 아군의 전력에 공백을 만들었다.

이런 일은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오늘 자리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즉시 송금백을 소환해 따져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 그러한 길을 택하겠다고 한다면?

‘그때는 철혈성부터 날려 주겠다.’

담사영이 치미는 분노를 꾹 참고 말했다.

“서 교주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오.”

“또 칭찬이시군.”

“보고 또 봐도 칭찬할 것밖에 없소이다. 그 연배에 어찌 그리 뛰어난 능력을 얻었소이까?”

서량이 차갑게 웃었다.

“글쎄올시다. 내가 젊기는 한데, 나이에 비해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말이오. 어쩌면 전생에 그대 밑에서 개고생만 하다가 죽었는지도 모르겠소.”

“허허허! 재미있는 말씀이구려.”

서늘한 눈으로 담사영을 보던 서량이 일순 미소를 지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했거늘 또 사소한 몇 마디로 시간을 보냈소이다.”

“허, 그렇구려. 서 교주와의 대담이 흥미진진해서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소이다.”

그럴 리가 없다.

지금까지의 대화 중 사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미 만남 자체가 본론이요, 그간의 모든 대화가 치열한 두뇌 싸움이었다. 자그마한 행동, 눈빛, 말투, 목소리만으로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추하는, 시끄러운 침묵으로 가득한 살벌한 전투였다.

서량이 입을 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했으니, 먼저 말하리다.”

“말씀하시오.”

“시간을 정해 놓는 게 어떻겠소?”

“시간? 무슨 시간을 말씀하시는 게요?”

“어차피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싸움이 아니겠소? 우리의 싸움은 양민들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라오. 그렇다고 하던 싸움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차라리 시기와 장소를 잡아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내는 것이 어떤가 싶소.”

담사영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전면전을 하자는 것이오?”

“그게 깔끔하지 않겠소?”

“허허, 가당치 않은 말씀이오. 귀교의 전력은 강호삼세의 으뜸이외다. 힘으로 부딪치면 우리가 불리할 게 뻔한데, 무엇 하러 그러겠소?”

거짓말.

서량은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실제 전력이 어떻든, 담사영 역시 자신이 있다. 정면에서 맞부딪쳐도 천마신교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면 승부는 피하려 한다.

“이대로 싸움을 끌겠다?”

“정 머리가 아프면 항복의 백기를 들어도 괜찮소이다.”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그럴 수는 없지.”

“그렇소. 설령 내가 전면전에 동의한다 한들, 서 교주는 절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오.”

“당신 말이 맞소. 일일이 약속 지켜 가며 싸우는 멍청한 놈은 아니라오.”

“허허허.”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소?”

“말씀하시오.”

“황궁의…….”

그때였다.

‘음?’

서량은 담사영의 기세가 일순 달리진 것을 느꼈다.

‘전음?’

뭔가 보고를 받는 모양이었다. 한데 보고를 받는 담사영의 표정이 참으로 묘했다.

‘당황했다.’

진짜로 당황했다. 서량은 담사영 측 신변에 뭔가 크나큰 문제가 터졌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서 교주.”

“말씀하시오.”

“혹, 마존급 고수를 데리고 왔소?”

서량이 무담과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보고 계시잖소?”

“그 둘 말고 말이오.”

“음?”

기실, 이 얘기는 굳이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럼에도 하는 것은 담사영 역시 화가 났기 때문이고, 이 사건을 통해 상대를 압박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지극히 나빴다.

“몸이 마른 마인, 그것도 마존급 고수와 우리 측 고수가 부딪쳤다고 하오.”

서량의 눈빛이 돌변했다.

“마존?”

“그렇소.”

마존이라니? 중원의 중심에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마존들 중 누군가가 여기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때였다.

“교주님.”

서량이 무담을 바라보았다.

“혹, 고루마존이 아닐는지요?”

순간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고루!’

그렇다. 고루마존일 확률이 아주 높았다. 이유인즉, 그가 호북으로 진입해 자신에게 위기를 알려 줄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굳이? 이미 다 끝난 일인 것을?

흔치 않게 당황한 서량은 문득 드는 생각에 담사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설마, 사망자가 나왔소?”

담사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망자가 있소.”

“……!!”

“이거, 좋은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끼리 칼부림을 하게 생겼소이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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