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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24화 (523/774)

524화. 작은 바람이 태풍을 만든다 (4)

"……?"

"왜?"

"……."

"뭘 그렇게 괴상망측한 눈으로 보는 거야?"

"교주님."

"왜 불러."

"어깨에 그……?"

"이 녀석?"

"설마 금호가 새끼라도 쳤습니까?"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은 그냥 금호야."

"허어……."

호요성은 멍하니 금호를 보았다.

금호는 엄청나게 작아져 있었다. 몸길이가 성인 남성 팔뚝보다도 더 짧았고 길쭉한 주둥이도 한껏 짧아졌다.

게다가 마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처럼 솜털이 가득했다. 서량이 삼공자 시절에 처음 봤던 당시보다도 더 어려 보였다.

"엄청 귀엽네요."

"내 눈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보여."

호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는 금호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극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힘을 많이 소진했네. 그리고 죽고 다시 태어난 거야."

"죽고 다시 태어났다라……."

"고죽림에서 나오지 않은 건 살기 위해서였지. 천하의 어떤 곳도 고죽림만큼 영기가 풍부하진 않으니까."

추측하기로, 당시 금호가 유독 늦게 온 것은 천하의 영지(靈地)를 골라 찾아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서량이 본 금호의 과거에서, 금호는 거의 모든 힘을 소실해 버렸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스로 영기를 불린 후 다시 세상에 나왔지만, 천하 어떤 영지도 금호의 요력을 다 채워 줄 만한 곳은 없었다. 결국 얻은 요력을 소모하고 채우길 반복하며 뒤늦게 신교로 돌아온 것이다.

만일 중원에서 영기를 빨아먹지 못하고 죽었다면, 시랑(豺狼)의 영원 같은 삶은 그 길로 끊어져 버렸으리라.

‘그때도 설마?’

서량은 마경각에서 적송이 자신에게 무상대능력의 깨달음을 전해 주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때 분명 금호가 눈을 떴었다. 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다시 금호가 눈을 뜬 적은 없었다.

‘착각했구나.’

적송대사의 깨달음은, 비록 신화에 닿을 정도는 아니었더라도 당대 천하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었다.

그러한 힘이 자신의 분신에 들어왔으니, 금호가 깨어났던 것이다. 서량의 힘을 빨아먹고 죽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그것은 순수한 깨달음이었을 뿐, 서량의 힘을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영물이군요."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영물이든 사람이든 죽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똑같아. 앞으로는 이 녀석을 죽게 하지 않을 걸세."

"아…… 예."

호요성으로서는 서량이 하는 말을 십 할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서량의 두 눈에 모종의 결심이 들어찬 것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금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금호도 다시 돌아왔는데, 중원 돌아가는 상황이나 볼까요?"

"그게 금호랑 무슨 상관이야?"

"어쨌든 아셔야 하니까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좋아. 한번 보도록 하지."

호요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일단 빙궁부터 시작하지요."

* * *

"허억! 허억!"

침상에서 일어난 무담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가득 젖어 있었다.

‘뭐지?’

무담은 이마를 훔쳤다. 흥건한 땀에 소매가 다 젖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었고 사지에서는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사시사철 어떤 때라도 전신의 활력을 주었던 마기가 예전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질 않았다.

‘으윽.’

가슴에 손을 올렸던 무담은 순간 강한 두통을 느꼈다.

양손으로 머리를 잡고 내공을 끌어 올려 보았지만, 영 쉽지 않았다. 의지를 일으킴에 따라 마기가 휘도는 것은 예전과 같았지만, 이상하게 목 위로는 올라가지 않았다.

‘이, 이게 뭐야?’

수천 개의 바늘이 두개골을 뚫고 뇌 곳곳을 긁는 듯했다.

미칠 듯한 고통이었다. 남들은 감히 상상조차 못 하는 고행으로 무공을 연마한 그였지만, 그런 그도 일순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었다.

