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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15화 (514/774)

515화. 적(敵)이라는 한 글자 (7)

무당산 어귀에는 해검지(解劍池)라는 곳이 있다.

무당파의 시조 삼봉진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무당산에 오르는 자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이곳에 병장기를 풀어 놓아야만 한다. 그것이 무당의 법도이고, 대무당(大武當)을 향한 존엄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법도와 존엄이 산산이 흩어져 날아갔다.

쿠르르릉!

단리후는 깜짝 놀랐다.

“이건 설마?!”

엄청난 충돌이었다.

그 충격파가 산 밑에서부터, 산 정상인 이곳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얼마나 강한 힘의 충돌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이런 힘의 충돌을 벌일 수 있는 자들은 단 두 명뿐이었다.

파아아아앙!

단숨에 산자락을 타고 내려가는 단리후.

그런 그의 등 뒤로, 하나둘씩 고수들이 따라붙었다.

하나같이 단리후에 비해 큰 모자람이 없는 고수들이었다. 물론 그중 가장 인상적인 기도를 발하는 건 단리후였지만, 그 고수들의 수가 무려 일흔둘이나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담사영이 보유하고 있는 최강의 무력 조직은 교룡조(蛟龍組)였다.

하지만 그가 보유한 최강의 수뇌부는 바로 칠십이정귀(七十二精鬼)였다. 그들 모두가 각자의 수명을 반절이 넘도록 깎아 대자연의 힘을 얻은 천룡의 용아(龍兒)들이었다.

기가 막힌 전력이었다.

이것이 바로 담사영이 대단한 이유였다. 화경, 극마의 경지란 선택받은 자들만의 세계라, 제아무리 좋은 명사(名師)와 재능 넘치는 제자가 있어도 단시간에 만들어 내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밑이라면.

구파 장문인 이상, 화경의 문턱 전까지의 무공 경지로 대규모 화력을 집중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라면, 놀랍게도 어느 정도 양산이 가능하다.

그것에 필요한 것이 바로 생명이요, 혼이었다. 그리고 그 비술을 알고 있는 자는 천하에 단 두 명, 담사영과 천룡궁주밖에 없었다.

천하를 도모할 만한 힘. 정치나 전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실제 힘에 있어서도, 담사영은 천하를 손에 넣을 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파아아아악!

무서운 속도로 산을 타고 내려간 단리후의 눈에 일순 거대한 빛무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단리후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흩어져라!”

콰콰콰쾅!!

일흔세 명의 고수들이 좌우로 흩어지기가 무섭게 그들 사이로 거대한 고랑이 파였다.

파지지지직! 화르르륵!

뇌전이 훑고 지나간 곳에 불이 붙었다.

단리후가 떨리는 눈으로 멀어지는 힘의 결정체를 주시했다.

쾅! 퍼어어어엉!

빛이 훑고 지나간 곳은 모조리 부서지고 박살이 났다.

무당산에 새로운 길목이 새겨지고 있었다. 아름드리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하늘을 날았고, 부서진 바위는 사방으로 비산하며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재앙이다. 무당산에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저 아래에서 두 고수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마인!’

마교주의 호위들이었다. 하나같이 극마에 오른, 일대일 겨룸으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실력자들이었다.

저들을 막아야 하는가? 아니면 함께 가야 하는가?

그때, 단리후는 천룡기(天龍氣)를 통한 전음 한 자락을 들을 수 있었다.

[절대 싸우지 마라! 절대 올려 보내지도 마라!]

실제 전음이라기보다는 심령(心靈)의 외침에 가까웠다.

사부의 의지를 ‘이해’한 그였다. 단리후가 남은 한 팔을 들어 태양신기(太陽神氣)를 끌어 올렸다.

번쩍! 화르르르륵!

이전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오른 태양신공이었다. 천하의 무담과 마동필도 주춤할 수밖에 없는 화력이었다.

단리후의 전면에 거대한 불의 벽이 솟구쳤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도 이곳을 넘어갈 수는…….”

그때, 태양신화(太陽神火)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위압감을 자아내는 화염의 벽이 땅 밑에서부터 피어올랐다.

‘헉!’

화들짝 놀란 단리후가 십 보 뒤로 물러났다.

