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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25화 (524/774)

525화. 작은 바람이 태풍을 만든다 (5)

"사부님, 탕약을 달여……."

순간 단리후는 멈칫했다.

우우우웅.

그의 하나뿐인 스승은 황군 총대장이 아닌 천룡이 되어 있었다.

화려한 태사의에 앉아 허공을 올려다보는 천룡의 두 눈은 은은한 칠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심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팔걸이에 올려놓은 두 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손가락 끝에 보이지 않는 실을 걸어 조종하는 인형처럼.

단리후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용형괴뢰술(龍形傀儡術)!!’

용형의 괴뢰술이란 천룡술법의 극치 중 하나로, 타인의 몸에 심어 둔 천룡기(天龍氣)를 이용하여 타인을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비술이었다.

천룡궁 역사상 완전하게 익힌 자는 다섯을 넘지 않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술수이기도 했다. 술법에 대한 높은 이해도는 물론 혼주(魂主)로서 괴뢰를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진기(眞氣)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대 천룡궁주는 사부님의 몸을 빌려 용형괴뢰술을 완성했다. 천룡궁주를 받아들인 사부님께서는 이런 순간에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단리후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누구를 조종하고 있는 거지?’

용형괴뢰술은 천룡기를 지니고 있다 하여 아무에게나 쓸 수 있는 술법이 아니었다.

극에 이르렀다 해도 조종할 수 있는 수의 한도는 셋에 불과하다. 당연하게도 그 셋의 진력이 술사보다도 약해야 발동할 수 있다.

그렇게 단리후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였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담사영, 아니 천룡의 입에서 나직하게 흘러나온 말.

단리후의 눈이 번뜩였다.

‘마교!’

놀랍게도 용형괴뢰술의 꼭두각시가 된 자는 마교의 인물이 분명했다. 그것도 교주를 직접 대면할 만한 자격이 되는 마인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마교주와 만났을 당시에 천룡기를 심었다는 것. 마교주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교주 최측근 호위가 아니라면…….’

순간 단리후는 떠올릴 수 있었다.

사납게 쏟아지던 빗물, 풍부하기 이를 데 없는 수기(水氣) 속에서 담사영과 만날 수 있었던 마교의 충신을.

"……대호법."

* * *

무명의 눈이 번뜩였다.

‘굉장하군.’

충격적이었다.

담사영의 의식 속에 녹아 있을 때는 모호했다. 담사영의 자아가 워낙에 강해서, 모든 것이 꿈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최초로 마교주와 대면한 무명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자신을 느꼈다.

‘휘하에 두고 있던 암살자가 이렇게까지 성장했다고? 그게 가능한 건가?’

스승이 뛰어나도 따라오는 제자의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 강해질 수 없다.

이건 이천상이 뛰어나다기보다 서량이 대단했다고 봐야 한다. 대체 얼마나 이 악물고 단련했으면 고작 몇 년 새에 이 정도의 거인이 되었단 말인가.

"왜 그러나?"

"예?"

"하하, 어찌 그리 빤히 보고 있나 싶어서 말일세."

무명이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사이에 무례는 무슨."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명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런…….’

심장의 떨림이 일순간 사지로 뻗어 나갔다.

‘마공 때문인가.’

마공은 먹이 사슬 관계가 철저하기로 악명 높다. 실제 서량의 기량이 대호법 무담을 압도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본능적인 공포를 설명하기에 모자란 감이 있었다.

‘설령 마공 때문이더라도 이 강함은 진짜다.’

무명의 눈이 깊어졌다.

‘고금제일마 이천상이 인정한 유일무이한 후계자라…… 과연, 그럴 만한 사내야.’

담사영의 밑에서 암검으로 컸다?

이제 그런 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지금의 서량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쌓았느냐다.

무명이 보는 서량은 괴물이었다. 그것도 중원 천하에 누구도 비할 수 없는 무신(武神).

