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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17화 (516/774)

517화. 천하제일(天下第一) (1)

쿠르르릉.

무당산 전체가 신음하는 것 같았다.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바위가 부서지고 쪼개진 나무가 하늘을 날아다녔다.

인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무당산의 오솔길을 거대한 관도로 만들어 버리며 질주한 서량과 담사영의 싸움은 가히 무신(武神)의 대결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크르르릉.

호왕이 나직이 목을 울렸다.

서량의 심령과 이어진 호왕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주인이자 친구가 점차 완전(完全)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필생의 숙적을 마주하며 오히려 스스로의 자아를 확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지난 세월, 서량의 변화를 금호와 함께 옆에서 지켜본 호왕이다.

분명 이 전투가 끝나면 서량은 마인으로서 완성될 것이다.

기뻐해야 마땅할 상황이지만, 또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너무 강했던 까닭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죽을 위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그것이 불안하여 호왕은 진정할 수 없었다. 만반의 태세를 갖춘 거대한 발톱이 엎드린 발 사이로 흉포하게 빛났다.

그때, 섬섬옥수 하나가 호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진정해.”

호왕이 주서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검을 뽑아 든 주서윤이 맑은 눈으로 무당산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보고 계셔. 사형은 위험하지 않을 거야.”

우우우웅.

주서윤의 검에 은은한 백색 기운이 감돌았다.

성스럽고도 신비로운 그 기운은, 어딘지 모르게 선기(仙氣)를 연상케 했다.

* * *

쿠르릉!

‘이런.’

쏟아지는 술법 공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단리후는 강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받쳐 주며 공격력을 증폭시키는 술사들의 힘 역시 대단했다.

‘빈틈이 없다.’

쏟아지는 열기와 스멀스멀 올라오는 한기가 교차하며 신체의 움직임을 통제했다.

마동필, 일찍이 호법원의 천재 호위무사로서 스스로의 역량을 증명했던 무사였으며, 이후 서량을 만나 각고의 수련과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을 이겨 내며 사십이 안 된 나이로 극마에 오른 검사였다.

이룬 경지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젊은 나이다. 그러나 그의 경험은, 실력은, 응변의 기지는 어지간한 노강호를 한참이나 상회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찾을 수 없다, 저들의 빈틈을.

철벽의 무공도 아니요, 맞상대할 수 없는 술법도 아닌데 묘하게 빈틈없었다. 구유마공의 엄청난 화력 앞에서도, 구주마검세의 벼락같은 검기(劍技) 앞에서도 어떠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우르르릉!

흑혈마검에서 불벼락이 뿜어졌다.

쏟아지는 맹공, 극강의 내공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검(劍)이라는 병기가 이뤄 낼 수 있는 천 개의 도(道)가 깃들어 있었다.

콰아앙!

단리후의 몸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뿐이다. 반투명한 기의 장막으로 둘러싸인 그의 몸은 마동필의 파괴적인 검력 앞에서도 멀쩡하기만 했다.

‘이런.’

화르르륵! 휘이이이잉!

마동필답지 않게 잠깐의 빈틈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빈틈을 상대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았다.

거대한 불길과 육안으로 보이는 바람의 술법들이 마동필에게로 쏟아졌다.

‘환상적이군.’

무당산 하늘 전체를 덮을 만큼 거대한 술법.

용권풍처럼 휘도는 불기둥이 휘어져 쏟아지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소형 태풍이 몰아쳤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재해였다.

번쩍!

마동필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내 불기둥과 태풍이 그가 서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콰아아앙!

나무가 불타고 바위가 쪼개졌다. 대지가 신음하고 하늘이 울부짖었다.

비록 이룬 경지는 마동필에 비할 수 없지만, 화경을 코앞에 둔 칠십이정귀의 천룡술법은 시시각각 마동필의 목숨을 노릴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제아무리 경지 차이가 난다 해도 이 정도 숫자가 되니 공격 한번 날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저들이 순수한 무공이 아닌, 술법과 융화된 신비로운 힘을 구사해서 다행이었다. 만일 수십 년 적공으로 일구어 낸 무도(武道)였다면 지금껏 단 한 번의 공격도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수십 명의 술사가 텅 빈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천하의 마동필조차 등골이 서늘한 광경이었다. 저들의 실력은 명백히 자신보다 아래였지만, 저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묘한 기운이 묘하게 심력을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콰아앙!

외측에 서 있던 술사 둘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공격이 통했다. 그리고 그 공격을 가한 사람은 마동필이 아니었다.

“알겠군.”

마동필이 지키고 선 지종열화벽 뒤로 무담이 걸어왔다.

강철처럼 단단하고 서늘한 그의 눈빛에 단리후는 움찔했다.

“이들의 술법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네. 그리고 그 주축이 되는 자는 저 외팔이 청년이야.”

우우우웅.

무담의 몸에서 푸른 마기가 넘실거렸다.

“마 호위, 자네가 어떻게든 저 청년을 몰아붙여 주게. 저 청년은 자네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이 많은 술사와의 술력 연계까지 신경 쓰진 못해.”

단숨에 천룡궁의 일주철벽술진(一柱鐵壁術陣)을 파훼할 방법을 만들어 냈다.

기실 그것은 파훼술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일주철벽술진은 진법 중에서도 그리 수준 높은 진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단한 만큼 연계를 깨기도 쉽지 않다. 무담과 마동필 정도의 무공이 아니라면 아예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방법인 것이다.

단리후의 얼굴이 굳어졌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소?”

무담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닥치거라. 싸우고 싶지 않으면 당장 길을 열어라.”

“웃기는군. 먼저 싸움을 건 것은 그쪽 수장이었소.”