퍼퍼펑! 화르르르륵!

태양신화보다 범위는 작지만, 화력은 한 수 위였다.

아니, 이것은 화력의 차이를 논할 만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무공 자체가 달랐고, 기의 성질이 달랐다.

화아아아악!

두 겹의 화벽(火壁)이 충돌하며 서로를 마구 집어삼켰다.

그리고 가장 약한 화벽 중앙을 한 명의 고수가 돌파했다.

퍼어어엉!

한 자루 흑색 장검이 핏빛 화염을 뚫어 냈다.

구유마공의 지종열화벽을 일으켜 단리후의 태양신화를 잡아먹고 나타난 사람은 마동필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무담이 따랐다.

“당신들은……!”

그때, 마동필의 두 눈이 지독한 살기를 발했다.

“막는 자는 다 죽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살기였다. 단리후는 일찍이 이처럼 지독한 살기를 뿜는 자는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곤.

‘마교주!’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린 단리후, 일순 그의 손에 어두운 백색 기운이 모여들었다.

사라라라라락.

세상이 한층 더 어두워지는 듯했다.

일렁이는 태양신화가 사그라지고, 심지어 지종열화벽까지 힘을 잃는 듯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극상의 음기(陰氣). 술법과 무공의 결합이라는 천룡일월술(天龍日月術) 중 월영신기(月影神氣)를 구현한 것이다.

단리후가 외쳤다.

“절대 이 둘을 보내선 안 된다!”

* * *

쏟아지는 뇌정마기가 대지를 누볐다.

퍽! 퍼퍼퍽!

땅 곳곳을 터트리는 마기가 지독한 살기를 유발했다.

무시무시한 돌진으로 담사영을 밀어붙였던 서량은, 일순 하단에서 올라오는 강력한 힘을 느꼈다.

퍼어어어어엉!

순식간에 하늘 높이 날아오른 서량이 산길을 따라 무려 칠부 능선까지 상대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역시 담사영은 담사영이었다.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서량의 공격을 받아 내면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반격까지 가했다.

틈을 보고 구사한 반격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서량의 무공을 받아 내고, 감정을 다스리느라 공격이 늦어졌을 뿐이었다.

파지지직! 쾅!

흑청의 뇌기로 몸을 감싼 서량이 땅으로 내려섰다.

쿠우웅!

담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면에 깊은 고랑을 만들어 내며 밀려났음에도 옷에 먼지 한 톨 묻지 않았다. 전신에 융통무애(融通無碍)한 기가 흘러 육신을 보호하고, 나아가 의복에까지 기가 스며들어 어떠한 외기(外氣)도 침범할 수 없는 경지였다.

담사영은 강했다.

기대 이상, 아니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송금백과는 또 다른 무공이었다. 이룬 경지는 비슷하지만 기(氣)의 운용 방식이나 특기가 다른 만큼, 송금백과는 전투의 결과가 다르게 날 수 있었다.

후욱!

뻗어 나온다. 담사영의 기파가.

특유의 순청색 기파를 사방으로 드리우며 본인의 막강한 무력을 자랑하는 그였다.

서량의 안광이 무섭게 명멸했다.

‘천라무허신공(天羅無虛神功)!!’

실로 오랜만에.

정말 얼마 만에 보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절대무공이었다. 지금의 담사영을 있도록 해 준 정파 무림 정점의 무학이었다.

쿠웅!

가볍게 한 발자국 움직였을 뿐인데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츠츠츠츠츠!

발바닥 밑에서부터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계를 초월한 내공이 육신에 다 담기지 못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안정적이었다. 도대체 저 내공이 무엇인지, 힘이 과함에도 어떻게 삼단전을 안정시킬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맞군.”

담사영의 두 눈이 파랗게 물들었다.

신선과도 같은 외양, 그러나 눈동자는 파랗다. 마기나 사기(邪氣)가 아님에도 섬뜩함을 안겨 주는 눈빛이었다.

“네놈, 천하진이 맞구나.”

어느새 담담해져 버린 목소리였다.

서량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씩 웃으며 자세를 고쳐잡을 뿐이었다.

담사영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대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네놈이 어찌 그런 모습으로……?”

번쩍!