어쩌면 천룡 술법을 제외한 무공만으로는 담사영조차 감당키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천하제일(天下第一)…….’

감탄과 동시에 경각심이 들었다.

‘절대로 살려 둬선 안 될 자다.’

훅!

무명은 내심 깜짝 놀랐다.

어느새 한 발자국 앞에 나타난 서량이 무명의 면전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근래 무리한다고 들었는데, 과연 평소답지 않구먼. 내 그러게 좀 쉬라고 하지 않았는가."

무명이 읍하며 말했다.

"교주님께 못난 모습을 보여 드렸습니다. 송구하옵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딱딱한 사람 같으니라고. 그게 참 자네답긴 하지만 말이야."

그 말에 무명은 안도감을 느꼈다.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말이 있어서 왔겠지?"

"……그렇습니다."

"아침부터 좀 그렇긴 하지만, 술이라도 한잔하겠는가? 오늘은 나도 자네와의 대담이 끝난 후 한숨 푹 자고 싶어서 말일세."

"영광이옵니다."

"영광은 무슨."

서량이 몸을 돌렸다.

"따라오게나. 마침 새벽에 사부님께서 꿍쳐 두신 육천심주를 발견하지 않았겠나. 시원하게 한잔하자고."

"예에."

그렇게 무명은 서량의 뒤를 따랐다.

기다란 회랑을 걸어 들어가는 무명의 눈에 다시금 은은한 칠채빛이 감돌다 사라졌다.

‘크다.’

마공의 먹이 사슬 때문인가, 아니면 서량이라는 자의 존재감 자체가 남달라서 그런 걸까.

앞서 걷는 서량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태산처럼 거대했다. 온 힘을 다한 신법으로도 넘어서지 못할 것 같았고, 천하제일의 무공으로 공격한다 한들 꿈쩍도 하지 않을 듯했다.

‘거인…….’

크고 또 크다.

무명의 눈에 은근한 부러움이 일었다.

‘누구의 힘도 빌릴 필요 없는 절대 강자.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지.’

무명은, 그녀는 천룡궁 역사상 손에 꼽히는 재능을 안고 태어난 천재 중의 천재였다.

천하 어떤 술법도 그녀 앞에선 천자문만도 못했다. 한 번 훑으면 술법의 운용 원리를 깨우쳤으며, 나아가 어떠한 순간에 어떤 술법을 펼쳐야 적의 피해를 최대화할 수 있는지, 술가병법(術家兵法)을 배우기도 전에 깨우쳤다.

천룡궁이 낳은 희대의 괴물. 그러나 그녀에게는 선천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치명적인 그 약점으로 인해, 그녀는 담사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명의 눈이 점점 차가워졌다.

‘당신의 그 절대적인 힘으로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거야.’

천룡칠주(天龍七主)들은 하나같이 바보들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그 이상을 넘보려 하지 않았던 어중간한 놈들.

그들은 반쪽짜리 술법가일 뿐이었다. 애초에 무공으로 시작하여 술법에 연이 닿은 이들이다. 술법의 신묘한 힘에 빠져들어 진짜 묘리(妙理)를 깨우치지 못한 멍청한 놈들인 것이다.

만일 술법의 운용 원리에 통달했다면, 그들 하나의 힘으로 성(省) 하나를 뒤집었을 수도 있었다.

‘혈신기(血神氣)의 이력이 조만간 완료된다. 그렇게 되면 천룡의 진짜 칼날이 중원을 향하게 될 터. 천하제일마인 당신이라도 천지간의 이치를 조종하는 우리에게 대항할 수는…….’

그때였다.

‘헉!’

무명은 내심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

서량의 어깨에 앉아 있던 새끼 여우가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데 그 시선이 무척이나 묘했다.

은은한 분홍빛을 발하는 괴이한 안광(眼光).

마치 사람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한낱 짐승의 눈빛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뭐, 뭐지?’

서량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거대해서 이제야 시선이 간다.