실제로 이 ‘수법’에 당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목숨을 잃었다. 지독한 고통이 심맥과 연결된 상단전의 흐름을 끊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다만 무담은 달랐다. 그의 의지는 실로 극마의 고수다운 것이었으며, 정신력은 그 경지에서도 유독 단단했다.

그래서 그는 더 오랫동안, 더 지독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털썩!

무담이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극마의 고수란 정기신(精氣神)이 일체화되어 삼단전(三丹田)의 흐름이 유기적으로 돌아 일체의 병마(病魔)에서 자유로운 경지다. 익힌 내공술에 따라 다르지만, 어지간한 독은 호흡만으로 배출해버리는 것이 극마지경에 달한 고수의 힘인 것이다.

그런 무담이 기절할 정도로 심한 두통을 느꼈다. 범상치 않은 사태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스르륵.

무담이 몸을 일으켰다.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고개는 여전히 푹 숙인 채였고, 사지는 온통 흐느적거렸다.

마치 귀신이 몸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시체가 몸을 일으켜도 이렇게 공포스럽진 않으리라.

스르륵.

서서히 고개를 든 무담의 두 눈은 칠채(七彩)로 빛나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칠채의 빛 위로 무담의 마기가 덧씌워졌다. 이제야 무담다운 강인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무담의 정신은 여전히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자아는 깊숙한 곳으로 빠져 혼돈의 바닷속을 헤매고 있었다.

무담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꾸우욱.

서서히 주먹을 쥐니 양 주먹에서 강렬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렇군."

무담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평소의 그가 보여 주지 않는, 다소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굉장한 마공이야. 필시 교주의 마공은 더 대단하겠지?"

무담이, 아니 무명(無名)이 움직였다.

덜컹.

숙소의 문을 연 무명이 바깥쪽으로 나왔다.

"음."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무명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마공을 끌어 올렸다.

우우우우웅.

강인한 마기가 모호했던 전신의 감각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무담이 본래 지니고 있던 감각의 삼 할도 채 되지 않았다. 무명은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담의 단련 정도는 천룡궁에서도 얼마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고수의 감각이 고작 이 정도일 리가 없었다.

"그래도 충분해."

무명은 마기가 옹기종기 모인 곳으로 향했다.

"헉! 대호법님!"

"기침하셨습니까!"

무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에 무표정하고 말수가 적은 그였다. 무명이 지나가니 호법원의 마인들이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휴, 굉장한 압박감이군. 새삼 대단하셔."

"대호법님의 무공은 구대마존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하셨어. 은퇴하신 전대 고수분들까지 통솔하는 분이니, 얼마나 강하시겠어."

"하아, 나는 언제 저분의 발치에라도 이를 수 있을까."

"꿈 깨라. 평생 불가능할 거다."

"악담을 해라."

"그나저나 이렇게 일찍부터 무슨 일이시지?"

"모르지. 근래 워낙 바쁘시니까."

무명은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

‘신망이 깊군.’

상관이 없어지면 아랫사람들은 상관 욕하기 바쁘다.

상관이 잘해 줘도 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대화로 힘든 현실을 잊는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무담을 욕하지 않았다. 오히려 닮고 싶어 했고,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무담이 아랫사람 관리를 얼마나 잘했는지 알 수 있었다.

호법원에서 나온 무명이 내성 거리를 걸었다.

‘굉장하군.’

내성 주변을 둘러보는 무명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이것이 마교의 내성이구나. 굉장해. 천 년 동안 단 한 번의 침공도 허용하지 않았다더니, 내부만 봐도 이해가 가는군.’

언뜻 화려하기만 한 것 같지만, 건물의 배치나 사방으로 이어진 관도를 보면 병력 집산에 지극히 효율적인 구조였다.

마교가 자리를 잡은 십만대산 자체가 천혜의 요지였다. 설령 외성은 뚫을 수 있을지라도 내성까지 뚫기는 힘들 것이다.

