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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18화 (517/774)

518화. 천하제일(天下第一) (2)

쩌어어엉!

강렬한 충돌과 함께 두 사람이 오 장씩 뒤로 물러났다.

서량과 담사영의 눈이 빛났다.

동수(同手)다. 서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내친 공격으로 물러난 거리나 걸음, 해소한 힘의 총량이 같았다.

“제법이군.”

우우우우웅.천마도가 울었다.

충돌 횟수가 많아질수록 천마도의 도명이 거세졌다. 칼에 쏟아부은 서량의 마기가, 천마도에 봉인된 이천상의 선천마기가 울고 있었다.

“제법이야. 강해졌다고 생각은 했지만,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네 그 지랄 같은 성품을 제외하면, 너의 욕망과 노력만큼은 인정해 줄 만하군.”

담사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놈이 저런 말을 꺼내서는 안 되었다. 놈은 자신의 개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개가 자신을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노옴!”

콰아앙!

무서운 속도로 접근한 담사영이 쌍장을 휘둘렀다.

서량이 마주 칼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정!

천하제일마병과 충돌하면서도 담사영의 손은 멀쩡했다. 강력한 진기로 보호받는 그의 손은 이미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신병이기나 다름이 없었다.

퍼엉!

서량의 장포 끝자락이 터져 나갔다.

찌이이익!

담사영의 소맷자락이 길게 찢어졌다.

초절정고수의 무공으로도 먼지 하나 묻지 않을 의복이 찢어지고 터져 나간다. 궁극으로 향하는 무(武)의 충돌, 천하에 다시 없을 초고수 간의 충돌로 발생하는 힘의 폭풍은 그들 자신의 육신을 위협할 정도로 대단했다.

부우우웅!

담사영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 날아갔다.

담사영의 눈이 흔들렸다.

‘이놈.’

본능적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목이 날아갔을 일격이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것도 반 박자 빠르게 휘둘러진 일도였다. 대단한 위력도 아니요, 파괴적인 마기를 싣지도 않았는데 위협적이다.

‘살법?!’

쩌어어어엉!

서량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강한 충격파로 서량을 밀어 낸 담사영이 곧장 접근하여 일권을 휘둘렀다.

뒷발로 강하게 몸을 지탱한 서량 역시 주먹을 뻗었다.

꽝!

변식이 일절 없는, 순수한 힘과 힘의 충돌이었다.

담사영의 몸이 덜컥 멎었다. 반격에 가까운 권법을 상대했는데도 상체 전체가 삐걱거렸다. 그만큼 상대의 권력(拳力)이 강하다는 뜻이었다.

곧장 공격을 감행하려던 서량은 순간 천마도의 도신을 좌측으로 세웠다.

쩌어어엉!

서량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각법?’

이건 또 새롭다.

그는 담사영의 진신무공은 알아도, 그가 제 실력을 보인 걸 몇 번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몇 번의 승부 모두 벼락처럼 빠르고 예리한 수공(手功)과 권법 위주였다.

권장박투에 능하니 각법이라고 못 쓸 건 없지만, 이렇게 과격한 각법을 쓸 줄은 몰랐다. 언제나 정제된 움직임으로 단기간에 적을 격살했던 그였다.

담사영의 오른 다리가 무궁한 변화를 만들었다.

쩌저저저정!

천마도의 칼날과 몇 번이나 부딪쳤음에도 다리는 멀쩡했다. 오히려 그 강한 힘에 천마도를 쥔 서량의 손이 시큰거릴 정도였다.

‘많이 성장했군.’

담사영이 천룡궁의 술법을 익혔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건 천룡궁의 공부가 아니었다. 천룡궁의 공부를 사용하지 않아도 담사영은 강했다. 순수한 무공만으로도 능히 천하제일을 논할 만했던 것이다.

서량의 천마도가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번쩍!

무형의 참격이 일시에 나무 세 그루를 베어 버렸다.

