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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26화 (525/774)

526화. 마(魔)의 미학 (1)

무명은 서량을 주시했다.

공손하게 든 술잔은 그대로였지만, 무명의 눈빛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존경스러운 교주님을 우러러보는 눈에서, 무색투명한 괴인(怪人)의 눈빛으로 바뀐 것이다

한참이나 서량을 보던 무명이 미소를 지었다.

“언제 알았나요?”

서량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네가 마신궁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무명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지난 자신의 행보를 돌이켜 보다 문득, 문사풍 사내를 떠올렸다.

“그때로군요. 그 문사를 만났을 때.”

“본교의 총군사지.”

“……호요성.”

“말 몇 마디 나누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천재야. 그가 그러더군. 평소의 대호법과 다르다고.”

“평소의 대호법과 다르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대호법과 총군사 사이는 그리 가깝지 않아. 서로를 존중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본교의 총군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다. 제아무리 대호법이라도 총군사에게는 예를 취해야만 하지.”

순간 무명은 호요성의 말을 떠올렸다.

- 마신궁에 계실 겁니다. 어지간해서는 밖으로 나서지 않으시니까요.

- 하하. 요새 잠을 너무 안 주무시는 것 같더라고요. 여튼,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무명의 눈이 깊어졌다.

“곧바로 당신에게 알린 것이군요.”

“그랬지.”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의심스럽긴 하더군. 대화 때문이 아니야. 대호법의 눈빛은 자네처럼 혼탁하지 않아.”

무명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요?”

“그래.”

“어떻게 연기하든 통할 대상이 아니었군요. 나름 잘 감추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거야. 대호법 정도 되는 고수를 괴뢰로 만드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어려운 법이지. 너는 그걸 해낸 거다.”

“칭찬인가요?”

“설마? 이건 자책이야.”

츠츠츠츠.

무명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보는 서량의 마안(魔眼)은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마치 코앞에서 맹수가 노려보는 것처럼, 황금빛 동공 속에 검은 점 하나가 콕 박힌 것 같았다.

“제아무리 타인의 육신이라도 만마(萬魔)를 지배하는 내가 너의 존재를 몰랐다니, 참으로 통탄할 만한 일이지.”

“자부심이 대단하군요. 이 괴뢰술은 술자를 제외한 누구도 알아볼 수 없어요. 고작 눈빛을 보고 알아챈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랍니다.”

“그거야 네 상식이지.”

서량의 자세가 나른해졌다.

한쪽 팔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지그시 뒤로 젖혔다. 왼쪽 다리를 세워 무릎 위에 팔을 올린 그 자세는 방만함의 극치였다.

“나는 신교의 주인이요, 신이다. 그리고 휘하 마인들은 나의 신도요, 자식이지. 나를 따르는 자식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은 엄연한 신의 잘못인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너희를 조금 더 끔찍하게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는 것 같구나.”

섬뜩한 말이었다.

서량의 말은 이미 본인들의 승리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기가 찼고, 그래서 더 불안했다.

무명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나의 괴뢰술은 타인의 영육(靈肉)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아요. 물론, 괴뢰술을 펼치는 그 순간 목숨을 잃지 않는다면요.”

“대호법은 버텼군.”

“그래요. 정말 놀라운 정신력이에요. 무공의 경지가 높다고 다 버틸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죠.”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할 말은?”

무명이 희미하게 웃었다.

“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할 거란 전제로 찾아왔어요. 막상 이렇게 되니 할 말이 없네요.”

“뭘 부탁할 셈이었지?”

“황제를 만나게 해 달라 할 셈이었죠.”

“죽일 생각이었군.”

“맞아요. 가장 좋은 건 당신이 죽는 거지만, 언감생심 그런 계획을 짜지는 못했죠. 기습한다고 당할 것 같지도 않아서요.”

결국 목표는 황제였다는 것이다.

