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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31화 (530/774)

531화. 마(魔)의 미학 (6)

“신교의 총군사님을 뵙게 되어 삼생의 영광입니다.”

고개를 숙이는 음상단주 초해(草諧)의 모습에서는 공경의 기색이 가득했다.

호요성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천하 대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천마신교의 교주 서량.

그리고 그런 서량을 보필하는 최측근이자, 희대의 괴물인 담사영과 송금백을 몰아붙인 암중 괴물이 바로 호요성이었다.

다 떠나서 존중을 넘어 존경해 마땅한 인물인 것이다. 정보를 다루는 이로서, 무공보다 머리로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초해는 호요성을 소문주 공야치만큼이나 인정했다.

“자,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차는 잠시 후에 대접하기로 하고, 공야 소문주의 서신부터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예.”

초해가 서신을 건넸다.

서신을 펼친 호요성의 얼굴에 뜻밖의 기색이 어렸다.

“소성주 환야?”

“그렇습니다.”

“환야가 성주 대리를 주장하며 나섰단 말인가?”

“예.”

“하면 송 성주는?”

초해의 얼굴에 은근한 긴장이 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현재 철혈성주 송금백의 거취가 불분명합니다.”

호요성의 눈이 번뜩였다.

“자세히 말해 주시오. 아니,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소.”

“정보의 진실성 말씀이신지요?”

“그렇소. 하오문의 정보력이 천하제일임은 분명하지만, 다른 어디도 아닌 철혈성이오. 어떻게 정보를 뽑아 왔는지는 묻지 않겠소만, 확신을 해도 괜찮은 건지 확인하고 싶소.”

“철혈성 내 정보를 캐내기 위해 본문의 최정예 정보원 오십 명이 투입되었습니다. 그중 절반은 외성에서 대기했고, 나머지 절반이 내성으로 침투했습니다.”

“허!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하오?”

초해가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철혈성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애초에 철혈성 내에는 저희 문도들이 잠입해 있기도 하고요.”

사파에 정통성을 따지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굳이 정통성을 논해 보자면 하오문에 비견될 만한 정통 사파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 역사는 철혈성보다 오래되었으며, 천하 각지에 안 퍼진 곳이 없다. 천마신교, 전(前) 의천맹이나 새외 무림 정도를 제외하면 하오문의 눈은 어디라도 존재한다.

“말하자면, 이번에 파견한 정보원들은 기존에 잠입한 문도들에게서 정보를 받아 전달하는 연락책 역할을 한 셈입니다.”

“그렇구려.”

호요성은 새삼 하오문의 능력에 감탄했다.

하오문은 강호 무림에서 가장 천한 다섯 직종의 수장들이 모여 만든 정보 조직이다. 사파에서도 가장 천하다는 평가를 받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끈질긴 생존력은 천마신교나 소림에 필적한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이번 일로 하오문이 감당해야 할 피해를.

“이번 정보 탈취로 인해 하오문은 큰 해를 입을 수도 있겠군.”

철혈성 내의 정보를 천마신교가 알고 있다.

철혈성에도 똑똑한 사람은 많다. 당장은 당황해서 모를 수 있지만, 머지않아 내부에서 정보가 샜다는 걸 분명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타 조직의 세작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정보를 탈취한 용의자 중 가장 윗길에 놓일 이름은 하오문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초해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서 이번 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철혈성이 와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철혈성이 와해되는 것이 그대들에게 최선의 상황이겠소.”

“아닙니다. 이름뿐인 거대 연맹으로 남는 것이 최선입니다. 머리가 사라지고 수뇌부의 무력도 잃은 철혈성은 껍데기가 되어 버릴 테지요. 그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 최선입니다.”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이해했소. 아마 교주님께서도 그걸 바라실지 모르겠군.”

“그리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괜찮은 사람이다.

평생 하오문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다. 눈치도 빠르고 조심성도 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최측근으로 두었으니, 공야치의 그릇도 보통은 아니다. 호요성은 공야치, 그리고 초해라는 인물의 뛰어남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오문의 정보를 구 할 구 푼 진실이라 믿고 가겠소.”

“감사합니다.”