뇌공만마일식(雷公萬魔一式)은 반격에 특화된 쾌도술이었지만, 서량에게 무공의 특질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저 형을 따오고 마음을 실어 내치면 그것이 바로 천하제일 무공이요, 절대의 초식이 되는 것이다.

벼락같은 일도(一刀)가 담사영을 반으로 갈랐다.

콰앙!

담사영을 반으로 쪼갠 뇌전의 도격이 십여 그루의 거목을 베고는 사라졌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허극신(虛極身).”

극상승의 신법이자 보법이었다. 허상을 만든 담사영의 진체는 뇌격이 지나간 자리 바로 옆에 있었다. 그 강력한 도법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낸 것이다.

“허극신을 안다…….”

여전히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표정은 싸늘했지만, 그의 두 눈은 해소하지 못한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천하진, 정말 그놈이었어.”

놀라움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진정 확신할 수 있겠다.

천라무허신공의 기파를 보면서도 그리 놀라지 않았고, 제 입으로 허극신이라는 세 글자를 뱉어 냈다.

마교주가 알 수 없는, 알아서도 안 되는 무공이었다. 그의 무공을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천하진…… 그래, 천하진.”

발산하는 기파는 하늘에 닿을 듯했고,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지옥 밑바닥까지 깔리는 듯했다.

“너는 천하진이지. 천하진일 수밖에 없지.”

차갑기 그지없던 그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내가 부렸던 수하 중 유일하게 나의 손에서 벗어난 놈. 죽지 않고 날 떠난 놈은 오직 네놈 하나뿐이었다.”

비요왕 때와는 달랐다.

비요왕은 끝까지 천하진의 환생을 믿지 않으려 했다. 마음 깊이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외면하려 하였다.

담사영은 아니었다.

그는 상대를, 자신과 상대를 이어 주는 인연의 끈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 끈이 시커멓게 물들었다는 것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한데…… 네놈이 왜 거기에 있는 것이냐?”

또다시 그의 말투가 바뀌었다.

담사영이 아랫사람에게 호통치듯 외쳤다.

“이놈! 마교 공략의 선봉이 되어야 할 놈이, 마교의 수장이 되어 날 치러 와?!”

서량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들렸지만, 머리에 담아 두지 않았다.

그의 눈은 담사영의 흔들리는 기도를 하나하나 파헤치고 있었다.

‘쉽지 않군.’

콰아앙!

담사영이 땅을 굴렀다.

엄청난 진각에 반경 십여 장 내의 바위들이 제멋대로 깨져 나갔다.

바위는 부서졌지만 나무는 멀쩡하다. 그 기묘한 특성이 서량의 오감 전체로 스며들었다.

“어딜 보고 있는 거냐! 어찌 주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냐!”

담사영의 두 눈이 잔뜩 충혈되었다.

껍데기가 다르다 한들, 놈은 아직도 자신의 부하다. 부하여만 하고, 부하일 수밖에 없다. 그는 단 한 번도 천하진을 내친 적이 없었다.

죽여도 내가 죽이고, 내쳐도 내 손으로 내친다. 제 마음대로 떠나는 개새끼는 키운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그러했다.

“이노옴!!”

담사영의 목소리에는 배신감이 가득했다.

욕심 하나로 이 자리에 오른 그였다. 그리고 그의 욕심은 천하제일의 자존심으로 변해 그의 자아를 지탱하고 있었다.

“나는 네놈을 풀어 준 적이 없다! 너는 여전히 내가 기르는 개에 불과해!”

담사영의 빈틈을 찾아내고 있던 서량이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그 웃음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담사영은 더더욱 화가 났다.

“감히……. 네깟 놈이 감히 내 앞에서 그리 웃어?”

툭! 주르륵.

담사영의 눈에 혈관이 터졌다. 한 줄기 핏물이 흐르니, 그것은 마치 피눈물처럼 보였다.

“좋다. 처음부터 다시, 철저하게 교육해 주마!”

“찾았다.”

콰아앙!

무지막지한 일격을 맞은 담사영이 거대한 바위 하나를 박살 내며 땅을 굴렀다.

천마도를 어깨에 올려놓은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데 아까부터 뭐라고 주절대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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