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512화 (511/774)

512화. 적(敵)이라는 한 글자 (4)

사망자가 나왔단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

서량은 머리가 차게 식는 것을 느꼈다. 급박함에 피가 머리로 쏠려도 모자랄 상황이지만 오히려 이성은 더더욱 차가워졌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지금껏 그 어느 때보다도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망자가 누구요.”

담사영의 눈이 깊어졌다.

그는 서량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동료나 수하의 죽음에 냉정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천성이었다. 어떤 공부를 익혔고, 얼마나 높은 경지에 달했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성품이었다.

한데도 상대는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

‘참고 있다? 아니야, 참는 것보다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다.

설령 자신이 총공격을 가한다 해도 정도 이상으로 흥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만한 자리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그래 봤자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사영은 상대의 냉정을 흐트러트릴 만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빙궁.’

그는 서량이 왜 중원으로 나왔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옥새 때문이었다. 이 비범하기 짝이 없는 마교의 수장은 그 자신을 미끼로 내던져 옥새 탈환의 작전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도록 판을 짠 것이 분명했다.

대담한 방식이었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술수를 쓰는 자였다.

그랬기에, 담사영은 서량이 상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라고 생각했다.

“사망자가 누구인가……. 그래, 그것은 참으로 중요하지. 그러나 어느 편에서 사망자가 나왔든, 우리가 이곳에서 부딪칠 수 있음을 알고 계셔야 할 것이오. 당신에게 수하가 중요하듯, 내게도 수하는 중요하니까.”

“그래서 사망자는 누구요?”

빙궁을 입 밖에 내 상대를 뒤흔들어 볼까 싶었지만, 역시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평소라면 그런 선택지는 아예 떠올리지도 않았을 터, 그만큼 상대가 주는 압박감이 대단하다는 뜻이리라.

담사영은 쓰게 웃었다.

그는 굳이 거짓을 입에 담지 않았다.

“화왕이오.”

* * *

“죽어라, 이 개새끼야!”

콰왕!

무너진 주루를 뚫고 들어간 화왕이 미친 듯이 혈화신기를 뿌려 댔다.

지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화왕!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조심하……!”

그때였다.

콰르르릉! 화아아악!

삼 층 주루의 뚫린 창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장관이라면 장관일 터, 그러나 지왕은 그 불꽃을 제멋대로 조종하는 짙고 짙은 마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콰드드드득!

축지법으로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그때, 주루 이 층 벽이 터졌다.

콰아앙!

동시에 한 줄기 화염이 지왕을 향해 쏘아졌다.

지왕의 눈이 흔들렸다.

‘화왕?!’

화왕의 염화술이 아니라, 불꽃 그 자체가 된 화왕이 튕겨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공에 직격을 당한 듯, 화왕의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정신을 잃은 것이다.

‘제길!’

지왕이 재빨리 화왕을 받아 들었다.

같은 혈신기라도 기의 성향이 너무 달랐다. 혈지신기가 순식간에 들끓어 올랐다.

화왕을 땅에 눕힌 지왕.

그때, 부서진 건물 파편 수백 개가 지왕을 향해 날아갔다.

‘……!’

건물의 파편이라 해도 그걸 다 모으면 굉장한 무게가 된다. 한데 그걸 이런 속도로 날리고 있는 것이다.

‘이익!’

콰콰쾅!

토벽(土壁)을 뽑아 올려 죽음의 산탄(散彈)을 막아 냈다.

토벽이 신음하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 위력이 강하다는 뜻이었다.

“이놈! 지옥 밑창에 처박아 주마!”

파아아앙!

단숨에 토벽을 흩어 낸 지왕이 부서진 주루에서 고루마존의 기척을 찾았다.

‘어?’

지왕의 눈이 흔들렸다.

놀랍게도 그곳에선 고루마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곳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땅 위에 선 자, 자신의 눈을 피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함에도 고루마존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후우욱!

순간 지왕은 정수리와 양어깨를 짓누르는 무시무시한 압력을 느꼈다.

지왕이 고개를 들었다.

고루마존이 폭풍과도 같은 속도로 쏘아지고 있었다.

대체 언제 저기까지 날아올랐는지 고민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지왕은 혈지신기를 퍼트려 대규모 지진술을 역(逆)으로 끌어 올렸다.

