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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21화 (520/774)

521화. 작은 바람이 태풍을 만든다 (1)

서걱!

사람 몸뚱이만 한 바위에 사선으로 실금이 새겨졌다.

쿠웅!

매끈하게 떨어져 내린 바위가 땅을 울렸다.

"으음."

바위의 잘린 단면은 깔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찌나 매끈한지 동경 대용으로 써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위홍련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연신 투덜거렸다.

"이상하네? 이제 슬슬 될 때가 된 것 같은데?"

위홍련이 바위의 단면을 쓰다듬었다.

소름 끼치도록 매끄러운 단면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당금 무림에 이 정도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구파 장문인이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성에는 영 안 차는 듯했다.

"검의(劍意)가 실리지 않았어."

검이 경지에 달하면 잘린 꽃에서도 생기가 만발한다고 했다.

물론 마공을 익힌 데다가 평생 전검(戰劍)을 수련한 위홍련에게는 무리였다. 극마의 고수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참오하고 또 참오했다.

무공이 아닌 검도(劍道)를 좇으려 했다. 벽이 어딘지, 얼마나 단단하지, 어떤 식으로 돌파해야 되는지 알지 못하는 그녀로서는 검도에 매진하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판단은 옳았다. 철검마존과의 수련에서 깨달음의 중요성을 얻은 그녀는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빠르기가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검에 얼마나 의념을 싣느냐다."

위홍련의 눈이 깊어졌다.

"기(氣)는 의념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검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어."

휙! 휙!

새하얀 호포검이 허공에 멋들어진 잔영을 일으켰다.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하나의 검초가 된다. 그녀의 경지는 어느새 그러한 수준에 진입해 있었다.

"검을 내 뜻대로 움직인다. 말하자면 검아일체(劍我一體)요, 신검합일(身劍合一)이야. 신검합일은 꼰대를 만나기 전에도 올랐던 경지인데, 새삼스럽게 그게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위홍련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잡힐 듯한데 잡히지 않는다. 마치 희미한 꿈의 끝을 잡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과도 비슷했다.

이 길이 옳은 길이라는 걸 확신하면서도, 이런 순간에는 무공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어진다.

‘……으음.’

하지만 위홍련은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다.

무인에게 실전은 필수다. 하지만 실전만 겪는다고 검이 성장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참오하고 고뇌해야 할 때였다. 위홍련은 스스로의 인내심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모른 채, 끝없이 검의(劍意)를 갈구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 검에 잘린 물체에 생기가 남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지만 꼰대는 달랐어. 수십 송이의 꽃을 잘라도 그 단면에서 선명한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검과 꽃, 공기와 흐름이 본래의 자리를 찾은 것처럼…….’

위홍련의 눈이 흐릿해졌다.

‘어떻게 한 것일까? 그건 눈속임이 아니었다. 게다가 마공까지 익혔으면서 그런 흔적을 냈잖아. 만일 그 검을 구현할 수 있다면, 나는 사검(死劍)의 짝이 되는 활검(活劍)의 이치를 손에 넣을 수 있어. 그렇게 된다면…….’

그때였다.

번쩍! 쿠웅!

커다란 굉음과 함께 바위가 다시 한번 쪼개졌다.

깜짝 놀란 위홍련이 쪼개진 바위를 보았다.

"헉!"

놀랍게도 다시 한번 쪼개진 바위의 단면에는 역동적인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풍부한 생기는 사부, 철검마존 이상의 검의(劍意)로 인한 것이었다. 절단면이 동경처럼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활검이다!’

자신이 한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한 거지?

그때, 한 줄기 목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흔들었다.

"아, 깨셨나요?"

깜짝 놀란 위홍련이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멋쩍은 얼굴을 한 주서윤이 있었다.

"죄송해요. 말을 걸어도 답이 없으시길래 기다리다가, 바위의 절단면을 보고 저도 모르게 호승심이 일어서……."

"오공녀?"

"네."