“옥새 찾는 걸 포기하고 황제를 죽인다…… 본교를 제대로 된 역적으로 만들 생각이었군.”

무명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대단해요. 천하를 논하는 무공에, 신에 이른 안목이라…… 과연 ‘그’가 고달파할 만하군요.”

무명이 말한 ‘그’가 담사영임을, 서량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황제 암살.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놈들도 진정 선을 넘는 싸움을 하고 있군.’

황제 암살에 성공하면 굳이 옥새를 찾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옥새를 천마신교에 안겨 주는 게 더 이득이다. 스스로 천하의 황제가 되기 위해 옥새를 탈취한 무도한 집단으로 몰아갈 수 있으니까.

그 말인즉.

“그쪽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군. 하긴, 내가 봐도 빙궁이 잘 움직여 주고 있어.”

무명의 눈이 번뜩였다.

“당신과는 함부로 대화해선 안 되겠군요. 말 몇 마디로 상대의 속내를 간파해 낸다…… 그런 부분에선 총군사보다 당신이 더 능한 거 아닌가요?”

“웃기고 있군.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네가 어설픈 거다. 담사영, 그 쥐새끼 같은 늙은이라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거야.”

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요.”

자존심 상해 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서량의 얼굴에 흥미가 일었다.

“네 반응이 참으로 흥미롭군. 담사영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도 전혀 흔들리지 않아.”

“고작 그 정도로 흔들릴 만큼 수양이 얕지는 않지요.”

“재미있는 말이야. 즉, 네 말을 해석하자면 이렇군. 상대의 능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흔들리진 않는다. 흔들릴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너의 존재가 담사영의 아래는 아니라는 뜻이렷다?”

무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량이 턱을 쓰다듬었다.

“담 늙은이가 천룡궁을 휘하로 둔 게 아니라 공동 전선을 펼친 것이로군.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말이다. 아니,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어. 그러지 않고서야 천룡칠주란 놈들을 그리 마음대로 휘두르긴 어려웠을 테니까.”

“…….”

“그도 아니라면.”

서량이 술잔을 기울였다.

“담사영에게 힘을 실어 줘선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건가?”

“……!!”

무명은 단언할 수 있었다.

이 작자는 천하를 논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천하 정점에 올라선 자다.

무력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도 쫓아 올라가지 못할 드높은 봉우리에서 만천하를 굽어보고 있는 절대자였다. 그의 눈에 포착되는 순간, 누구라도 거짓을 연기할 수 없는 것이다.

위엄, 존재감, 지략, 통찰력.

절대의 무공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대단한 안목이었다. 무명처럼 술법의 대가라서가 아니다. 그간 쌓아 온 경험으로 선천적인 감각을 개화하여 천하 모든 것을 발아래 둘 준비가 된 자였다

‘무섭구나.’

처음 담사영을 만났을 때, 그가 가진 욕망의 크기를 깨달았을 때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량은 그 이상이었다.

세상을 손에 넣고자 하는 제왕의 욕망. 이 마도의 제왕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대화를 지속해 봤자 불리한 건 나로군요.”

서량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여기는 천마신교야. 네가 제아무리 잘난 술사라도 적지에 들어섰으니 무조건 불리할 수밖에 없지.”

“그런가요?”

“그래, 그렇다.”

무명이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뽑았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그리 말할 자격이 있군요.”

“자격도 되지 않는 자가 본교의 신으로 군림할 수는 없지.”

무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쉽네요.”

“뭐가?”

“차라리 담사영, 그자보다 당신을 먼저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담사영과 손을 잡은 안목이면, 나와 먼저 만났더라도 썩 좋은 관계를 맺었을 것 같진 않군.”

“경이롭네요, 당신의 자신감.”

“나는 그래도 돼.”

물끄러미 서량을 주시하던 무명이 잔을 비웠다.

서량이 혀를 찼다.