콰콰쾅!

다섯 개의 흙기둥이 쑤욱 뽑혀 올라와 고루마존을 노렸다.

그때였다.

‘헉!’

칼날처럼 일어난 거대한 지검(地劍)이 고루마존을 꿰뚫기 직전, 그의 신형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화왕의 풍화륜이나 자신의 축지법을 보는 듯했다. 문제는 상대가 무슨 수법을 썼는지, 어디로 향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친! 이게 뭐야?!’

콰아아앙!

“크아악!”

지왕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송곳처럼 예리하게 찔러 들어온 기운이 전신을 장악하더니, 순식간에 몸을 허공으로 뽑아 올렸다.

“늙었다고 배움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는 법이지.”

지왕의 눈이 흔들렸다.

어느새 허공에 뜬 자신 앞에 피범벅이 된 고루마존이 흑갈색 마기를 흩뿌리며 자세를 잡고 있었다.

“너희들의 술법은 실로 대단했다만, 그 역시 기(氣)의 조화 안에 있었어.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감사를 표해야 마땅할 일이겠지.”

깨달음.

대체 고루마존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에 천룡칠주의 초고속 신법에 비견할 만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일까.

“이놈!”

파아아앙!

지왕이 고루마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고루마존의 마안이 선명한 빛을 뿌렸다.

퍼펑!

지왕의 팔이 옆으로 확 밀쳐졌다.

손도 대지 않고 대지충산권의 권로(拳路)를 흐트러트렸다. 어떻게 이런 짓이 가능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으아아압!”

지왕이 손을 뻗어 지력을 끌어 올렸다.

순식간에 솟아오른 거대한 토벽이 해일처럼 고루마존을 삼켜 버렸다.

쿠구구궁!

그대로 땅으로 내려가는가.

콰앙!

비단처럼 넓게 펼쳐진 토벽 중앙에 동그란 구멍이 뚫렸다.

퍼어어억!

“크아악!”

지왕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이 손목부터 날아가 버린 것이다.

후우욱!

그뿐만이 아니었다.

땅에 삼켜졌던 고루마존이 어느새 또 지왕의 근처까지 도달해 있었다. 혀를 내두를 만한 극한의 신법, 어떤 원리를 이용한 이동술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었다.

‘헉!’

와중에 지왕은 또 하나를 깨달았다.

지금이라면 땅에 떨어졌어야 정상인데, 그의 몸은 아직도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 왜?

“너희는 불을 다루고 땅을 다루더군. 참으로 신묘한 공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제아무리 화경에 올랐다 한들 타력(他力)에 의지한 무공은 결코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닌바. 놀라운 술법이지만, 본디 그것은 전투에 적합한 공부가 아니다.”

개소리! 칠요의 비술은 하나같이 한 성질의 기운을 극한까지 구현하는 신공이자 술법이다. 그런 공부가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대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힘은 지극히 한정적인 것. 중요한 것은 그 기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겠지. 너희의 힘은 실로 신선술(神仙術)처럼 보이지만, 두 주먹에 인생을 건 진짜 무인 앞에서는 그만큼 빈틈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고루마존이 손을 뻗었다.

“이렇게.”

화아아아악!

지왕이 입을 떡 벌렸다.

그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전신을 결박한 마기가 그의 몸을 허공 높은 곳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힘이었다. 허공섭물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술수였다.

이런 것은 무공이 아니다. 거의 술법이라 봐도 좋지 않은가?

그의 마음을 짐작했던 듯, 고루마존이 말했다.

“이것은 술법이 아니라 기(氣)를 이용한 기공이니라. 너희는 온전히 몸에 담아야 할 기를 자연에 반쯤 걸치고 있었어. 그러니 그런 상리를 벗어난 술법이 가능한 것이겠지만, 체외의 힘을 조종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강한 방법이 있지.”

지왕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고루마존이 그의 머리 위에 있었다. 언제까지나, 어디로 도망쳐도 끝까지 따라잡을 수 있는 귀신처럼 느껴졌다.

“그 힘으로 땅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너 자신에게 집중해 대인전투(對人戰鬪)를 벌였다면, 이번 싸움은 너의 승리였을 것이다.”

고루마존의 깨달음.

