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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29화 (528/774)

529화. 마(魔)의 미학 (4)

“사부님께서는?”

“폐관 중이십니다.”

환야(幻夜)가 눈살을 찌푸렸다.

“폐관에 드셨다고?”

“그렇습니다.”

황곤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황곤을 봐 온 환야는 알 수 있었다. 황곤이 당황하고 있다는 걸.

문제는 그 당황이 누구 때문이냐는 것이었다. 환야가 보기에, 적어도 자신이나 그 스스로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시국에 폐관이라니? 나한테 한마디 언질도 없이 그러실 분이 아닌데?”

과거, 송금백과 함께 서량을 봤던 그는 당시 무시무시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마교의 소교주는 그때도 이미 천하를 논할 만한 무인이었다.

물론 환야 역시 삼십 대에 구파 장문인급의 무공을 손에 넣은 불세출의 천재였다.

하지만 서량은 그 정도를 훌쩍 넘어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다다를 수 있다는 극마지경에 올라 있었다.

비록 스승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 환야가 받은 충격은 대단히 컸다. 사파제일의 후기지수이자 역사상 최연소로 화경에 오를 차기 철혈성주라는 말을 들었거늘, 자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괴물을 만난 것이다.

그 덕에 환야는 자만심을 버렸다. 그 자만을 완전히 버리기 위한 폐관이었고, 자만을 버리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물론 화경의 벽을 뚫을 수는 없었지만, 폐관 전보다 훨씬 더 원숙한 무(武)를 손에 넣은 그였다.

이제 와 그에게 남은 것은 깨달음을 얻는 것뿐이었다. 육체의 수련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해서, 큰마음을 먹고 사부님을 뵈러 왔거늘 폐관에 드셨다니?

“소성주님께서 폐관에 드신 이후, 성주님께서는 무수히 많은 일을 처리하셨습니다.”

“그건 나도 아네.”

“그 와중에 삿된 심마(心魔)를 얻으셨습니다. 근래 심마를 걷어 내신 줄 알았지만, 아직 잔존하는 심마가 성주님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심마?”

환야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사부님께서는 화경에 오른 분일세. 그것도 천하제일을 논할 만큼 깊은 경지를 이루셨어. 그런 분에게 심마라니?”

황곤이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성주님만 한 고수가 심마에 지배당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래서 더더욱 위험합니다. 그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니까요.”

“……!”

환야는 황곤이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애초에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성내 대사(大事)는 어지간해선 알려 주지 않았지만, 입에 담은 말엔 결코 거짓이 없었던 황곤이었다.

‘심마…… 사부님께서 심마라니?’

혹시나 해서 환야는 재차 물어보았다.

“혹, 사부님께서 왜 심마를 얻으셨는지는 알고 계시는가?”

황곤이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소성주께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숨길 게 없는 사제지간이라도, 야망에서 다른 두 사람에게 뒤졌기에 심마가 왔다는 소리를 전할 수는 없었다. 그건 자존심 문제였다.

환야가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알고도 말을 못 해 준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쯧. 자네, 알고는 있나? 나는 철혈성의 차기 성주일세. 사부님께서 자리에서 물러나시면 내가 성주가 된다는 말이야.”

“물론 알고 있습니다.”

“알고도 말해 주지 않겠다니, 자네는 나를 썩 존중하지 않는 것 같군.”

황곤이 당황한 눈으로 환야를 보았다.

훅.

환야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도는 능히 일대종사의 그것이었다. 자신의 무공을 완성시킨 자만이 풍길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기도였다.

평소의 황곤이라면 순수하게 감탄하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그것뿐입니다.”

환야의 얼굴에 은근한 노기가 치솟았다.

“자네 정말 그러긴가? 설마 사부님께서 당신의 상태를 제자에게 알리지 말란 말씀까지 하셨다는 겐가?”

“…….”

“아니군.”

황곤이 입술을 깨물었다.

“수하란 무릇, 윗사람의 마음을 능히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법이라 했습니다. 비록 성주님께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진 않으셨으나, 성주님을 위해서라도…….”

“사부님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차기 성주가 될 제자는 무시해도 된다?”

“소성주님.”

황곤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가 아는 환야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워낙 치켜세워 주었기에 다소 오만하긴 했지만, 행실이 무도하다거나 선을 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한데 지금의 환야는 달랐다. 그는 분명하게 선을 넘고 있었다.

“어찌 이러십니까. 저는 결코 소성주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네의 행동을 돌아보게. 자네는 지금 날 무시하고 있어. 하긴, 한두 번이 아니었지.”

“예?”

환야의 얼굴에 짜증이 일었다. 언뜻 상대에 대한 혐오마저 엿보일 정도였다.

“사부님의 총애를 받는답시고 본성의 대소사를 멋대로 처리한 것도 모자라, 가장 가까워야 할 사제지간을 필요 이상 가까워지지 못하게 했지.”

“소, 소성주님!”

“이거 알고 있나? 지금 자네의 행동, 반역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황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 반역이라니요?!”

“반역이 아니면 무엇인가? 사부님께서 자네에게만 말하고 폐관에 드셨다고? 말도 안 되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 사부님께 심마를 일으킨 사람이 자네라서 괜스레 말하길 꺼리고 있다는 게 더 그럴싸하지 않나?”

황곤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리고 당황한 만큼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찌하여 자꾸 고집을 부리시는 것입니까! 성주님께서는 현재 스스로와 싸우고 계십니다! 철혈성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이 상황에……!”

환야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고집?”

황곤은 아차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소 심한 발언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급한 마음에 소신의 언사가 다소 거칠었습니다. 사죄를…….”