“나중에 대호법이 알면 아쉬움에 통곡을 하겠군. 멋진 술을 마셨는데도 기억 못 할 거 아니겠나.”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죠.”

“뻔뻔한 놈이로다.”

“그나저나 아쉽네요. 그날 쏟아지는 빗물의 수기(水氣)를 이용해 대호법의 몸을 완벽하게 장악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물러가야 한다니.”

“역시 그때였나?”

“그렇죠. 수기(水氣)는 오행의 자연기 중 가장 잘 스며들거든요. 그래서 괴뢰술을 쓸 때는 보통 수기를 이용하죠.”

“보통이라…… 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괴뢰화를 진행한 놈이 또 있는 모양이군.”

“…….”

“어중간한 놈을 꼭두각시로 만들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얼마나 만들었는진 모르겠다만, 그중 하나는 대국에 영향을 주는 권력가가 아닐는지?”

“…….”

“송 성주한테 천룡기의 흔적을 보았는데, 그 인간도 휘하에 넣었나? 그건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이지 질려 버릴 것 같은 통찰력이다.

이래서야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대화를 조금만 이어 가도, 그 말의 의미를 속속들이 분해하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곧바로 알아채 버린다.

귀신이 따로 없었다. 이 정도가 되니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무명의 표정이 서늘해졌다.

“적당히 하시죠.”

서량이 피식 웃었다.

“제 놈이 다 알려 줘 놓고 왜 엄한 사람한테 화풀이냐? 네 솔직하다 못해 바보 같은 언변을 탓해라.”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희대의 충신 하나를 잃을 수도 있어요.”

“이제 좀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지?”

“당신…….”

서량이 정자 밖을 바라보았다.

“신기하지 않나?”

뜬금없이 말을 돌린다.

무명이 차갑게 말했다.

“말을 돌리려 해도 늦었어요. 당신은 나를 너무 자극했거든요.”

“이 경치를 봐라.”

서량이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가 기억나는군. 그때는 참, 뭣도 몰랐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부끄럽군. 제자의 거죽을 뒤집어쓴 속세의 사신(死神)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꼬.”

그가 무명을 바라보았다.

무명의 눈빛이 조금씩 변화를 거듭했다. 강단 넘치는 대호법의 눈빛이 점차 칠채빛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서량의 눈에도 서늘한 기색이 감돌았다.

“혹시, 이거 아나?”

“…….”

“네놈은 아닌 듯하면서도 참 상처가 많은 놈이라는 거 말이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죠?”

“능력은 뛰어나면서 머리는 잘 안 돌아가는군.”

파지직.

서량의 손에서 은은한 회색빛 전광이 튀었다.

“너는 대호법의 몸을 차지한 술사 나부랭이다. 스스로를 천룡궁주라고 말한 적이 없어. 한데 나는 이미 네가 천룡궁주임을 알고 있었다.”

“……!!”

“어떻게 알았을까?”

무명의 표정이 돌변했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네놈의 마음이, 영혼이 너의 정체를 알려 주고 있어.”

그때였다.

「카아아아아앗!」

일순 쨍하게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비명에 깜짝 놀란 무명이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녀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보이나? 저게 너다.”

정자 너머, 폭포 속에서 일어나는 한 마리의 신수(神獸)가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비늘이 빠지고 피가 맺혔지만, 꿈틀거리며 허공을 유영하는 그 환상의 존재는 분명한 용(龍)이었다.

“반갑네, 천룡궁주.”

무명이 서량을 돌아보았다.

‘헉!’

무명의 눈에 서량의 등 뒤에 서 있는 거대한 악귀상이 보였다.

상처 입은 천룡(天龍)보다 열 배는 더 큰,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식할 것 같은 거대한 악귀상이.

서량의 웃음에 흉악한 살기가 어렸다.

“대호법은 역시 다시없을 충신이 분명해. 이렇게 천룡궁주를 데리고 와 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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