“자, 이제 들려주시오. 송 성주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갑자기 왜 소성주가 대리로 뛰게 되었는지. 나아가 철혈성 내부 분위기가 어떤지까지 모두.”

* * *

“이게 뭐야?”

위홍련이 눈살을 찌푸렸다.

“빙궁을?”

호요성에게서 온 서신을 확인한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담사영이 빙궁을 공격할 거라고?’

그러나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려 봐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일선에서 칼을 휘두르는 마인이었다. 그녀의 눈치는 생사가 갈리는 긴박한 순간에만 발휘된다. 애초에 복잡한 걸 싫어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유를 알아낼 리 없었다.

“뭐가 됐든, 명령이 떨어졌으니 길을 틀어야겠습니다.”

곽상의 말에 위홍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던 길이었으니 멀지 않을 거야. 가자.”

“예.”

“그리고…….”

“엥? 왜 그러십니까?”

위홍련의 얼굴에 잠시 찝찝함이 어렸다.

‘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온 전사(戰士)가 그녀였다. 비록 호요성이나 서량에 비할 만한 안목은 없지만, 적어도 그녀의 감각과 경험은 능히 최고라 할 만했다.

“가는 길에 애들 몇 시켜서 하오문 지부 좀 뒤져 보라고 해야겠다.”

“하오문이요? 거긴 왜요?”

“하오문은 최고의 정보 집단이야. 남부에서 멀어질수록 본교의 정보력보다 하오문의 정보력이 속도, 정확성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

위홍련의 눈에 마기가 일었다.

“이번 명령, 왠지 심상치가 않아.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 반나절 더 늦게 도착하는 한이 있더라도 빙궁의 상황과 움직임을 읽는 게 더 낫겠어.”

곽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발 빠른 애들 몇을 보내도록 하죠.”

“좋아, 가자.”

사천성으로 향하던 마왕령이 중간에 길을 틀었다.

마왕령의 기동력은 신교에서도 손에 꼽힌다. 특수 임무만을 맡는 조직이기에 경신과 은신 쪽에 탁월한 마인들을 차출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체력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전면전의 파괴력은 천마군에 비할 수 없어도, 천마군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마왕령이 호남에서 호북으로 넘어갔다.

호북은 담사영이 꽉 쥐고 있는 지역이었다. 이동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령주님. 하오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대?”

“현재 빙궁은 사천에서 섬서로, 섬서에서 하남으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그럴 거야. 총군사님이 말씀하시길, 빙궁의 최종 목적지는 산동이라고 했거든.”

“예, 그리고…… 안 좋은 소식도 하나 있네요.”

“뭔데?”

“모종의 부대가 빙궁을 뒤쫓고 있다고 합니다.”

“……담사영 쪽 병력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하니, 슬슬 속도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다.”

더는 조심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담사영 쪽에서 알아챈다 해도 상관없다. 지금은 마왕령의 움직임이 발각되는 것보다 빙궁의 안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강을 넘은 마왕령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폐가 터질 것처럼 달려 나가니, 수일 만에 호북을 벗어났다.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이동 속도지만 그만큼 마왕령의 체력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제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사람인 이상 이와 같은 강행군은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령주님! 급보입니다!”

“어디서?”

“하오문입니다!”

“말해.”

“현재 호북 중동부에서 기이한 무리가 저희 쪽에 따라붙었다고 합니다!”

“기이한 무리?”

“정체는 불명입니다만, 하오문 측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는 부대라고 추측 중입니다.”

“특작 부대라?”

위홍련의 눈이 번뜩였다.

“교룡조.”

허구한 날 전략실에 불려 가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다. 서량과 호요성이 아는 것은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얼마나 된대?”

“육십입니다!”

“위험하군.”

교룡조는 담사영 휘하, 천룡의 병력을 제외한 가장 강한 고수들이었다. 교룡조가 술법까지 익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무공만으로도 위협적인 적이 그들이었다.

개개인의 역량은 마왕령보다 우위. 수장의 무공 역시 초절정으로, 자신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고민하던 위홍련은 이내 결단을 내렸다.

“안 되겠다. 그놈들부터 잡고 가자.”

“예?”

곽상은 당황했다.