‘여우……?’

모르겠다.

새끼지만 보통 짐승이 아니다. 저 기묘한 분홍빛 안광만으로도 평범한 짐승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한데 내가 왜?’

눈빛 한 번에 마음이 산산조각 난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이 허상임을 곧장 깨우쳤지만.

스르륵.

새끼 여우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널찍한 서량의 어깨에 앉은 모습이 몹시도 편안해 보였다.

떨리는 눈으로 여우를 보던 무명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내가 긴장하긴 했나 보군.’

염라마제에게는 두 마리의 영수(靈獸)가 있어, 그 둘을 염왕이수라 부른다고 하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금요차사로, 어지간한 대호만큼이나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황금빛 여우라고 하였다. 하지만 저 여우는 무명의 팔뚝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새끼라도 친 모양이군.’

그렇게 무명은 금호의 눈빛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잠시 후.

"여기는 오랜만이지?"

"예에."

서량이 문을 열었다.

덜컹!

문이 열리자마자 안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무명의 눈이 커졌다.

‘진법?!’

문 안쪽의 세상은 기화요초가 만발한 선경(仙境)이었다.

중원에서 쉬이 보기 힘든 아름다운 꽃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저 멀리 쏟아지는 폭포는 적당한 소리로 귀를 씻어 주었다. 꽃밭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사슴들과 거대한 바위 위에 엎드린 호랑이는 도무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굉장한 진법이다.’

무명은 한눈에 이 진법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엄청나구나. 본궁의 만상환룡진(萬象幻龍陣)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이야.’

무명은 경외감과 동시에 패배감을 느꼈다.

술법, 진법의 영역에서는 천룡궁이야말로 의심할 나위 없는 천하제일이라 생각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천룡궁의 어떤 진법도 이처럼 자연스럽고 풍부한 자연기(自然氣)를 드러내지 못했다.

애초에 진법의 근본 원리부터가 달랐다.

놀랍게도 무명은, 이 진법의 원리가 어떠한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만상환룡진과 다르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 진의 중추가 어디인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처음이었다. 술법, 진법을 보고도 한눈에 운용 원리를 깨닫지 못한 적은.

"자, 저기로 가지."

서량이 가리킨 곳은 꽃밭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정자였다.

먼저 정자로 향하던 서량은 문득 뒤를 바라보았다.

푸스스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아마 무명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예 인지 자체를 못 할 터였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했다. 이곳은 온전히 서량의 세계이니까.

치이익. 푸스스스.

무명이 한 발짝, 한 발짝 옮길 때마다 그녀가 밟았던 땅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작은 불꽃이 타올랐다 싶더니, 어느 순간 강한 습기가 불꽃을 꺼트렸다. 습기가 맴도는가 싶더니 나무의 잔가지가 치솟았고, 잔가지가 이는가 싶더니 흙이 올라와 가지를 덮었다. 그리고 그 흙 위로 작은 철의 결정(結晶)들이 솟구쳤다가 흩어졌다.

오행(五行)이었다. 오행상생, 오행상극의 원리가 거기에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명이 보지 못한 하늘에서, 서량은 볼 수 있었다.

밤낮이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 일(日)과 월(月)의 교차였다. 몇 발자국 옮긴다 싶은 순간 하루가 바뀌는 것이다.

또한 음양(陰陽)이었다. 우주가 품은 시간의 흐름이 하늘 안에 있었다.

척.

거대한 정자는 화려하게도 꾸며져 있었다. 이미 그 위에는 조촐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자, 한 잔 받게나."

"감사합니다."

무명이 공손하게 잔을 받았다.

자신의 잔을 채운 서량이 잔을 들었다.

"이렇게 대작하는 건 처음이지?"

"예?"

"처음 아닌가?"

무명은 쉽사리 답할 수가 없었다. 서량이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한 건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서량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이 맞을 거야. 대호법과는 마셔 봤지만, 자네와는 마셔 본 기억이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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