그것은 칠요의 대사제들처럼 혈신기로 대기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으로 자신의 몸을 조종하는 것이었다.

결목신수의 고목인과 생목일척은 인력과 척력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기공(氣功)이자 기공(奇功)이다.

고루마존은 그 힘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원하는 대상을 하늘 높이 날려 보낼 수도, 인력과 척력을 세분화해 상대의 몸에 압력을 가하여 그 자리에서 즉사시킬 수도 있었다.

그것이 무인이지만 무인이 아닌, 술법가이지만 술법가가 아닌 두 왕을 보며 배운 고루마존의 깨달음이었다.

콰앙!

흑고루신권(黑骷髏神拳) 일격에 지왕이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고루마존이 지면에 내려섰다. 지왕이 날아오기도 전에 이동한 것이다.

그야말로 번개가 따로 없었다.

“교주님이시라면, 아니 다른 마존 정도만 되어도 나의 깨달음을 모조리 분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체내로 파고드는 힘의 흐름을 그 자리에서 증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야.”

고루마존이 손을 뻗었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것이다.

“그 경지에 올라섰음에도 끝까지 반쪽짜리로구나. 그 신묘한 힘이 아깝다.”

그때, 지왕의 왼손 끝에 흙이 닿았다.

콰아아앙!

일순간 그의 몸이 북서쪽으로 향했다.

땅을 접고 이동하는 축지법이다. 큰 타격을 받은 듯 예전만큼 엄청난 범위를 이동하진 못했지만 여전히 빠른 속도였다.

고루마존의 눈이 형형해졌다.

‘저 방향은?’

무당산이다. 놈은 지금 무당산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놈!’

즉시 신법을 펼치려던 고루마존은 순간 눈앞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주르륵.

코와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죽겠구먼.’

심한 내상을 입은 와중에 잠시지간 얻은 깨달음으로 마공에 전신을 맡겼다. 덕분에 신속(迅速)의 전투가 가능했지만, 그만큼 몸에 무리가 많이 간 것이다.

고루마존은 개의치 않았다.

이따위 몸, 언제 박살 나도 상관없다. 교주님의 안전만 확인할 수 있다면 평생을 누워 지내야 한대도 상관이 없었다.

파아아아앙!

남은 내력을 쥐어짜 단숨에 지왕의 뒤를 따랐다.

이 깨달음을 쓰면 쓸수록 핏물이 올라왔다. 시야가 어지럽고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래도 고루마존은 달렸다. 오로지 교주, 서량의 안전을 확인하겠다는 일념하에 목숨을 걸었다.

이왕이면 지왕보다 빨리 가고 싶었지만, 몸 상태를 인식한 순간 척력의 신법도 느려졌다. 전신의 혈맥이 너덜너덜해졌다. 이 이상 무리하면 무당산에 도달하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두 초고수는 반쯤 정신이 날아간 상태로, 하지만 그 어떤 신법의 대가보다도 빠른 속도로 무당산을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점점 정신을 잃어 가던 와중.

고루마존의 늙수그레한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후욱!

저 멀리 보이는 무당의 선산.

도가 성산(聖山)의 최고봉이라는 저 산의 입구에서부터 무시무시한 기운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두려운, 그러나 그만큼 친근한.

너무나도 무거운, 그러나 그만큼 가벼운.

너무나도 압도적인, 그러나 바라 마지않는.

이 세상 모든 마(魔)의 경애를 받을 단 한 사람의 기운이 구름처럼 상공을 지배하고 있었다.

‘교주님!’

“카아아아악!”

그때, 지왕이 악에 받친 비명을 질렀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순간 묵직하게 깔려 나오는,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한마디.

“어디서 감히.”

퍼어어어엉!

엄청난 폭음과 함께 지왕의 몸이 그 자리에서 터져 버렸다.

붉게 물든 시야, 어둡고도 어두운 세상 속에서 마침내 고루마존은 볼 수 있었다.

육 척을 넘어 거의 칠 척에 다다른 장신.

떡 벌어진 어깨와 완벽하게 다듬어진 육체, 그 위로 화려한 핏빛 전포를 걸친 무적의 마인을.

고루마존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노신이 교주님을 뵈옵니다!”

마침내 고루마존은 자신의 영육(靈肉)을 바친 단 한 명의 신(神)을 만날 수 있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