“하루라도 빨리 빙궁 쪽에 도착해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빙궁 도와준다고 그만한 적을 끌고 가는 건 더 위험해. 그리고 애들 체력도 바닥이다. 차라리 하루 동안 푹 쉬고 추적을 끊은 후에 출발하는 게 낫겠어.”

“하지만 령주님. 그들이 정말 교룡조라면, 본령 또한 희생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희생은 무슨. 난 그놈들과 싸우려는 게 아니야.”

“예?”

“추적을 아예 끊어 내거나, 최소한 거리를 세 배는 더 벌려 놔야지. 우리의 일차 임무는 빙궁을 돕는 거지, 교룡조를 박살 내는 게 아니야.”

위홍련은 상부에서 떨어진 명령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교룡조와의 교전도 불사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데서 힘을 뺄 때가 아니었다.

한층 성숙해진 안목, 보다 더 유연해진 마음가짐이다. 어느새 위홍련 역시 전투 부대의 수장으로서 완성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령주님. 북서부로 칠십 리를 더 가면 절벽으로 둘러싸인 소로가 있습니다.”

“좋아. 거기서 추적을 끊는다. 진천벽력탄의 사용을 허가한다.”

“명을 받듭니다!”

특작 부대 마왕령, 그중에서도 폭파 임무에 특화된 조원 오십 명을 절벽에 놔두고 나머지는 삼십 리를 더 가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하루 꼬박 체력을 회복한 마왕령은 삼십 리 밖에서 울리는 거센 폭음을 들을 수 있었다.

콰콰콰쾅!

삼십 리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꽃이 치솟는 게 보였다. 땅이 흔들리고, 어두운 새벽하늘이 한순간 확 밝아졌다.

위홍련이 씨익 웃었다.

“제대로 터트렸군.”

먼 거리지만 터져 나오는 불꽃과 굉음, 진동만 봐도 알 수 있다. 신기(神技)에 이른 안목이었다.

잠시 후, 오십 명의 조원들이 그대로 복귀했다.

“교룡조로 추정되는 고수 육십여 명의 발길을 묶었습니다. 개중 폭파에 휩쓸린 이십여 명의 적들이 바위에 깔렸습니다.”

“너희 체력은 어때?”

“놈들이 오기까지 교대로 쉬며 체력을 쌓았습니다. 강행군도 걱정 없습니다.”

“좋아! 잘했어, 이놈 새끼들! 바로 출발한다!”

“존명!”

파아아앙!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힘찬 이동이었다.

탄력을 받은 마왕령은 단숨에 하남으로 치고 올라가, 기어이 빙궁이 이동할 길목에 미리 도달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이동 속도였다.

“현재 빙궁 병력이 낙양을 지나 정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그대로 관도를 따라 이동 중입니다! 반나절 뒤에 이곳에 도착할 겁니다!”

“빙궁을 쫓는 적은?”

“반 시진 거리까지 따라붙었다고 합니다!”

“딱 좋아.”

위홍련이 씨익 웃었다.

“마왕천살진(魔王擅殺陣)을 형성해라! 놈들을 이곳, 이 자리에서 섬멸한다!”

“존명!”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서서히 석양이 질 무렵, 저 멀리서 새하얀 백색 의복을 입은 고수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파아아앙!

단숨에 달려 나간 위홍련이 포권을 취했다.

“천마신교 특작 부대 마왕령의 령주 위홍련입니다.”

“헉헉! 위, 위 령주님?!”

선두에 선 여강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이곳에서 위홍련을 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떻게 여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빙궁 병력 전원은 마왕령 뒤로 가십시오! 여기서 적의 추적을 끊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마왕령의 후미로 돌아선 그들.

잠시 후, 저 멀리서 수백의 고수들이 달려 나왔다.

“천살진 발동.”

카가가가강!

사람 팔뚝만 한 길이의 원통형 철제 극소포(極小砲)가 장전된다. 단발성이지만 그 위력은 사천당문의 폭우이화침을 한참 상회하는 위협적인 화기(火器)였다.

적들이 십여 장 안쪽으로 들어왔다.

위홍련의 얼굴에 살기가 일었다.

“싹 쓸어 버려라.”

퍼퍼퍼퍼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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