“누가 싸움을 걸었든, 이유 따위 중요치 않다. 교주님께서 너희 독사 같은 수장과 싸우고 계신다. 우리는 그곳으로 갈 것이다.”

“외골수로군. 어차피 실력을 겨루는 것뿐이오. 두 분 모두 서로의 목숨을 끊으려 들지 않을 것이오. 둘 중 누구 하나라도 죽으면 그 즉시 난전이 터질 테니까.”

“그따위 사실은 알고 싶지도 않다. 내가 할 말은 하나뿐이야.”

무담이 검으로 단리후를 겨누었다.

단리후가 다시 한번 움찔했다. 검첨에서 올올이 피어오르는 무서운 마력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비키거라, 젊은 적장아. 비키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마동필과는 다르다.

실제 실력이 어떻든, 무담이 발하는 위세(威勢)는 이곳에 있는 모두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실력 이전에 마음으로 상대를 꺾어버린다. 천마신교의 대호법, 신교 최강의 방패 앞에 천룡술사들은 입 한번 열기 힘든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어렵다.’

단리후의 눈이 깊어졌다.

‘어떻게든 막을 수야 있겠지만, 그리되면 칠십이정귀에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 아직 혈신기(血神氣)의 이력(移力)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력 손상은 지나친 손해다.’

혈신기가 완성된 후, 천룡궁의 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력이 상승 중이었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를 혈신기의 이력이 끝날 때까지는 반드시 전력을 보존해야 했다.

생명력과 혼을 다루는 비술로 또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 말할 수 있지만, 그리되면 담사영과 천룡궁주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굳이 안 그래도 될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쿠구구궁!

단리후와 칠십이정귀가 만들어 낸 기의 방벽이 사라졌다.

단리후가 입을 열었다.

“좋소. 갈 테면 가 보시오.”

무담의 눈이 번뜩였다.

당연히 갈 생각이지만, 갑작스레 저렇게 나오는 게 상당히 수상했다.

“포기한 겐가?”

“만일 둘 중 하나라도 움직이면, 우리는 병력을 분산하여 그 거대한 호랑이가 있는 곳으로 전력을 쏟아부을 것이오.”

무담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거대한 호랑이라면 호왕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주서윤과 고루마존이 있다.

고루마존은 기절해 버렸고, 주서윤은 거인들의 생사전에 낄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나마 호왕이라면 강한 전력으로 칠 수 있지만, 무공의 고수라면 모를까 술사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병력 분산. 우리 둘 중 하나가 너희를 상대하면 그뿐이다.”

“지킬 게 많은 사람만큼 쉬운 공략 상대는 없소.”

무담은 내심 이를 갈았다.

이걸 잔머리가 잘 돌아가야 한다고 해야 할지, 악독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단리후의 저 말을 이쪽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 마동필이 말했다.

“분산해라.”

단리후의 눈이 빛났다.

마동필이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가 무슨 수를 쓰든 우리는 교주님께 간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가 죽어도 교주님께서만 안전하게 돌아가시면 그만이야. 우리에게 교주님은 그런 존재다.”

“…….”

“다만, 그 난리를 쳐 봤자 너희에게도 이로울 건 없을 것이다. 담사영은 자존심이 강하고 용서가 없는 자. 네가 아무리 그간 그놈의 총애를 받았다 해도, 이제부터는 아닐 것이다. 신뢰가 깨질 테니까.”

단리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시오?”

“진짜 그럴지는 모른다. 다만 교주님께서만 안전하시면 우리로서도 본전이야.”

마동필이 흑혈마검을 까딱였다.

“해 볼 테면 해 봐라. 우리도 아쉬울 건 없다.”

“………….”

단리후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마동필의 말에서 진심을 느낀 그였다. 동료들이 죽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교주가 죽는 것보다는 낫다. 마동필뿐만이 아니라 저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제길.’

정국을 읽는 것만큼은 천하를 논할 만하지만, 이런 상황을 접한 적이 없다. 머리는 뛰어나지만, 경험은 부족하단 뜻이었다.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단리후.

그런 단리후를 보며 마동필의 눈이 빛났다.

콰아앙!

단리후의 몸이 서너 걸음 밀렸다.

위이이이잉!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붉고 푸른 진기의 방벽이 생겨났다. 반투명한 그 기의 방벽은 그가 발하는 천룡일월술이었다.

마동필은 곧장 흑혈마검을 땅에 박았다.

푹!

그와 동시에 구유마공을 극한까지 개방했다.

화르르르륵!

일순간 반경 삼십여 장을 덮는 불꽃의 벽이 피어올랐다.

마검의 마기로 증폭시킨 구유마공의 지종열화벽이었다. 살기로 이루어진 불꽃의 벽이 마동필과 단리후, 칠십이정귀 모두를 에워쌌다.

마동필이 외쳤다.

“대호법님!”

퍼어어엉!

화벽 후방이 뚫리며 무담이 질주했다.

단리후가 이를 갈았다.

“이 치사한!”

“너희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화르르르륵!

마동필의 몸에서 핏빛 화염이 피어올랐다.

거대한 불꽃을 피워 내며, 그 자신의 몸도 화신(火神)으로 변모했다. 지종열화벽, 염혈화룡과 같은 기공술로, 극한의 내력 소모로 자신의 육체 자체를 마공화(魔功化)하는 지저화룡신(地底火龍神)이란 수법이었다.

현재로서는 구유마공의 가장 강력한 비기다. 당연히 내력 소모도 극심했다.

“내 마기가 전부 소모될 때까지, 너희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말을 할 때마다 입가에서 시뻘건 불꽃이 터져 나왔다. 실제로 불을 뿜고 있는 것이다.

마동필의 화안(火眼)이 단리후의 두 눈을 태워 버릴 듯 무섭게 타올랐다.

“지키고 싶다면 너희도 목숨을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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