위홍련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서윤이 입을 열었다.

"혹시 폐가 안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한 겨?"

"……네?"

"어떻…… 아, 이게 아니지. 어떻게 하셨습니까?"

"뭐, 뭐가요?"

"저거요! 바위 절단한 거요!"

주서윤이 입맛을 다셨다.

"위 령주님만큼 매끄럽지 못하죠? 역시 아직 멀었나 봐요. 그래서 사형이 저를 여기로……."

"어떻게 저리 멋진 자국을 낼 수 있었던 겁니까?"

"……네?"

"저거요. 바위요. 검으로 자르셨잖아요."

"아, 네."

"어떻게 자르신 겁니까?"

"위, 위 령주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요?"

"저보다 못하다고요? 저 멋진 자국이요?"

두 사람이 눈을 끔뻑이며 서로를 보았다.

주서윤은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멋진 자국이라니? 표정을 보니 자신을 놀리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그게 무슨 뜻일까?

위홍련은 위홍련대로 당황했다. 이 양반이 지금 날 놀리는 건가?

바위를 자른 단면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생기. 지금의 위홍련으로서는 깨달음의 단초조차 잡을 수 없는 일검이었다.

"저 놀리지 마시고, 한 번만 가르쳐 주세요. 이거 어떻게 자르신 거예요?"

"……위 령주님께서 자른 단면보다 울퉁불퉁한데요?"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네?!"

"아니…… 아오!"

위홍련은 답답하다는 듯 바위 조각을 들어 단면을 가리켰다.

"이거, 이거 보세요. 아주 선명한 생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마치 원래부터 이렇게 생긴 것처럼 몹시 자연스럽죠. 그렇지 않아요?"

"……?"

"그렇지 않습니까?"

주서윤이 연신 헛기침을 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허! 거참."

위홍련이 답답한 듯 가슴을 쾅쾅 쳤지만, 답답하기로는 주서윤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오히려 왜 거기에 감탄하시는지 모르겠는걸요. 오히려 저는 위 령주님의 단호한 일검을 배우고 싶어요. 검으로 저리 매끄러운 단면을 만든 사람은 처음 봐요."

"저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맞는데요……."

"아니!"

도무지 대화가 안 된다.

죽어 버릴 것 같은 답답함에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그녀가 문득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

"근데 오공녀님이 여기 왜 계신 겁니까? 혹시 저한테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 그거요?"

주서윤이 반색하며 말했다.

"사형이 위 령주님과 함께 수련하면 서로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셔서요."

"사형? 누구 사형?"

"……."

"아, 교주님?"

"네에."

주서윤이 다시 한번 헛기침을 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저…… 불편하시다면 그냥 따로 수련을……."

순군 위홍련의 입에서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뛰쳐나왔다.

"안 돼!!"

주서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귓가의 머리카락이 뒤로 훙 하고 밀렸다. 엄청난 욕망이 느껴지는 외침이었다.

위홍련이 허겁지겁 그녀의 양손을 잡았다.

"저랑 같이 수련해 주십시오. 부디 오공녀님의 멋진 검을 제게도 알려 주세요."

"네, 네?!"

"아, 혹시 비전인가요? 하긴 깨달음이라는 게 쉽게 전수되고 그러는 게 아니죠?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제가 우리 꼰대의 철검십식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제법 공평한 거래가 될 것 같지 않습니까?"

대체 이 인간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하나는 알겠다. 교주 직할 특수 부대 마왕령의 수장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 저는 령주님께서 제게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겠는데요……."

"허어…… 하긴, 보통 깨달음이 아니니까요. 이런 활검에 비하면 꼰대의 철검십식은 ‘따위’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슴다. 근데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활검을 묘리를 터득하셨대요? 대단하심다."

위홍련은 답지 않게 주서윤을 마구 치켜세웠다. 혹시라도 마음이 변할까 싶었던 것이다. 안 하던 짓을 하니 말끝이 괜히 뭉개지는 기분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주서윤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자른 바위의 단면에서, 자신이 모르는 뭔가를 위홍련은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구나.’