‘애초에 이곳으로는 세작도 보내기 힘들겠어. 보보(步步)마다 마인들을 만나게 된다. 마공을 익히지 않은 자라면 며칠 지내는 것만으로도 심신(心身)이 느슨해지거나 지독한 긴장으로 가득하게 될 거야.’

침투 자체도 어렵지만, 설령 침투시켜도 걸릴 수밖에 없다. 무명은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가슴이 뛰었다.

‘역사상 최초인가?’

정파와 사파, 새외 무림인 중 마교의 내성 안을 이렇게 당당히 활보했던 자가 있었을까?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무명은 천 년 만에 최초로 마교 내부를 살펴보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하지만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조금 더…….’

그때였다.

"헛?! 대호법님!"

무명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짓궂은 얼굴을 한 문사풍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눈 밑이 시커멓게 변색된 걸 보니 근래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았다.

‘누구지?’

문사풍 사내가 물었다.

"이 시간이 여기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어제도 무리하셨다고 들었는데, 푹 주무시지 않고요."

감각은 많이 죽었지만 문사풍 사내의 실력이 변변치 않은 건 알겠다.

마교는 강자존. 친근한 듯 말을 걸어 오긴 했지만 무담보다 윗사람은 아닐 것이다.

무명은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주님을 뵈러 가네."

사내의 눈이 반짝였다.

"아, 그러십니까?"

"혹 지금 교주님께서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있겠는가?"

"마신궁에 계실 겁니다. 어지간해서는 밖으로 나서지 않으시니까요."

"그렇군. 고맙네."

"옙! 살펴 가십시오!"

무명이 걸음을 옮겼다.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디 가십니까? 마신궁은 저긴데요?"

"아, 그렇군. 미안하네, 생각할 게 많아서."

"하하. 요새 잠을 너무 안 주무시는 것 같더라고요. 여튼,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그러시게."

사내의 말대로 걸어가니, 과연 무시무시한 궁전이 눈에 보였다.

거대한 악귀가 생생하게 새겨진 대문. 극마의 고수가 혼신의 일격을 다해 내쳐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대문 위에는 마신궁이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무명이 마신궁의 대문을 지키는 이들, 흑백쌍위에게로 향했다.

"교주님을 뵐 일이 있네. 기별 좀 넣어 주게."

흑백쌍위가 고개를 숙였다. 그들 모두 호법원 소속이니 대호법에게 예를 갖추는 건 당연했다.

잠시 후, 대문이 열렸다.

쿠구구궁!

참으로 웅장했다.

무명은 속으로 감탄하며 마신궁 안으로 들었다.

‘많군.’

대문 너머, 수많은 문이 있었다. 몇 개의 문을 지나쳐야 비로소 교주가 있는 대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대전의 문 앞.

두 마인이 무명을 막았다. 무명은 무심하게 뒷짐을 지고 섰다.

마인들이 무명의 몸을 더듬었다. 당연히 무명의 몸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철두철미하군.’

마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그중 한 마인이 대전의 문을 향해 외쳤다.

"교주님. 대호법이 알현을 청하나이다."

무명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잠시 후, 낮게 깔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들라 하라."

쿠궁!

대전의 문이 열렸다.

무명은 그렇게, 천마신교의 가장 성스러운 곳인 교주전에 들 수 있었다.

"오, 대호법 왔나?"

무명의 눈이 번뜩였다.

‘마교주!’

태사의에서 일어난 마교주가 보였다.

그리고 마교주의 어깨에 앉아 있는 황금빛 털의 새끼 여우도.

"교주님을 뵙습니다."

서량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래, 그래."

무명은 볼 수 없었다. 서량과 금호의 두 눈에서 은은한 분홍빛이 떠올랐다 사라진 것을.

"안으로 들어오게."

쿠구궁.

대전의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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