터억!

황곤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그의 멱살을 잡아 올린 환야의 두 눈에 끔찍한 살의가 이글거렸다.

“네놈, 정말 죽고 싶은 것이냐?”

“소, 소성주님!”

“사부님이 없으니, 세상이 네 것이 된 것 같더냐? 때려죽일!”

황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코앞에서 쏟아지는 환야의 살기는 실로 지독했다. 황곤 역시 무공을 익힌 몸이지만 환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쿨럭!”

안색이 점점 창백해진다 싶더니, 기어이 피를 토해 내는 그였다. 그의 내공으로는 쏟아지는 환야의 살기를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참이나 황곤을 노려보던 환야가 그대로 그를 던져 버렸다.

쿠웅! 콰직!

“크윽!”

벽에 부딪힌 황곤이 부르르 떨더니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정신을 잃은 그의 오른팔은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환야가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께서 총애하시는 수하이니 죽이지는 않겠다. 감히 소성주에게 그런 모욕을 저지르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또다시 날 모욕한다면, 그땐 즉시 목을 날릴 것이야.”

정신을 잃은 자를 앞에 두고 굳이 할 말은 아니었다.

츠츠츠츠.

환야의 몸에서 기이한 살기가 넘실거렸다.

스스로의 살기를 주체하지 못한다. 넘실거리는 살기가 묵혈괴룡공을 자극하니, 시뻘건 진기가 화염처럼 올라와 그의 상단전을 자극했다.

“크흐흐.”

환야의 얼굴에 쾌감이 어렸다.

“사부님께서도 폐관에 들어가셨겠다, 황 군사도 저 지경이 되었으니 결국 본성을 맡을 사람은 나 하나뿐이렷다?”

결코 그럴 리가 없었다.

철혈성에는 무수히 많은 고수가 집결해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환야에 비견될 만한 고수도 여럿 있었다.

하물며 장로(長老)들은 어찌할 것이고, 그 외에 원로들은 어찌할 것인가.

철혈성주 송금백의 무공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그들은 상대의 틈이 보이면 언제든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늑대들이었다.

환야 역시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아는데도 그런 말을 자신 있게 뱉는 것이다.

정상이 아니다.

환야는 스스로 자만을 버리고 무공의 경지가 상승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그의 착각이었다.

심마는 송금백에게만 다가온 게 아니었다.

송금백 이전에, 환야에게 지독한 심마가 찾아왔다. 그는 서량이라는 불세출의 천재를 보며 형용할 수 없는 좌절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폐관으로 마음을 다스리려 했지만, 그런 위험천만한 상태에서의 폐관은 자칫 심각한 문제가 되어 사람의 품성을 해할 수 있다.

바로 지금의 환야처럼.

말하자면 이 또한 주화입마다. 폐인이 되어 무공을 구사하지 못하는 몸이 되는 것만 주화입마가 아닌 것이다.

다만, 그것은 온전히 환야의 잘못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송금백이 제자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었다면.

폐관에 들어가기 전 제자를 다독여 주었다면, 폐관을 끝내고 나온 후 뒤늦게나마 제자의 품성을 다스려 주었다면.

그랬다면 환야가 이 지경까지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지금의 환야는 그간 송금백의 방기로 인해 탄생한 살귀(殺鬼)나 다를 바가 없었다.

“후후, 어디 한번 사파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철혈의 옥좌에 앉아 보실까?”

황곤을 쓰러트리고 나온 그는 단숨에 성주전에 들었다.

누구 하나 그를 막는 자가 없었다. 환야의 존재감과 얼굴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시 없을 증명이었다.

그렇게 성주전으로 든 그의 눈에 화려한 태사의가 보였다.

그 귀하다는 백호의 호피로 뒤덮인, 거대하고도 위엄 넘치는 천고의 옥좌가.

홀린 듯 대전 중앙을 가로지르던 환야.

스르륵.

순간 환야의 걸음이 멈추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복면을 쓴 검사가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돌아가시오, 소성주.”

환야의 눈이 깊어졌다.

“혈위(血衛).”

“이 앞은 성주님의 허가를 받은 이들만 발을 디딜 수 있소. 제아무리 소성주라도 멋대로 이곳을 지날 순 없소이다.”

싸늘한 목소리였다.

황곤 때와는 전혀 다르다. 혈위는 성주전을 지키는 최강의 무사였으며, 송금백의 밀착 호위 중 하나이기도 했다.

황곤에게는 폭언을 뱉을 수 있지만 혈위에게는 그럴 수 없다.

혈위는, 그의 휘하에 있는 호위전의 고수들은 상대가 누구라도 법도를 어긴다면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들 이들이니까.

환야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저 장난삼아 걸은 것뿐일세. 너무 딱딱하게 굴지는 말게나.”

혈위는 말없이 환야를 보았다.

무색투명한 그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이 깃들지 않았다. 환야는 괜스레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개 같은 놈! 내가 성주가 되면 네놈과 황곤부터 죽여 주마!’

그렇게 환야가 마음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을 때였다.

“성주님! 급보입니다!”

덜컹!

대전의 문이 열리고, 성내 정보단원이 세 걸음 걸어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환야의 눈이 번뜩였다.

“무슨 일이냐?”

“……?!”

정보단원이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야가 버럭 외쳤다.

“성주님께서는 폐관에 드셨다! 소성주인 내가 당분간 성주님을 대신할 것이니 보고는 나에게 하도록 하라!”

“예? 아…… 예!”

“그래, 무슨 일인가?”

정보단원이 침을 삼켰다.

“마교주에게서 서신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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