퍼어어엉!

의복을 터트리며 나아간 장력이 거대한 바위 하나를 날려 버렸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담사영의 얼굴은 냉엄했다.

표정도 다르고 구사하는 무공도 달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순간, 같은 것을 떠올렸다.

‘이대로는 끝나지 않아.’

두 사람의 무공은 더하고 뺄 것도 없는 완전한 동수였다. 게다가 담사영 역시 서량을 위험천만한 적이라고 인식한 상황. 절대로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누가 먼저 집중을 잃느냐, 누가 먼저 지치느냐의 싸움이었다. 이대로는 절대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해 부딪쳤다.

퍼퍼퍼퍼펑!

잇따른 폭음에 그들이 선 산봉우리 전체가 뒤흔들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서로가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외양은 가일층 험해졌지만, 어떠한 내외상도 입지 않은 채였다.

서량은 담사영을 보았다.

담사영은 서량을 보았다.

서로를 보는 두 눈에서, 둘은 또 하나를 깨달았다.

파아아악!

기다렸다는 듯 후방으로 물러난 두 사람.

먼저 입을 연 것은 서량이었다.

“천룡궁의 공부는 꺼내지 않았군.”

담사영의 눈이 칙칙하게 가라앉았다.

“너 따위를 상대로 꺼낼 필요가 있겠느냐.”

“웃기고 있네. 죽일 확신이 없으니 꺼내지 못한 것이겠지.”

정답이다.

천룡궁의 술법으로 서량을 죽일 수 있다면 진즉에 꺼내 들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서량이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는 것이 먼저인 그였다. 세기의 악적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나 천룡궁의 술법을 꺼내 든다 한들, 서량이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천룡궁의 술법은 천하 어떤 공부보다도 신묘하고 괴이하다. 절정에 다다르지 못한 무인을 단기간에 초절정고수로 만들어 낼 만큼 상리(常理)를 벗어나기까지 했다. 자연 그 자체의 기를 다루기도 하는 만큼, 한 번의 술법으로 대량 학살까지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이 서량 정도 되는 고수라면 얘기가 다르다. 천룡의 술법을 펼치기도 전에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정면 승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도주를 서슴지 않을 것이다.

즉, 서량을 잡을 수는 없다.

그리될 경우, 괜히 이쪽의 패만 노출하는 꼴이 될 것이다. 자존심이 갈가리 찢어지고 서량을 향한 살기가 하늘에 닿을 만큼 승했음에도, 담사영의 본능은 훗날을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량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군림마황기의 삼대비기는 물론 구유마공도 꺼내지 않았다.

피차 모든 힘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이 싸움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쁘군.”

서량의 말에 담사영의 눈썹이 절로 꿈틀거렸다.

“다 녹슬어 버린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아. 적의 수장으로서도, 무인으로서도 상대할 가치가 있겠다.”

“닥쳐라.”

담사영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담담했기에 더 무서웠다. 극에 이른 살기마저도 다독이고 있다. 화를 낼 때보다 삭일 때 더 무서운 적이었다.

“너는 절대 날 넘어설 수 없다. 네가 천하진이라는 걸 몰랐을 때라면 몰라도, 알아 버린 이상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싸울 맛이 나지.”

담사영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감정을 잘 다스리고 있으면서도 한 번씩 울컥 올라온다. 서량의 목소리가, 눈빛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어디서도, 누구 앞에서도 이런 적이 없었다.

한참이나 서량을 노려보던 담사영이 말했다.

“왜 바로 오지 않았지?”

“무슨 말이냐.”

“네가 어떻게 마교의 마인으로 되살아났는지는 묻지 않겠다. 말해 주지도 않을 것 같으니까.”

말해 주고 싶어도 아는 게 없다.

“다만 신기하군. 손속을 나누면서 알았다. 너는 나를 증오해. 세상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한데 왜 바로 날 찾아오지 않았지?”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찾아갈 뻔했지.”