상대의 높은 안목에 감탄이 나왔다. 정작 주서윤은 자신이 자른 바위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부끄러웠다. 더 철저하게 단련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저도 어떻게 잘랐는지는 모르겠어요. 아! 그 전에요."

"예?"

"저, 사형께서 위 령주님과 함께 수련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은 하셨는데요."

"과연 교주님이십니다. 저의 부족함을 어떻게 알고 이런 고귀한 분을……."

"그 전에, 교주님께서 찾으세요."

"예?"

주서윤이 또박또박 말했다.

"위 령주님 지금 찾으신다고요. 일단 교주전으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서량을 향한 찬양이 순식간에 저주로 바뀌었다.

"시벌, 망할 양반 같으니. 이 중요한 순간에 왜 부르시는 거야? 사람 잘되는 꼴을 그렇게 보기가 싫으신가."

주서윤은 저도 모르게 밭은기침을 뱉었다. 그녀는 신교의 주인이자 천마의 칭호를 받은 위대한 마인에게 이런 막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후딱 다녀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십쇼!"

파아아아앙!

위홍련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주서윤은 입을 뻐끔거렸다.

"엄청난 속도구나. 과연, 령주님이랑 수련하면 많은 걸 배울 수 있겠어."

* * *

"어, 왔냐?"

"……."

"뭐야? 왜 그래?"

"……끄으응."

"똥 마렵냐?"

"아닙니다. 직접 뵙고 따지려고 했는데, 막상 뵈니까 영 주눅이 드네요."

서량이 콧방귀를 뀌었다.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 하지 말고 이리 와. 전략실로 가자."

"일 시키시게요?"

"그럼 그 비싼 월봉 받고 계속 처노시게? 양심 어디다 떨구고 다니십니까?"

"방에요."

"시끄러워, 인마. 빠져 가지고 금방 오지도 않고. 보나 마나 또 어기적거리면서 왔지? 이 아름다운 새끼."

"달려왔그든요? 아! 그 전에요."

"뭐?"

"오공녀가 그러던데요? 같이 수련하라고 하셨다고요."

"그랬지."

"오공녀 정체가 뭐랍니까? 세상에, 바위를 쪼갰는데 그 단면에서 생기가 느껴져요. 마침 제가 그 검도(劍道)를 배우고 싶었는데……."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위의 단면에서 생기가 느껴졌다고?"

"네! 굉장하지 않아요? 어떻게 그 나이에, 심지어 저보다 약하면서……."

"나도 못 해."

"잉?"

"나도 그런 거 못 한다고. 지금 네가 떠들어 대는 게 활검지묘(活劍之妙)를 말하는 거 아니야?"

"네! 그거요!"

"시벌, 바위를 잘랐으면 죽었으니 사기(死氣)가 나와야지 왜 생기가 흘러? 그게 더 비정상 아니야?"

"……어라?"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은 애초에 얼마 없어. 아마 현천 노선배에게 배우더니 신선검도(神仙劍道)를 깨달았나 보다."

"교주님도 못 한다고요?"

"그걸 굳이 해야 돼?"

"그, 그럴 필요는 없지만요."

"내가 아는 무공은 철저하게 상대를 죽이고 파괴하는 거야. 상대를 살려야 하는데 왜 검을 휘둘러? 활검이라는 것도 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개소리지."

"하, 하지만 오공녀는 분명히……!"

"그렇다면 나나 너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셈이겠지."

"……!"

위홍련은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하니 서량을 보았다.

서량이 그녀의 볼을 쭉 당겼다.

"으갸갸갸갹!"

"너한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알아서 배워. 다만 하늘 같은 교주님의 시간을 축내진 말라고. 알았어?"

"……네엡."

"얼른 들어와. 바빠 죽겠구먼."

"근데 무슨 일이래요?"

"가서 들어,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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