“한데?”

“스승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널 찾아갔겠지. 그리고 죽였을 것이다.”

담사영이 싸늘하게 웃었다.

“스승님이라…… 몇 년이나 되었다고 제법 친근하게 부르는군. 그 미친 학살자 놈을 말이다.”

대놓고 이천상을 모욕하는 그였다. 그러나 서량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분 덕분에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솔직히 떨떠름하게 느낀 적도 많았지. 하지만 그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다.”

“병신 같은 사제지간이로군. 아니, 이천상이 불쌍하다. 본인 제자 몸뚱이를 삼켜 버린 이름 모를 살수 놈에게 정을 주다니.”

“안다.”

“뭐?”

“설마 스승님께서 내 정체를 모른다고 생각한 거냐? 그분의 힘을 직접 봐 놓고도 그리 생각하다니, 그 빈곤하기 짝이 없는 상상력이야말로 불쌍하군.”

담사영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

“그분은 너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

“……!!”

“네놈이 어떤 놈인지,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도 전부 꿰뚫어 보고 계셨더랬지.”

서량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 양반이 보지 못했던 것은 오직 하나, 그 자신의 죽음이었다.”

스스로의 죽음을 상상하지 못한다. 이천상 정도의 존재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알았을 수도 있겠다. 다만 자신이 하늘로 날아오를지, 천마로서 죽을지를 몰랐을 뿐.

그 시점에서 이천상은 선택했다.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있음에도 마교주로서 죽을 것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가 위대한 것이다. 속세의 미련을 훨훨 털지 못했기에, 오히려 빛나는 이름으로 천년을 살아갈 그가.

적어도 이 무림이라는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천상이라는 이름 석 자는 앞으로 살아갈 모두의 머리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세상과 하나 되는 것보다 나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르르릉.

먹구름 가득한 하늘이 또다시 천둥을 울컥 토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한 방울, 두 방울 빗물을 쏟아냈다.

쏴아아아아.

떨어지는 빗물이 두 사람의 몸을 적셨다. 둘은 굳이 진기의 막으로 빗물을 튕겨 내지 않았다.

“설마 날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교주와 맹주 간의 만남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손맛까지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

“네놈이 한바탕 어울리기에 나쁘지 않은 놈이라는 걸 깨달았으니, 그걸로 됐다.”

그때, 저 멀리서 한 줄기 강력한 마기가 느껴졌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대호법인가.”

파라라락!

허공을 격하며 날아온 무담이 서량의 옆에 도착해 무릎을 꿇었다.

“늦었습니다, 교주님.”

“아냐. 저놈 실력 한번 보겠다고 멋대로 끌고 가 버렸는걸.”

서량이 담사영을 보며 말했다.

“인상적인 만남이었다. 다음에 또 보자고.”

한참이나 서량을 노려보던 담사영이 일순 미소를 지었다.

“긴장해야 할 것이다.”

의미심장한 한마디였다.

서량은 대꾸도 안 하고 능선을 걸었다. 그 뒤를 무담이 따랐다.

두 사람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천하진.”

스르륵.

살기와 불쾌함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얼굴이 어느새 무표정하게 바뀌었다.

마치 이전까지 보여 준 모습이 전부 연기였다는 양 재빠른 변화였다.

담사영이 입을 열었다.

“신기하군.”

섬뜩한 목소리였다.

놀랍게도 그것은 담사영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인의 목소리처럼 높고 낭랑했다.

“십대천마 서량의 전신(前身)이 암살왕 천하진이었단 말이지? 신기하네. 본궁의 술법으로도 이혼겁백은 불가능한데.”

담사영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점점 거세졌다.

우우웅.

담사영, 아니 그녀의 동공이 하얗게 빛났다.

“비가 오네. 혹시 모르니, 늙은 충신의 몸에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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